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노인을 공경하라

좁은길을 걸으며 2006. 10. 8. 10:15
 

 

    우리 조카들이다. 나도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도 늙어가고 있다.

 

 

                 노인을 공경하라                     2006/10/08/주일

                      (레위기19장32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도 여러분, 지난 10월 2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노인의 날’ 맞습니다. 그런데 제 몇 회 노인의 날인지 아십니까? ‘제10회 노인의 날’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린이 날, 어버이날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의 날도 기억할 줄 알아야 합니다.

 

21세기는 ‘노인의 시대’, 즉 ‘실버시대’입니다. 어린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대신 노인들이 오래 사는 시대로 탈바꿈을 했습니다. 65세 이상의 노인층의 인구가 7%를 넘어서면 그때는 고령화사회(Aging Society)라 부르고, 14%가 되면 고령사회(Aged Society), 20%가 되면 초고령사회(Super-Aged Society)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미 1999년 노인 인구 7.1%가 넘어섬으로써 고령화사회에 접어 들었고 일본은 고령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고 해서, 또는 고령사회가 되었다고 해서 그 자체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로 평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실은 미국이나 서구 사회처럼 나이로 모든 것을 제한하기보다는  오히려 능력위주의 사회로 변화되어야 건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도 얼마든지 능력있는 사람을 채용해서 쓰는 사회가 될 때 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의 하나님 말씀에서 “너는 센 머리(gray headed) 앞에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미 3500전에 지하철이나 시내버스가 나올 줄 알고 이런 말씀을 기록해 놓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래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백발노인이 들어오게 되면 물끄러미 앉아서 쳐다만 보지 말고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구나 늙으면 검은 머리가 ‘은빛’, 또는 ‘구름빛’으로 변합니다.

이런 머리는 하나님이 주신 ‘노인의 면류관’(잠16:31)입니다. 우리는 그 머리 색깔을 본떠서 ‘실버’라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은빛 머리’을 볼 때마다 ‘은빛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선다’고 하는 것은 그 만큼 ‘존경하고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십계명의 제5계명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제5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런데 우리는 좀 더 확대해서 보면 우리를 낳아 주신 친 부모님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어르신’ 모두가 다 우리의 ‘어버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이 땅의 어르신들 모두가 내 부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노인의 문제는 호려한 얘기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누구나 거동이 불편해지거나 또는 치매나 당뇨같은 질병으로 출입을 하지 못하고 집안에 들어앉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온 집안 식구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고 그 다음에는 누가 모셔야하느냐 하는 문제로 자칫 가족들의 화목이 깨지고 또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까지 발생합니다.

그러다 보면 노인이란 존재를 ‘귀찮게 여기거나 짐덩어리 여기는 경향으로’ 갑니다.

이럴 때 서로가 불행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함부로 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들에게 늘 얻어맞는 노인이 있다는 보도를 종종 듣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직 좀 더 젊은 어른들은 “재수 없으면 백 살을 산다니까!” 라는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사실 자녀들에게나 이 사회에 짐을 안 지우고 건강하게 잘다가 어느 날 잠자는 것 같이 돌아가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노인들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요즘 노인들 사이에 생긴 슬로건이 하나 있습니다. “구구 팔팔 이삼사”. 이 말은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 3일 만에 가자!”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처럼 맘대로 되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입장에서, 한시라도 더 젊었을 때 우리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해드릴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노인’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 용어마저도 송구스럽습니다. 그냥 ‘어르신’, 또는 ‘어버이’라고 하든지, ‘실버세대’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가정에서만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개념에서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바꿔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 실버타운이나, 여러 복지시설에서 모시는 문제를 더 이상 ‘불효’라는 고장관념을 깨뜨리고 오히려 이것이 더 어르신을 편안하게 잘 모시는 방법의 하나라는 것으로 인식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실제로 우리 서광복지관에 계신 어른들 중에 상당 수가 가정으로 가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기가 더 좋다는 것입니다.

‘이복남 할머니, 김옥순 할머니, 그리고 서정남 할머니, 송례순 할머니....’등입니다. 나머지 분들도 치매로 인해서 자기 의사 표시를 못해서 그렇지 여기가 굉장히 편안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서광교회는 이 소문이 잘 났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들을 편안하게 모시는 교회!”라고. 사실 여러분들은 저를 지켜보셨는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저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늘 맘먹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 원로 목사님께서도 저를 지켜보시면서 굉장히 편한 맘이 드시지 않으실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편안하게 모시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주용 집사님께서 볼실 때 제가 편안하시지요?


저는 2층에 계신 어르신들께도 굉장히 편안함을 드리기 위해서 반 코미디언이 되어서 노래를 불렀다가 춤을 추기도 했다가 벼리별 흉내를 다 내면서 아침 예배와 아침 식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어르신들이 나랑 장난도 치시고 꼬집기도 하시고 웃기도 하고 껴안기도 합니다. 이런 생생한 산 체험 속에서 저는 지금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 큰 은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말씀을 더 보십시오.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노인의 얼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주름살이 있습니다. 그 주름살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잔주름 속에 숱한 세월 동안의 고생만큼이나 계곡이 생겨났습니다. 높은 산, 낮은 산, 그리고 물없는 계곡.....바로 여기에 인생의 연륜, 지혜, 그리고 노고가 스미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말씀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귀담아 들으면 다 복이 됩니다.

