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꽃인 줄 아세요? ㅎㅎㅎ 모르면 촌사람이 아닌데 ㅎㅎㅎ 산다래나무입니다. 꽃이 피었네요
우리의 관심, 비전, 기도 2006/07/30/주일/
(요한복음4장27-38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원 베네딕트라 사람은 “주님을 만나면 주님이 나의 관심과 목표를 바꾸어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을 만났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날 여러분의 관심사와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우리 찬송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전엔
나를 위해 일해왔으나 이젠 주만 위해 힘써 일하리”(찬498장3절).
그러나 우리는 말을 돌려서 이런 질문을 해 봐야 합니다. 즉 “이 시대 속의 우리 주님의 관심이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을 써서 전세계 기독교인 약 3천만 명의 크리스챤들에게 도전을 주었던 미국의 릭 워렌 목사님(새들백교회)이 보름 전에 방한을 하면서 남긴 메시지 중 하나가 “이제는 양적인 팽창이 아니라 질적인 성장이 중요하다. 즉 이웃을 섬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섬기라!”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고 또 기독교의 진수를 체험하고 살아가는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우리는 이런 사실에만 머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지 않고 이런 구절들만 요절로 외우다 보니 “그래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로만 만족해하며 거기에 안주해 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음에 따라오는 구절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그 이후의 우리의 삶의 죄표가 무엇인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일은 전에 하나님이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0).
우리는 구원 너머에 있는 ‘선한 일(good works;엘고이스 아가토이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일’이란 사람의 눈에 보기에 좋은 선한 일이란 말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목적대로 지으신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 였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우리를 그것을 지향하고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성경 안에서 크게 5가지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목적 : - 예배(worship)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고 하신 것이요” (막12:30).
두번째 목적: -교제(Fellowship)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 났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세번째
목적 :-훈련(discipleship)-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네번째 목적: -사역,섬김(service)-하나님을 섬기기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데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다섯번째 목적:-선교(mission)-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을 받았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이 이 5가지 범주에 다 들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바로 여기에 앉아있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인생의 과제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5가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보다 많은 관심들과 비전, 그리고 기도를 보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한편, 이런 선한 일을 실현하는 과정 속에는 항상 따라다니며 반드시 마귀의 방해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게으름으로, 때로는 세상적 가치들의 화려한 문화들로, 때로는 정욕적 유혹들로, 때로는 물량주의적 공세로, 독제자의 권력을 동원해서, 때로는 타종교들의 압력으로 우리의 선한 일을 방해놓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이기시고 죄악의 권세와 마귀의 권세를 파멸시켜버리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목표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5가지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의 약점, 또는 빈틈을 노리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가 예배생활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면 다른 것에 아무리 열정적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성도의 교제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다. 부모님만 뵙고 형제들끼리는 말 한 마디 나누는 것도 없이 바쁘다고 일어서버린다면 어떤 결과를 낳겠습니까? 아마 상막한 분위기를 연출할 것입니다.
예배도 있었고 교제도 있었다면 주님을 닮아가는 신앙인격의 성장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훈련을 단지 지식을 쌓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훈련은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주님의 원하시는 인격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다음, 예배, 교제, 훈련과 더불어 손발의 움직임을 통해서 일(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멈춰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눈은 궁극적으로 세계복음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선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한 번 평가해 보십시오. 이런 5가지 일에 그 어느 것 하나에라도 낙제 점수를 받고 있는 건 없는지, 아니면 몇 개 또는 전부가 문제가 있는지를 한 번 꼼꼼히 따져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5가지를 외울 뿐만 아니라, 이것이 우리 생활 속의 관심과 비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들은 억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시면 매우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일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서광교회는 이것이 구체화된 비전속에서 기도를 통해 역사를 이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에 다른 어떤 것도 갖다 붙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 없이 구원 없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예수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주신 것은 예수 믿기 전처럼 살라고 구원을 베푸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시려고’라고 하는 중요한 목적이 담겨져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이런 놀라운 말씀들이 있는 데도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구원받는 일에는 매우 열정적이지만, 선한 일 하는 데는 매우 소극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한국 교회는 오늘날 세인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그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교회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에게 ‘천당’과 ‘지옥’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 못지 않게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있다면, 이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 어떻게 지역사회를 섬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눈을 크게 떠서 보면 전 세계를 향해서 그들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입니다.
어쨌든 간에 우리 서광교회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지역사회를 섬기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머리로만 알고 머뭇거리고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 속으로 들어가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생각이 하나의 현상으로 그려져서 비전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비전이 우리의 삶의 현실 속에서 이뤄지기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서는 땀과 눈물, 재능과 시간, 물질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예수님 제자들도 한 때는 ‘빵의 현실’이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빵만의 현실만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로 빵을 사려고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몰랐을 때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가난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이 민족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인생의 목적을 달리했을 때는 세계 민족들 속에 경제적으로도 잘 사는 나라로 끌어올려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눈은 예수님 눈처럼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대한 관심의 눈이었습니다.
수가성 여인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녀에게 ‘진정한 예배로의 초대’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그녀가 예배를 몰랐을 때, 그는 세상 것들로 채워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기를 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눈이 뜨였습니다. “이 분이 메시야구나!”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둔 채로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을 몰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이에도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도무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은 “누가 이미 먹을 것을 갖다 드렸나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나의 야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4:34).
이 말씀을 하고 나니, 동네에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5).
바로 예수님은 선교적인 관심을 나타내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비전 삼고 살아가야 합니까? 그리고 무엇이 기도의 제목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주님의 눈의 관심의 내 눈의 관심이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상처받고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찾아가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나 살기 힘들다는 미명하에 코앞의 현실만 생각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주님의 관심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그 안에서 새로운 비전과 이상을 설정하십시오.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을 아름답게 이룰 날이 올 것입니다. 거기에 보람과 기쁨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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