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참된 효도/ True Filial Piety

좁은길을 걸으며 2022. 5. 7. 21:45

참된 효도/ Lòng Hiếu Thảo Thực Sự

룻기 1장 1-22절

-Ru-tơ 1: 1-22-

 

-들어가는 말-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룻(Ru-Tơ)이다. 이 여성은 이스라엘(유다) 여자가 아니다. 모압 땅의 여자이다.

그런데 그녀는 선택을 잘했다. 특별히 시어머니의 신앙을 따르기로 한데서부터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냥 복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서 누구를 만나느냐?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 이 두 가지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왕이 없었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를 직접 받은 민족이라는 것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인간보다 더 신뢰하며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늘 그들은 주변의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알고보면 그것은 하나님을 멀리했을 때 가해지는 하나님의 채찍과 징벌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고통 속에서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면 하나님은 언제라도 자비의 손을 내밀어 주셨다. 곧 하나님은 사사(Các Thẩm Thán;
Các Quan Xét)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승리를 안겨주시곤 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찾아온 것이 종교적인 암흑시대였다. 성경이 없고 가르쳐주는 선지자가 없다 보니 그들은 자신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서 자기 소견대로 일을 결정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이것이 큰 병폐였다.

오늘날 역시도 성경을 덮어두고 자신의 잘못된 주관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러다 보니 10년, 20년, 30년을 헛되이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룻기서에 나온 이야기를 이런 맥락에서 봐야 빨리 이해가 될 수 있다.

왕이 없고 임시로 사사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땅에 큰 흉년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거주하던 부부가 있었다.

이 부부의 이름은 엘리멜렉과 나오미였다.

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둘이었다.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다. 

이 부부는 흉년을 피하기 위해 아들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주를 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거기서 남편이 먼저 죽었다. 나오미 홀로 아들을 키웠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이방 땅 여자들에게 장가를 들였다. 며느리의 이름은 오르바와 룻이었다.

그런데 두 아들도 자녀도 낳지 못한 상태에서 다 세상을 떠났다. 이런 날벼락을 만난 나오미의 심정을 어떠했을까!

그녀는 생각했다.  "두 며느리를 힘들게 하지 말자." 친정으로 돌려보내자!"

오늘은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일 속에서 두 며느리의 서로 다른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보게 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선택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있다.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마음을 두고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오미의 두 며느리(자부)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었으면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오르바의 선택과 결과

 

두 며느리 중에 하나가 오르바이다. 그녀는 이스라엘 남자에게 시집을 왔다가 큰 낭패를 당한 느낌에 매우 슬펐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가! 당시 문화에서는 아무런 명분 없이 시어머니를 두고 훌쩍 떠난다는 건 예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때가 왔다.

현명한 시어머니가 먼저 두 며느리를 불러놓고 "너의 각기 너희 친청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 -룻기 1장 8절-

이렇게 말하며 복을 빌어주었다.

 

이런 장면을 보며 우리는 참 좋은 시어머니라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사실 그렇다.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상당한 수준의 지성을 가진 어머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내를 잃어버렸으니 무슨 희망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자신이 계속해서 두 자부를 생과부로 만들겠다는 욕심을 갖지 않고 결단을 내렸다.

이게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쉽지 않다고 해서 계속 그 두 며느리를 끌어안고 살려고 했다면 오리혀 원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현숙한 여성의 지혜를 발휘했다.

"돌아가라!"라고 했을 때 서로 끌어안고 입 맞추며 울음을 터뜨렸다.

두 며느리가 "어머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닙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갈 거예요."

-룻기 1장 9절-

나오미는 재차 뿌리치며 그들을 떠나보려고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며 "너희에게는 희망이 있지 않느냐?"

그렇다.  이들은 아직 젊다. 딸린 자녀도 없으니까. 새로운 남자에게 시집가서 살면 얼마든지 새로운 인생을 갈 수도 있다.

그렇게 설득하는 시어머니 말씀이 옳았다. 인간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르바는 "아닙니다. 어머니를 따라가겠습니다!" 했던 말은 그냥 인사 차례였던 거고 시어머니가 명분을 주자 "얼씨구나 좋다!" 하며 돌아섰다.

 

우리는 이때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오르바는 단순히 시어머니 품을 떠난 게 아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것이다. 이게 문제였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현명한 것이 아니다. 고생이 되더라도 무엇이 옳은가가 중요하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우리는 옳은 것을 붙잡을 줄 아는 사람을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내 육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다. 이것을 '육체의 소욕'이라고 한다. 우리는 정말 잘 생각해야 한다. 자신은 똑똑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어리석은 선택을 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오르바는 육체의 소욕을 따랐다. 그녀는 하나님을 떠나서 과거로 돌아갔다. 그 과거의 삶에는 모압 사람들이 섬기는 몰렉이라는 우상이 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고 울더니 우상 곁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불행이고 이것이 남편을 잃어버린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이다.

