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고상한 가치 Noble Value

좁은길을 걸으며 2021. 8. 14. 14:20

고상한 가치 giá trị cao quý

- 빌립보서 3장 1-16절 -

 

- 들어가는 말 -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가치의 문제이다.

당신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가?

나는 나대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땅의 보화 Kho báu của Trái đất '가 아니라 '하늘의 보화 Kho báu của Thiên đường'이다

그래서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생각하는 생각이 다르다. 그 추구하는 것 역시 다르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하늘의 보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추구하며 사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하늘의 보화입니다.'라고 하겠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 보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땅에 보화'를 찾기 위해서 허덕이며 온종일 거기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살고 있지 않는지!

오늘 성경에서는 우리 크리스천의 고상한 가치를 바르게 인식시켜주고 있다.

우리의 가치가 외모로 드러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며 또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재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으나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날 바울은 이런 고상한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그것만을 좇아갔다.

여러분도 이것을 모르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추구하다가 그만 헛되이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 여러분에게 이 고상한 가치를 발견하게 해 주셨다.

바로 '복음을 통해서' 이것을 발견하게 하셨다. 바로 십자가의 복음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 가치 역시 불에 타고 말 것이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들려주는 이 복음의 메시지를 심사숙고하면서 묵상해 보자.

 

1. 예수를 몰랐었기에 - 과거

2. 예수를 만났기에 - 현재

3. 예수께 잡혔기에 - 현재~영원(미래)

 

 

1. 예수를 몰랐었기에 - 과거

 

예수를 모르면 잘못된 가치를 추구하며 그것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평생 좇아간다.

불행이 따로 없다. 그렇게 살면 불행한 인생으로 끝이 난다.

그러기에 우리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알려줘야 할 이유가 있다.

 

바울(사울) 또한 과거에 말못된 가치를 추구했었다.

바울은 무슨 일에나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대단한 신분, 지위 그리고 학문을 겸한 유능한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율법에도 해박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실을 오늘 본문 5, 6절에서 언급하고 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립보서 3장 5,6절-

5 - Tôi được cắt bì ngày thứ tám, thuộc dòng dõi Y-sơ-ra-ên, bộ tộc Bên-gia-min, là người Hê-bơ-rơ, con của người Hê-bơ-rơ; về luật pháp, tôi là một người Pha-ri-si;[note]Xem chú thích

6 - về lòng sốt sắng, tôi là kẻ bắt bớ Hội Thánh; về sự công chính theo luật pháp thì tôi không chỗ trách được.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난 후로 깨달았다.

지난 날 그가 추구했던 가치의 것들이 '육체의 신뢰(몸뚱이 자랑) Put confidence in the flesh ; đặt niềm tin vào xác thịt '에 불과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세상적 가치에 매여 평생 율법주의자로 살아갈뻔 했다.

 

예수를 몰랐을 때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다. 자기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적 가치관으로 잘 무장된 사람이었다. 즉 흠 잡을 데가 없는 사람 người hoàn mỹ이었다.

바울에 비하면 우리들은 허물투성이 người đàn ông bẩn thỉu và xấu xí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는 완전 실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삶이었다.

지금 세상에서 잘났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나름대로 성경을 잘 아는 것처럼 떠드는 사람도 있다.

바울은 매우 해박했다. 구약 성경을 달달달 통째로 외물만큼 해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꼭 알아야 할 핵심을 비켜갔다. 오직 '율법주의 신앙 niềm tin vào chủ nghĩa pháp lý'에 얽히고 말았다. 이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기는 알되 잘못 안 것이다.

율법주의의 시각으로 봤을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 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런 자들을 처치해 버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예수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녔다.

그래서 스데반집사 Chấp Sự Ê-tiên를 죽이는 일에도 가담했다. 알고보면 살인자나 다름 없다.

바울은 훗날 "내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Tôi đã làm điều đó bởi vì tôi không biết." 그리고 하는 말이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Trong những tội nhân đó, ta là người đứng đầu."라고 자백했다.

바로 이게 멋이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속된 말로 '개멋'에 불과하다.

개에게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주고 예쁜 방울을 달아줘도 그것은 개멋에 불과하다.

 

아무리 잘 나고 똑똑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바른 진리, 즉 복음을 모르면 그렇게 되고 만다.

