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것을 붙들라 giữ lấy một cái gì đó tốt hơn
- 히브리서 11장 1-16절 -
- 들어가는 말 -
인간에게는 더 가치있는 것을 찾아가는 욕구가 있다. 좋은 현상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것은 '더 좋은 가치의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가치관에 바르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인 가치에 끌려다니며 살 수밖에 없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속적인 가치관에 매력을 두고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현실이다.
크리스천들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적인 것들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밤낮없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우리의 가치관은 달라야 한다. 만일 가치관이 다르지 않다면 내가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바라봐야 할 가치는 따로 있다. 그러기에 이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있고 우리가 예수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 있는 같지만 자칫 세속에 물들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고 항상 복음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땅만 보는 자는 돈!돈!돈! 하게 된다.
우리는 이 땅만 쳐다보다가는 큰 일이 난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이 있다.
오늘 우리 함께 더 나은 가치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고 거기에 따른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 인생을 갈 필요가 있다.
1. 모든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2. 모든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된다
3. 모든 가치는 하늘나라까지 이어져야 한다
1. 모든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아름답게 만드시고 존귀하게 하셨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겠는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34편 8절-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선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그분의 선하심을 맛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세속의 가치에 물들지 않는다. 세상 맛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심의 맛이 훨씬 당도가 높고 칼로리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것들은 항상 우리를 '인스턴트 효과'를 가지고 유혹하고 있다. 그것에 길들여지면 비만은 물론 각종 질병을 몰고 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 속에는 마치 천연 비타민 A에서 K까지 골고루 들어있어서 우리의 인생을 건강하게 하고 어떤 병원균에도 강한 저항성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종이 되어버린 인간들은 영의 아름다운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육신의 것들만을 갈망하며 따라가고 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서 1장 17절-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하는 것은 '위', 곧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들을 붙잡고 살 때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다.
최근 LH(한국 토지주택공사) 사태를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거기 근무하는 직원들의 비리들이 들통난 것만 가지고 비난하고 분노할 것인가? 아니면 정부 정책만을 가지고 욕할 것인가?
내 눈에는 대도시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기서 거기 아닐까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집을 거주의 개념이 아닌 투기의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잠만 자고 나면 자기 집 값이 뛰는데 누군들 좋아하지 않겠는가! 30년 전에 3천만 원 했던 아파트가 지금 30억 원이라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옳을까! 아마 모두 자기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욕을 먹는 자들은 정책을 시행하는 자들과 직접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겠지만 내가 볼 때는 거의가 다 거기서 거기다. 모두가 정신을 잃은 사람들처럼 '돈! 돈! 돈!'이라는 큰 홍수에 떠밀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바로 세상의 가치관은 이런데 매여 죽을 때까지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싼 집 가진 사람들을 정죄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 속에도 참된 가치를 하나님께 두고 살아가는 진실한 크리스천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다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세상에서 세속에 물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사는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곧 신실하신 하나님께 붙들려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장 27절-
사실 우리는 이런 세상일수록 '자기를 지켜'야 한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 1절-
우리는 그분께 가치를 두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아버지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께 기도하며 살아가야 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장 11절-
2. 모든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으신 분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는 세상에 오셔서 인생의 참된 가치를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 직전 하나님 아버지께 이런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사옵니다." -요한복음 17장 18절-
이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새로운 가치들을 발견한 자들이다.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에서 영적인 가치를 알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서 2장 2,3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밀, 귀중한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락한 인간들은 그 본성이 악하여서 여기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오히려 이런 가치를 비웃고 조롱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속고 살고 또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평생을 보낸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래서 이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서 복음의 전도가 필요하다.
우리 역시도 예수를 몰랐더라면 뭐가 다를 게 있었겠는가!
영의 눈을 떠야 보이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요한복음 9장 41절-
그러니 저들이 예수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평생 마귀에게 속아서 사는 셈이 된다.
그러면서 서로 잘 났다며 옥신각신, 아옹다옹하고 허둥지둥대며 살아가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문화시민인 줄로 생각하며 착각을 한다.
그러고서도 저들은 의인을 죄인으로, 죄인을 의인으로 몰아가기까지 한다.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보화 때문에 이 세상 그 어느 것에도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예수를 알기 전에 유익하다고 느꼈던 것에 대해 완전히 미련을 끊었다.
아니 미련을 끊은 정도가 아니라 '해롭게 여겼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립보서 3장 8,9절-
바울은 가장 고상한 가치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를 붙잡혔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4절-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바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모든 가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결정되었다.
아, 얼마나 멋진가! 생각만 해도 너무나 황홀하기만 하지 않은가!
3. 그 가치는 영원한 날까지 이어지는 가치이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확실히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다. 그는 이 세상에 살면서 부자로 살았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보는 바는 항상 욕심을 버리고 살았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브리서 11장 8절-
마음을 비웠다고 할 때 이것을 두고하는 말이다.
"옛 고향 옛 터전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런 정신을 가장 많이 닮이 사람이 바로 이삭이다. 나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이삭의 정신을 배웠다.
"미련 없다. 미련 없어. 하나도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삭은 부자로 살았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생명줄이나 다를 바 없는 우물을 막고 또 흙으로 메워버렸다. 우리 같았더라면 악착 같이 전쟁을 해서라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그것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이라는 지역으로 또 우물을 팠다.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될 때마다 미련을 두지 않고 옮겨 다니며 다시 우물을 팠다. 역시 이삭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 본 경험을 가진 멋진 사람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브리서 11장 15,16절-
그렇다.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앞에 있다.
이것은 이 세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이곳을 사모해야 한다.
바울 사도 역시 우리에게 이것을 말씀하고 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린도후서 5장 1절-
그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가치를 붙잡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 헛된 욕심에 빠져들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가 있었다.
우리는 이 영원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가치를 붙잡고 확신 있게 나가야 한다.
두 가지를 다 붙잡겠다고요? 어림없는 소리다. 이 세상 미련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는가! 한 부자 청년 얘기도 모르는가!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이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가복음 10장 21,22절-
그렇다. 이 청년은 최상의 가치를 놓치고 말았다.
우리는 영원한 가치의 것을 붙잡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다.
말로만 영원한 생명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의 것을 완전히 새로운 가치의 것들로 바꾸어 주셨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2장 15-17절-
- 나가는 말 -
우리는 인생을 살면의 최선의 것 The best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확실히 붙잡아야 한다. 한쪽 발은 세상에, 다른 쪽 발은 예수께가 아니다.
온전히 예수께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마혹에 빠져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더 좋은 것을 붙잡으려면 이 세상 욕심을 버려야만 한다.
"모든 탐욕을 물리치라." -누가복음 12장 15절 라고 말씀하고 있다.
탐욕을 버릴 때 비로소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참된 눈이 열린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우리는 이 가치를 붙들어야 한다.
우리는 더 나은 가치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사모해야 한다. 딴 데의 욕심이 아니라 주님을 사모함, 또는 하늘나라를 사모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 God had provided something better for us." -히브리서 11장 40절-
이제 우리의 눈을 더 높이 뜨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도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
계속 붙잡고 사모하며 살아가야 한다. 아직도 세상 것 붙잡고 그것 때문에 울고 웃고 하며 엎치락 뒤치락만 하고 살 것인가! 그렇게 살지 말자.
예수 때문에 웃고 울자. 성령의 일을 붙잡고 살자. 그러면 하루하루가 천국일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VuEYPOw1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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