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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을 주신 이유 Why was the Ten Commandments given?

좁은길을 걸으며 2021. 8. 21. 18:25

십계명을 주신 이유 Tại sao Mười Điều Răn được đưa ra?

신명기 5장 1-21절

Phục truyền luật lệ ký 5:1-21

 

모세는 두 돌판(십계명)을 받으려고 시내산에 올랐다

- 들어가는 말 -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10 계명을 주셔야 했는가?

이 법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법이었다.

사실 가나안에 사는 원주민 일곱 족속은 이것을 어기고 '큰 죄악에 빠진 삶'을 연속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땅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셨다.

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 때 "너희는 꼭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주신 법이 곧 십계명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해서 벌을 주려고 이런 법을 만들어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마치 부모 자식 관계 이상으로 우리와 친하게 지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안전하게, 안정되게, 평화롭게, 조화 있게, 질서 있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십계명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행할 길'을 제시하는 이정표cột mốc와 같은 것이다.

"이런 십계명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더 자유롭고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없으면 인류는 무질서와 혼란을 낳고 결국 스스로 멸망하게 된다.

그러니까 십계명은 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주신 '인류 지고한 법Luật tối cao của nhân loại'이다.

인류가 범죄 한 이후로 에덴동산에 쫓겨난 하나님을 멀리하고 말았다. 하나님을 멀리한 결과는 우상숭배와 부모 거역 그리고 온갖 탐욕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이것 때문에 노아 홍수가 있었고, 소돔 고모라의 멸망이 있었다. 또한 가나안 일곱 족속 역시 무서운 범죄 속에서 스스로 멸망 당할 일을 자초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으면 그에 따른 응징으로써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인간들이 하는 짓을 보라.

하나님의 십계명을 어기는 것은 물론 이제는 환경오염을 통해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까지 다 망가뜨리다가 이제는 코로나(COVID 19)를 맞았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더 자유롭게, 더 편하게, 더 잘 먹고 잘 살고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가져다준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어디가 옳은 길인지를 알았다. 알았다면 옛날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용기를 내서 돌아서야 한다.

한 마디로 넓은 길=지옥행, 좁은 길=천국행이다.

 

 

1.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표준일 수 없다.

하나님이 표준이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 표준이다.

계명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생의 거울과도 같다. 우리는 이 계명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내가 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확인 해 봐야 한다.

"내가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편 11절-

 

우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바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와야 한다. 

마음껏 넓은 길에서 행하다가 예수를 믿으려면 장애물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끊어야 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그 길에서 나와야 산다. 

"악인은 그 , 불의한 자는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장 7절-

 

바로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회복된다. 끊겼던 전깃줄을 이으면 다시 전기가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가 회복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내 영혼에 밝은 빛이 환하게 비치게 된다.

바로 이때부터 얼마든지 길 잃지 않고 바른 길로 계속 걸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 관계의 회복은 단순한 회복 정도가 아니다. 집나간 자식이 돌아왔을 때 큰 잔치를 했던 아버지를 생각해 보라. 

이것은 '사랑의 회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집나간 자식이 되어 방황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품이 최고이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고 영원히 행복하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라고 주신 것이 계명이다.

 

우주를 만드시고 또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믿는다고 생각해 보라.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싫어하신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나무나, 돌, 쇠붙이를 통해서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에게 복을 달라고 빈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가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을 보면 이것에 대해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7 - Ngoài Ta, con không được thờ phượng thần nào khác.

8 - Con không được làm cho mình một hình tượng nào theo hình dạng của những vật trên trời cao kia, hoặc nơi đất thấp nầy, hoặc trong nước sâu.

9 - Con không được quỳ lạy trước các hình tượng đó hay phụng thờ chúng, vì Ta là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ủa con, là Đức Chúa Trời kỵ tà. Đối với những kẻ ghét Ta, Ta sẽ vì tội đó của tổ tiên mà trừng phạt con cháu họ đến ba bốn thế hệ.

10 - Nhưng Ta sẽ làm ơn đến hàng nghìn thế hệ cho những người yêu mến Ta và vâng giữ các điều răn Ta.

