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얼마나 살까?

좁은길을 걸으며 2006. 9. 10. 13:36

 

망얀 부족들에게 성경책 선물을 하기 위해 싸인하고 있다.

 

 

                얼마나 살까요?                      2006/09/10/주일/

                   (시편90편9-12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리는 이 땅위에서 한 번 살지 두 번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쉽지 않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세월을 허송해 버립니다. 나름대로는 의미있는 인생을 살겠다고 인생을 논할지 모르지만 그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또는 죽음과 관련해서 생각을 해 봤을 때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바로 이것들을 잘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1절).

우리 인생은 그 누구라도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만, 필수적인 것 하나가 집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이 거해야 할 ‘거할 집(거처;Our dwelling place)’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번에도 필리핀에서 모든 것이 불편한 가운데서 2주간을 살았습니다. 역시 내 쉴 곳은 내 집이고, 가장 안락한 곳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기본적으로 가정이 좋고 교회가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거기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믿음의 형제들이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곳이 우리 마음의 보금자리이듯이 우리 인생 그 누구라도, 그 어느 시대의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할 인생’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우리는 날마다 예배하고 속삭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땅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나이다”(2절).

그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원인자이십니다. 그분은 만물의 근원도 되시며, 복의 원천이 되십니다.

그분이 우주 만물을 지으셨고 또 여기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들을 지으셨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며 그 지으신 만물들로 하여금 영광을 받으실 존귀하신 분입니다. 그분을 섬기며 그분과 더불어 숨쉬며, 그분과 더불어 동행하며 살아가간다고 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 생각해 보면 참으로 허망한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인생무상(人生無常)에 대해서 3-9절까지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장례식에서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기도 합니다.

“주께서 사람을 띠끌로 돌아가게 하시고....”(3절).

우리는 언젠가 흙에 묻혀야 할 인생입니다. 주님께서 “너는 흙이니 돌아가라!” 하시면 오늘이라도 당장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천년 만년 살지 않습니다. “나는 안 죽는다고요?” 아닙니다. “나도 죽습니다!”

그 죽음의 그늘이 내 앞에도 드리울 날이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티끌만도 못한 존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옳습니다. 어떻게 보면 티끌이나 먼지만도 못한 존재입니다.

참으로 허망한 존재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여러분을 향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왜 까부느냐?”고 하거든 기분 나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인생의 길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길고 짧고를 따지기 좋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눈에는 그 길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천년을 가까이 산 인물들이 나옵니다. 아담부터 노아 때의 얘기가 그렇습니다. 그 중에 제일 길게 산 무드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역시도 허망한 인생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니이다”(4절).

‘경점’이란 말은 ‘시간을 알리는 한 순간’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운명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죽느냐고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안 죽고 이대로 영원히 살 수는 없을까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그러나 이 땅에 죄가 들어와서 우리 인간들을 타락시켰습니다. 인생에게는 죄에 대한 부담이 있습니다. 그것을 면할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분노를 발하게 했습니다. 그 분노로 인해 우리 모든 사람은 한 번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9절).

죄 안 짓고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인생들은 어쩌면 계속 하나님의 분노를 사는 일만 하다가 죽는지도 모릅니다.


독일의 의사 안다라는 사람이 전해주는 독일 어느 마을의 전설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마을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목욕할 수 있는 큰 컵이 하나 있는데, 컵을 한 바퀴 돌리면 그 컵 속에 들어앉은 사람이 젊어진다고 합니다. 돌리는 횟수만큼 사람이 점점 젊어지는 신비스런 컵입니다.

어느 날 한 할머니가 오셔서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컵을 여러 번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컵을 돌리는 사람은 할머니에게 “할머니의 소원대로 젊어지기는 하겠습니다만, 다만 지금까지 당신이 살아온 그대로 다시 살게 됩니다”라고 말하며 서약서에 싸인을 하라고 했다.

할머니는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그러면 젊어지는 것을 취소하겠다고 하며 되돌아갔다는 얘기입니다.

사실은 자기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을 되돌아보니, 이 땅에서 한 번 더 산다고 해서 뽀족하게 달라지리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할머니는 현명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하나님없이 살다간 인생은 오래 살면 살수록 죄만 더 짓다가 갈텐데 말입니다.


