위의 열매가 뭔지 아세요 ㅎㅎㅎ 가시오가피 나무와 그 열매랍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간경, 신경, 강심, 강장, 음위증, 신경통, 관절염, 류마티즘성관절염, 강정 등에 주로 사용하였다고 되어 있단다.
이 땅의 죄악의 뿌리는? 2006/10/01/주일/
(열왕기상17장 34-41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성도 여러분, 이 땅의 죄악의 뿌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0월3일을 개천절로 지킵니다.
그러나 그 개천절이 단군신화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혹시 단군신화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단 한 분도 없으시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왜 그런 왜곡된 신화를 하나의 우리 민족의 역사관 속에 심어서 그 출발부터 허왕된 데 빠지게 만들었습니까?
그래서인지 이 민족이 하는 일이 아직도 쓸개빠진 곰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동물적인 왜곡된 역사관이 사람들을 짐승처럼 살게 만들어 간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 인류는 ‘한 조상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인류는 평등하며 특정한 민족만이 우월의식을 갖는 것을 배격해야 합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17:26).
얼마나 건전하고 바른 역사관입니까?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했다고 우리는 비난을 가하지만 우리가 아직도 단군신화 정도의 역사관으로 이 민족을 하나로 묶으려고 한다면 그것 역시 큰 왜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관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이상 하나님의 역사관에 동의해야만 합니다.
우리 인류는 하나님의 소생들입니다.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이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라라.”(행17:29).
우리가 알지 못한 때에는 그냥 그게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쳐왔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무지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민족이 되었으니 만큼 우리는 단호하게 단군신화와 같은 허왕된 역사관이 우리 사람들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왜 망한지 아십니까? 그 얘기가 구약 역사의 심장을 간파하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상숭배 때문에 망했습니다.
출20장의 제1계명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제2계명에 “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고 하시고 어기면 죽는다고 구약 성경에서 무수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5절에서도 “옛적에 여호와께서 야곱의 자손에게 언약을 세우시고....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그를 숭배하지 말며 그를 섬기지 말며 그에게 제사하지 말라”(35절)고 하셨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사 가나안 땅을 주시고 행복하게 살게 하신 하나님께 배은망덕하여 내내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 이방들이 섬기는 신은 주로 바알신과 아세라 목신이었습니다. ‘바알’은 ‘폭풍의 신’이며, ‘아세라’는 ‘바알의 아내 신’인데, 이 신이 농사에 있어서 바람과 비를 주며 풍년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보다 잘사는 가나안 족속이 부러워서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면 이스라엘 백성도 잘 살 줄로 착각하여 사탄의 유혹을 따라 우상숭배로 달렸습니다. 얼마나 바보짓입니까? 우상은 눈에 보이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질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 얼마든지 그런 유혹이 다가올 수가 있고, 그 유혹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주교는 이미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에 위안을 삼게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상, 예수상, 베드로상, 다비드상....
그러나 그런 유혹에 넘어지면 여러분의 신앙에 치명상을 입거나 하나님의 분노를 사게 되는 무서운 죄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좀 더 크게 떠서 볼 줄 안다면 지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바알신이 포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이동원 목사님은 “현대인들이 스포츠를 거대한 현대의 바알신으로 추앙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지나친 주최측과 주최국의 상업주의 선동,우리나라 붉은 악마 조정자들의 이익을 챙기는 수법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어디 스포츠 뿐이겠습니까? 우리 사회 전반에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쳐서 ‘잘 살아보세!’ 와 ‘한탕주의’가 맞물려서 만들어 낸 .... 물질적 풍요 ....쾌락주의가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땅의 죄악의 뿌리는 아직도 우상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과 이것들을 향한 심판의 칼을 갈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시7:12).
하나님이 결코 용납하시지 않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그 우상과 함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계21:8).
우리는 이번 추석 명절과 함께 개천절을 지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단군상 문제와 조상숭배를 언급하려고 합니다.
사실 문제 안 삼으면 문제가 안 된다는 식으로 은근 슬쩍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들만이라도 바른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며, 나아가서는 우리는 이런 것들을 타파하는 일에도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좀 먹고 결국 갖가지 사회문제의 악을 출산하는 근본적인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가르치고, 권하고 호소하고 실물의 비유와 환상을 보여주며 경계하고 경고했으나 순종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왕을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외면하고 멸시하고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며 불순종하였습니다. 더욱 악을 행하며 우상숭배에 극성을 부렸습니다.
이 시대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누가 단군상 철폐 문제를 강하게 들고 나오면 어디 그 사람을 가만히 두려고 하는가를 보십시오.