 

 

2. 룻의 선택과 그 결과

 

그러나 룻을 보라. 얼마나 현숙한 여인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이 성경의 제목이 룻기서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단연코 주인공은 룻이다. 룻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른 멋있고 당당한 인물로서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

룻은 원래 오르바보다 아이큐가 좋아서도 아니다.

그녀는 오로지 하나, 그것은 '하나님'이었다. 이게 결과를 놓고 볼 때 현명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을 나온 사람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나의 아버지이다.

그것은 내 아버지께서 붙든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얻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어머니를 위대한 분이라고 생각해왔다.

룻은 다시 처녀처럼 멋진 신랑 만나서 결혼할 수도 있었다. 시어머니가 인격적으로 잘 대해줬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만나서 하나님을 알았다. 이것이 일약 천금을 얻는 것보다 소중하는 것을 알았다.

그냥 인간적인 동정 때문에 시어머니를 붙잡은 게 아니다.

그녀는 감정만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녀는 지성을 통해서 무엇이 옳은지를 깨달았다.

감정적은 상황에 따라서 요동필 때가 많다. 그러나 지성적으로 확실히 알고 깨닫게 된 거라면 흔들리지 않는다.

바로 룻의 모습 속에서 이것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단순히 동양적인 효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정말 우리는 예수 안에서의 효를 생각할 줄 아는 지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양적인 효란, 그냥 부모한테 잘하라는 것에 매달린다. 그리고 죽은 조상에게 잘해야 한다고까지 가르쳤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효를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참된 효를 생각하게 만든다.

공자 맹자 식 효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주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다 지옥의 자식 또는 멸망의 구렁텅이에 가둬놓고 만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깨달아지는 효는 "어떻게 하면 나의 부모님을 예수 믿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에게 바른 신앙을 갖게 할까!"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출발점도 다르고 종착지점도 다르다.

인간적으로 잘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고 말할 때에 그들의 영혼을 구원시켜야 할 책임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룻은 잘했다. 자신의 선택이 먼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서 다 생각할 수 없었을지라도 한 가지 분명히 알았던 것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의 진리가 참되다는 걸 알았다면 날마다 십자가를 튼튼히 붙잡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도 살고 내 가족도 살고 내 주변이 살고 세계 여러 민족이 산다."

진짜예요?  정말 그렇다.

보라! 나 한 사람이 움직이니까 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고 있지 않은가!

 

룻 한 사람이 영적으로 움직이니까 이스라엘 역사의 어머니가 되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낳게 되고 오늘 그 이름이 아름답게 영원히 빛나고 있다.

우리가 바로 이 시대에 룻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3. 나오미의 현명한 판단

 

나오미는 그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며느리들에게 하나님을 참되게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룻'이라는 여성은 "어머니의 하나님은 참신이시다!" 이 사실은 분명히 알고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안락을 선택하지 않고 어머니를 공경하며 평생 모시고 살기를 결심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 잃어버려도 좋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다!"

반대로 "하나님을 얼으며 다 얻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들은 인생을 거꾸로 산다. 자신에게 조금만 불이익이 있으면 하나님을 팽개치고 세상으로 가버리는 자들이 있다.

나오미는 슬픔을 안고 귀향을 선택했다. 이것 또한 쉬운 결단은 아니다. 패잔병이 되어 돌아온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처량했을까!

"혹시 사람들이 나에게 손가락질은 안 할까!"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용단을 내렸다.

"돌아가자!"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을 가지고 돌아왔던 게 분명하다.

 

나오미를 보라.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근처의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나오미인가?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마라. 나를 마라(괴로움)라고 부르라"라고 부르라고 했다.(룻기 1장 20절)

그녀는 역시 말 한마디 안 마디에 '현숙함'이 묻어난다.

그렇다. 나오미의 말이 맞다.

생각해 보라. 인간적으로 볼 때는 얼마나 얼마나 비극이며 수치이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정했다.

이것이 신앙의 참된 진수이다.

 

 

- 나가는 말 -

 

우리는 오늘날 예수 믿기를 참 잘했다. 백 번을 생각해 보고 또 천 번을 생각해 봐도 이건 정말 잘 한 결정이다.

알고 보면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니 만큼 우리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다.

그냥 이렇게 결단할 수 있게 해 주신 성령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행여 오르바처럼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기도 해야 한다.

