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외로움 Sự Cô Đơn

좁은길을 걸으며 2021. 5. 21. 23:22

외로움이 몰려들 때 When loneliness floods into your heart

 - 열왕기상 19장 1-18절-

 

- 들어가는 말 -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들 때가 있다.

외로움을 겪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외로움은 죄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외로움'이란 근심과 걱정과 비슷한 성격의 것이어서 잘 극복해야 하는 인생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으로 인해서 잘못된 길을 가기도 하고 병을 불러오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뇌를 FMRI(기능성 자기 공명 영상 장치)라는 것으로 찍어봤더니 마음의 병이 신체적 고통을 가한 것 이상으로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말하면 외로움이 만성으로 변했을 때부터 신체의 모든 기능에 악영향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외로움이 심화된 경우에 자살의 충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합병증,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뜻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사는 아이들은 외로움이라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장을 하기도 하지만 학대를 받으면서 자랐거나 딸돌림을 받거나 고아로 자란 경우에는 이런 것을 겪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떤 이는 동네 친구들과 뛰어놀기 좋아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와 누님의 사랑을 받고 살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모르고 자라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향을 떠나 멀리 가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거나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에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나와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가장 외롭다고 느낀다.

외로움이란 한자어 '孤獨 고독'인데 '외로울 고, 홀로 독'이다. 혼자는 고독하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산다면 정말 외롭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아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근본적으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만 만족할 수 없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모르고 다른 말을 지어낸다면 그것은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물려주는 격의 위로애 불과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외롭다." 이것이 정답이다.

여기서부터 문제를 진단하고 답을 찾을 줄 알 때에만 외로움의 문제를 바르게 극복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안 그러면 '외 딴 섬에 고립된 인간', 즉 대책이 없는 인생을 살다가 쓸쓸하게 죽어갈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1. 누구에게나 외로움이 있다

2. 외로울 때 하나님을 찾으라

3. 믿음의 친구를 만나라

 

 

1. 누구에게나 외로움이 있다

 

그렇게 훌륭한 다윗도 외로움을 경험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녀야 했다. 사울은 악령에 시달리게 되고 자신의 왕위가 다윗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 두려워 그를 죽이려고 맹렬하게 추격했다.

무려 그 세월은 길고 길었다. 이때에 다윗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아갔다.

라마에서 헤렛 수풀까지 도피생활이 3년, 그일라에서 십 황무지까지 3년, 블레셋 가드에서 시글락까지 4년 모두 10년의 세월 동안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말이니까 그렇지 이런 고난을 통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외로움을 겪을 때도 있었다.

다행히도 그는 그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도를 드렸다.

그때 그는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편 25편 16절-라고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그 통치기간에 숱한 고통과 외로움을 겪을 때도 있었다.

추정하건대 그때가 바로 아들 압살롬이 난을 일으켜 왕이 되고자 했을 때였다. 아버지가 전술에 뛰어나고 군살력이 막강하다고 할지라도 아들 녀석과 싸워 무슨 승산이 있겠는가를 계산했다.

"차라리 내가 져주자!"는 식이었다. 그래서 밤중에 맨발로 왕궁에서 나와 울면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에 이르렀다. 이 장면은 어찌 보면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는 10년 세월보다도 처절한 고통이었을 것이며 엄습해 오는 외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럴 때에도 다윗은 자신이 평생 의지하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다.

"하나님이시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간절히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편 63편 1절-

선지자의 대표라고 부르는 엘이야에게도 큰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는 바알 우상숭배자들과 대결하여 통쾌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엘이야의 목숨을 찾았다.

엘리야는 피신하여 광야 로뎀나무 그늘 아래 주저앉아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열왕기상 19장 4절-

그러다가 그는 깊이 잠이 들었다. 그때에 천사가 와서 깨우더니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주었다. 그것을 먹고 40 주야를 걸어서 호렙산에 도착했다.

그는 정말 외로움의 극치에 도달했다.

