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수모

좁은길을 걸으며 2006. 4. 2. 21:45
 

 

대학 졸업식장에서....필리핀에서는 3월 말에 대학을 졸업식을 합니다. 그리고 두 달 이상 섬머수쿨(긴방학)에 들어갑니다.

 

             주님의 수모를 생각하며                2006/04/02/주일

                   (시편22편1-11절)                      전주서광 이송로목사


느덧 꽃피는 사월이 되었습니다. 성도님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서로 얼굴을 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떨어져 있어보면 실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얼굴로 사람을 평가할 것은 아니지만 필리핀 사람들 보다가 한국 사람을 얼굴을 보면 다 미남이고 다 미녀입니다.

성도님들의 기도 덕분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약12일 동안 잘 다녀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원로목사님과 전도사님이 계시니까 교회를 비워놓고서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무쪼록 온 성도님들의 사랑과 격려 속에 잘 다녀오게 됨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원로 목사님과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간곳은 마닐라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안티폴로라고 하는 지역입니다. 그곳은 마닐라 동쪽에 위치한 해발 800M의 가장 높은 산간지역입니다.

그곳에는 산족들이 주로 사는데 마을 하나에 수천 명씩이 들어박혀 살고 있습니다.

선교사가 가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가 기어 나오는지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무엇을 먹고 사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천주교가 90%라고 하지만 꼭 알아야 할 예수님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가난과 미개한 생활에서 아직도 깨어나질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지기 수입니다.

정철인 선교사님은 신학교 건물 3층 지붕까지 씌웠습니다. 1층과 2층은 강의실, 3층은 예배당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제가 지난번 방문을 했을 때, 골조만 세워놓고 지붕을 씌우지 못하고 있어서 현장에서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같이 동행하겠다고 따라가신 목사님이 500만원을 헌금해 주셔서 지붕을 씌우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은 말했습니다. “그 때 이목사님이 눈물로 기도해 주신 응답으로 이렇게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에도 한 번 더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순종하는 맘으로 기도했습니다. 이제 내부 시설과 비품들이 준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선교신학교를 개강할 날이 속히 당겨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정선교사님의 스승이긴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지 잘 섬겨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나더러 앞으로 자주 들어와서 신학교 강의를 해 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앞으로 영어로 강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그런데 제가 이번에 기도 중에 한 가지 받은 응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직접 필리핀에 원주민들을 상대로 해서 필리핀 서광교회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원주민들과 직접 부딪힐 것입니다. 그중에서 똑똑한 사람들을 붙잡고 선교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로 세울 것입니다.

물론 저는 짧은 영어지만 기어코 극복해 낼 것입니다. 비록 한국에서 목회하지만 필리핀 지교회를 세우는 일을 놓고 기도해 주십시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원래 제가 대학원에서 선교학을 전공했던 것이 있기 때문에 잘 활용할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현지인들을 사랑으로 접근하고 그들에게 강력한 복음을 전해서 변화시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 저에게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띄워주셨습니다. 동기를 부여해주신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성도님들의 기도가 절실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매년 3,4월이면 고난주일의 말씀들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편 22편의 말씀은 예수님의 수난의 현장 속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다윗은 예수님의 수난 현장을 천년 전에 이렇게 실감나게 묘사할 수가 있었을까요?

바로 이것은 다윗 자신마저도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어쩌면 자기가 당한 고난을 얘기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수난의 예고’, 또한 ‘수난의 예언’으로 나타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고통의 신음소리가 아닌지요?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 이를 번역하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고통의 절규 가운데서도 이 성경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이 고백은 그냥 나온 고백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기를 버리셨다고 느꼈을 때 터져 나온 절규입니다.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1절).

그냥 터저나온 절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생살에 못을 박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무려 6시간을 매달려 계셨습니다. 그 고통은 너무나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기절이나 해버렸다면 그 고통을 잊었겠지만 주님은 맨 정신으로 그 엄청난 고통을 다 받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큰 소리를 발하여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마27:46)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도 얼른 알아 차리지 못하고 “이 사람이 엘리아를 부르는가 보다!”라고 했습니다.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고 하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너무나 큰 것이긴 했지만 그보다 큰 고통은 ‘주님의 외로움’이었습니다.

“다 나를 버렸다!”라고 느낄 때가 더 큰 고통입니다.


[주님가신 길 십자가의 길]이란 노래 가사의 일부입니다.

마르는 눈물 타는 목마름 피로 찌든 십자가 위에
하늘 향해 호소하시는
버림받은 주님의 영혼

(후렴)
오 나의 주님 용서하소서 죄인위해 고난받으셨네
이 세상에 생명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님처럼 고통을 받아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버림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처럼 의로운 고통을 받은 것보다는 내 스스로가 저지른 큰 실수와 잘못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한 적은 없는지요?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정말 아무런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왜 엄청난 수모(受侮)를 다 겪으셨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저지른 죄 때문에, 남의 죄가 아니라, 바로 여기 앉아 있는 나의 죄 때문에 이 엄청난 수모를 다 받아야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을 묘사하면서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6절)고 하십니다.

벌레와 같이 무시되고 징그러운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아름다우신 그분이 짓밟혀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벌레와 같은 존재인데, 우리를 만드신 그 분이 오히려 벌레와 같이 되셨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말씀 중에 하나가 “저 버러지만도 못한 놈!”이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버러지만도 못하게 살았기에 예수님이 버러지 취급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과연 누가 버러지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이 이러한 취급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죄값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 한 가지가 너무나 소중해서 일평생 주님을 따라가며 사는 사람들이 바로 크리스챤들입니다.


특별히 고난주간이 다가오면 우리는 십자가를 묵상해야 합니다.

이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답고 보배로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장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현장 속에는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치욕적이고 저주스러운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도 나타났습니다. 그 엄청난 수모를 지금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예수님이 친히 다 받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신 이후로 예수님은 가야바의 뜰로, 빌라도 총독의 관정으로 끌려다니며 사람들의 훼방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자 , 그리고 날이 새자 십자가를 등에 메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손에 못을 박고, 발에 못을 박는 소리가 고요한 아침의 정적을 울렸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도다!”(사53:4).

거기까지 밖에 생각이 미치지 못한 인간들은 의인을 죄인 취급해서 사형수로 내몰았던 것입니다.

털끝만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을 조롱하며 비웃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마치 사납고도 잔인한 개나 사자가 약한 짐승을 둘러싸고 물어뜯는 잔인한 모습으로까지 연출이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가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같으니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12-16절).


예수님은 이러한 수모를 다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짐승에 찢겨서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흉한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내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 ‘한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4살이었는데, 사나운 사냥개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애만 있었고 그 엄마는 텃밭에 나간 사이에 묶어 놓은 개끈이 풀려 그만 아이를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나는 그 아이를 실고 비상 등을 켜고 진안 동부병원까지 달렸습니다.

아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 엄마는 차속에서 아이를 붙들고 울기만 합니다.

아이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건강이 100% 회복되어 잘 자랐습니다. 그 아이가 지금도 궁금해집니다.


수님의 얼굴은 피로 얼룩졌습니다. 예수님은 지칠대로 지치셨습니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주님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저 황송할 따릅니다.

그것도 망각한 채 늘 죄만 짓고 살아온 인생이 아닙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 죄 때문에 엄청난 수모를 홀로 다 겪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보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함으로써 두 주간을 보내며, 십자가를 묵상합시다.

십자가와 상관 없는 사람처럼 살지 마십시오.

특별히 특별새벽기도회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저랑 함께 십자가를 묵상하며 두 주간을 보냅시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은혜를 주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님들에게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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