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부활의 의미/ Meaning of resurrection

좁은길을 걸으며 2022. 4. 15. 13:34

부활의 의미/ Ý nghĩa của sự phục sinh

-요한복음 20장 1-18절-

- Giăng 20: 1-18 -

 

할렐루야!

예수 다시 사셨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하나님의 창조만큼이나 크게 생각한다.

그 이유가 뭘까?

부활이란 단순히 계란을 깨고 병아리가 나오는 정도의 사건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더더 큰 하나님의 새 창조의 역사로 봐야 한다.

오늘 부활절은 단지 절기를 지키기 위한 날로써의 부활절이 아니다.

매년 우리가 부활절을 지키고 있지만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미 부활한 자들이다.

이유로써는, 간단하다. "예수의 죽음이 내 죽음이며,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이다."

 

오늘 새벽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이 장면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무덤에 찾아갔던 사람들이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보고 알았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 맨 먼저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셨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을면서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양쪽에 앉아있는 두 천사를 보았다.

천사가 말했다. "왜 우니?" 마리아는 대답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의 시신을 어디에 옮겨놨는지 알려주세요." -요한복음 13절-

이 말을 하고 돌아서자마자 예수께서 여자 곁에 서 계셨다. 그녀는 동산 관리인으로 생각하고 "아저씨, 당신이 우리 주님을 옮겼거든 내게 알려주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마리아야!" 부르시자, 마리아는 "랍오니!(선생님)"하고 불렀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다.

 

처음에는 믿기 지가 않았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기도 하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와 5백여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셨다.

사실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예수께서는 미리 말씀하셨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마가복음 8장 31절-

그러나 막상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제자들은 이것을 기억하며 기대하지 못했다. 그저 슬픔에 잠겨에 잠겨 불안에 떨고 있었다.

부활의 소식을 듣고도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찾아주신 수간에 이 모든 의혹과 슬픔 그리고 불안의 요소들은 안개 걷히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1. 부활은 반드시 죽음을 통해서 일어난다

 

예수께서 이미 이런 명언을 남기셨다.

"내가 진실로 신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장 24절-

예수님은 우선 자신에게 이 말씀을 적용하셨다.

 

예수는 십자가에 죽으셨다. 반드시 죽으셔야만 했다. 왜? 죽어야 인류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죄 때문에 망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이유는, 두 가지다.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의 공의 때문이다.

 

그것은 이사야 선지가가 예언한 대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이사야 53장 5절-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속에서 설계된 것이다. 인간이 범죄 한 순간부터 이것은 이미 예견되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어떻게 희생제물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 구약성경은 내내 예시해 주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약'을 통해 더욱 점진적이고 구체적으로 계시하신 말씀을 '십자가 희생'을 통해서 완전하게 실행하셨다.

오늘날 과학이 해결해줄 능력은 0%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에게 안겨줄 수 있는 소망이다.

만일 예수께서 죽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 인류에게는 절망뿐이며 살인과 전쟁 그리고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되어 멸망으로 치닫고 말았을 게 뻔하다.

 

이러한 세상을 밝히려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절망의 늪에 빠져서 허덕이는 영혼들을 구출하러 오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가신 곳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예수 앞에 나와서 실제로 고침을 받았다.

예로써, 나병 환자도, 38년 된 병자도,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자도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다.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바디매오 같은 사람도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이건 오늘날 의술이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런 기적을 통해서 이미 죽음을 이기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어느 날 예수께서는 죽은 소녀를 살리셨다. '달리다굼(달리다굼(Ταλιθα κουμ)!' 이 한 마디에 죽은 소녀가 일어나 걷고 뛸 수가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aHh756BOR0 

그러니까 인류 역사에서 예수만이 죽음을 길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아니 이미 죽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이미 살았다. 그렇다. 우리는 죽음을 육체가 죽는 것을 죽음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죄로 인하여 죽었다. 맞다. 우리는 죽었다. 죽은 척하는 것은 죽은 게 아니다. 실제로 죽었다.

