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유혹을 이기는 비결

좁은길을 걸으며 2006. 9. 17. 15:51

 

    이제 코스모스의 계절이 시작되었네요 넘넘 좋아여 

 

 

                유혹을 이기는 비결                  2006/09/17/주일

                    (창세기3장1-7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세상에 사는 날 동안에는 ‘유혹’을 피해가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항상 유혹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그러니까 유혹을 피해서 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수없이 많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혹받는 것과 유혹에 빠지는 것은 다르다.” 맞는 말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유혹에 굴복하지 마라. 굴복이 죄이기에....”. 문제는 유혹에 굴복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을  때에 ‘유혹하는 자’, 곧 사단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유혹하는 놈은 에덴에서 가장 교활하게 생긴 뱀을 이용하여 그들을 유혹했습니다.

그의 첫마디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1절).

뱀은 아담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하와를 선택한 것입니다.

하와는 하나님과의 언약 당사자는 아닐지라도 그 남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창2:16,17의 말씀에 대해서 말합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그런데 하와는 이미 뱀의 말에 유혹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뱀이 처음 묻는 질문에는 색깔이 들어있었습니다.

본문 1절을 그의 질문의 의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얼른 눈치(상황판다)챘어야 합니다.

질문하는 의도가 불순하구나 하는 눈치를 채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든지 대꾸를 말았어야 하는데 그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존재이지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간 자칫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하와를 보십시오. 뱀의 유혹에 대한 대답에 문제가 있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2,3절).

여기에서 우리는 하와의 대답에 큰 문제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만지지도 말라!” 언제 하나님이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이 언제 “죽을까 하노라!”고 하셨습니까?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하와의 대답에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마귀에게 틈탈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고 말했더라면 “아차, 안되겠구나! 씨도 안 먹혀들어가는구나!” 하고 물러가버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무슨 미련에 끌렸는지 애매모호하게 대답을 하다가 결국 마귀로 틈 탈 그 틈새를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귀로 틈탈 기회를 주지 말라”(엡4:27).


이럴 때 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아니하리라!”(4절). 처음부터 끝까지 마귀는 거짓말을 합니다.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황우석교수 같은 사람 말입니다.

겉모습은 그럴싸하게 생겼습니다. 이단들이나,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도 겉 모습은 매우 인자하게 생겼습니다. 그야말로 광명한 천사입니다. 나는 회교지도자 빈 라덴의 사진을 보면서 “야, 참으로 인자하게 생겼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얼마든지 마귀는 우리에게 ‘광명의 천사’로 둔갑하여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뱀이 징그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멋있는지 아십니까? 한 번 비단뱀을 보십시오. 그것들이 저주를 받아서 배로 기어다니게 되어서 그렇지 만일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정말 지상에서 제일 멋있게 생긴 미물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뱀은 한 수 더 떱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잘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5절).

이런 상황에서 하와는 점점 자신도 모르게 유혹에 빨려들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뱀의 말을 계속듣고 있다가 결국은 마음이 그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에게 끌리게 됩니다. 그녀의 시선 역시 자동적으로 그쪽을 향하게 됩니다.

드글라스 제널드(Douglas Jerrold)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직한 빵까지는 좋으나, 버터가 유혹을 만든다.”

오늘날 모든 상품 광고들이 인간의 이런 속성을 이용합니다. 막상 예쁜 미녀를 선전의 모델로 등장시키고 그 상품에 대한 구미를 자극시키면 “나도 갖고 싶다! 나도 먹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유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같이 된다!”는 유혹입니다.

인생의 빨간 신호등이 켜졌는데 멈추지 않고 막 달리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실상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다가 지상으로 쫓겨난 천사는 우리 인간을 유혹할 때도 그런 죄를 범하도록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나타난 사이비종교 교주들은 그런 짓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내촌감삼은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홀로 걸어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인간들은 범죄한 이후로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되었습니까? 아니 그들이 하나님이란 말입니까?