그녀는 감정적으로만 하나님을 배웠다. 지성과 결단을 버렸다. 아무리 모양새가 좋았다 하더라도 그녀는 결국 우상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녀는 친청으로 돌아간 게 잘못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결정적으로 불행이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가! 똑같은 상황이었지만 룻을 시어머니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그녀의 고백 속에서 보는 것은 오직 하나의 핵심이 담겨져 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만났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야, 이제 너희들은 다 가거라! 나도 나의 가길을 가겠다!"한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안 돼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하며 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으로는 오히려 "어휴, 이제 해방되었다. 정말 잘 됐다. 이제 내 맘대로 살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그러나 "정말 안 됩니다. 쌤께서 가시는 곳에 저도 가겠습니다. 쌤께서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겠습니다. 쌤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이렇게 말할 줄 안다면?

선택은 한 순간이다. 그렇지만 그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나오미가 따로 없다. 바로 나의 모습이 나오미처럼 되었을지라도, 아니 그렇게 느껴질지라도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안다면 하나님께서는 거기서부터 새로운 역사를 쓰실 것이다.

그러니까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분은 위대하시다! 우리는 그분을 붙들어야 한다.

다 잃어버렸어도 괜찮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러면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효도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룻기서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단순히 인간적인 정에 얽매여서 잘하고 못하고의 효가 아니라, 정말 우리 사이에 '하나님을 두고' 생각해야 할 효도이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네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에베소서 6장 1절-

룻의 효도는 '주안에서의 효도'였다.

그래서 그녀는 '온전한 복', 즉 '온전한 상'을 받았다. 

바로 우리들도 그렇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복 받으려면 '주안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여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기에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Ru-tơ 1:1-22

1 Trong đời các quan xét, một cơn đói kém xảy đến trong xứ, có một người từ Bết-lê-hem xứ Giu-đa, đi với vợ và hai con trai mình đến kiều ngụ trong xứ Mô-áp. 

2 Người tên là Ê-li-mê-léc, vợ tên là Na-ô-mi, hai con trai tên là Mạc-lôn và Ki-li-ôn, đều là dân Ê-phơ-rát về Bết-lê-hem trong xứ Giu-đa. Đến xứ Mô-áp, chúng bèn ở tại đó. 

3 Ê-li-mê-léc, chồng của Na-ô-mi, qua đời, để nàng lại với hai con trai mình. 

4 Chúng nó cưới vợ trong người nữ Mô-áp, người nầy tên là Ọt-ba, người kia tên là Ru-tơ; họ ở tại đó độ mười năm. 

5 Kế sau, Mạc-lôn và Ki-li-ôn cũng thác, để Na-ô-mi ở lại, không chồng không con. 

6 Bấy giờ, Na-ô-mi có nghe nói rằng Đức Giê-hô-va đã đoái xem dân sự Ngài, và ban lương thực cho, bèn đứng dậy cùng hai dâu mình, đặng từ xứ Mô-áp trở về. 

7 Vậy, người lìa bỏ chỗ mình đã ở, cùng hai dâu mình lên đường đặng trở về xứ Giu-đa. 

8 Nhưng Na-ô-mi nói cùng hai dâu mình rằng: Mỗi con hãy trở về nhà mẹ mình đi. Cầu Đức Giê-hô-va lấy ơn đãi hai con như hai con đã đãi các người thác của chúng ta, và đã đãi chính mình ta! 

9 Nguyện Đức Giê-hô-va ban cho hai con được bình yên ở nơi nhà chồng mới! Rồi người ôm hôn hai nàng, còn hai nàng cất tiếng lên khóc, 

10 và nói rằng: Chúng tôi sẽ đi với mẹ đến quê hương của mẹ. 

11 Na-ô-mi đáp: Hỡi con gái ta, hãy trở về, đi với mẹ làm chi? Mẹ há còn những con trai trong lòng có thế làm chồng chúng con sao? 

12 Hỡi hai con gái ta, hãy trở về đi đi; mẹ già quá mà lấy chồng nữa. Lại dầu bây giờ mẹ nói: Ta có lòng trông mong, từ chiều nay ta sẽ có chồng, dẫu ta sanh đẻ con trai đi nữa, 

13 chúng con há lại muốn đợi cho đến chúng nó khôn lớn, và không lấy chồng khác hay sao? Không, hỡi chúng con, nỗi sầu thảm của mẹ cay đắng muôn phần hơn của chúng con, vì tay của Đức Giê-hô-va đã giơ ra hại mẹ. 

