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대처 방법 Làm thế nào để giành được thơ
-야고보서 1장 1-8절-
- 들어가는 말 -
지난 주간 수업 시간에 우리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고생을 경험해 본 적이 있냐?"
대부분이 "없어요."라고 했다.
그런데 단 한 명만이 "고생해 봤어요."
그만큼 베트남 사회도 살기 좋아졌다는 말이 될 것이다. 지금 베트남의 청소년들은 과거의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서 상당히 잘 살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세대들은 큰 고생 안 하고 청년기를 맞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다. 특히 믿음의 길을 가는 건 더욱 그렇다.
"예수 믿으니까 아무런 시련이 없게 해 주실 거야!" 과연 그럴까!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시련을 겪을 수도 있다.
'시련 δοκίμιον'이란 '연단練鍛=재련하다'이란 말로 통하는 말이다. 순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하는 과정이 있다. 이것을 제련이라고 한다.
금광석을 캐내어 거기에 들어있는 온갖 불순금을 제거해야만 한다.
이때 아주 높은 열(약 2856°C)이 가해진다. 이 뜨거운 열처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연단'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신앙도 명품 신앙이 되려면 이러한 연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련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이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예수의 동생 야고보를 통해서 아주 중요한 지혜를 제공해 주셨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시련을 어떻게 견뎌? 하며 미리 사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만 따라서 하면 틀림없이 모든 시련을 거뜬히 감당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는 '시련 가운데서 만나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시련이 닥칠 때 당황하지 말고 다음과 원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1.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Hoàn toàn vui mừng
2.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Hoàn thiện sự kiên nhẫn của bạn
3.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Hãy cầu xin Đức Chúa Trời cho sự
khôn ngoan
4. 의심하지 말라
Đừng nghi ngờ
1.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Hoàn toàn vui mừng
시련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그것은 때로는 매우 위협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때로는 큰 재난과 슬픔을 동반하기도 한다.
사실은 구약의 욥이 그러한 시련을 당했다. 그러나 욥은 그것을 감당해 냈다.
욥이 엄청난 시련을 당했을 때, 그의 태도를 보게 된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장 21절-
욥은 시련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는 것은 금물이다.
성경은 오히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야고보서 1장 2절-
우리는 이 성경을 기록할 당시에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 -야고보서 1장 1절-. 즉 스데반 집사 순교 이후로 외국 땅으로 흩어져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고 있는 유대인 크리스천들에게 어떠한 시련이 있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그들은 외국에서 살면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가운데서 빼앗기고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대부분은 가난하게 살아가야 했다.
그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별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더욱더 많은 박해의 시련을 견뎌내야 했다.
예배 모임 자체가 쉽지 않은 시대 살면서도 그들은 복음의 씨앗이 되어 살았다.
그들에게 닥쳐오는 시련들은 불시험과 같은 것이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형편에 처한 성도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허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그는 이어서 그 이유를 이야기 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서 1장 3절-
사실 그렇다. 시련을 통해서 인내가 만들어진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을 보면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한다.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못 살겠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을 대충대충 살아간다. 쉽게 거짓말하고, 쉽게 표기하고, 요행이나 바라고, 심지어 갈취하고... 이렇게 사회의 해가 되는 생활을 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은 '인내의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 복권 당첨을 노리듯이 요행을 기다리는 인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우리에게 인내를 보여주신 삶을 사셨다. 그 교훈 속에도 인내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누가복음 8장 8절-
인내 없이는 믿음의 아름다운 결실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다.
그리고 친히 그 인내의 절정을 십자가로 보여주셨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2절-
모든 아름다운 일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 앞에 시련이 닥쳐오걸랑 겁부터 잔뜩 집어먹지 말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여유를 갖자.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이후에 무슨 일이 닥쳐올 것을 하셨지만 그는 여유를 가지고 감람산으로 향하시면서 찬송을 부르셨다.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마가복음 14장 26절-
십자가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어떤 시련이 와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2.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Hoàn thiện sự kiên nhẫn của bạn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우리를 간단하다.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자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나는 나는 다시 한번 인내를 깊이 열거하고자 한다.
흔히 말하는 "인내하라 Be patient"가 아니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Be perfect your patience"는 것이다.
"옳다고 인정하는 일에는 끝까지 밀고 나가라"는 의미, '완성 Complete'의 의미로서의 인내를 말하고 있다.
조금 참다가 "나는 못 해", "나는 포기할 거야!" 이러면 가시떨기 떨어진 씨앗처럼 자라다가 기원이 막혀 결실도 못 하고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를 듣고 기뻐하고 날뛰었다 하더라도 현실의 삶 속에서 그 말씀을 인내로 지킬 수 있는 자만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에서 맡은 직분 때문에 상 받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인내로써 충성한 결과로 상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하나를 기억하자.
우리가 어떤 시련이나 시험이 와도 이것을 인내를 가지고 온전히 감당하여 합격을 받는다면 '아름다운 신앙 인격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아름다운 신앙 인격자입니까?
쉽게 대답을 못할 것이다. 목사라고 해서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아브람은 합격했다. 아브라함도 때론 실수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가 결정적으로 합격을 받은 것은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바쳤을 때이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장 12절-
욥도 그러했다. 그가 남긴 고백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욥기 22장 10절-
욥은 실제로 이 말씀처럼 되었다.