그러니까 부활은 죽음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값진 선물이다.

 

 

 

2. 부활은 곧 영원한 생명과 직결된다

 

부활은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부활의 의미의 핵심은 '생명', 즉 '영원한 생명' 그 자체이다. 

예수께서 평소에 가르치실 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0장 10절-

그분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놓으실 목적으로 오신 것이다.

 

이것을 아주 뚜렷하게 보여주신 것이 곧 요한복음 얘기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3년 반의 공생애 내내 활동하신 내용이나 전해 주신 내용이 '생명'과 관련된 횡보였다.

그러다가 요한복음 11장에 와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더 확연하게 예수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미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매장을 해 놓았는데 말씀 한 마디에 시신이 벌떡 일어날 수 있는가!

시신이 부패하여 냄새가 나는데 "나사로야, 나와라!" 이 한 마디에 온 몸을 동인 채로 일어날 수가 있는가!

예수는 우리를 살리려고 오신 구세주이시다.

 

그렇다. 우리가 믿는 예수,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생명을 주는 가장 아름다운 신앙이다. 

세상은 애써 기독교를 자기네 종교와 비교하려고 하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기독교만이 참된 생명과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종교와 타협하지 않는다.

다른 어떤 종교도 죽었던 영혼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그것들은 속임수를 통해서 가기들이 진짜인 것처럼 꾸미고 가장해서 선전할 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예수님 자신이 생명이시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역설을 펼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이 생명에 대한 이해를 도우시려고 빵의 기적을 통해서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요한복음 48-51절-

 

그렇다. 사람들은 죽는다. 심지어는 출애굽의 과정에서 만나를 먹었던 자들도 다 죽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과 비할 바가 안 되는 참 만나,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

우리가 이 떡을 먹을 때만 영생하는 것이다. 바로 예수 자신이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3. 부활의 하나님의 새 창조의 역사이다

 

우리는 이 부활을 하나님의 새창조의 역사로 봐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예수 믿는 각 개인에게 적용되는 말씀이기도 하고 우리 모든 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다.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 부활을 통해서 이미 부활을 맛보고 사는 사람들이다.

바록 육체의 부활이 남아있기 하지만 이미 우리의 영이 살았다면 마지막 때에, 즉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 죽은 몸이 다시 일어날 것이다.

바로 이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해당하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로 인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장 27절-

 

그러니까 예수의 부활은 다시 살아나신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의 부활은 사망의 권세를 이길 뿐만 아니라 새 창조의 질서를 세운 사건이다.

여기서부터 세계 인류의 역사가 재편이 되고 전 복음이 세계의 복음으로 뻗어가며 동시에 유니버설 처치가 세워지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바로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왔지만 그 한 사람(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온 인류가 사는 역사로 바뀌게 되었다. (로마서 5장 17절)

바로 우리가 지금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바로 예수의 부활과 동시에 전 세계로의 복음 전파의 결과이다.

오늘 우리는 예수 부활 때문에 이 놀라운 구원의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야 한다. 우리는 예수 부활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아직도 그리스도 예수를 모르는 세계 속에는 여전히 죄가 왕 노릇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한 복음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이 새로운 질서 속에 들어와서 변화를 받고 새 생명을 얻도록 해야 한다.

이 새 창조 질서 안에 들어온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만이 영원히 불타지 않을 우리의 공적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분별력을 상실하고 이 세상에서 불타 없어질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다시 부활 중심의 신앙생활 속에서 '주일의 의미'를 새기며 그 새 질서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꿈을 그에 합당하게 키워가야 한다.

 

 

-나가는 말-

 

우리는 부활을 믿는다. 믿을 뿐만 아니라, 확신 있게 전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다시 다짐을 하자!

"나는 부활의 증인이다!" "나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겠다!"

 

예수께서 우리의 죗값을 단번에 지불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죄에서 해방되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면 평생 빚진 인생이다.

