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눈물로 쓴 편지/A letter written with tears

좁은길을 걸으며 2021. 11. 10. 10:38

눈물로 쓴 편지/Một lá thư viết bằng nước mắt

-고린도후서 2장 1-11절-

-2 Cô-Rinh-Tô 2 : 1-11

 

 

- 들어가는 말 -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눈물로 편지를 썼다. 나도 눈물로 편지를 써 본 기억이 난다.

나는 한국에서 부모님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어린이를 보았다. 그것은 '옳은 길로 돌아오기를 위해서'이다.

이유가 뭘까?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nhưng để anh em biết rằng tình yêu của tôi đối với anh em sâu đậm thế nào." -고린도후서 2장 4절-

 

그는 때로는 매우 여린 마음으로, 또는 순수한 마음으로 성도들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고린도교회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매섭게 책망을 했다. 그것을 방치할 수가 없었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Anh em muốn điều gì? Muốn tôi cầm roi đến với anh em, hay đến với tình yêu thương và tinh thần dịu dàng?" -고린도전서 4장 21절-

현대인의 성경에는 "여러분은 어느 것을 더 원하십니까? 내가 매를 가지고 가는 것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사랑과 부드러운 마음으로 가는 것을 원하십니까?"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자녀에게 야단을 친 부모의 심정과도 같았다. 애정이 많은 부모는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너무 심하게 야단을 했나! 너무 상처를 받아서 오히려 잘못되지나 않을까!"

그러나 시간이 흐른 다음에 바울 사도 역시 깊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았다.

바울의 근심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Vì sự đau buồn theo ý Đức Chúa Trời sinh ra sự ăn năn để được cứu rỗi; điều nầy không có gì phải hối tiếc; nhưng sự đau buồn theo thế gian thì dẫn đến sự chết." -고린도후서 7장 10절-

바울은 지난날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책망 Quở trách nhà thờ Cô-rinh-tô'이 오히려 교회가 더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더 성도다워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책망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근심하게 되었을지라도 오히려 '회개의 열매'를 맺게 되어 교회가 바르게 서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복음에는 반드시 회개가 포함이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지만, 알고 보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시고 또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케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관계 회복은 회개로부터 시작된다.

오늘은 복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3가지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들 사이에 무엇이 필요한가?

 

 

1. 회개

 

왜 회개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죄'가 있으니까 회개가 필요하다. 죄가 없었으면 '회개'라는 어휘도 없었을 것이다.

죄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Vì Ngài là sự bình an của chúng ta, Ngài đã kết hợp cả hai nhóm thành một, phá đổ bức tường ngăn cách vốn gây thù địch." -에베소서 2장 14절-

우리의 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다.

우리가 우리 죄 때문에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다. 단 하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회개하라! Hãy ăn năn!"이다. '회개란 죄의 길에서 돌아서는 것 Ăn năn là quay khỏi con đường tội lỗi.'이다.

이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렵게 느끼는 것은 마귀의 방해 때문이다.

1) 죄의 미련 때문이다.

2) 자신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3) 두려움 때문이다.

 

마귀는 이런 방식의 회개를 방해하는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로 가야 한다.

1) 복음을 들어야 한다.

2) 진리의 확신에 거해야 한다.

3) 십자가를 바라봐야 한다.

십자가 앞에 서게 되면 나의 죄가 슬퍼지고 그 죄를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또한 죄에서 돌아설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생긴다. 인위적으로는 안 된다.

 

죄에 대한 인식이 없이 죄를 회개할 수 없다.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죄는 더러운 것이고 나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병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기 때문에 "오! 나는 망하게 되었구나! Ôi, tôi bị hủy hoại!" 하며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죄를 떨쳐버리기 위해서 울부짖는 몸부림이 따르기도 한다. 그리고 결단이 필요하다. 이런 화개의 과정 속에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

어쩔 수 없는 나여도 괜찮다. 예수께로 나오면 된다.

 

 

2. 용서

 

예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친히 용서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또 가르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쉽지 않은 것이 용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것에 대한 큰 빚을 졌다. 따라서 '우리 형제끼리의 죄를 용서하는 것'을 꼭 실천해야 한다.

주기도문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자를 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Xin tha tội cho chúng con,Như chúng con đã tha những kẻ có lỗi với chúng con;"라고 고백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바라기 전에 "나게에 잘못한 형제나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의미이다.

