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誤解; Sự hiểu lầm
-마태복음 6장 14, 15절-
- 들어가는 말 -
인간 세상은 서로의 관계에서 수많은 오해들로 얽혀 있다.
이것 때문에 마음을 닫고 서로 연락도 안 하고 지낸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모든 것을 부정해 버린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런데 그 속에 내가 포함될 수도 있다. 아니 누군가는 나를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오해는 갈등을 낳고 미움이나 증오심으로까지 바뀌기도 한다. 그러니 만큼 그냥 지나칠 일도 아니다.
이 아이러니하게도 부부간의 갈등, 부모자식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친척간의 갈등, 친구 간의 갈등 그리고 직장 동료 간의 갈등 등으로 얽혀 있다.
그러니까 알고보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간에 얽힌 문제가 바로 오해이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대체적으로 이렇다.
"나는 옳은데 너는 틀렸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네가 나를 괜히 넘겨짚었다."
"나는 그 사람을 믿었는데 그가 먼저 나를 배신했다."
그 배경을 보면 자기 주장, 자기 의를 굽히지 않는 자기중심적 생각이 지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오해와 갈등을 마음에 가지고만 살아갈 일이 아니다.
풀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저절로 풀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평생 그 오해를 품고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것이 당연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오해와 갈등의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1. 하나님께는 오해가 없으시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오해가 풀리게 하셨다
3. 사랑으로써 오해를 씻어버리자
1. 하나님께는 오해가 없으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오해하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정확히 보신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며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시편 119: 137절-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말의 의미는 '옳다.'에서 시작되는 말이다.
그의 생각이 옳으시며, 그의 눈이 옳으시며, 그의 판단이 옳으시다. 이 말의 의미는 '거짓이나 잘못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인간을 향해서 절대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우리 인간이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정확히 판단하신 분이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는 오류(誤謬; Fallacy)가 없으시다. 그의 말씀은 정직하다. '캐논(κανων)', 즉 '정직한 잣대'를 갔다 대시는 분이다.
그러나 어떤가? 문제는 항상 사람들에게 있다.
완전하지도 못하며,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도 한계에 봉착하기 쉬우며, 게다가 자기의 의(義)를 내세우다 보니 상대방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력도 부족하다.
자기도 틀려 있으면서 자기 자신이 표준의 잣대인 것처럼 들어다 댈 때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라고 할 때 서로 옥신각신하며 싸우기도 하고 오해와 갈등으로 치닫게 된다.
그러니 만큼 인간의 자기의 잣대로 남을 평가하고 판단할 때 오해를 낳게 되며 이것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시편 33편 4절-
하나님은 오해를 조작하시지 않으신다. 오해를 조작하는 자는 알고 보면 마귀이다.
오해의 깊은 곳에는 항상 거짓이 숨겨져 있다. 마귀는 정직히 행하는 사람까지도 미워하게 만든다.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오해하게 만든다.
그러니 만큼 우리는 이런 마귀의 속성을 알고 오해와 갈등의 늪에 갇히지 말고 신속히 빠져나아야 한다.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또 우리의 지식의 한계 때문에 이것을 교묘히 이용해서 속이고 들어오는 놈이 마귀라는 사실을 알고 오해와 갈등을 조장하는 데서 얼른 빠져나와야 한다.
우리는 이미 예수 안에서 새롭게 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아직까지도 마냥 세상 안에 갇혀서 오해와 갈등하는 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편 가르기를 하고 오해와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옛 생활과 옛 성품에서 벗어나야 한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로새서 3장 9,10절-
2. 그리스도 안에서 오해가 풀리게 하셨다
우리는 오류가 많다. 모든 오해는 편견에서 비롯된다.
달리 말하자면 오인(誤認)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오인이란, '잘못 보거나 잘못 생각하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보나 마나 오판( 誤判; wrong judgment)을 범하게 된다.
바로 그 오판에서 '오해'을 낳게 된다. 그러고도 고집스럽게 자기 판단을 절대로 굽히지 않으려 한다.
이건 똑똑한 게 아니고 가장 무식한 발상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오해와 갈등의 연속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으나 그 형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히브리서 11장 11장 4절-
하나님은 정확하시다. 가인이 잘못했다. 가인은 이때 죄 없는 아우 아벨을 오인했다. 그리고 오해와 갈등으로 일관하다가 아우를 죽였다.
하나님이 잘못한건가?
하나님은 항상 의로우시고 정직하시다. 형과 동생 사이에 오해와 갈등을 조장하시려고 하신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린 사단이 가인의 마음을 동해서 그런 악을 저지르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오해의 불씨는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이삭의 가정에도, 야곱의 가정에도, 다윗의 가정에도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이것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해결해 주셨다.
우리는 성경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인간적인 방식으로는 일이 더 우습게 꼬여만 갈 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오해의 문제가 생기거든 "아, 사단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는구나!" 하고 얼른 그 문제를 가지고 십자가 밑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다.
