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인생 삶/ High Quality Life
마태복음 5장 1-16절
Ma-thi-ơ 5:1-16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부족함이 없는 만족의 상태'일까?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은 소유로 만족할 수 없다. '끝없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악성이 말해주는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존재냐, 소유냐를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존재에서 행복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하신 선생님이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12장 15절-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생명을 논하고 생명에 대해 논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현장으로 되돌아가봐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산수훈을 늘 마음에 품고 내 인생 삶의 기본 모습으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
여기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 존재인가!"를 늘 확인해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 인생을 지저분하게 살지 않게 되고 품격 있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품격이란 지식의 용량의 문제도 아니고, 소유의 문제도 아니며 또한 인물이 잘 났냐 못 났냐의 문제도 아니다.
한 마디로 '예수를 닮은 인격'에서 발견되어진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설교를 시작하셨다. 이것이 바로 오늘 읽은 성경의 내용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을 외워야 할 만큼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보시며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매우 낭만이 깃든 조용한 장소이다.
성경에는 정확한 산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갈릴리 바다에서 멀지 않은 가버나훔 근처의 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산이냐가 아니라, 메시지의 내용이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품을 볼 수가 있다. 예수님의 삶에서 친히 체득한 메시지는 제자들과 모든 청중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우리의 영혼이 담긴 마음이 가난하다는 게 뭘까? 그냥 '빈 마음'일까요? 이것을 강조하는 종교들도 여럿 있다. 그러나 그것들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이것은 물질적인 가난과도 상관이 없다. 단순히 도적적 겸양도 아니다. 오히려 영혼이 가난한 상태를 말한다. 희랍어에서 ‘프토코스'로 표현이 되는데 ‘빈영혼’, '빈마음'을 가리킨다. 불교의 '무아'와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적인 무능'을 인정하는 상태의 마음 상태를 뜻한다.
우리가 이런 가난한 마음을 갖는다면 그 자체로써 이미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우리는 항상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때로는 울어야 한다. 그래서 눈물도 주셨다.
그런데 어떤가? 울어야 할 때 웃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비참함을 안다면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언제 비참해지는가?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때이다.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며 애통할 줄 아는 그 자체가 행복이다.
불행한 사람들은 죄를 끼고 살면서 시시덕거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게 남의 일이 아니다. 얼마든지 나 자신의 일일 수 있다.
우리는 애도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죄의 용서를 받고 또 위로와 더불어 변하여 새사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내가 너의 눈물을 보았노라!"
때로는 원통함과 분노가 일어날 때에라도 사람 앞에 쏟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라. 그러면 큰 위로가 있을 것이다.
좀 더 뛰어넘어서 십자가 상 앞에서 울던 여인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누가복음 23장 28절-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하다는 게 뭘까? 오른 빰을 때리면 왼 빰을 돌려대 줄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매사가 너무 사납지 않은가!
조금만 비위를 건드려도 으르렁대며 맞서서 싸우려 하지 않는가!
모세는 정말 온유한 사람이었다.
백성들이 원망하고 대항할 때 맞서지 않고 엎드렸다. 우리는 그렇게 하는가!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하는가!
사나운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더욱더 악한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악을 악으로 맞서며 살 자들이 아니다.
이삭처럼 양보하라. 거 좋은 우물을 주실 것을 확실히 믿어라.
예수님을 보라. 그분은 최대의 온유함을 보여주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장 7절-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란 무엇인가! 이 말은 희랍어로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인데 법적인 용어인 '정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에 설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율법의 의도는 이미 죄인이며 죽었다. 그러니까 이것을 가지고 그 어느 누구도 "나는 의롭다!"라고 내세울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는 신앙으로 신속히 나가야 한다.
"예수 안에 희망이 있다."
하나님의 의는 세상이 말하는 의와 정반대일 때도 있다.
일반적으로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할 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이다.
