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내게로 돌아오라

좁은길을 걸으며 2006. 7. 16. 14:09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전국에서 유명한 가로수...담양읍 주변에 있음/ 멸종 위기의 나무였는데 중국 양쯔강 근처 산속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을 발견(1945년)...증식시켜 전세계로 보급하였단다.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2006/07/16/주일/

                       (예레미야4장1-4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린 인생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인간들입니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 인간들의 형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를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이 말씀은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길을 잘못 든 인생! 길을 잘못 들었으면 마땅히 ‘returning!’ 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인간 스스로는 돌아가야 할 길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치매증세를 가지고 있는 노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뭔 줄 아십니까? 그것은 ‘한 번 집을 나가면 다시 찾아오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들은 ‘영적 치매’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우겨대는 것입니다. “여기가 길이야! 아니야, 저기가 길이야!....” 그래서 생겨난 것이 종교이며, 철학이며, 도덕적 선행....등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다 참된 길을 찾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한 눈 먼 소경이 소리쳤네... 어디가 길이냐?~~ 말해다오~!]


우리는 죄의 길목에 빠져서 의의 길을 상실하고 만 인생들입니다. 도저히 자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온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갇혀서 그 판결문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무서운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 앉은 여러분과 내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된 것을 가지고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마땅히 받아야 할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댓가를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로 볼 때, 죄짓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줄 모르는 인간들이 얼마나 가련하고 불쌍합니까?

죄를 짓고 싶어서 죄를 짓는 게 아니라, 죄에 매여 있어서 죄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먹고 마시고 살다가 그대로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놓인 인생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형편에 처한 인생들을 그대로만 바라볼 수 없어서 한 가지  고안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친히)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바로 이 전도 속에 나타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끊어진 다리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서 비롯된 놀라운 신비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다리를 건설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단 한 영혼도 구원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배가 조난 사고를 당했는데 어느덧 밤이 찾아오고 야 말았습니다. 모두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하며 떨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사공과 승객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조명탄이 터지면서 바다와 배 주변을 환하게 비취면서 구조선을 내려 보내주면서 확성기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어서 이리 옮겨 타세요! 어서....” 여기에 옮겨 탄 모든 사람들은 다 살아났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사건이 이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십니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그분은 “내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른 길은 다른 길은 다른 길은 없어요~~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예수님 뿐이지요!]

그렇다면 죄악의 길에서 허덕이며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 인생들은 어떻게 해야 사는가?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조선으로 옮겨 타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모든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야 할 인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것을 말씀하실 때, 집 나간 탕자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철없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일찍 제 몫의 유산을 타서 멀리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아들이 집을 나간 그날부터 아들을 기다립니다. 망해먹기를 기다려서가 아니라, 그가 가는 길이 빤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술친구들과 어울리고 심지어 창녀들과 어울리다가 몇 조금 못가서....다 날려버렸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어느 부자 집에 들어가 돼지 치다가 하도 배가 고파서 구정물통에 떠 있는 주엄열매로 배를 채우게 되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핑돌면서 ‘아버지 집’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기를, “내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면 과연 아버지가 나를 받아주실까?”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오해는 돌아오는 길을 망설이게 합니다. 그러나 탕자는 날마다 대문 밖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만한 지각이 없습니다.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오시네.

 나 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 밖에 세워 두니 참 나의 수치라!](325장).

기껏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풍족한 일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소서!”(눅15:19).

이렇게라도 생각을 굳히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아들은 상상을 초월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혀라...손에 가락지를 끼워라...그리고 송아지를 잡아라....그리고 풍악을 울려라!”(눅15:22,23).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15: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죄의 자리에서 돌아서서 돌아오는 것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하실 때는 적어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예수를 믿는지가 몇 년인데 새삼스럽게 그런 설교를 하십니까?”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시금 외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이 설교를 다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몸만 나와 앉아 있다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이사야 때처럼 예배당 뜰만 밟고 지나가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을 꼭꼭 잠가두고 열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만 때우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회개다운 회개의 경험도 없이 교회만 나온 사람은 종교인은 될는지 모르지만 신자는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예레미야는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아 네가 만일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렘4:1)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회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돌아온다’는 말은  ‘슈브(히)라는 말인데, ‘회복하다’, ‘원위치로 방향을 돌려놓다’는 말에서 온 말입니다. 분명히 길을 잘못 들었으면 다시 유턴을 해서 옳은 데로 돌아와야 합니다.