예수 믿으면서도 부처상 앞에 절을 하거나 그것에 유혹을 느낀다면 그것은 바보짓일 뿐만 아니라 큰 죄악이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해 왔던 것은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렇게 살았다.

이런 것을 통해서라도 위안을 받으려는 인간의 타락한 마음 본성에는 '종교성'이라는 게 있어서 찾아갔지만 기껏 만나게 된 것이 마귀의 장난에 빠지게 되고 말았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름에 먹칠을 하면 안 된다.

세 번째 계명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당하게 하고 사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방역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그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 늘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살라고 주신 날이 있다.

바로 안식일이다.

네 번째 계명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한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기 위해서 이날에 예배를 드린다. 우리는 이 날에 '성회, 즉 거룩한 모임'의 날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일을 멈추고 쉬면서 영혼의 재충전을 하는 날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가 이 날에 다른 영혼들을 돌아보고 챙겨주는 날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은 자상하신 아버지이시다. 막무가네 믿어라. 무작정 안식일을 지키라가 아니다.

"내가 만들었다." "내가 만든 후에 마지막에 쉬었다.: 이런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이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요한복음 14반 23절-

 

 

2.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면 역시 이웃과의 바른 관계에 놓이게 된다.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언제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해야 한다.

그분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수직축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다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인간관계는 하나의 수평적인 관계이다.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질서를 위해서 필요한 관계의 질서를 만드셨지.

따라서 다섯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이 계명들 역시 그 중심은 "지키라" 이전에 "사랑하라"이다.

- 네 부모를 공경하라/ - Hãy hiếu kính cha mẹ bạn

- 살인하지 말라/ - đừng giết

- 간음하지 말라/ - không ngoại tình

- 도둑질하지 말라/ - đừng ăn cắp

-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 Không làm chứng dối chống lại người hàng xóm của bạn.

- 탐내지 말라/ - không thèm muốn

 

우리는 이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세상은 이렇게 복잡하고 무질서한 것들이 많은가?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따를 때 세상은 아름다운 질서가 있고 평화롭게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살아가도록 하라고 주신 법을 인간들은 어기고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부모의 것도 빼앗고 거짓으로 꾸미고 심지어는 죽이고 강탈하고 또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하고 위증까지 하지 않은가!

 모든 것을 탐심에서부터 비롯된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장 14,15절-

 

우리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법에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도 개인도 흥왕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른을 공경하는 일부터 바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남의 것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남의 것을 자기의 만들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우리는 부지런하게 살아가면서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가야 한다.

이런 면에서 사도 요한은 늘 형제 사랑, 이웃 사랑을 강조했다.

"누가 이 세상 재물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 보고도 도와줄 마음 막으면 하나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일서 3장 17,18절-

 

 

3. 십계명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위의 두 가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일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다. 우리 인간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받을 인간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인간에 충분한 조건을 주셨을지라도 "나는 완벽합니다. 또는 나는 온전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오, 나는 망했다! 나는 할 수 없다!" 저절로 탄식이 나올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느니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이 문제를 십자가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따라서 십자가 역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서 비롯된다.

바울도 율법 앞에 자신을 비쳐봤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로마서 7장 24절-

그러나 그러고만 있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완전히 절망이다.

그러나 이때 고개를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저 골고다 언덕 위의 예수 그리스도가 보였다.

맞다. 내 죄로 인해 그가 피흘리셨다.

그 순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로마서 7장 25절-

 

이것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책이 신약성경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이다.

모세 역시 십계명과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 자신마저도 그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누구라도 혹시 죄를 범하거든" 양이나, 염소나, 소나, 비둘기를 희생제물로 들려서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그리고 또 '화목 제물'을 들려야 했다.

그것은 구약에서부터 이미 우리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죄 대신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감사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바르게 사는 길을 주셨어도 늘 어긋난 길로 갔던 우리를 위해서 그때그때마다 찾아오셔서 "내 손 못 자국 만져라!"라고 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십계명에서 십계명이라는 율법 자체만 쳐다보고 겁을 낼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동시에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비록 어제까지 또 실수 있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 때문이다.

 

 

 

- 나가는 말 -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죄인이다. 