옛날에는 ‘조손겸상(祖孫兼床)’으로 경로의 덕을 밥상머리에서 가르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 들어서는 안 되고, 반찬에 손을 대기 전에 대서도 안 되고 맛있는 반찬은 주기 전에 손을 대선 안 되고....이런 것들을 식사자리에서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배웠습니다. 이러면서 노인이 얼마나 지엄한가를 뼈에 스미도록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밥상에서 뿐 아니라 만사를 자기 위주로 자라 놓으니까, 노인 앞에서 겸양해야 하는 기본이 정신적인 자질 속에 생겨날 리가 없습니다. 어르신이 손자를 야단하면 며느리가 하는 말이 “얘 기죽이지 마세요!” 하면서 도리어 어르신을 나무라는 시대, 이렇게 버릇없는 아이들로 키워서 어떻게 하자는 말입니까? “얘야, 네가 버릇이 없으니까 할아버지께서 야단하신 거야! 너 할아버님 말씀 잘 듣고 나쁜 버릇은 고쳐야 해!”라고 하면 안될까요?

아무튼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런 것들부터 다시 교육을 시켜서 ‘싹이 없는 자식’이 아나라, ‘싹이 있는 자녀’로 키워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내면부터는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분기별로라도 위층 어르신들 팔 주물러 드리기 등 2분 행사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어르신을 공경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이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어르신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것을 잘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말씀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내 누나, 동생들은 할머니 댁엘 잘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잔소리’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 말씀이 다 옳으셨습니다. “네 집구석은 왜 찬송소리가 안 나냐? 그래서 내가 안 간다. 네 애비나 어미는 왜 집에서 성경 한 자도 안 들여다 보냐?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활짝 열어놔야지,...뭣 때문에 게으름 피우냐?”는 등이었습니다.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르신 말씀을 귀담아 들을 것입니다. 그것이 잘 훈련이 된 사람은 덕으로써 나라도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그 다음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입니다.

한 구절 안에 이 말씀이 묶여있는 것도 의미가 있고, 또한 ‘어르신 공경’ 다음에 이 말씀이 이어지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어르신을 공경할 줄 아는 자가 역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할 자격도 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어르신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자는 하나님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거짓 믿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어르신 공경과 하나님 경외’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음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르신이라고 실수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런데 실수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야단하는 식으로 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분명히 성경 딤전5:1에서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어르신이 치매 때문에 그냥 똥을 싸서 짓이겨놨어도 “아, 어르신께서 또 이바지를 하셨구만요!” 하면서 야단 대신 항상 격려를 해 드리는 쪽을 선택합니다. 알아듣지도 못하고 자기 정신도 아닌 분에게 왜 야단을 쳐야 합니까?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구요. 안 그래요?


무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르신을 공경합시다. 어르신이 오시면 무서워가 아니라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일어섭시다. 그리고 먼저 앉으시라고 하고 그 다음에 앉읍시다.

바라기는 적극적인 면에서 실버시대를 겨냥한 좋은 프로그램이나, 복지공간을 마련해서 복음을 심는 것, 또한 우리 교회들의 몫입니다. 지금은 중증어르신들을 모시고 살지만, 앞으로 ‘주간노인 보호사업(Adult Day Care)’를 펼쳐서 아침에 모셔 와서 예배와 성경공부, 영양관리, 친목, 오락, 노래교실, 각종 취미생활, 물리치료와 정신적 치료 등 다양하고 종합적인 서비스를 받고 저녁에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형태로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스포클레스는 “노인은 두 번째의 아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어린 아이에게 돌봄이 필요하듯이 어르신들께도 돌봄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전1:4에 세대가고 세대는 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실버시대를 맞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어르신들을 우리는 공경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어르신들이 기독교 가정이나 기독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보호되기를 갈망합니다. 이것처럼 큰 효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분들의 영혼이 천국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한 가지만 생각하더라도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런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현실이며, 우리 곁에 있는 일들입니다. 제 나이 51세이지만 노인이 될 날이 15년 밖에 안 남았습니다.

우리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이 일을 우리 서광교회가 할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고 복받은 민족의 모습입니다. 우리 서광교회는 어르신을 섬기기 위해서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집안에 어른이 계시는 것이 복이듯이  어르신들이 많은 교회라면 얼마나 복 받은 교회이겠습니까?

우리가 이 일을 잘 해냈을 때, 그리스도인들의 소문은 더 아름답게 날 것이고, 교회들이 이런 일을 제대로 감당했을 때에 우리 사회는 더 밝아질 것이며, 우리도 그 어느 날 거기에 따른 혜택을 누릴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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