고집을 피우고 돌아오지 않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갈 방향은 확실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탕자가 돌아가야 가야 할 곳은 ‘아버지 집’이지만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며,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나와서 앉아 있을지라도 마음이 하나님께 있지 않고 세상에 있고 세상 물질과 쾌락에 있다면 그것은 돌아온 것이 아니라, 껍데기뿐이지 마음은 아닙니다.


오늘 많은 부부들이 한 지붕 팀에 살지만 마음은 전혀 아닌 딴 생각을 하고 사는 부부가 많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밥을 먹고 잠을 자도 마음이 딴 데 있으면 온전한 부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호세아서를 보아서 알지만 고멜을 데려와도 본 남편에게 정을 주지 않고 또 집을 나가고 또 집을 나가니....호세아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했고,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은 눈에 보이는 우상에게 팔려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 현대 크리스챤들의 모습이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는 미신자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앞서 우선 ‘나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은 훨씬 더 쉬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가증한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의 가증한 것들로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가증한 것’(쉭쿠츠)‘더럽다’, ‘몹시 싫어하다’는 뜻의 ‘솨카츠’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더러운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을 몹시 싫어하십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하나님이 가장 가증하게 보시는 것’이 있지는 않습니까? 빨리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새 은혜를 덤뻑 받을 수가 있습니다. 꼭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 말고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이런 것들이 자리잡고 있거들랑 얼른 마음 밖으로 던져버려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는 길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복을 받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2. 묵은 땅을 갈아야 합니다.

3절에 “묵은 땅을 갈고...”라는 말씀을 합니다. ‘묵은 땅’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굳고 완악해진 마음 밭’을 가리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교회 나올 때마다 마음이 즐겁고 기쁜 맘으로 가득찹니까? 아니면 돌같이 굳은 마음으로 복잡한 생각으로 얽혀져 있다가 그냥 돌아갑니까?

사실 목사가 힘든 것은 ‘처음 나온 신자’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묵은 땅같은 오래된 신자’에게 말씀 전하는 것이 힘이 듭니다.

하나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에다가 말씀을 꿰어 맞추려고 합니다.

알고보면 이것처럼 위험한 신앙은 없습니다.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여 나의 맘을 맡아주관 하시고 완악하고 교만한 맘 변케하여 주소서!](216장).

묵은 땅같은 마음을 갈아엎기만 한다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쏙쏙 귀에 들어오고 감격의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예배의 기쁨을 회복하는 복이 임하게 됩니다.


3. 마음 가죽을 베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땐가부터 그것이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할례의식의 본질적인 의미가 상실되면 아무 것도 압니다.

이 때 선지자는 외쳤습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의 가죽을 베고...”(4절).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항상 본질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내가 왜 여기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를 바르게 알고 예배를 드린다면 이 한 시간은 그야말로 축제의 예배요, 감격의 예배가 될 것입니다.


랑하는 성도들이여,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힘입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십시오. 마음이 돌아와야 온전히 돌아온 것입니다.

아직도 한 쪽은 세상에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그 우상을 마음에서부터 추방시켜버리십시오.

묵은 땅을 갈아 뒤집어엎고  옥토로 만드십시오. 나아가서 마음의 가죽을 베십시오. 겉보다는 속사람이 중요합니다.


일본에 다카바다라는 유명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에 들어와서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런 중에 그는 결핵에 걸려 끝내는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죽을 때가 가까워오자

그는 성경과 찬송을 찾아서 큰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떠날 시간이 임박해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환해졌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하나님께로 가네. 모든 과거의 불신앙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부끄러움 없이 간다네."

이렇게 말하고는 고요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회개란 ‘참신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을 말하비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돌아온 것이 됩니다.

예레미야는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외치지 않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외치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와 같이 허울뿐인 죽은 신앙인들에게,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뜨뜻미지근한 신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사야5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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