그렇다고 기죽어서 살아가라는 이야기 아니다. 한편으로 보면 우리는 우리는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율법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친히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로마서 8장 3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셨고 오늘날 성령께서 할 수 있게 해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늘 성령께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가를 원해야 한다.

 

냉랭한 가슴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다. 성령충만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주 쉬운 것이 되어버린다.

이웃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전에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이 용서가 되고 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며 동시에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넓은 가슴과 열린 가슴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게 살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 놓여있게 될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파워 크리스천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0I8ajlBu6Ls 

 

https://www.youtube.com/watch?v=AlCLF8l2OBM 

 

https://www.youtube.com/watch?v=Aiio4BOEjsg 

 

https://www.youtube.com/watch?v=LRpgXrk9pgE 

 

https://www.youtube.com/watch?v=O0VelKQ8sK8 

 

신명기 5장 1-21절

Phục truyền luật lệ ký 5:1-21

 

1 - Môi-se triệu tập toàn dân Y-sơ-ra-ên lại và nói: “Hỡi Y-sơ-ra-ên, hãy nghe những luật lệ và mệnh lệnh mà ngày nay tôi rao truyền vào tai anh em; anh em phải học tập và cẩn thận làm theo những điều đó.

2 -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húng ta đã lập giao ước với chúng ta tại núi Hô-rếp.

3 - Không phải Đức Giê-hô-va lập giao ước nầy với tổ phụ chúng ta mà với chúng ta, là tất cả những người hôm nay đang còn sống tại đây.

4 - Từ trong đám lửa trên núi, Đức Giê-hô-va đã phán mặt đối mặt với anh em.

5 - Lúc đó, tôi đứng giữa Đức Giê-hô-va và anh em để truyền đạt lời của Ngài cho anh em vì anh em thấy lửa và sợ, không đi lên núi. Ngài phán:

6 - ‘Ta là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ủa con, Đấng đã đem con ra khỏi đất Ai Cập là nhà nô lệ.

7 - Ngoài Ta, con không được thờ phượng thần nào khác.

8 - Con không được làm cho mình một hình tượng nào theo hình dạng của những vật trên trời cao kia, hoặc nơi đất thấp nầy, hoặc trong nước sâu.

9 - Con không được quỳ lạy trước các hình tượng đó hay phụng thờ chúng, vì Ta là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ủa con, là Đức Chúa Trời kỵ tà. Đối với những kẻ ghét Ta, Ta sẽ vì tội đó của tổ tiên mà trừng phạt con cháu họ đến ba bốn thế hệ.

10 - Nhưng Ta sẽ làm ơn đến hàng nghìn thế hệ cho những người yêu mến Ta và vâng giữ các điều răn Ta.

11 - Con không được lạm dụng danh của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ủa con, vì Đức Giê-hô-va sẽ không dung tha kẻ lạm dụng danh Ngài.

12 - Hãy giữ ngày nghỉ để làm nên ngày thánh như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ủa con đã truyền dạy.

13 - Con phải làm tất cả công việc mình trong sáu ngày,

14 - nhưng ngày thứ bảy là ngày nghỉ dành cho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ủa con. Trong ngày đó, con, con trai con gái, tôi trai tớ gái, bò lừa hay bất cứ súc vật nào của con, cả đến ngoại kiều ở trong thành của con đều không được làm việc, để cho tôi trai tớ gái của con cũng được nghỉ như con.

15 - Hãy nhớ rằng con đã làm nô lệ trong xứ Ai Cập, và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ủa con đã dang cánh tay đầy quyền năng đem con ra khỏi đó. Vì vậy,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ủa con đã truyền dạy con phải giữ ngày nghỉ.

16 - Hãy hiếu kính cha mẹ của con, như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đã truyền dạy, để con được sống lâu và hưởng phước trên đất mà Giê-hô-va Đức Chúa Trời của con ban cho con.

17 - Con không được giết người.

18 - Con không được phạm tội tà dâm.

19 - Con không được trộm cắp.

20 - Con không được làm chứng dối hại người lân cận mình.

21 - Con không được tham muốn vợ của người lân cận, cũng không được tham muốn nhà cửa, đồng ruộng, tôi trai tớ gái, bò, lừa hay bất cứ vật gì thuộc về người lân cận của 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