우리는 특히 '복음의 의'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일반 세상들이 말하는 기준에서 '의'의 기준을 말하려고 한다. 그게 아니다.
'하나님의 정의 실현을 위해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셨다. 예수님만이 날마다 우리의 갈급한 영혼을 채워주실 수 있는 능력자이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 말은 "불쌍히 여기다"는 말로 통할 것이다. 그렇다고 막연한 동정심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할 긍휼히다. 1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주인에게 탕감을 받았다.
우리는 평생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안고서 살아가고 있었다. '죄의 큰 부채'를 탕감받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물고 늘어져야 하는가!
우리는 불쌍히 여기는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제로 하나님의 자비, 긍휼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와 긍휼이 동시에 이루어진 사건이시고 하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긍휼을 얻었다.
이 사실은 알고 예수님의 마음을 긍휼을 통해서 나타내며 살아가는 그 사람은 복된 영혼이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인간들은 죄로 더러워졌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그렇다. 이것은 인간의 헛된 욕망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끝없는 욕망을 채우려고 달려가면 거기엔 오염의 더러운 늪에 빠질 것이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게 뭘까! 우리가 스스로 의롭게 될 수도 없다. 그분이 씨어주셔야 한다.
예수는 우리를 청결하게 해 주신 당사자이시다. 그 피가 아니면 안 된다.
예수의 피 없이 그 어느 누구도 "나는 청결하다!"라고 말한다면 이미 오염된 사람이다.
예수 백신을 맞아야 한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화평의 왕'으로 오셨다.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시키기 위해서 양팔을 벌리셨다.
십자가에서 사랑을 느끼지만 또한 평화를 맛봐야 한다.
우리는 평화를 깨뜨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반대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셨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려는 일을 해야 한다.
바로 이것은 우리의 전도로써 가장 강렬하게 나타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에베소서 2장 14절-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우리는 '의'를 위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불의' 앞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예수는 하나님의 의가 되셨다. 의가 십자가에 매달렸다. 오늘날 바로 이 예수의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
우리는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아주 잘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되셨다.
특히 박해를 달게 받을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고 따르는 길에는 반드시 박해도 아울러 따라올 것이다.
이때의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 이유가 뭔가?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다!" 우리가 박해라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근거가 이것이다.
알고 보면 예수님도 박해를 받아 십자가에 죽으셨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참아낼 수 있다.
야고보에서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야고보서 5장 8절-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마음의 상태만 있다면 항상 '심령 천국'이 될 것이다.
그 마음속에 예수께서 계시며 성령께서 늘 강하게 역사하실 것이다. 이게 행복이다. 그러니까 산상수훈에 나타난 '팔복의 메시지'를 실천만 한다면 날마다 행복할 것이다.
그런 영혼에게 "복이 있으라!"라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산상수훈의 말씀은 단순히 도덕적인 설교가 아니다.
이 역시도 복음적인 설교이다. 우리가 복음을 바르게 알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닮은 최고의 인격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아름다운 인품을 우리끼리만 나누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소금과 빛'에 비유를 하셨다.
한 마디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은 세상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인품으로 무장이 되어있다면 그것이 결국은 '세상의 소금으로', '빛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소금과 빛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이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나도 예수를 믿어야겠다!"
이렇게 될 수 없다면 우리는 '맛 잃은 소금', '꺼진 등'이 되고 말 것이다. 이건 결국 세상의 조롱거리밖에 안 된다.
우리는 이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빛을 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우리는 그 반사체가 되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NAYLbYynlI
https://www.youtube.com/watch?v=TAYEnO_vQI0&list=RDO0VelKQ8sK8&index=6
https://www.youtube.com/watch?v=jvXPaCZxdcA&list=RDO0VelKQ8sK8&index=5
https://www.youtube.com/watch?v=5t-XZcNl4Bk&list=RDO0VelKQ8sK8&index=7
BÀI TÍN ĐIỀU CÁC SỨ ĐỒ (사도신경)
Tôi tin Đức Chúa Trời Toàn Năng, là Cha, là Đấng dựng nên trời đất,
Tôi tin Giê-xu Christ, là Con độc sanh của Đức Chúa Trời và Chúa chúng ta:
Ngài được thai dựng bởi Thánh Linh, sanh bởi nữ đồng trinh Mary,
chịu thương khó dưới tay Bôn-xơ Phi-lát, bị đóng đinh trên thập tự giá, chịu chết và chôn.