굴 속에 들어가 머무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둘려왔다. "엘리야 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장 9절-

이때에 엘리야는 대답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홀로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열왕기상 19장 10절-

이렇게 누구에게나 외로움이 찾아든다. 심지어 예수께도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하룻밤의 예수님의 행전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생각해 보라. 예수께서는 피땀 흘리는 기도를 드리고 외롭게 싸우고 있지만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대제사장 앞과 빌라도 앞에 밤새 끌려다니며 매를 맞고 조롱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 열한 명의 제자들은 예수를 버려두고 도망을 가버렸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때도, 십자가 위에서도 예수는 너무나 외롭고도 쓸쓸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오직 했으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אלי אלי למה עזבתני" -마가복음 15장 34절-라고 절규하며 소리를 지르셨을까!

그렇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러나 문제는 그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음에서 잘 살펴보자.

 

 

2. 외로울 때 하나님을 찾으라

 

자, 외로울 때 그대로 있으면서 꾹꾹 늘러 참아야 하는가! 코로나 바이러스 19로 인해 사람들은 외로움을 더 많이 경험하고 있다.

외로움의 시초는 '심심해'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이 심심하면 어떻게 하는가! 군것질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렇다. 뭐라도 하나 찾아서 먹어야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다가 비만이나 나쁜 습관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바로 흡연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심심해서 피우게 된 담배가 이젠 없으면 허전하고 손에 일이 안 잡힌다.

마찬가지로 외로움은 혼자서 이겨내기가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외로울 때 잘못된 친구를 만나거나 잘못된 장소에 가거나 위험한 일에 노출되기가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디선가 본 글이다. "외롭다고 이상한 친구를 만나지 말라. 이상한 친구를 만나는 것은 오히려 자기 스스로를 망치는 행동이다."

 

우리는 외로움에 대한 관리를 잘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해답을 얻어야 한다.

우리가 고독할 때 찾아야 대상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우선이 되는 분이 있다. 곧 하나님이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장 13절-

그런데 찾아야 할 대상은 찾지 않고 세상에서 무슨 만족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환상을 좇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에게 실망을 하게 더 외롭게 되어 심지어 손을 대지 말아야 할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 사람들이 있다.

외로움은 마치 배고픔과도 같다. 그래서 무엇으론가 배를 채우고 싶은 갈망처럼 영혼의 갈망이 클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때에 자칫하면 마귀는 마약, 섹스, 도박, 술 등을 가지고 나와 유혹의 미끼를 놓고 거기에 걸려들게 만든다.

외로움이 우리의 적이 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마귀는 외로움을 틈 타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고 금단의 열매를 내민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너는 행복하게 될 거라고!"

그러나 그런 것에 빠지면 더 깊은 외로움의 늪에 빠져서 나중에는 목숨까지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주시해야만 한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리라." -히브리서 10장 39절-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요,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이 사실이 매우 소중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내가 믿습니다"하고 고백하는 그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독한 시간은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아니 때로는 고독할 필요가 있다. 항상 웅성웅성 모여서 떠드는 것만이 좋은 게 아니다.

그렇게 오히려 '속 빈 강정' 같은 인생이 되고 만다.

예수님을 보라.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태복음 14장 23절-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무리를 떠나보내고 홀로 고독한 시간을 선택하신 것이다.

바로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에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구약에서는 야곱이 그러했고, 요셉도 그러했고, 사무엘도, 다니엘도, 에스겔 등이 그러했고 신약에서는 바울이 그러했고 요한이 그러했다.

모두 한결같이 외로운 시간에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장래의 일을 알았다.

여러분은 지금 고독한가? 이때가 기회다. 이때가 하나님을 만날 아주 좋은 찬스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6-8절-

엘리야에게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천사를 통해서 힘을 돕고 도우실 것이다. 오늘 여러분 안에 늘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께서는 더 뜨겁게 강하게 그리고 새롭게 역사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이행하시는 분이시다.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복음 14장 18절-

따라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성령은 우리에게 보혜사가 되어주시고 또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실 것이다.

 

 

3. 믿음의 친구를 만나라

 

우리는 혼자서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라도 만나서 해프닝을 해야 하는가!