우리 역시도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세상은 거짓과 위선으로 얼룩져 있다. 아니 뒤범벅이 되어 있다. 그 속에서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악과 위선과 거짓에 젖어 살아가면서도 자기가 의인이나 되는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어러석은 자들은 그런 말에 쉽게 동요되고 빠져든다.

이렇게 된다면 '쭉정이 인생', 즉 '빈껍데기 인생'에 불과하다. 

예수를 모르면 잘못된 열심에 빠지기도 하고 또 분별력을 갖지 못해서 세상적인 가치에 몰두하게 된다.

바울의 과거처럼 껍데기 자랑하지 말고 또 헛된 가치에 빠져서 헛된 열심에 몰두하지 말자.

우리는 이미 이런 것에서 벗어나서 '알맹이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2. 예수를 만났기에 - 현재

 

바울이 헛된 열심에 빠져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잡아다가 가두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났다.

안 그랬으면 그는 큰 일 날 뻔했다.

 

여러분도 예를 못났더라면 큰 일일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런 말 하면 아직도 실감이 안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예수님을 만나면 내가 하는 말이 깨달아질 것이다.

지금은 몰라도 훗날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예수를 만나면 모든 것이 변한다. 삶 전체, 즉 인생 자체가 바뀐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이다.

여러분이 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바꾸어주신다. 이것을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 찬송가 421장 1절을 불러보자.

"내 죄 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Ev'rything is changed since my sins were for-gi-ven,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Ev'rything is changed since I knew the Lord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 길이요 Now my feet are walking the path-way to heav-en
 주의 피로 내 죄를 씻었네 All the guilt-y past now is under the blood.
 나의 모든 것 변하고 Ev'rything is changed, praise the Lord!
 그 피로 구속받았네 Now I am re-deemed thro'the blood
 하나님은 나의 구원되시오니 Free from condemna-tion, God is my Sal-va-tion,
 내게 정죄함 없겠네 Ev'rything is changed, praise the Lord!

 

예수를 만났던 바울은 실토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립보서 3장 7-9절-

과거에 유익하다고 여겼던 그 가치의 것들을 ① 해로 여기다  ② 잃어버리다  ③ 배설물로 여기다

'~으로 여기다 consider it~'는 말은 '~으로 취급하다 treat as~, ~coi như'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세상 것, 즉 가문, 학벌, 지위, 재산, 권력, 외모, 율법적인 의 등이 좋아 보였고 가치 있는 것들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해로운 인생'에 빠지게 하는 요소라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이런 것들로 인해서 더 무서운 죄에 빠진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배설물로 여긴다. consider it shit"라고 얘기했다.

예수 없이 살면 그렇게 된다. 예수 없이 도덕군자를 찾던 그 사람들, 양반이라고 자처하던 자들이 다 그렇게 살다가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러니까 예수를 모르면 배설물을 가지고 살던지, 배설물 통에서 목욕을 하고 사는 것과도 같다.

이 땅에서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태도가 마치 이와 같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로새서 1장 26절-

26 - tức là sự mầu nhiệm đã được giấu kín trải qua các thời đại và các thế hệ, nhưng bây giờ được giãi bày cho các thánh đồ của Ngài.

 

 

3. 예수께 붙잡혔기에 - 현재~영원(미래)

 

우리는 예수를 만난 것으로 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께 붙잡혀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예수를 만나서 지난날의 헛된 가치관에서 벗어났다. "잘 됐다! 정말 잘 됐다! Oh,

bravo"하고 박수를 찬송해야 한다.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거기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다면 이건 정말 우스운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 되고 만다.

이제 옛날처럼 살라고 해도 "그럴 수 없습니다!" 하고 외쳐야 한다.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What was once good is no longer valuable. Những gì đã từng là tốt thì không còn giá trị nữa." - 세 번 크게 외쳐보자.

이제 우리는 예수께 붙잡혔다. 다시는 빠져나갈 수가 없다. 내가 물고기를 잘 잡았다. 내가 물고기를 잡을 때 목부분을 순간적으로 꽉 죈다. 그러면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우리는 예수의 손에 붙들렸다. "나는 예수께 붙잡혔다. Tôi đã bị bắt bởi Chúa Giêsu một cách vui vẻ."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마귀가 우리를 해하지 못한다.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예수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은혜에 붙들려 있으니까 더 안전하고 행복한 것이다.

