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가을
석양을 바라보면서 찍었답니다. 부안 변산해수욕장 근처에서 서쪽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지점을 바라보며 한 컷을
했습니다. 먼 훗날 나의 인생의 석양도 찾아올 때가 있겠죠. 우리 인생 해가 뉘엿뉘엿하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며 주님의 사랑을 심고 가꾸며
후회없이 살아요.ㅎㅎㅎ
돈과 인생 2005/10/23/주일/
(디모데전서6장3-10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우리 인생! 돈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대답은 ‘네’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돈 없이 1주일을 살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단서를 붙였습니다. “밥은 굶지 않기로 하고요!”
그랬더니, 괴짜 같은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허름하게 입고 다니면서 줄을 서면 공짜로 밥주는 데 많더라고요. 게다가 주말에는 옷을 깔끔하게 빼입고 예식장을 도는 겁니다. 예식장 손님인 체 하고 자연스럽게 식당에 앉는 겁니다. 그뿐입니까? 장례식장 많이 있지 않습니까? 때에 관계없이 얼마나 먹을 것이 풍성합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사람 구실하면서 살려면 그렇게 살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요즘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예수 믿으면 돈 그까짓 것 필요 없는 게 아닐까요?
정말 필요 없을까요?
그런데 정직하게 생각해 보면 믿음이 좋을수록 돈이 더 많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디를 가나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돈은 몸의 혈액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이 낸 세금을 ‘혈세’라고 부르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 몸에 언제 병이 나는지 아십니까? 혈액순환이 제대로 안 될 때에 치명적인 병에 걸리기도 하고 혈관이 막히면 그냥 쓰러져 죽습니다.
그렇듯이 돈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돈이 돌아줘야 가정도, 사회도, 심지어 교회도 원만하게 돌아가고 건강하게 되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영국 속담에 “돈은 세계 속의 대여행자(大旅行者)이다” 생겨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분명히 돈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위스덤(Wisdom)이란 사람은 “돈은 사랑, 인격, 자유, 불멸 말고는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라고 까지 했습니다.
사회의 모든 문제는 돈과 관련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판 얘기도 돈이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돈은 우리의 우리 인생의 바퀴가 굴러가는 수단으로서 하나의 윤활유와 같은 것은 되지만, 돈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수단을 목적화해서 살아간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격을 짓밟고 착취가 일어나고, 심지어 죽이고 빼앗기까지 합니다.
돈이 목적화 되는 곳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부정부패, 살인, 강도, 사기, 가짜, 착복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것들이 드러나면 결국 그 인격은 완전히 땅에 지고 마는 경우를 허다히 보게 됩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가짐에 있어서 그것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우리가 일을 하고 그 노동의 댓가를 얻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고 마땅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떤 일의 결과의 산물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왜 오늘날 학교 선생님이 존경을 받기가 어렵습니까? 왜 정치인들이 존경을 받지 못합니까?
그것은 그분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우리 국민들의 눈에 존경스럽게 비쳐져야 할 부분들이 스스로 돈벌이의 수단으로 비쳐질 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사회가 다시금 선생님들이 존경받고, 의사선생님이나 법관들이 존경받고, 정치가들이 존경받는 세상으로 돌아서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희망사항으로만 그친다면 인류에게는 소망이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살던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 교활한 방법을 동원해서 침투한 거짓된 선생들이 이었습니다.
그들은 교인들을 복음으로 인도하는 선생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럴싸한 신화 이야기나, 족보 얘기로 사람들의 관심을 엉뚱한 몰고 갔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거기에 솔깃하며 따라갔습니다.
이들은 말하기를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 나름대로는 경건한 색체를 띠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복음이 선생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들의 정체를 명확히 밝혀냈습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3절).
그 정체성에 있어서 거짓교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거리 먼 것들에 집착을 했습니다.
거기서 벌어지는 것들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교만으로 가득한 마음, 변론을 일삼는 것, 말싸움, 시기와 다툼, 서로에 대한 불신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자들의 영적 상태를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5절).
이들은 전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듣지 못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 때는 아마 잘 믿는 것처럼 은혜받았다고 방방 뛸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의 부패’, ‘진리의 상실’이 문제였습니다.
