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

좁은길을 걸으며 2006. 7. 9. 13:46

둘 중의 한 사람은 나야 ㅎㅎㅎ 고등학교 때 찍었어 그때 내가 중대장했거든 ㅎㅎㅎ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             2006/07/9/주일/

                        (로마서10장1-15절)


는 최근들어 지난날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저를 굉장히 부러워하는 말을 듣곤합니다.

“이 목사, 자네는 참 좋겠네.”

“이 사람아, 왜?”

“그래도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잖아!”


사람들은 누구나 ‘보람 있는 일을 찾아서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가장 보람 있는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생각해 보면 그것은 매우 폭넓고 다양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따라서 최선을 다하면서 거기에 어떤 기여를 하거나 드디어 그 일을 해냈을 때 찾아드는 기쁨과 희열을 맛보는 순간 느껴지는 행복한 마음이 ‘보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왔다가 한 번 뿐인 인생을 살고 가지만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하다가 간다면 얼마나 보람된 인생이겠느냐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사회복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만 이런 일들이 있기 전부터는 나는 노인들을 모시는 일에 대한 문제를 놓고 나름대로 고심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기에 5년 전부터 노인복지를 시작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인생의 마지막 정류장이라고 생각되는 우리 복지관에 노인을 모시고 섬기는 일처럼 보람된 일이 또 어디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10명의 어르신들을 모시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보람 하나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을 사명으로 알고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 못지않게 소중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죄악 속에 빠져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면 ‘전도’가 무엇입니까?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찾아가서 ‘여기가 길이입니다!’라고 알려주면서 ‘나만 따라오시오!’ 내가 안내하겠습니다 하면서 길 되신 예수님께로 인도해 오는 것이 전도입니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죄인을 예수께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요14:6). 2. 내가 만나고 체험한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요9:25). 3. 따라서 이것은 성도의 가장 큰 사명입니다(고전9:16).


바로 우리는 전도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은 멸망을 받기 때문입니다.

가령 조금만 더 가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는다고 할 때에 우리가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버트 제프리 박사는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두 손에 피를 묻힌 채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손에는 피가 흥건했습니다.  피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좇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집밖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집 주변에는 마침 흰 눈이 쌓여 있었고, 그는 눈으로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악몽에서 깨어난 제프리는 왜 자신이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가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이 꿈은 무슨 뜻입니까? 저는 당신이 두렵지 않고 당신에게서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제 손에는 핏자국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보혈로 눈보다 더 희게 깨끗해졌습니다."


로버트 제프리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카나다 신문사 사장의 아들로 태어나서 경제적으로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귀족의 품위를 갖춘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했지만 여느 사람과는 다른 삶을 선택했습니다.
극동지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청년기를 보냈으며, 장년이 되어서는 미주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 동분서주했습니다.
 한참을 기도하던 제프리에게 어느 순간 성경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향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겔 3:20)


그때 자신이 미루어 둔 일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은퇴할 나이가 되어 포기하려 했던 보르네오와 세레베스 지역의 전도였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은퇴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시기에 그는 다시 가방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줍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임이로라”(고린도전서 9:16)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복음전도에 대해서 설교하고 있지만, 전도를 하고 안 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명령하신 ‘미션(mission)’입니다. 미션이란 말은 ‘보내다(misio)’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는 그대로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그분의 명령(특수 임무)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제 일어서야 합니다. 그리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터전입니다.


우리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신 말씀 가운데 이 두 마디의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성령을 받으라!@”  2)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22).


바로 성령받은 우리가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민감하지 못하고 그동안 나태하고 무관심했습니다. 알고보면 우리 주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를 범하고 산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라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전도 명령을 일컬어서 ‘Great Commission(지상명령; 가정 큰 명령)’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알고 보면 이 명령을 수행하는 일처럼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가서 전하면 반드시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서 전할 때 저들이 지금이라도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께로 나오기만 한다면 얼마나든지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고 했는데, “그런즉 믿지 아니하는 자를 어찌 부르리요!”(14절上)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저들이 왜 부르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부르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4절)

부르기만 해도, 믿기만 해도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바로여기 있는데 왜 저들이 부르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듣지 못했기 때문이며, 전파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역할을 누가 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먼저 믿는 우리들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교회당 옆에 있는 철학관이 있습니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아세요? “나는 관심 없는데요!”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만이 영생을 가져다주는 참된 지리라면 이런 사람에게도 찾아가서 “예수 믿으세요!”하고 담대히 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곳이 ‘복음의 사각지대’입니다. 우리는 이런 곳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도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서광교회는 이 시대에 하나님께로부터 “너희는 가서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사명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 소중한 일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할 말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우리끼리’만 잘 믿자는 사람은 없겠지만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보면 그와 같은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죽어가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그 복음을 들고 불쌍한 영혼들을 찾아가는 발걸음입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호스 호파이오이 오이 포데스 톤 유앙겔리조메논 타 아가타; How beautiful are the feet of those who bring good news)”(15절).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할 때 구약 성경 이사야서 40장9절을 인용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희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이었겠습니까?

포로에서 해방된 소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있어서 죄의 포로에서 해방된 소식처럼 아름다운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민족은 해방되었다!”

이 아름다운 소식을 가지고 산을 넘을 발이 얼마나 복된 발걸음이었겠느냐는 말입니다.


도의 한 거리에서 못 생기고 나이도 많은 미국인 선교사 한 사람이 복음을 전했다.
머리카락은 다 빠졌고 이도 다 흔들거려 보기에는 상당히 추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고자 그는 길거리에서 서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늙은 선교사를 보고 비웃었다.

"저 사람의 머리를 보라.
저 사람의 이를 보라. 저 사람의 얼굴에는 얼마나 많은 주름살이 그려져 있는가!
저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이런 말들을 듣고 나서 선교사가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 내 모든 것이 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게는 한 가지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나의 발이 아름답습니다."

그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가서 그 선교사의 발을 들여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아름답지 않은 발이었다.

"당신의 발이 뭐가 아름답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성경을 열어서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여!'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인식이 부족하고 믿음이 적어서 그렇지,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름다운 발걸음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새벽 미명에 사라지셨습니다. 제자들은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조용한 시간에 홀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선생님, 여기 계셨군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리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43절).

이 얼마나 멋진 말씀입니까?

역시 우리 주님의 발걸음은 하루하루가 행복한 발걸음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분의 발걸음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의 발걸음까지 단 한 발자국도 필요없는 발걸음이 없으셨습니다.


리는 이 복된 발걸음을 힘차게 내어 딛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를 방해하는 놈은 마귀입니다. [내 앞을 막아서는 자 누구든지 물러가거라...]고 하며 물리쳐 버리십시오.

다음 주일부터는 이 빈자리들이 채워지기 시작하도록 합시다.

전도! 하면 됩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눅14:21)

하나님께서는 우리끼리만 복음을 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끼리’ 라는 울타리에 복음을 붙잡아 놓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은 전파되고 널리 확장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러 가는 발걸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고 내를 건너는 즐거움이 여러분의 가슴에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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