지금 전국에 남아 있는 364 곳의 공공기관의 단군상 철거를 위해 기도하고 호소하고 가르치고 집회하는 것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우상숭배는 곧 인류와 국가 민족이 하나님 앞에 저주받는 행위이므로 뜨거운 마음으로 단군상을 물리적으로 파괴한 것은 실정법을 잘지켜야 할 기독교인으로서 유감이지만, 몇 년 전에 파주의 삼학초등교, 조선대학교, 무주초등교나 광주공원 두 곳에 있던 단군상을 자진철거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여사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었다고 봅니다. 그녀는 전국 각지 면단위까지 불상을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는 무서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었습니다. 그는 문세광의 총에 맞아죽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고 다만 아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셨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행히도 우리 대한민국만은 다종교국가이면서도 종교간 물리적 충동이 없습니다. 그만큼 기독교가 ‘빛과 소금이 되는 것으로써’ 지혜로운 대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 한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인들은 온 인류가 하나님 사랑 안에서 하나되어 평화를 누리는 것을 소망합니다. 팔레스틴 같이 무력에 의한 것도 아니며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처럼 타종교는 파괴하고 반대자는 죽이는 폭력도, 인도네시아 일부지역 같은 무자비하게 수백 명씩 살인하는 행위 같은 것은 원치 않습니다.
아직도 방방곡에 남아 있는 364 곳의 공공기관의 단군상 철거를 위해 기도하고 호소하고 가르치고 집회하는 것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전라북도에는 바로 이 옆에 있는 신성초등학교에 단군상이 있으며, 그리고 완주 교육청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철거되기를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기독교국가는 아니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이 먼저 눈을 떠서 단군사상이 아니라, ‘오직 인류는 하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세계로 뻗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나라 이 민족이 영원히 복받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민족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음은 조상숭배문제입니다. 세계 어느 민족을 봐도 우리나라처럼 지극 정성으로 조상숭배를 하고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죽은 자에 대해 제사 드리는 풍속은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유교권에만 있습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관습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이같은 조상숭배 문제로 가족친족간에 커다란 대립과 갈등이 야기되었을 뿐 만 아니라, 조상숭배 문제와 결부되어 믿는 자는 가족이나 친족에게서 따돌림 받고 고립되어 전도의 길이 막히게 되었으며, 또한 이런 현상은 복음전파에 거침돌이요, 극복해야할 과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아직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괴롭혀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복음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조상숭배 문제와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천주교는 처음에 이 문제 때문에 충돌이 컸지만, 얼마 안 가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세속과 타협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지금까지도 이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인들 향해 “근본도 모른 녀석이다.”라고 비난을 가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 때문에 수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은 이 문제를 지혜롭게 잘 지켜왔습니다. 우리는 근본이 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기에 조상숭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일각에서는 그들과의 대립과 거리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조상숭배는 조상에게 대한 존경심의 표현이라는 윤리적인 차원에서 조상숭배를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미 천주교는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개신교회가 그런 쪽을 따라간다면 우리 개신교회의 생명은 끝나버린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조상숭배하는 자들 속에 무엇이 역사하고 있는가를 알면 간단합니다. 성경은 이런 것들을 향해서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20).
그렇다면 우리들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조상을 신으로 보는 것이며, 조상신이 복을 준다느니, 조상이 노해서 그렇다느니 하는 말들이 조상숭배를 부축이는 요소들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전통 제사 행위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 2가지가 있습니다 :
(1) 고대 중국 풍습의 잔재인 ‘죽은이를 잘 모시면 산 사람들에게 복이 온다는 믿음으로 드리는 행위’와,
(2) ‘죽은이의 혼령이 실제 찾아오신다고 믿고 음식을 차려놓고 그 앞에 대고 절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잘못된 신앙이나 풍속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제사는 죽은 자의 혼을 인격체로 생각하고 와서 듣고 보고 먹는다고 생각하면서 죽은 자의 혼과 교제하는 내용으로 드려지는데, 왜 이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란 말입니까?
바로 십계명의 제1,2계명....이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사항을 교묘하게 미화시켜서 정당화 시키려하는 행위를 우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조상숭배가 없었습니다. 13세기 고려말기 정몽주, 이색 같은 사람들이 중국의 성리학을 도입하면서 사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역시 조상들에 대한 제사가 아닌 뛰어난 사람들을 위한 사당이었다. 제사가 정식으로 도입된 것은 이씨 조선 때부터이다.
문화적 정서 속에서 교회에서 권장하는 것은 추모예배이다. 죽은 자의 조상에게 숭배나 음식을 드리지 아니하고 생사화복의 주관자 하나님께 경배하며 온 가족이 모여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남편과 아내를 추모하며 가족 화목의 행사를 갖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민감한 것은 우상숭배는 다른 어떤 죄보다도 ‘그 사회와 민족을 타락으로 길로 접어들게 하는 죄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타협과 양보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핍박이 오면 핍박을 받아야 하고 죽음이 오면 순교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들에게 충분히 납득이 가도록 설득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이번 추석에도 저들과 똑같은 행위를 하며 지옥형벌을 쌓은 일만 하고 살았을 것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39절을 통해서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오직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가 너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리라”(39절).
하나님만이 이 민족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참 신이십니다. 그분은 인류 역사의 키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우상숭배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라는 것을 알고 멀리 합시다. 그리고 이 민족이 우상에 돌이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합시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써 지난날의 죄를 다 용서받았습니다. 인류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다음에 백성들을 모아놓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24:15).
예수 그리스도만 섬김으로써 영원히 복받은 나라, 영원히 복받는 한국교회, 그리고 영원히 복받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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