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온 총신대학 신학대학원 교정입니다. 참으로 아름답죠?
영의 일을 궁리하라 2006/01/29/주일/
(로마서8장5-8절) 전주서광교회/이송로목사
우리는 오늘 설을 맞이해서 나이를 먹고, 어른들과 이웃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안부를 묻는다는 것도 소중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한 해 동안 후회 없는 인생을 살겠다는 새로운 각오 결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해가 바뀌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적인 면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존재양식이 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것도 ‘영의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곧 우리 죄의 유혹을 좇던 ‘옛사람은 죽고’ 이제 ‘영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안에는 지금 성령이 계십니까?
롬8:9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라고 하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샘 근원에서 퐁퐁 생수가 솟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서는 늘 아름다운 영의 생각이 솟구쳐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세상은 죄로 오염이 되어 있어서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우리 마음에 빈틈(약점)을 이용해서 죄의 생각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일찍이 솔로몬은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늘 영의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생각과 반대되는 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여기서 ‘육신’이란 단순히 이 ‘살덩어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옛사람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을 가진 우리의 본성이나 성향’을 가리킵니다.
우리 살과 뼈로 구성되어 있는 이 육체는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금욕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본래 이 육체 자체가 죄악된 것이 아니라, 이 육체 안에 죄성이 거할 때 얼마든지 이 육체는 죄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 육신 안에 죄의 욕망이 들어와서 지배하도록 놔두면 얼마든지 우리 몸과 맘은 죄의 도구로 사용되고, 죄에 종노릇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비다.
아니 목사님, 예수를 진심으로 믿으면 죄의 생각이 안 들어오는 게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그러면 물어보겠습니다. 예수 믿으니까 담배피우는 사람 옆에 가면 담배 연기를 맡습니까, 맡지 않습니까? 술 마시는 사람 옆에 가면 냄새가 납니까, 안 납니까? 심한 경우에는 그들과 똑같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만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죄란 놈은 두더지 마냥 어느새 우리 마음을 뒤지며 휘젓고 다니며 악한 생각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죄지을 가능성이 있고, 얼마든지 열매 없는 생활에 빠져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 시도 방심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는 선택은 오늘 예수 믿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5절).
우리는 육신을 좇을 수도 있고, 영을 좇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선택은 자유이긴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승리의 생활을 할 수도 있고, 패배의 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죄성에 종노릇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죄를 범하면, 그때처럼 어쩔 수 없어서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내가 죄를 선택했기 때문에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 순간순간마다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롬6:12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하나님께 순종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육신에게 져서 죄의 종노릇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죄의 유혹이 들어올 때는 “No(안돼)!”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뜻에는 언제든지 “Yes(예)!”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는 언제든지 ‘예스 맨’으로 살아야 하지만, 그리스도와 반대되는 죄와 마귀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노 맨’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령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죄의 욕망에 사로잡혀 육신을 좇아서 살아버린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되면 마귀에게 실컷 두들겨 맞고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을 앞세워서 영을 좇는 생활을 한다면 얼마든지 열매 있는 생활로 인해 보람과 기쁨, 승리의 생활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론으로는 알지만 막상 실생활에서 ‘영을 좇는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예배드리고 밖에 나가면 자신도 모르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의 것들이 요정처럼 손짓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들을 단호하게 뿌리쳐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을 좇는 생활’을 하지 않고 ‘육신을 좇는 생활’을 하면서 세상 유혹에 질질 끌려다니며 마귀에게 패배를 당하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면 그리스도의 향기는커녕 어디 가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도 꺼낼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교회 나와서는 신자인데 밖에 나가면 비신자보다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영을 좇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설날 이 설교를 하는 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설날 우리는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합니다. 또 1년을 허송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만일 우리가 금년 한 해 동안 ‘영을 좇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여러분들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의 2006년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일에는 결과가 주어집니다. 사과나무를 심었으면 사과를 딸 것이고, 대추 나무를 심었으면 대추를 딸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7,8).
“심는 대로 거둔다!”는 이 만고불변의 진리가 우리 신앙생활의 법칙에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절)고 일러줍니다.
진정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영의 생각을 좇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민은 항상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늘 영의 생각을 하고 살겠다고 결심도 수없이 하지만 어느 새 우리는 육신의 생각, 죄의 생각, 내 개인의 욕심에 빠져 있는 자신임을 확인할 때 실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고민도 없는지 모르지만, 만일 고민이 없다면 이미 화인 맞은 양심이거나,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진 자일 것입니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내 맘이 약하여 늘 넘어지오니 주 예수 힘주사 굳세게 하소서!]
여기서 나는 꼭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이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힘으로 결코 육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육신대로만 살면 망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원수되고 싶은 분 있습니까?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우리는 행동에서 하나님과 원수로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핑계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죄에 넘어졌을 때에는 얼른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과 맘이 영적으로 회복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영을 좇는 생활’로 승리를 얻어야 할 자들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시간 단호하게 옛사람과 그 습관을 벗어버리기로 작정하십시오.
막연하게 2006년을 살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육신 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는 영원한 삶을 위해서, 아니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몸의 행실, 즉 이전에 행하던 죄악된 일과 그 습관을 죽여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야말로 빵빵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을 좇는 삶’이란 바로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받는 삶’을 가리킨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결심하고 다짐을 한다 해도 내 힘과 결심으로써만은 안 됩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를 받아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을 좇는 크리스챤이 되기 위하여 성령충만 달라고 매일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와 같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말하고 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비다.
우리들도 바울처럼 죄의 욕망을 자제하면서 살면 그 결과는 반드시 ‘생명과 평안’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에 성령의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또한 ‘영을 좇는 행복한 크리스챤’이 될 것입니다.
동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서쪽으로 갈 것인가? 만일 여러분의 생각 속에서 “동으로 가자!”라고 한다면 그 몸은 자동적으로 동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의 소리에 거역해 보십시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 보십시오.
'말씀하옵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앙과 의리 (0) | 2006.02.12 |
---|---|
하나님의 나라는 (0) | 2006.02.05 |
배려 (0) | 2006.01.15 |
복 주고 복 주시리라 (0) | 2006.01.01 |
은총을 크게 입은 자여 (0) | 2005.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