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새 부부은 오늘 아침에도 서귀포의 바닷가 숲속애서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노랬답니다. 찌르르....
하나님의 나라는 2006/02/05/주일/
(누가복음17장20-21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이란 말을 들을 때, 죽어서 가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 갑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 나라는 ‘가는(going)’의 개념으로만 이해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주로 ‘오는(coming)’의 개념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생각한다면 자칫 이 세상에서 생활은 매우 비참하고 비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그렇게 살기를 원하실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찬송가에 간혹 오해를 일으킬만한 내용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꿈같이 헛된 세상 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 뿐일세]
여기서 자칫 ‘이 세상은 헛되구나!’라는 생각으로만 치달을 수 있는 말로 들려질 수 있습니다.
소화를 잘 하고 받아들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또 한 사실입니다. 찬송가 저자의 의도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은 헛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지은 찬송입니다.
우리는 내세 천국만을 기다리는 신자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맨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모습으로 살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죽음이 와도 그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만한 자세로 산다는 것은 소중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세(the present age)’를 무시하는듯한 신앙관을 가지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늘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야 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당신의)나라가 임하옵시며(Your kingdom come)”(마6:10)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바로 이렇게 사는 사람들에게 내세의 천국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내세의 천국도 보장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심으로 이미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요한이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바로 그리스도가 오시는 것 자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바리새인 중 하나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눅17:20)
그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로마의 식민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유대인의 왕국이 건설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편견되고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지적하셨습니다.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이 말씀은 “이미 왔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마12:28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서 그분의 인격과 그의 병고치심, 귀신을 추방시키심, 천국 복음의 전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거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라는 영적인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지, 현세적인 권력과 물질적인 영토적(territorial)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왕은 누구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에서는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란 말이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그 나라(바실레이아)라고 하는 ‘왕국’ 개념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면, 예수가 계신 곳이 천국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령 우리가 ‘마음이 천국’이란 말을 쓸 때,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심으로 인해, 어두움의 세력은 물러가고 사랑과 기쁨, 그리고 평강이 깃드는 것을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로 말하자면 내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 되시어 다스림을 받는 상태를 천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먹는 문제로 남을 판단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먹는 것, 입는 것, 거주하는 것 때문에 허덕이며 사는 인생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고 [아~! 내 맘 속에 참된 평화있네 주 예수가 주신 평화~!! 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아~!!! 귀하다 이 평안함.... 주 나의 맘에 계셔 위로 하시네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473장).
우리는 당장이라도 예수님을 떠나 살면 지옥을 사는 것이고, 사단의 나라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을 살아간다면 거기에 천국 문이 열리고 거기에서 아름다운 주님과의 교통이 이뤄지고 성도 간에 절묘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제부터 장차 가야하는 천국만을 기다리겠습니까? 아니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고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기본적인 전제로서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려면, 먼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냥 옛사람 그대로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에게 더 구체적으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야’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로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날마다 누리고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꾸 죽어서 가는 멀리 있는 하늘나라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이런 이해가 부족하다면, 자꾸 이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기 쉽고, 이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이해하기 쉽습니다.
옛날 찬송가에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란 545장 2절 찬송 가사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괴롬과 죄만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그러나, 현대 찬송가에서는 [괴롬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무엇이 다릅니까? 토씨 하나 때문에 의미가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우리 인생도 ‘생각 차이’ 하나로 인해 인생을 살아가는 각도와 방향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합시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보인다!”
우리는 오늘도 생각 차이로 인해 하나님 나라를 살 수도 있고, 지옥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올 것입니다.
“목사님, 여태껏 이미 왔다고 가르쳐 놓고 ‘올 것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옳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습니다. 그러나 “올 것이다!”
바로 궁극적으로 가야 할 곳은 저 하늘나라입니다. 바로 ‘완성된 천국’입니다.
따라서 ‘이미(already)’, ‘그러나 아직(not yet)’이라는 긴장 관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직’이라고 말할 때는, 장차 우리가 가야 할 궁극적인 하늘나라가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고, 우리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서 이루어질 나라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그이 약속 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도다!”(벧후3:13)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살고, 또 그 나라를 사모하다가 영원한 하늘나라까지 가야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이 전부가 아님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본향집이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세주의자(secularist)’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생활을 비관해서도 안 되지만 현세주의자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 믿음이 조상들을 한결같이 내세를 바라보았습니다. 즉, 바로 우리 예수님이 예비하러 가신 천국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a better country)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6).
이 땅에서는 우리가 영적 싸움을 치루며, 슬픔과 괴로움, 염려 근심 걱정이 그칠 날이 없는 세상을 삽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우리는 영원한 맨션에서 영원토록 주님과 살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이 이 땅 위에서의 천국생활이라는 것을 알고 항상 하나님을 잘 경외하시기를 바립니다.
나아가서 또 우리의 본향 집이 하늘에 있음을 알고 그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현실에만 안주해서도 안 됩니다.
고생스럽고 힘이 들고 어려워도 그 날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늘 기도하면서, 늘 교회 생활하면서, 늘 찬송 부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사십시오.
보다 적극적으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맴버쉽을 가지고 천국을 만들어 가는 Heaven-maker가 되십시오. 예수 사랑을 실천하면서, 그리스도의 덕을 선전하면서, 그리고 산상수훈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사십시오.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나라와 관계되지 않는 것들이라면 과감하게 끊어버리십시오.
이것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가장 아름다운 비결입니다.
그러다가 주님이 오라 하시면 가는 곳이 하늘나라라는 사실을 믿고 늘 예수 그리스도 만을 위하여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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