Ngài xuống âm phủ, đến ngày thứ ba, Ngài từ kẻ chết sống lại.
Ngài thăng thiên ngồi bên hữu Đức Chúa Trời Toàn Năng, là Cha.
Từ đó Ngài sẽ trở lại để xét đoán kẻ sống và kẻ chết.
Tôi tin Thánh Linh
Tôi tin Hội Thánh phổ thông, sự cảm thông của thánh đồ,
sự tha tội, sự sống lại của thân thể và sự sống đời đời. A-men.
Bài Cầu Nguyện Mẫu (주기도)
Lạy Cha chúng con ở trên trời,
Danh Cha được tôn thánh.
Nước Cha mau đến
Ý Cha được nên ở đất như trời!
Hôm nay cho chúng con đồ ăn đủ dùng;
Xin tha tội chúng con,
Như chúng con tha kẻ phạm tội cùng chúng con,
Chớ để chúng con bị cám dỗ,
Song cứu chúng con khỏi điều ác!
Vì nước, quyền, vinh hiển đều thuộc về Cha
Đời đời vô cùng . A-men
https://www.youtube.com/watch?v=H7V9J-N6-jc
Ma-thi-ơ 5:1-16
1 Đức Chúa Jêsus xem thấy đoàn dân đông, bèn lên núi kia; khi Ngài đã ngồi, thì các môn đồ đến gần.
2 Ngài bèn mở miệng mà truyền dạy rằng:
3 Phước cho những kẻ có lòng khó khăn, vì nước thiên đàng là của những kẻ ấy!
4 Phước cho những kẻ than khóc, vì sẽ được yên ủi!
5 Phước cho những kẻ nhu mì, vì sẽ hưởng được đất!
6 Phước cho những kẻ đói khát sự công bình, vì sẽ được no đủ!
7 Phước cho những kẻ hay thương xót, vì sẽ được thương xót!
8 Phước cho những kẻ có lòng trong sạch, vì sẽ thấy Đức Chúa Trời!
9 Phước cho những kẻ làm cho người hòa thuận, vì sẽ được gọi là con Đức Chúa Trời!
10 Phước cho những kẻ chịu bắt bớ vì sự công bình, vì nước thiên đàng là của những kẻ ấy!
11 Khi nào vì cớ ta mà người ta mắng nhiếc, bắt bớ, và lấy mọi điều dữ nói vu cho các ngươi, thì các ngươi sẽ được phước.
12 Hãy vui vẻ, và nức lòng mừng rỡ, vì phần thưởng các ngươi ở trên trời sẽ lớn lắm; bởi vì người ta cũng từng bắt bớ các đấng tiên tri trước các ngươi như vậy.
13 Các ngươi là muối của đất; song nếu mất mặn đi, thì sẽ lấy giống chi mà làm cho mặn lại? Muối ấy không dùng chi được nữa, chỉ phải quăng ra ngoài và bị người ta đạp dưới chân.
14 Các ngươi là sự sáng của thế gian; một cái thành ở trên núi thì không khi nào bị khuất được:
15 cũng không ai thắp đèn mà để dưới cái thùng, song người ta để trên chân đèn, thì nó soi sáng mọi người ở trong nhà.
16 Sự sáng các ngươi hãy soi trước mặt người ta như vậy, đặng họ thấy những việc lành của các ngươi, và ngợi khen Cha các ngươi ở trên trờ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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