14 Hai nàng lại cất tiếng lên khóc. Đoạn, Ọt-ba hôn và từ biệt bà gia mình; còn Ru-tơ không chịu phân rẽ người. 

15 Na-ô-mi nói cùng Ru-tơ rằng: Nầy, chị con đã trở về quê hương và thần của nó; con hãy trở về theo nó đi. 

16 Ru-tơ thưa rằng: Xin chớ nài tôi phân rẽ mẹ; vì mẹ đi đâu, tôi sẽ đi đó; mẹ ở nơi nào, tôi sẽ ở nơi đó. Dân sự của mẹ, tức là dân sự của tôi; Đức Chúa Trời của mẹ, tức là Đức Chúa Trời của tôi

17 mẹ thác nơi nào, tôi muốn thác và được chôn nơi đó. Ví bằng có sự chi khác hơn sự chết phân cách tôi khỏi mẹ, nguyện Đức Giê-hô-va giáng họa cho tôi! 

18 Na-ô-mi thấy nàng quyết định theo mình, nên không nói nữa. 

19 Vậy, hai người đi đến Bết-lê-hem. Khi hai người đến, cả thành đều cảm động. Các người nữ hỏi rằng: Ấy có phải Na-ô-mi chăng? 

20 Người đáp: Chớ gọi tôi là Na-ô-mi, hãy gọi là Ma-ra, vì Đấng Toàn năng đã đãi tôi cách cay đắng lắm. 

21 Tôi đi ra được đầy dẫy, nhưng Đức Giê-hô-va dắt tôi về tay không. Đức Giê-hô-va đã giáng họa cho tôi, và Đấng Toàn năng khiến tôi bị khốn khổ, vậy còn gọi tôi là Na-ô-mi làm chi? 

22 Na-ô-mi và Ru-tơ, người Mô-áp, dâu của Na-ô-mi, từ ở xứ Mô-áp trở về là như vậy. Hai người đến Bết-lê-hem nhằm đầu mùa gặt lúa mạch.

 

 

 

https://www.youtube.com/watch?v=O0VelKQ8sK8&list=RDsGr77uXTfiU&index=16 

https://www.youtube.com/watch?v=SNHitOQS0mI 

 

 

https://www.youtube.com/watch?v=8lviYI_RuzI 

 

https://www.youtube.com/watch?v=oyf_Tvan2kU 

 

https://www.youtube.com/watch?v=O0VelKQ8sK8&list=RDGMEMXgf4aZ1jiRpvQxoF1ssvBg&start_radio=1&rv=7kdU6uMGgAo 

 

https://www.youtube.com/watch?v=7kdU6uMGgAo 

 

https://www.youtube.com/watch?v=XYmJUNlHwMM&list=RDwx-UgIynvBA&index=7 

 

https://www.youtube.com/watch?v=oNSdnQxuSaE&list=RDwx-UgIynvBA&index=8 

 

BÀI TÍN ĐIỀU CÁC SỨ ĐỒ (사도신경)

Tôi tin Đức Chúa Trời Toàn Năng, là Cha, là Đấng dựng nên trời đất, 

Tôi tin Giê-xu Christ, là Con độc sanh của Đức Chúa Trời và Chúa chúng ta:

Ngài được thai dựng bởi Thánh Linh, sanh bởi nữ đồng trinh Mary,

chịu thương khó dưới tay Bôn-xơ Phi-lát, bị đóng đinh trên thập tự giá, chịu chết và chôn.

Ngài xuống âm phủ, đến ngày thứ ba, Ngài từ kẻ chết sống lại.

Ngài thăng thiên ngồi bên hữu Đức Chúa Trời Toàn Năng, là Cha.

Từ đó Ngài sẽ trở lại để xét đoán kẻ sống và kẻ chết.

Tôi tin Thánh Linh

Tôi tin Hội Thánh phổ thông, sự cảm thông của thánh đồ,

sự tha tội, sự sống lại của thân thể và sự sống đời đời. A-men.

 

 

Bài Cầu Nguyện Mẫu (주기도)

Lạy Cha chúng con ở trên trời,

Danh Cha được tôn thánh.

Nước Cha mau đến

Ý Cha được nên ở đất như trời!

Hôm nay cho chúng con đồ ăn đủ dùng;

Xin tha tội chúng con,

Như chúng con tha kẻ phạm tội cùng chúng con,

Chớ để chúng con bị cám dỗ,

Song cứu chúng con khỏi điều ác!

Vì nước, quyền, vinh hiển đều thuộc về Cha

Đời đời vô cùng . A-men

 

 

 

https://www.youtube.com/watch?v=H7V9J-N6-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