"고린도 교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Thưa anh em tại Cô-rinh-tô, chúng tôi thật lòng nói với anh em lòng chúng tôi rộng mở.

Chúng tôi không hẹp hòi đối với anh em, nhưng chính lòng anh em hẹp hòi.

Hãy đối xử với chúng tôi như chúng tôi đối xử với anh em — tôi nói với anh em như nói với con cái mình — anh em cũng hãy mở rộng lòng mình!" -고린도후서 6장 11-13절-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느끼는 것이 있다. 높은 곳에서 저 멀리 우리 마을이 보인다. 이때에 "내가 저~ 아래 작은 마을에서 옥신각신(콩 나오라 팥 나와라)하면서 속 좁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인간이 좁아지는 것은 '자기 뇌 bộ não của bạn' 또는 '자기 마음 tâm trí của bạn'에서 좁아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늘 '자기 안에 있는 감옥'에 갇혀 살기 쉽다.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속 좁은 사람으로 살면 안 된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마음을 닫아버리면 안 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주고 또한 치켜세워 줄 필요도 있다.

조금 잘못한다고 해서 너무 소극적으로 대해서도 안 된다.

솔직히 예수 믿으면 '더 너그러운 사람 người hào phóng hơn'이 되어야 한다.

"너희 모든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Đừng lo lắng gì cả, nhưng trong mọi sự hãy dùng lời cầu nguyện, nài xin cùng sự tạ ơn mà trình dâng những nhu cầu của mình cho Đức Chúa Trời." -빌립보서 4장 6절- 

예수 믿으면서 '속 좁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내가 예수를 몰랐더라면 저보다 더했을 거야!"

 

바울은 "그런즉 너희는 그를 차라리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Nhưng bây giờ, anh em nên tha thứ và an ủi người ấy thì hơn, để người ấy không bị chìm ngập trong sự đau buồn quá mức." -고린도후서 2장 7절-

그렇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극으로 치닫게 하면 안 된다.

"용서하고 잊어버리자! Hãy tha thứ và quên đi!"

용서가 쉬운 것이 아니다. 말은 쉽지만 "돌아서면 다시 미워보이는 걸 어떡해요?"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다. 영어 어휘의 '용서와 잊음(Forgive and Forget)'을 분석해 보면 아주 의미가 있다.

용서도 나의 의지로만은 안 된다. 큰 상처를 받았는데 쉽게 용서가 되겠는가?

그러니까 이 문제를 복음적으로 풀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8장에서 500 데나리온 빚진 자와 1만 달란트 빚진 자 얘기를 볼 수 있다.

우리는 다 1만 달란트를 빚진 자와 같다.

그 1만 달란트라는 돈은 우리가 1000번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갚기가 어려운 큰돈이다. 이 빚을 하나님께 지고 산다.

이것이 십자가의 은혜이다. 

그런데 형제끼리 빚진 것은 겨우 오백 데나리온, 즉 1년, 2년이면 다 갚을 수 있는 액수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1만 달란트 빚진 것을 예수께로부터 탕감을 받았다.

그렇다면 형제들이 나에게 빚진 것이 있다고 "저 놈은 나쁜 놈이야!"라고 하며 살 것인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예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찌해서 형제를 용서할 수 없으랴!!!

 

 

3. 화목

 

용서 다음에 따라오는 것은 화목이다. 그렇다. 용서했는지만 화목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보면 모순이다.

용서했으면 '원상복구'된 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예전처럼 다시 소통하고 아껴주고 사랑해야 한다.

아니 저 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십자가의 능력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그렇게 하셨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Vì Ngài là sự bình an của chúng ta, Ngài đã kết hợp cả hai nhóm thành một, phá đổ bức tường ngăn cách vốn gây thù địch" -에베소서 2장 14절-

우리는 십자가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 됨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더 사람 하는 관계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화목이다.

우리는 늘 그 구원의 은총을 노래해야 한다.