이 빚을 어떻게 값을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죽어가는 영혼을 구해내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 나라의 큰 물결 떠밀려가는 잡동사니처럼 살아갈 때가 있다. 이 얼마나 가련한 모습인가!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서는 안 된다. 정말 부활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면 하나님의 새 창조 질서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식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1-24절-

 

이렇게 살아갈 때에 세상이 우리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우리는 그 안에서 생명을 얻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 마찬가지로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영원한 삶, 즉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이 아름다운 새 창조의 질서 안에서 우리는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부활 안에서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날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며 부활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0qmpEPMtqmc

 

https://www.youtube.com/watch?v=Vaqdzng7OOc 

 

 

 

 

 

 

Giăng 20:1-18

 

1 Ngày thứ nhất trong tuần lễ, lúc rạng đông, trời còn mờmờ, Ma-ri Ma-đơ-len tới mộ, thấy hòn đá lấp cửa mộđã dời đi. 

2 Vậy, người chạy tìm Si-môn Phi-e-rơ và môn đồ khác, là người Đức Chúa Jêsus yêu, mà nói rằng: Người ta đã dời Chúa khỏi mộ, chẳng hay để Ngài tại đâu. 

3 Phi-e-rơ với môn đồ khác bèn bước ra, đi đến mồ.

 4 Cả hai đều chạy, nhưng môn đồ kia chạy mau hơn Phi-e-rơ, và đến mồ trước. 

5 Người cúi xuống, thấy vải bỏ dưới đất; nhưng không vào. 

6 Si-môn Phi-e-rơ theo đến, vào trong mộ, thấy vải bỏ dưới đất,

 7 và cái khăn liệm trùm đầu Đức Chúa Jêsus chẳng cùng một chỗ với vải, nhưng cuốn lại để riêng ra một nơi khác. 

8 Bấy giờ, môn đồ kia đã đến mộ trước, cũng bước vào, thì thấy và tin. 

9 Vì chưng hai người chưa hiểu lời Kinh Thánh rằng Đức Chúa Jêsus phải từ kẻ chết sống lại. 

10 Đoạn, hai môn đồ trở về nhà mình. 

11 Song Ma-ri đứng bên ngoài, gần mộ, mà khóc. Người vừa khóc, vừa cúi xuống dòm trong mộ, 

12 thấy hai vị thiên sứ mặc áo trắng, một vị ngồi đằng đầu, một vị ngồi đằng chân, chỗ xác Đức Chúa Jêsus đã nằm. 

13 Hai thiên sứ hỏi: Hỡi đàn bà kia, sao ngươi khóc? Người thưa rằng: Vì người ta đã dời Chúa tôi đi, không biết để Ngài ở đâu. 

14 Vừa nói xong người xây lại thấy Đức Chúa Jêsus tại đó; nhưng chẳng biết ấy là Đức Chúa Jêsus. 

15 Đức Chúa Jêsus hỏi người rằng: Hỡi đàn bà kia, sao ngươi khóc? Ngươi tìm ai? Người ngỡ rằng đó là kẻ làm vườn bèn nói rằng: Hỡi chúa, ví thật ngươi là kẻ đã đem Ngài đi, xin nói cho ta biết ngươi để Ngài đâu, thì ta sẽ đến mà lấy. 

16 Đức Chúa Jêsus phán rằng: Hỡi Ma-ri, Ma-ri bèn xây lại, lấy tiếng Hê-bơ-rơ mà thưa rằng: Ra-bu-ni (nghĩa là thầy)! 

17 Đức Chúa Jêsus phán rằng: Chớ rờ đến ta; vì ta chưa lên cùng Cha! Nhưng hãy đi đến cùng anh em ta, nói rằng ta lên cùng Cha ta và Cha các ngươi, cùng Đức Chúa Trời ta và Đức Chúa Trời các ngươi. 

18 Ma-ri Ma-đơ-len đi rao bảo cho môn đồ rằng mình đã thấy Chúa, và Ngài đã phán cùng mình những điều đ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