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샤스 입은 국화? 아니라이가~! 차라 그마 ...뉘끼고?
교회의 일꾼 자격 2005/11/06/주일/
(디모데전서3장8-13절)
우리가 교회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단순히 예배 모임을 갖는 것만으로 교회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교회가 바르게 세워지려면 예배와 성례, 교육, 봉사와 선교, 권징 등이 시행되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능들을 바르게 수행하는 교회로서 역할을 다 하려면 무엇보다도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우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주로 말씀을 강론하고 교회의 행정상의 대표자로서 직능을 수행하는 목사가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양무리’로 보았을 때, 목사는 ‘목자’입니다.
목자는 아무라도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맡은 목사는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며, 성례를 집행하고, 양떼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심방하며, 치리권을 행사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목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로, 권사, 안수 집사, 서리집사가 필요합니다.
우선, 장로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장로(長老)라는 말은 ‘어른’이라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나이만 많이 먹었다고 어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평신도 지도자인 장로는 아름다운 희생과 성숙한 인격의 대명사였습니다. 적어도 한 세대 전에는 이에 대해 교회 안팎으로 이의를 다는 이는 없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 장로님, 가정처럼 살고 싶다! 저 장로님처럼 교회를 섬기고 싶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 말은 교인들의 전체 의견을 잘 파악하여 지도력을 행사할만하고, 또한 목사와 협력하여 목사의 목회에 탄력이 붙도록 도와야 합니다.
한 마디로 장로님은 담임 목사의 목회가 꽃피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목사를 견제하고 감시하라고 세운 직분은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어지럽고 시끄러운 문제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장로는 오히려 목사의 부족을 채워드리며, 교우들을 심방하는 일까지, 교회의 중대한 일을 함께 논의하면서 고락을 같이 하는 직분입니다.
특별 심방할 자를 목사에게 보고하고, 신앙생활 전반에 있어서 교인들의 모범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애당초 장로를 선출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신중해야 하고 신앙과 인격이 잘 갖추어진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여성으로서는 장로에 버금가는 분이 권사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제직회에 속하긴 하지만, 권사들은 주님 사랑과 교회 사랑이라는 열정과 헌신을 다 쏟은 여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권사(勸士, exhorter)는 당회의 지도 아래서 교인들을 돌아보고 약한 자들을 도와주고 특별한 심방을 해야 할 경우 목사에게 보고해서 목회에 유익하도록 해야 합니다.
권사는 교인들에게는 덕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나아가서 보이지 않게 항상 목사의 후원자가 되어야 합니다.
집사
‘집사’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어 디아코니오(diakoneo)에서 유래한다.
‘시중드는 종’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자 음으로는 ‘집사(執事)’라는 말이 잡을 집(執,) 일 사(事)입니다. ‘일을 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가까이 접할 수 있었던 평신도의 직분은 서리집사님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정감이 있는 직분입니다.
그러나, 남성의 경우 계속적으로 서리집사의 자리만 고수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안수 집사가 많아져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집사는 성직자라기보다 봉사 사역자로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집사의 역할이 봉사자로 머무는 게 아니라, 중요한 리더로서 역할을 갖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설교의 일역을 맡을 정도로 막강한 리더가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집사의 자질에 대해서 잘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무조건 집사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격적 자질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돈 많고 학식있는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것들을 앞세운다면 그것은 교회가 세속화로 가는 위험을 초래합니다.
우리가 집사의 직분에 앞서서 3장 1-7절에 감독의 자질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독’이란 말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를 교회 공동체 속에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장로’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오늘날 목사와 장로를 생각하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실제로 감리교회에서는 아직도 감독제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장로교에서는 직위적인 면을 더 부각하여 장로제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나 장로는 교회의 최고 지도자들로서 감독의 직무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에도 어른이 있어야 하듯이 교회에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인들은 그들의 권위를 인정해야만 합니다. 어떻게 인정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종들입니다!”
그리고 그 어른들의 지도와 보살핌 속에서 성도들은 하나님나라의 공동체(가족)를 이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감독(목사나 장로)은 함부로 세울 일이 아닙니다.
1-7절에 보면 이들은 고도한 인격적 자질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쉽게 풀어서 언급만 하겠습니다.
감독(장로)가 되려면,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 선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지탄(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할 줄 알아야 하며, 지혜가 있어야 하며,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며, 다른 사람을 대접할 줄 알아야 하고, 잘 가르쳐야 합니다.
나아가서 술을 좋아하지 않으며, 우격다짐을 하지 않으며, 너그러우며, 신사답게 행동하며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십일조 잘 하는 것으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인데 아까워서 어떻게 십일조를 합니까? 돈 쓰는 법부터 먼저 배워야 합니다. 돈을 가장 잘 쓰는 원리가 온전한 십일조생활을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도록 가정을 잘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을 감독으로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자칫하면 교만해져서 마귀가 그랬던 것처럼 벌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8-13절에 나타난 집사의 자질도 거의 감독 수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라는 말은 ‘감독과 마찬가지로’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집사는 어떤 인격적, 도덕적 자질을 지녀야 합니까?
집사 역시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사회 안에서도 말입니다.
한 입으로 두말 하면 안 됩니다. 술마시고 흥청되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됩니다.
또한 남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챙겨서도 안 됩니다.
깨끗한 양심을 지니고 살며, 믿음을 통해 옳다고 판단되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신앙의 지조를 지켜나갈 줄 아는 매력이 필요합니다.
집사 역시 교회 나오자마자 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험해 보고 쓸만하구나라고 인정될 때에 세우십시오.
13절을 보면,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담력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집사의 집분을 잘 감당하게 되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보상이 따르게 되는데, 결국 영광의 자리(좋은 명예)를 차지하게 되고, 며 나아가서 매사에 자신감이 붙는 확고한 삶의 자라로 나아가지는 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 수행했을 때 이렇게 영광을 얻는다고 하면, 장로와 권사의 직분을 잘 수행했을 때 얻어지는 명예는 더욱 값진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교회의 일꾼들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직분을 소홀히 여기거나, 잘못된 관행과 타성에 빠진 행동을 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교회 안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고, 또 하나님의 교회에 덕과 유익을 끼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리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맡게 되는 직분은 이 세상 어떤 직위를 얻는 것보다 소중합니다.
우리는 ‘금보다 귀한 복음 진리’를 믿는 사람이며, 이 진리가 더욱 더 빛나게 하고 녹슬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교회의 일꾼들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 전주서광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선택받게 될 분들은 100% 완벽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교회와 가정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목사 혼자서 교회 살림을 꾸려갈 수 없기에 교회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이제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서 세움받게 되면 정말 더 겸손히 ‘섬기는 자리로 내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한 건물에 비유한다면 전체의 집을 받쳐주는 기둥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하였도다!”라고 칭찬받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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