우리는 미완성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순간 완전해진다. 그 이전에는 우리는 계속 예수의 손을 놓지 말고 예수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

"내가 다 이루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장 12절-

12 - Ấy không phải là tôi đã đoạt giải, hoặc đã trở nên toàn hảo rồi đâu, nhưng tôi đang theo đuổi để đoạt cho được, vì chính tôi đã được Đấng Christ đoạt lấy rồi.

 

이제 우리는 앞만 보고 가면 된다. 이것저것 다 계산하고 또 과거의 좋지 않았던 기억을 되살려내고 미리부터 걱정을 앞세우고 살면 안 된다.

그것은 그것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다.

"똑바로 걷고 싶어요, 주님! Lạy Chúa, con muốn đi thẳng!" 하며 앞만 보고 가야 한다.

 

우리의 가치는 그저 그냥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가치의 것 이상으로 매우 소중한 '영원한 가치'이다.

Chúa Giêsu và sự Phục sinh. đau khổ + thập giá. Giải thưởng trên trời = Giá trị của chúng ta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 천 번 만 번 아니라 밤낮으로 그분께 마음을 두어야 한다. 1장 20,21절을 읽어보라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장 20,21절-

20 - Điều tôi mong mỏi và hi vọng là sẽ không bị hổ thẹn về điều gì cả, nhưng thừa lòng can đảm, để bây giờ cũng như trong mọi lúc, dù sống hay chết, thì Đấng Christ vẫn được tôn vinh trong đời sống[note]Nt: thân thể.[/note] tôi. 21 - Vì đối với tôi, sống là Đấng Christ, còn chết là ích lợi.

② 부활 - 바울은 이 세상에 한정된 삶에 모든 가치를 걸지 않았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았다.

③ 고난 - 예수 십자가를 생각하며 살았다. 이 세상에서 편하게 살자고 예수 믿는 것이 아니다. 고난과 박해를 받을지라도 예수를 본받고 살면서 그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④ 하늘의 상 - 이 땅에서의 금메달이 아니라, 하늘의 금메달, 즉 하늘의 금 면류관을 받아 쓸 날이 온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장 14절-

14- tôi nhắm mục đích mà theo đuổi để đoạt giải về sự kêu gọi trên cao của Đức Chúa Trời trong Đấng Christ Jêsus.

 

바로 예수와 이것에 관심을 두는 자가 가장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오늘 세상 종말이 온다 해도 문제가 없다.

코로나가 창궐하고 세상에 질병이 가득 찼어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호찌민시에서는 하루에도 300 명 이상이 코로나로 매일 죽고 있다. 마음이 아프고 슬프기도 하다.

그런데 방금 이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도 찌(Chi)라는 딸에게서 메시자가 왔다. 그대로 올리겠다.

"I will usually go to church I will read to the KINH THANH so much, I will believe for Jesus so much." -찌의 글-

(나는 항상 교회에 가고 성경을 많이 읽을 것이며 열심을 다해 예수를 믿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 정말 맘이 기쁘고 행복해진다.

예수께 불 들려 살자. 이제는 내 맘대로 사는 게 아니라, 늘 예수께 붙들려서 예수님과 손잡고 가야 한다.

'하늘의 보화'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그렇다.

 

세상은 지금도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것들로 우리를 매혹해서 넘어뜨리려고 미끼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배설물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필수품 외에는 관심을 갖지 말자.

우리의 관심은 이웃 사랑에 있고 하늘나라에 있다.

 

 

- 나가는 말 -

 

 

우리는 정말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한다.

크리스천으로서 그렇게 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장 19-21절-

19 - “Các con đừng tích trữ của cải ở dưới đất, là nơi có mối mọt, ten rỉ làm hư, và kẻ trộm đào ngạch, khoét vách mà lấy.

20 - Nhưng hãy tích trữ của cải ở trên trời, là nơi không có mối mọt, ten rỉ làm hư, cũng chẳng có kẻ trộm đào ngạch, khoét vách mà lấy.

21 - Vì của cải các con ở đâu, thì lòng các con cũng ở đó.”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삶이 무엇일까?

잘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이것을 단지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것만으로 결정지으면 안 된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한 사업에 힘쓰며 살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구체적인 것은 가자의 몫이다.

우리 인생을 무엇을 위해,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 기도하면서 골똘히 생각해 봐야 한다. 나도 더 깊이 기도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 돈, 재능을 어디에,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가치 추구가 잘못되면 정말 어리석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올바른 가치를 배워야 한다.

