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사랑했을까요?
탁월한 그 이름 2005/12/11/주일/
(이사야9장1-7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그 이름이 말해주는 것들....
세상에는 모든 사물이 그 나름대로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시조인 아담은 대단합니다.
그는 탁월한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사물의 이름 하나하나를 지어 불렀는데,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창2:19)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만물박사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만 알았다고 해서 그것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들을 연상할 때 그 사물이나 사람을 마음의 상(象)으로 떠올리게 됩니다.
그것의 모습, 성질이나 성격, 이미지, 그리고 여러 가지 특징들이 한꺼번에 떠올립니다.
어쩜 그것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말입니다.
나는 간혹 식물이나 새, 그리고 물고기들을 소재하고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서 놀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이름 하나하나를 어디서 그렇게 따다 붙었는지 모두 그것들의 모양이나 성질을 이용해서 그 신기함에 놀라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사는 지역 이름이나 또 산이나 바위 이름까지도 그냥 붙인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이름값을 하고 죽는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유럽,아시아,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군대에는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사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병은 알렉산더 대왕과 달리 매우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질책받기 일쑤였고 급기야 알렉산더 병사를 욕하는 소리는 알렉산더 대왕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어느날 자신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을 참다 못한 알렉산더 대왕이 그 병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알렉산더입니다.”
세 번을 반복해서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알렛산더란 말이지? 너는 고발된 그대로 죄를 지었으며, 이제는 벌을 받을 때야! 병사, 자네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네. 자네의 이름을 바꾸겠는가, 아니면 자네의 인생을 바꾸겠는가? 아무도 내 이름, 알렉산더를 자기 이름을 자기 이름으로 사용해서는 안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름값을 하면 그 이름에서 향기가 납니다. J. 해밀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이름은 그 사람 성품을 반영해주는 아름다운 향기와 가은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훌륭한 이름은 정직하고 사랑스러운 행위와 이를 통한 훌륭한 평판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 이름은 세상 사람들에 의하여 길이 기억될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 생명책에도 기록된다.
감송향(甘松香)을 넣은 상자는 그 내용물로 인해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상자 자체에 스며 있는 향기로 인하여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훌륭한 이름은 그 이름이 제시해주는 영감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유익을 가져다준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이름들이 많이 있지만 그 이름 위에 탁월한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또 하나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을 인류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분의 이름으로 여기에 모였고, 그 이름 때문에 우리 인생의 가치가 새롭게 부여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이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죄악의 늪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아버지 아닌 자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신이 아닌 자를 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오늘 본문 6절에 나온 ‘한 아기’ 이야기가 나오고, 또 ‘그 이름’이란 나옵니다.
그 ‘한 아기’는 누구를 가리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고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한 아기’로 오신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그 이름’이란 ‘The name’이 아니라, ‘His name(그의 이름)’이란 말로 해석되는 이름을 가리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한 분의 이름이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엘로힘)’이라고 부르는 이름은 그 대표적인 이름이 ‘야훼(여호와; 뜻-살아계시며 스스로 있는 자)’라고 쓰이고 있지만, 그분이 하시는 일과 성품을 나타내는 칭호들은 수없이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엘’, ‘엘 샤다이’, ‘엘 엘리온’, ‘엘 로헤이’, ‘엘로힘 체바오트’ 등 30여개나 있고, 거기서 또 파생된 이름들까지 합하면 80여개나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 ‘여호와 살롬’, ‘여호와 치드케누’, ‘여호와 로이’ 등등입니다.
이런 이름들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양한 각도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칭호들을 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념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그분을 경외하는 맘을 가지고 불러야 할 이름들입니다.