그래서 그는 길이길이 역사에 남는 '인내의 사표'가 되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야고보서 5장 11절-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신앙 인격을 논하기 이전에 너무나 감사한 게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와 하나님 아버지의 인내이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후서 3장 15절-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앞에서 늘 겸손해져야 하고 나와 나의 인내를 내세워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일은 묵묵히 끝까지 예수를 따라가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신앙 인격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상이 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야고보서 1장 12절-
그렇다. 우리 인생 앞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이때 우리가 인내의 결과에 따라서 받을 보상이 있다.
그것은 생명의 면류관이다.
3.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Hãy cầu xin Duc Chúa Troi cho sự khôn ngoan
우리 앞에 시련이 닥쳤을 때 어떤 방식으로 인내를 해야 하는가!
그냥 "꾹꾹 눌러서 참자! 그러면 해결된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
이건 아니다. 이것은 인내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병들에게 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견뎌내기 힘든 시련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혼자서 속 알 이를 하다가 병이 나기도 하고 엉뚱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인격과 몸이 망그질러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이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세상은 이것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알았다.
바로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기도해야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장 5절-
우리가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 '지혜 부족'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의 하나님이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정말 당신은 이 사실을 믿는가? 나는 확실히 믿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이 체험을 수시로 하고 살기 때문이다.
아이큐가 뛰어나지 못하다. 그렇지만 기도할 때에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늘 발견하고 살아왔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예레미야 9장 23절-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가, 용맹이, 부가 하나님 앞에서 몇 푼어치나 된다고 자랑하겠는가!
그것마저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그것을 자랑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바보 멍청이에 불과하다.
이 세상의 천재가 아이큐 200 전후라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자는 아이큐 2000 이상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다윗이 이렇게 살았고 솔로몬이 이렇게 살았다.
그러니 만큼 우리는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힘입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결코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 시련 중에 있거나 큰 고민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식의 인생을 살지 말라.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을 만나라. 그러면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 가장 놀라운 지혜의 방법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구한다면 반드시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것을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열왕기상 3장 12절-
특히 나는 현대인들에게 아침 일찍 기도부터 시작하고 하루를 살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시간 아니면 따로 시간을 내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시편 90편 14절-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넘치도록 주실 것이다.
4, 의심하지 말라 Đừnừng nghi ngờ
우리 신앙생활의 적은 마귀이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더군다나 하나님 앞에 나갔어도 또 방해 공작을 펼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의심하라!"이다.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며 계속 마음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야고보는 기도할 때에 반드시 "믿고 구하라", 즉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6절-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때에 항상 그늘처럼 따다다니는 놈이 있다. 그자가 바로 마귀이다.
마귀가 얼마나 간사한지를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한다. 혀를 낼름낼름하며 이중인격을 조장한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이중인격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문제가 심각하다. 마귀는 이런 자들을 통해서 세상의 악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알았다. 마귀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를 꼭 잡아야 한다. 항상 의심을 불어넣는 놈은 마귀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믿지 못하게 하고 의심하게 한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께 책망을 받아야 한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에 책망을 받았다. 앞서 작은 배를 타고 가는데 저기 한 사람이 물 위로 걸어오고 있었다.
"유령이다!" 하며 다 놀랐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마태복음 14장 27절-
제자들은 쉽게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베드로가 냉큼 말했다.
"주여,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께서 "오라" 하셨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을 수가 있었다.
베드로가 예수만 바라보고 걸으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그는 바람을 보자마자 무서운 생각이 쏙 들어왔다.
그 순간 물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베드로는 소리르 질렀다.
이때 예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마태복음 14장 31절-
우리는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된다. 특히 기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실까!" 이런 마음을 품고 기도하면 안 된다. "믿고 기도하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한복음 13장 13, 14절-
하나님이 듣지 아니하시는 기도가 일반적으로 셋이 있다.
(1) 죄를 품고 기도하는 것 (1) Cầu nguyện với tội lỗ
(2) 욕심으로 잘못 구하는 것 (2) Hỏi sai do tham lam
(3) 의심하며 기도하는 것 (3) Nghi ngờ và cầu nguyện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내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100% 들으신다.
이렇게 해도 안 들어주셨다면 "아직 때가 아니다. 좀 더 기다리라!"는 것 말고는 다 응답하신다.
따라서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6절-
"믿고 기도하자!" 기본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왜 구하는 것을 들어주시지 않겠는가!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장 11절-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상의 것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시련을 잘 이길 수 있는 지혜를 구하라. 그러면 반드시 그 시련, 그 시험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주시며 해결해 주실 것이다.
- 나가는 말 -
우리는 시련이나 시험 앞에서 겁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시나니..."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따라서 우리에게 시련, 즉 믿음의 시련이 닥쳐올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길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야고보서 4장 8절-
하나님은 이렇게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우리는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이다. 오늘의 시련을 잘 이겨내면 미래에 어떠한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1장 7절-
지혜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진실하게 기도하자
이와 같은 방법에 따를 때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또한 상을 받는다. 다른 방법을 찾아내면 오히려 어리석게 되고 많다.
마귀는 지금도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그 말씀의 원리를 따를 때 우리는 넉넉히 그 유혹을 이길 수가 있다.
우리가 스 유혹에서 지는 것은 딱 하나다. 그것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따라가기 때문이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야고보서 1장 14절-
그 욕심에 끌리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의 소욕으로 육체의 욕심을 이겨버려야만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지혜를 늘 주신다.
우리 인생에 욕심이라는 진딧물이 끼여 있으면 그 마음을 온갖 거기에 다 빼앗겨서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그라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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