혼자만 품고서 벙어리 냉가슴 앓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오해의 문제는 예수 십자가로 풀 수 있다. 오해는 상대방에게 요구할 문제이기 전에 "내가 먼저 내 마음속에서 풀려야 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내가 푼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풀어주셔야 한다."로 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우리 인류의 죄를 감당하실 때 우리 인간의 오해와 갈등 문제 역시 해결해 주셨다.
"다른 사람 어찌 하든지 나 주님의 용사 되리!"라는 찬송에서 보듯이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하든지 말든지 나 주님만 바라보리!"하고 담대히 나가야 한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손에 죽었지만 알고 보면 율법주의자들 손에 죽은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은 율법주의자가 되어버린 바리새인, 서기관 등이 '자기 의'에 사로잡혀 예수에 대해 오해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정당하게 여기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을 오해하시지 않았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장 34절-
혹 나를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쫓아가서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지 마라.
예수처럼 하라.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오해했다. 그는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의 눈에는 예수 믿는 자들을 향해 오해의 차원을 넘어서 미워하고 증오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직접 사울(바울)을 찾아가셨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그 한 마디에 완전히 오해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의 가슴에 복음의 빛이 파고들었다.
바로 예수 십자가의 능력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장 21절-
그렇다. 우리가 그 문제를 가지고 십자가 앞에 나가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십자가가 답이다.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은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장 15절-
예수께서 모든 의문의 율법을 파기하셨다. 우리 마음에 있는 의문들도 십자가로 다 파기해 버려야 한다.
할렐루야!
3. 사랑으로써 오해를 씻어버리자
과연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는 아직도 부족하다. 그리고 연약하다.
언제라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나 자신의 안에 있다.
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로 인해서 얼마든지 거짓 정보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오해할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지만 아직도 유혹을 받고 살듯이 역시 거짓된 것들에게 속아서 오해와 갈등을 빚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갑자기 누가 나를 오해라더라도 당황하거나 성급하게 말이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1) 들어보자.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면 그 자리에서 져줄 수도 있다.
2) 그리고 우선 나를 돌아보자. 왜냐하면 내가 상대방에게 오해의 소지를 주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완전하지 못한 것만큼이나 상대방도 완전하지 못하다.
3) 도저히 나의 이성으로 납득이 안 될 때에라도 화를 내거나 싸우지 마라.
4) 사랑이 가장 좋은 무기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가장 큰 덕목은 '사랑과 용서'이다.
세상의 대부분의 것은 결코 우격다짐으로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사랑으로 다가가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의 최고의 최신식 무기는 언제나 사랑이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억지로 오해를 풀려고 하면 더 꼬여만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조건 없이 내가 먼저 사랑하면 저절로 모든 의문이 풀린다.
우리에게 미움의 대상으로 주신 부모 없고, 자식도 없고, 형제도 없고,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고, 사회도 없고, 동족도 없고 나아가서 인류도 없다.
그런데 오해하고 갈등의 연속선상에 갇혀 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사랑으로 다가가면 풀린다. 남북문제도 사랑으로 풀어야 한다. 그 할아버지 적의 얘기를 꺼내 들고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내 주변 모든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주셨다."
고로 사랑해야 한다. 미워 보이다가도 사랑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예뻐 보인다. 우리는 자식을 키워본 경험에서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장 10절-
너무 인간적인 생각을 앞세우지 마라.
지금 나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마음으로 미워하지 마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풀리게 해 주신다.
에서가 야곱을 껴안은 것을 생각해 보라. 요셉과 형들이 껴안을 것을 생각해 보라. 다윗이 압살롬을 껴안은 것을 생각해 보라.
이들 모두 때가 되니까 다 풀리게 되었다.
- 나가는 말-
죄가 있는 세상에는 항상 오해가 있다. 오해 역시 죄의 부산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해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지만 인간은 헛된 욕심에 눈이 가리어서 볼 것을 보지 못 하고 안 볼 것만 골라서 본다.
그러면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으로 살아간다.
이것은 행복을 빼앗아가는 원수이다. 우리는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한계 때문에 애매하게 오해의 소용돌이에 몰리게 될 때도 있다.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걸 가지고 말도 안 하고 지내고 연락도 안 한다.
사실 보는 방향에 따라서 6이야, 9야의 차이인데 말이다. 그걸 가지고 오해하고 살다니!
"오, 바보들! 너희는 서로 마귀에게 속았을 뿐이야!"
그러니 만큼 오해할 일이 생기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 삼지 않을 일을 가지고 문제를 삼거나 오해와 갈등을 만들면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 풀리거든 기도하면서 그 문제를 가지고 십자가 밑으로 나아가라.
우리는 얼른 성경 진리로 돌아가서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에베소서 5장 15-17절-
우리가 지혜가 있다면 그때그때 지혜 있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성령께서 주실 것이다.
우리는 선으로써 악을 이겨야 한다. 혹시 누가 나를 오해했더라도 예수께서 취하셨던 모습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로마서 12장 17절-
이것이 바로 예수의 모습니다.
그러면 오해와 갈등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E6JtUfhd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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