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성경통독

좁은길을 걸으며 2005. 10. 19. 11:08


가을인가요? 덕유산에 올랐어요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했군요/ 제 모습입니다/ 바보처럼 웃고 있네요/

 

                        성경통독                      2005/10/09/주일/

                        (요한복음5장39절)                 전주서광/이송로목사


리 서광교회의 자랑거리이자 특징의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생각이 안 나지요?

자랑거리가 너무나 많아서 그러리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서광교회의 자랑과 특징의 하나는 성경을 통독하는 교회라는 점입니다.


나는 서광교회를 부임하면서 창세기 1장부터 하루 한 장씩 교우들과 함께 통독해 가는 목사입니다.

여러분들은 목사를 잘 만나서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는 한 성경 전체를 읽고 듣고 배울 수 있는 갖는 셈입니다.

이것이 예사의 일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하는 교회가 대한민국에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시골목회 초임에서부터 지금까지 약 18년 동안 새벽기도회를 통해서 하루 한 장씩 통독해 온 경력을 가지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것은 오늘날 어떤 성경공부 모임보다도, 어떤 성경묵상(Bible Q.T)보다도 매력적이고 이상적인 일이 성경통독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나는 17살 때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통독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미 고등학교 시절에 ‘내 마음 속의 관주 성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경 어디를 펴든지, 어떤 용어를 대하든지 이와 관련된 성경과 구절들이 어디에 있는지가 생각나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제 자랑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는 데에 익숙해졌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39절을 함께 통독하겠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요5:39).


사람들은 등한시 할지 모르지만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문제는 ‘영원한 가치’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영생’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영생이란 말은 ‘조헨 아이오니온’이란 헬라어 두 단어를 합쳐놓은 말입니다. 영어에서는 ‘ETERNAL LIFE’말입니다. 바로 ‘영원한 생명’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단순히 죽지 않고 끝없이 사는 것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천당과 지옥을  염두에 두고 하는 하시는 말씀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 자신이 영생이 되심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안 죽기 위해서 수많은 과학적인 노력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수명을 연장한다고 한들 근본적으로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안 죽고 오래 사는 것이 저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사실은 인간은 죽어서 지옥에 가도 영원히 죽지 않고 삽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가르치는 ‘영생’은  단순히 ‘영원히 죽지 않는 목숨’이란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 가운데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7:3절에 보면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영생이란, 예수님 자신이며, 그를 아는 것, 곧 그를 믿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예수를 진심으로 믿고 안다면 이미 영생이 여러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이 예수를 믿기만 한다면 ‘지금 여기서 경험되어지는 생명’이 영생입니다.

물론 이 영생,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속에 있는 자들은 육신의 죽음이 닥쳐와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은 하늘나라와 이미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성경을 통독하다가 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바로 그분이 우리에게 영생이 되시며,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영생을 안다는 것은 다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말하면서도 영생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 함께 대답해 봅시다.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설교 제목에서 벗어나서 영생이란 말을 너무 길게 설명한 것 같지만 결코 그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영생’이란 말 속에는 인생의 모든 해답이 있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생명이니 만큼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빌립보서 3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르 위하여 해로 다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7-9).

이 말씀은 한 마디로 “내 인생의 모든 해답은 그리스도 예수시다”는 뜻입니다.

그 분 안에 영생이 있고 또한 그 분 안에 우리 인생의 모든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왜 사느냐?”, “무엇을 위해 사느냐?”, “어디로 가야 하는 인생이냐?”, “인생이란 무엇이냐?”, “나는 어디에 서야 하느냐?”, 그리고 “무엇이 진리냐?”하는 것까지 모든 해답이 예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더 깊이 알아가는 지식에서 자라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목표를 행해 가기 위해서 최우선적인 문제는 성경을 통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5:39절에서 “성경을 상고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상고’라는 말은 ‘에라우나테’라는 말인데, ‘조사하다, 연구하다’라는 뜻이 있지만 ‘통달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상고’란 말의 뜻은 ‘부지런히 연구하다(DILIGENTLY STUDY)’란 뜻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통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통독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고해야 할 이유 중에 이유는 ‘한 쪽으로 편견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바르게 하는 눈을 갖지 않고 몇 구절만 가지고 편견되이 해석하다가 이단으로 전락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단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사람들 역시도 성경을 통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일반적인 책을 읽는 방식에 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를 보는 방법입니다. 이것 역시 중요합니다. 목사는 설교할 때에 이 방법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한 낱말이나, 구절, 그리고 한 문단이 내포하고 있는 뜻을 발견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독서를 하는데 있어서 꼭 도움이 될만한 책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그것은   모티머 j.애들러(외) 著 민병덕 譯 "독서의 기술(how to read a book)" 이라는 책입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독서를 하는 분들에게 초급독서/점검독서/분석독서/신토피칼 독서 방법을 통한 수준높은 책읽기 생활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시간 관계상 설명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성경은 한 구절 안에도 무궁무진한 보화가 담겨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영생’이란 낱말 하나를 가지고도 두꺼운 책을 쓸 수도 있고 평생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 전체의 윤곽을 알기 위해서 숲을 보는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오해하는 경우에 숲을 보지 못하고 지엽적인 몇 구절에 얽매여서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가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성경 전체를 한 눈 볼 줄 아는 눈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숲을 보아야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구약만 좋아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신약만 읽습니다.

둘 다 문제가 있습니다. 신구약 둘을 다같이 읽어야만 합니다.


성경 통독의 목적은 성경을 한 번 다 읽었다는 만족감을 주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을 통독하는 가운데서 기뻐하시고, 슬퍼도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성경 전체의 줄거리가 한 문에 들어오게 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게 되는 눈이 열립니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열려서 말씀을 읽어내려가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또한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을 만나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게 하는 ‘하나님의 러브레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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