그 다음은 보나마나 뻔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돈버는 수단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데 현실 속에 있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는 없어야 될 일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들이 자기 아비를 때렸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날 상당수 가정에서 노부모님이 자식에 맞는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노인의 전화에 호소해 온 건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월에 국가 인권위원회가 노인1347명으로부터 노인학대 실태를 조사를 했는데 37.8%이 노인들이 자식에게 맞거나 언어 폭력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차라리 죽어버려라.” “밥만 축낸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노인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저런 일로 가치관에 있어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심지어 엉터리로 신학교를 나와서 엉터리 복음을 전하면서 돈벌이 수단으로 교인들을 모아 목회를 하고 있는 이단들도 있고, 또 기성교회 목사들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지금까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경건에 큰 도움이 됩니다.”(6절).-쉬운 성경-
돈에 마음 뺏기다 보면 경건생활을 그르칠까 두렵습니다.
여러분들도 너무 돈 때문에 마음이 눌리면 영적으로 많은 눌림을 받습니다. 그럴 때 얼마나 속이 상하고....
바울 사도는 우리 모든 크리스챤들이 가져야 할 물질관에 대해서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온 것이 없다. 역시 갈 때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고 말씀합니다.
어쩌면 밥 세 끼니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들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그렇게도 혈안이 되어 있습니까?
솔직히 돈이 있으면 편리하기 때문이고 나아가서는 돈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돈을 좇아갑니다. 그러다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건강도 돌아보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날을 어겨가면서까지 돈을 좇아갑니다.
어떤 이는 더 큰 돈을 쥐려고 평생 모은 돈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걸거리에 나앉게 됩니다. 나는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내가 귀신에게 속았나 했겠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다시 용기를 내서 일어서기만 하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안 피우던 줄담배를 피우고, 심지어는 폭음을 하면서 자포자기에 빠져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저지른 일을 가지고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10절).
차라리 처음부터 그 1억이라는 돈이 없었더라면 그런 절망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다가 결국 가족도 잃고, 친구도 잃고, 믿음도 잃고, 자기 자신까지 원망스럽게 느껴진 경우에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돈 안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금전주머니를 그 제자 중 하나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은 돈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히게 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서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곳으로 전락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열심히 땀흘려서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목적이 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목적이 없는 인생에게는 돈이 생기면 딴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자기 자신과 주변을 망치게 됩니다.
따라서 돈으로 대신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격이고, 우리의 신앙이며,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문제입니다.
에릭 프롬이 쓴 [존재냐? 소유냐?]는 책에서, “소유지향에서, 존재지향으로 문화가 바뀔 때에만 인류에게는 미래가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바울 사도도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차원 달리하여 바로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11,12절입니다. 그러면서 먼저는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따라서 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는 세상 사람입니다!”가 아닙니다. “나는 마귀의 사람입니다!”는 더욱 아닙니다.
그러다면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천국 시민입니다. 할렐루야!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즉 인생의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돈이 아닙니다. 인격이며, 경건이며, 사랑이며, 믿음이며, 인내며, 온유며, 영생입니다.
바로 내적인 사람에 관한 관심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돈이 소중합니다. 그렇지만 돈보다 더 소중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돈 인생’이 아니라, ‘예수 인생’이고 ‘하나님의 사람인 인간’입니다.
여기에 초점을 두고 살아갑시다.
어쩌면 이 말이 맞습니다.
“당신은 왜 돈을 법니까?”라고 할 때에, “나는 더 많이 하나님께 바칠 것이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이웃들에게 선한 손길을 펼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적어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이 대답이 정직한 대답일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돈벌이가 잘 안되어서 못 받치고 많은 사람들에게 물질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조금도 위축되지는 마십시오.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이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 필요한지만 그것이 우리의 존재가치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하는 삶 가운데서만 우리의 가치는 영원한 것이 되고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말씀하옵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총을 크게 입은 자여 (0) | 2005.12.19 |
---|---|
가장 탁월한 이름 (0) | 2005.12.11 |
교회의 일꾼 자질 (0) | 2005.11.06 |
거룩한 백성의 구별된 삶 (0) | 2005.10.19 |
성경통독 (0) | 2005.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