우리 수많은 크리스천들 중에도 거침없이 아무라도 친구를 만나다가 참된 믿음에 멀어진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러니까 예수를 떠나서 영혼의 갈증을 채우려는 행동은 탕자가 집을 나가서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는 행동과도 같을 것이다.

외로움이란 어떻게 보면 '영적 갈증'을 겪는 상황이하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육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빠져든다.

하지만 여러분과 나는 믿음을 가진 자들로서 오히려 '성령의 생수'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그곳이 어디일까?

나는 믿음의 친구가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믿음이 건전하고 서로 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바로 교회가 그런 곳이고 영적인 가정이 그런 곳이고 좋은 믿음을 가진 직장 동료나 사업가일 수도 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서 소중한 관계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바른 성경관을 가지고 서로 영적인 대화를 이어가며 먹고 마실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알다시피 예수께서도 잘 찾아가는 집이 있었다. 그 집은 두 자매와 한 오라버니가 있는 가정이었다.

부모가 없지만 서로 위로하며 오손도손 살고 있는 가정인데 예수께서 종종 방문하신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오라버니가 죽었다.

아니 죽은 지 나흘이 흘렀다. 두 누이에게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미 예수께서는 이 사실은 알고 계셨다. 누가 찾아와서 알려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고 계셨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한복음 11장 11절-

두 자매 중 하나인 언니 마르다가  울면서 "왜 이제 오십니까?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우리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한복음 11장 21절-

마르다 역시 예수를 자주 만나다 보니 믿음이 상당히 자라 있었다. "그러나 난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요한복음 11장 22절-

예수께서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11장 24절-

그리고 무덤으로 가셔서 나사로를 살리셨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렇다. 우리가 영적인 친구를 잘 만나면 외로움의 극복은 물론 부활 생명 그리고 하늘나라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이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잠언 27장 17절-

우리는 영적인 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래야 영적인 대화가 통하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교제를 가질 수가 있다.

예수의 생애 속에서 보면 열두 명의 제자와 또 많은 여인들이 함께 했다.

그 함께함 속에서 그들의 믿음은 알게 모르게 자랐고 나중에는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로서 자리매김이 되었다.

다윗과 요나단, 다니엘과 그 세 친구, 바울과 실라 등을 봐도 그들은 영적인 동반자들로서 큰 일을 감당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인생 앞에 어디를 가나 외로움이 따라온다. 그러나 거기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당신이 영적으로 바르게 서 있다면 거기서 외로움에 처한 많은 영혼들을 구출해 낼 것이다. 그리고 또 그들과 친구가 될 것이다.

 

- 나가는 말 -

 

인생은 고생하다. 우리는 고독을 핑계 삼아서 딴 장을 부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외로움을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는 비결을 성경에서 배워야 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의 답은 성경에 있다.

그래서 성경 진리라고 부른다.

나는 성경을 읽고 연구한 사람으로서 성경에서 해답을 찾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개인의 연구의 한계와 지식의 한계는 너무나 쉽게 노출된다.

그런 줄 알면서도 글을 쓰는 것은 나름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의 선물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인생 문제의 해답은 예수 십자가에 있다. 그는 우리의 외로움까지 십자가로 해결해 주셨다.

그러므로 괴로울 때만 십자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외로울 때도 주의 십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외로움은 순식간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외로울 때 그대로 있으면 안 된다. 복음이 담긴 찬양을 듣거나 따라 부르자. 그리고 또 기도하자,

이때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뜨겁게 다가오시며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하게 해 주실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장 20절-

주님은 항상 여려분 곁에 계신다. 우리는 잠시 그것을 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홀로 있는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속삭이는 시간으로 삼으라.

우리 마음이 뜨거워질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으로 "가라", "가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우리의 할 일이 있다.

삶에 지쳐서 허덕이며 외롭게 살고 있는 자들에게 가서 우리의 할 일이 있다. 그들은 이미 불한당을 만나서 갈기갈기 찍혀서 신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소리는 듣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레위인과 제사장과 같이 살지 말자. 한 영혼 한 영혼을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인도하자.

 

https://www.youtube.com/watch?v=YldE14KCl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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