그 가치를 발견하여 내 것으로 삼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고상한 가치관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예수의 손에 붙들려서 예수께서 들려주신 얘기처럼 '선한 사마리아 사람 Samaritan tốt'(누가복음 10장 25-37절)처럼 살아가야 한다.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가치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전도와 선교로 이어져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만도 못한 가치를 가지고 코로나 방역이나 방해 놓고 그런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오히려 더 잘 협조하고 자원봉사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왜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만나서 예수의 손을 붙잡고 하늘나라까지 승리하며 힘차게 걸어가는 천국시민으로서의 고상한 가치를 누리기를 기도한다.

 

 

Phi-líp-phê 3 : 1-16

1 - Cuối cùng, thưa anh em của tôi, hãy vui mừng trong Chúa! Tôi không ngại mà nhắc lại những điều nầy với anh em, vì đó là sự an toàn cho anh em.

2 - Hãy coi chừng loài chó, hãy coi chừng những kẻ làm công gian ác, hãy coi chừng những kẻ chịu cắt bì giả![note]Nt: cắt da thịt.[/note]

3 - Vì chúng ta là những người được cắt bì thật, những người phục vụ Đức Chúa Trời bởi Thánh Linh, hãnh diện trong Đấng Christ Jêsus, và không để lòng tin cậy vào xác thịt.

4 - Dù bản thân tôi có lý do để tin cậy xác thịt. Nếu có ai nghĩ rằng mình có lý do để tin cậy vào xác thịt thì tôi lại càng có lý do hơn:

5 - Tôi được cắt bì ngày thứ tám, thuộc dòng dõi Y-sơ-ra-ên, bộ tộc Bên-gia-min, là người Hê-bơ-rơ, con của người Hê-bơ-rơ; về luật pháp, tôi là một người Pha-ri-si;[note]Xem chú thích ở Mat 3:7.[/note][note]Rô 11:1; Công 23:6; Công 26:5[/note]

6 - về lòng sốt sắng, tôi là kẻ bắt bớ Hội Thánh; về sự công chính theo luật pháp thì tôi không chỗ trách được.[note]Công 8:3; Công 22:4; 26:9-11[/note]

7 - Nhưng vì cớ Đấng Christ, tôi xem những lợi lộc mình có như là lỗ.

8 - Hơn thế, tôi cũng xem tất cả mọi sự như là lỗ, vì sự nhận biết Đấng Christ Jêsus, Chúa tôi, là quý hơn hết. Vì Ngài, tôi đành chịu lỗ tất cả, và xem những điều đó như rác rưởi, để được Đấng Christ,

9 - và được ở trong Ngài. Được vậy không phải nhờ sự công chính của tôi dựa trên luật pháp mà nhờ đức tin nơi Đấng Christ, là sự công chính đến từ Đức Chúa Trời dựa trên đức tin,

10 - để tôi được biết Ngài, quyền năng phục sinh của Ngài, được chia sẻ sự thương khó của Ngài, và trở nên giống như Ngài trong sự chết của Ngài;

11 - hi vọng rằng tôi có thể đạt được sự sống lại từ cõi chết.

12 - Ấy không phải là tôi đã đoạt giải, hoặc đã trở nên toàn hảo rồi đâu, nhưng tôi đang theo đuổi để đoạt cho được, vì chính tôi đã được Đấng Christ đoạt lấy rồi.

13 - Thưa anh em, tôi không nghĩ rằng mình đã đoạt được rồi;

14 - nhưng tôi cứ làm một điều: quên đi những gì ở đằng sau, vươn tới những gì ở đằng trước, tôi nhắm mục đích mà theo đuổi để đoạt giải về sự kêu gọi trên cao của Đức Chúa Trời trong Đấng Christ Jêsus.

15 - Vậy, tất cả những người trưởng thành phải có ý nghĩ nầy, còn nếu anh em nghĩ điều gì khác thì Đức Chúa Trời cũng sẽ bày tỏ cho anh em.

16 - Tuy nhiên, chúng ta đạt đến mức độ nào thì cứ bước đi như vậy.

 

 

 

 

https://www.youtube.com/watch?v=8Ibns8VU1sE 

 

https://www.youtube.com/watch?v=CC_PApJ1oOw 

 

 

https://www.youtube.com/watch?v=KSk3RZTfaDM 

 

https://www.youtube.com/watch?v=s6OCDNdJHyU 

 

https://www.youtube.com/watch?v=8lviYI_RuzI 

 

https://www.youtube.com/watch?v=jvXPaCZxd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