그들은 그렇게 갔다가 결국 고생과 슬픔, 그리고 절망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말을 듣자 순간 마음 속에  “정말 그렇게 될까!”하는 의아심과 함께 충동감이 생겼습니다. 바로 ‘욕심’이 들어왔다는 얘기입니다. 가짜 약장사들을 보십시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충동을 부채질해서 결국 약을 사도록 만듭니다. 원리는 비슷합니다.

그는 결국 그 나무 열매를 쳐다보게 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6절) 보였습니다.

그녀는 욕심을 뿌리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은 눈만 간 것이 아니라, 발도 가고 손도 갔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주로 새를 잡아먹는 이상한 뱀이 있습니다. 뱀이 나무 위에 올라가 기다리고 있으면 가까이 새가 날아와 앉습니다. 그때 새가 뱀을 보지 않으면 살 수 있는데, 대부분의 새들이 처음에는 안 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에는 마음이 뱀에게로 끌려 뱀을 쳐다보게 되고야 맙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너무나 희한한 것은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새는 제 발로 걸어 뱀한테 와서 먹힌다는 것입니다. 꼭 보지 말았어야 하는데 볼 수밖에 없도록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범죄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야고보 선생은 이래서 사람이 죄를 짓게 된다고 말합니다. “오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유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우리는 누구나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외예가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유혹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사람을 죄를 지었다고 말하진 않습니다. 다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 유혹에 넘어지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곳곳에 유혹의 늪이 있습니다. 거기에 발을 헛딛으면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혹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유혹의 성격을 알고 유혹을 저항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1)마귀의 속삭임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별력을 갖는 것이 우선적인 문제입니다.

2)마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정말 그럴까?” 하면서 계속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어느 순간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고 그의 말에 동의하게 만들어버립니다.

3)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관한 바른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4)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유혹을 이길만큼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유혹을 저항한다는 것은 바람에 밀려오는 배를 거미줄로 막아보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5)모든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껏 기도해 놓고 그 유혹을 마음에서부터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섹커(Thomas Secker)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유혹의 장소로 가는 것은 너의 손가락을 불속에 넣고 불에 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혹은 떠돌이와 같습니다. 잘 대해주면 친구들까지 데리고 옵니다. 독일의 한 신학자는 “당신은 당신의 머리 위로 새가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은 새가 당신의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유혹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를 자기를 탐하여 같이 잠을 자자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함은 물론,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욕망대로 살아버렸더라면 구약의 요셉이라는 인물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유혹에 맞서서 싸울 힘이 있습니다. 요셉은 하늘에서 떠러진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또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았던 것은 ‘믿음’ 하나였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 중에 누가 보느냐 안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조상 하와는 뱀에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자기 남편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아담은 쉽게 받아먹고 말았습니다.

여자에게 약한 것이 남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약점을 이용해서 어떤 여성들은 남자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도록 할 수도 있게 만들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 말고 “모든 남자들을 예수 믿게 만드는 좋은 기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조상의 유전한 죄를 물려받아 죄를 떠나서 살 수는 없지만, 그러나 모든 유혹을 이기시고, 또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담당해 주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얼마든지 요셉처럼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유혹에 넘어져서 실패한 아담과 하와를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그습을 좇은 옛 사람(아담)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2-24).

그러기 위해서 이제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승리한 예수를 바라봐야만 합니다. 그렇게 살면 날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옛날의 실패를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해묵은 친구들을 피해야 합니다. 이제는 아담이 우리 인생의 모델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모델입니다. 그분을 우리의 모델로 삼고 항상 그분과 함께 인생길을 가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승리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를 마음에 새기면서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마6:13).

‘시험’은 곧 마귀의 ‘유혹(temptation)’이란 말과 일치한 낱말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유혹이 늘 따라다니지만 우리가 그 유혹을 이기면 그만큼 상은 커지고 파워 크리스챤으로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1 2: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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