오늘 성경을 눈여겨 보면 "그리스도 말미암아...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의 관심으로 바뀔 때 '월드 비전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Chúng tôi nhân danh Đấng Christ nài xin anh em hãy làm hòa với Đức Chúa Trời." -고린도후서 5장 20절-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찬송 508장-

우리의 전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케 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이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볼 줄 안다면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Peace Maker(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Phước cho những người hòa giải,Vì sẽ được gọi là con Đức Chúa Trời!" -마태복음 5장 9절-

이 사실은 확인시켜 주는 내용이 바로 고린도후서에 나온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Ấy là, trong Đấng Christ, Đức Chúa Trời đã cho thế gian được hòa giải với Ngài, không kể tội lỗi cho loài người, và ủy thác cho chúng tôi sứ điệp hòa giải." -고린도후서 5장 19절-

그렇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곧 '화목하게 하는 직분 công việc hòa giải'을 수행하는 아름다운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더없이 기쁜 일이며 사명이다.

 

 

 

- 나가는 말 -

 

우리는 고린도 교회가 처한 상황을 보면 교회가 상처를 입고 힘들어할 때 어떻게 했는가를 보았다.

싸우고 원수 맺고 갈라서고 평생 안 보고 이렇게 하는 것이 중요한가?

하늘나라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 왜 그렇게 속이 좁은가!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용서해야 할 대상이 누군가를 생각해 보자. 과감히 용서하라.

1만 달란트 빚진 자였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살자.

그리고 화목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할 수만 있으면 너희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Nếu có thể được, hãy hết sức sống hòa thuận với mọi người." -로마서 12장 1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Đừng mắc nợ ai điều gì, ngoại trừ món nợ yêu thương nhau; vì ai yêu người lân cận mình là đã làm trọn luật pháp." -로마서 13장 8절-

 

이 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봐야 한다. 나에게 진짜 믿음이 있는가?

예수를 참되게 믿는 믿음은 진정한 회개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용서할 줄 안다. 용서를 넘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려고 힘쓸 것이다.

"너희는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 Hãy thử tra xét chính mình để xem anh em còn ở trong đức tin chăng! Hãy tự kiểm chứng mình đi. Anh em không nhận biết rằng Đức Chúa Jêsus Christ đang ở trong anh em sao? Trừ phi anh em không đạt tiêu chuẩn.

 

바울 사도의 눈물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편지를 쓰는 건 순간이었지만 고린도 교회를 향한 애정은 끝이 없었고 또한 교회의 영적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의 눈물의 기도를 꼭 들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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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rwQhzdBFSo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

https://www.youtube.com/watch?v=ILTPanOBHSI 

 

https://www.youtube.com/watch?v=i-INgIPS7cc 

 

https://www.youtube.com/watch?v=WS8dXRHFZso 

 

https://www.youtube.com/watch?v=KSk3RZTfaDM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https://www.youtube.com/watch?v=cN8yD_f8hts 

 

2 Cô-Rinh-Tô 2 :

1. Vậy, tôi quyết định không trở lại thăm để làm anh em đau buồn.

2. Vì nếu tôi làm cho anh em đau buồn, thì ai là người làm cho tôi vui, nếu không phải là những người tôi đã làm đau buồn?

3. Tôi đã viết cho anh em như thế, để khi đến thăm, tôi sẽ không đau buồn bởi chính những người đáng ra phải làm cho tôi vui. Vì tôi tin tưởng rằng tất cả anh em đều lấy niềm vui của tôi làm niềm vui của anh em.

4. Khi viết cho anh em, lòng tôi đau đớn, quặn thắt và nước mắt dầm dề; nào có phải để làm cho anh em đau buồn, nhưng để anh em biết rằng tình yêu của tôi đối với anh em sâu đậm thế nào.

Tha thứ người lầm lỗi

5. Nếu người nào làm cho đau buồn, người ấy không chỉ làm đau buồn cho tôi, mà trong một giới hạn nào đó — không quá lời đâu — đã làm đau buồn cho tất cả anh em.

6. Người ấy đã bị đa số anh em trách phạt như vậy là đủ rồi.

7. Nhưng bây giờ, anh em nên tha thứ và an ủi người ấy thì hơn, để người ấy không bị chìm ngập trong sự đau buồn quá mức.

8. Vậy, tôi nài xin anh em hãy tỏ lòng yêu thương đối với người ấy.

9. Sở dĩ tôi viết cho anh em, là để thử xem anh em có vâng lời trong mọi việc không.

10. Nhưng anh em tha thứ cho ai thì tôi cũng tha thứ. Còn nếu tôi tha thứ điều gì thì cũng vì anh em mà tha thứ ở trước mặt Đấng Christ,

11. để Sa-tan không lợi dụng chúng ta được, vì chúng ta không lạ gì các mưu đồ của n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