우리가 성자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그분의 이름도 대표적인 이름이 ‘예수’라는 것을 압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하셨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으로서의 중요한 이름이 된 것이만, 그분의 대표적인 이름은 단연코 ‘예수(Jesus; 뜻-구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임신이 되었을 때, 천사가 일러주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물론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리스도’리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셋을 합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를 때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그분이 하신 일을 반영하는 여러 칭호들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구주’, ‘하나님의 아들’, ‘인자’, ‘하나님의 사자’, ‘다윗의 자손’, ‘선한 목자’, ‘포도나무’, ‘모퉁잇돌’, ‘랍비’, 신랑, 충신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장차 ‘예수’라고 불리우실 그분의 이름이 여러 가지 이름의 형태로 묘사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분이 장차 오시면 어떤 일을 하신다는 말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 나라와 다른 어떤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실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분이 오시면 전쟁과 싸움, 갈등과 미움, 원망이 있는 세상과는 분리되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시고 다스릴 왕으로 오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세상 군주들은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구호를 외쳐댔지만 계속해서 싸우고 전쟁을 해서 피를 흘리고, 또 빼앗고 죽이고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다스리는 새나라는 ‘영원한 평화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곧 2000년 전에 ‘예수’라고 하는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이런 나라를 건설하시고 오늘까지도 그 일을 계속하고 계시는 큰 임금이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오시면 어떤 성품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실 것에 대한 구체적인 면을 여러 가지 이름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할 것임이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게 될 때에, 그분은 ‘기묘자’, ‘모사’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두 개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영어 성경에서는 ‘놀라운 상담자(Wonderful Counselor)’로서, 우리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해답을 주시는 가장 놀라운 상담자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신비롭고 탁월한 이름 앞에 나오기만 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받게 될 것이며, 우리 인생 앞에 닥쳐오는 어떤 고통의 문제도 그분 앞에 나오면 해결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➁‘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영어로는 ‘능력의 하나님(Mighty God)’입니다. 이것은 강력한 힘과 능력을 나타내주는 이름으로서, 세상은 사단이 지배해온 나라일지라도 그분이 오시면 영적인 파워를 가지고 세상 나라를 장악하실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능하신 하나님이 이 땅에 ‘한 아기’로, ‘한 아들’로 오시는데, 그분이 곧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는 마귀권세 그 강력한 힘으로 분쇄하시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시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죽은 나사로도 살리신 전능하신 능력, 친히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시고 부활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십니다.
➂‘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영어에서는 ‘영원한 아버지(Eternal Father)’입니다. 이것은 신적인 속성을 가지신 분으로서 가장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며, 늘 사랑으로서 용서(용납)하시기를 끝없이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하고 자상한 아버지로서의 예수’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관심 밖에 두었던 38년 된 병자도 고치시고, 간음한 여인에게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자비를 베푸신 예수야말로 그 자비를 충분히 드러내신 아버지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➃‘평강의 왕’입니다. 이 분이야말로 ‘평화의 왕(Prince of Peace)’이십니다. 세상은 항상 무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해 왔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이 없었고 더 만은 군주들이 나와서 그들의 힘을 과신하면서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뒤로 오히려 그 많은 군사력과 무기를 통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야말로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그 무장이 저절로 해제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예수의 복음이 가는 곳에 평화가 도래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 개인의 마음에서부터 가정, 교회, 사회, 나라들에게 평화를 나눠주시는 영원한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는 부활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2:9)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그 이름은 ‘탁월한 이름(The His name of supriority)’입니다. 우리는 그 탁월하신 이름을 가진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고 우리를 그 나라로 옮기주시고 우리의 영원한 왕으로 계시기 위하여 이 땅 오신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난 존귀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는 점에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가장 귀한 그이름
1.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언제나 기도 들으사
오 예수 나의 손 잡아주시는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2. 예수 찬양하기 원하네 예수 처음과 나중되시는
오 예수 날 위해 고통당하신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3. 예수 왕의 왕이 되신 주 예수 당신의 끝없는 사랑
오 예수 목소리 높여 찬양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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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존숭하는 마음으로 불러 영광을 돌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네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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