우리 인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우화에 대해서는 아마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우화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들에 나갔다고 사자에게 쫓겨서 도망치게 됩니다. 도망치다가 실족해서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순간,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절벽에 널려 있는 덩굴을 붙잡게 됩니다. 이래서 구사일생으로 추락사는 면했습니다. 그러나 쳐다보니 사자는 지금도 으르렁대고 있습니다. 내려다보니 밑에는 무서운 들이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덩굴을 잡은 손에서는 점점 더 힘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달콤한 냄새가 나기에 쳐다보았더니 마침 절벽에 꿀벌이 집을 지어놓고 있어서 꿀이 졸졸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 꿀을 한 손으로 찍어서 입에다 대보니 꿀맛이 괜찮았습니다. 또 이상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서 쳐다보았더니 덩굴 위에서 검은 쥐와 흰 쥐가 돌아가며 덩굴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해놓고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 하나님과 관련시켜서 살 때 그 죽음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12절).

여러분이나 나나 후회없이 살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이제라도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셈을 해 봐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날이 100년을 산다고 해도 고작해야 36500일입니다. 금방 지나갑니다. 여러분, 어제까지 무엇하다가 오셨습니까?

한국교회 초기의 부흥사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성가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꿈결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살까? 인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세상 고난 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이팔청춘 그 꽃다운 시절도 지나고 혈기방장 그 장년도 옛말이 되누나 성공실패 꿈꾸면서 웃고 우는 그 순간에 원치 않는 백발이 눈서리 휘날리누나!]

인생을 셈할 줄 아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시편 기자, 곧 모세의 모습 속에서 우리도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예수 믿는 일입니다. 그분 안에 거해야 심판을 면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예수의 피로 씻음받아야 할 인생입니다.


옛 켈트 족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사가 한 영혼을 인도하여 하늘나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천사를 따라가면서 못내 걱정을 합니다. “이렇게 함께 가자고 하시니 따라가기는 합니다만 나같이 죄많은 영혼이 감히 그 거룩한 나라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 저는 워낙 더럽고 죄가 많은 놈입니다.”

그는 죄가 많은데, 죄가 많은데 하고 되뇌면서 어느덧 천국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천국문으로 들어가기를 그토록 송구스러워하던 영혼이 자신을 보니 아주 깨끗해져 있는 것입니다. 아무 허물도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 영혼이 묻습니다. “내가 죄많은 사람인데 어이 이처럼 깨끗하게 되었지요?” 천사가 대답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다 덮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죄가 가리워져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혼은 마침내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이번에 필리핀에 가서 꼭 만나고 오고 싶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우리 국내에서도 요직에 있었던 분인데, 박운서 장로님입니다.

그분은 골프를 좋아해서 필리핀을 갔다가 자기 아내의 권유에 못이겨서 내가 선교지로 삼고 있는 민도로섬의 로하스라고 하는 곳에서도 산속 깊은 곳에 사는 망얀 부족의 사는 것을 보고 돌아온 다음에 그 마음에 오는 하나님의 음성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 인생의 안락한 생활을 모두 접고 그곳으로 퇴직금을 가지고 들어와서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보내는 분입니다.

나는 그분을 만나기 위해 10시간 이상을 찾아갔습니다. 아침 8시에 나서서 오후 6시 30분에 만났습니다.

“사실은 이 산속에 사는 망얀부족들을 보면서 완전히 짐승들 사는 거랑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지요. ....나는 이곳에 오기까지 힘들었지만 하나님이 가라해서 왔습니다.

남은 여생 85세까지는 일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나는 그들 속에 교회를 세우고, 평생 쌀밥 한 번이라도 먹는 것이 소원이 그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해서 밥이라도 먹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경지 5만평을 구해서 2년 동안 물소 50마리로 논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나의 철학은 "NO WORK, NO PAY"입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공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분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편하고 안락한 노년의 생활을 접고 새벽에 일어나면 묵상을 하고 농부의 옷을 갈아입고 일터로 나가는 모습 말입니다. 그분은 그쪽의 5만명 부족 가운데서 15명이 대학을 다니는데 기숙사를 제공해 주고.... 조건은 주일에 교회 나가는 것과 주에 2시간씩 성경공부 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다짐을 받고 이미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앞으로도 부족들을 상대로 10개의 교회를 세우고,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운영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박운서장로님께서는 인생을 셈할 줄 아는 분이라는 생각입니다. 남은 여생을 제대로 셈할 줄 아는 지혜를 배운 분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리는 한 번 살고 지나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백년대계 인생 중에 90%를 산 분도 있습니다. 3650일입니다. 10년 더 남은 인생이라면 어떻게 살다가 가시겠습니까? 아니 99%를 살았다 할지라도 아직도 기회는 있습니다. 365일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세상으로부터 구출되기 위한 구출물이 아니라, 세상에 사용되기 위한 투자물이다.”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이란 머셔버려야 할 잔이 아니라, 채워야 하는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가장 보람있게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틀림없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우리 인생 길고 짧은 것이 문제는 아닙니다.

예수 안에 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우리의 인생의 존재 목적이 있음을 알고 지혜를 얻어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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