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부모 자식 Cha mẹ và Con cái

좁은길을 걸으며 2021. 5. 8. 15:47

부모 자식 Parents and Children

에베소서 6장 1-4절

 

 

- 들어가는 말 -

 

해마다 한 번쯤 생각하고 지나가야 할 중요한 논제가 있다.

이것은 논제라기보다는 단순한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장 먼저인 관계를 주셨다. 그게 부모 자식 관계이다.

단순한 것인데 얽히면 복잡하게 되기도 한다.

단순한 것은 선이지만 복잡한 것은 악이 개입했다는 반증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가장 먼저 가정을 주셨다. 이것은 교회 이전의 문제이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필요한 것은 인류에게 죄가 개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죄의 문제가 가정 안에도 파고들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가정 문제 또한 복음의 사실에서 풀어나가면 쉽다.

따라서 예수 앞으로 나오면 어느 가정이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기본적인 전제는 내가 낳은 자녀라고 할지라도 이것은 내가 선택한 자녀가 아니며 역시 자녀 입장에서는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니다.

서로를 향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면 쉽다.

그런데 복잡하게 풀려는 것은 그 자체로써 아름답지 못하며 오히려 마귀에게 휘둘리게 되는 단초가 된다.

복잡하게 끌고 가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또한 인간을 원망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부모없이 존재하는 인간이 없다.

혹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태어난 아이라도 말이다. 아버지가 있었기에, 어머니가 있었기에 우리는 존재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인간 윤리의 막다른 골목에까지 와 있다.

정자精子만 있으면 어머니 없이 시험관 아기를 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죄는 이렇게 복잡한 양상으로까지 인간을 몰아가고 있다.

여기에 동조하는 세력 역시도 인간이다. 이것들이 인간의 악한 본성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네가 진리 안에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한일서1장3,4절-

나는 오늘 좀 새로운 각도로 자정 얘기를 엮어보려고 한다.

 

1. 가정을 꾸려라

2. 공경하라

3. 양육하라

 

 

1. 가정을 꾸려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창세기 1장 28절-

가정은 하나님의 복이자, 선물이다.

특히 선물은 복음적인 의미에서는 '카리스마χάρισμα'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은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만 필요하다.

"자식은 여호와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편 127편 3절-

그러기에 자녀를 낳아야 하고 또 이것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누려가야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어떤가? 복잡하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 이유가 뭘까?

경제적인 문제를 든다. 다음은 편하게 살고 싶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부산물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복이 가정이다. 하지만 이것을 거부한다.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죄는 하나님의 선물까지 거부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3장 23절-

 

죄는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거스리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핑계하는 구실로 많은 거짓된 가치관을 제공한다.

여기에 속아서 함께 휩쓸려가는 크리스천 젊은이라면 과연 무슨 희망이 있는 것일까!

나는 결혼 안 하겠다고 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비난을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는 길은 인간의 잔머리가 아니라, 그냥 순종하고 보는 것이다.

'창조주의 법칙을 따라서' 말이다. 그리고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것이 뭐가 있겠는가!

"없다." 그러면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라."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

시대가 바뀌었다고 진리가 바뀌는 것 아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릴 수 없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고린도후서 13장 8절-

결혼을 했어도 자녀를 갖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의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고의로 결혼을 안 하고 선물을 거부하다니! 자, 하늘의 왕께서 선물을 주실 때 손을 내밀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노벨상보다 더 귀하고 큰 상을 주시려고 하는데 거부를 하는 것이 옳은가! 그런데 인간들이 그 가치의 것을 스스로 거부한다는 걸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단순한 진리에 순종할 때에만 참 복을 누릴 수가 있다.

오늘날 같은 현실에서 내 친구 중 하나는 자녀를 여섯을 낳아 양육했다.

그러면 모두 몇 명인가? 여덟 명이다. 아, 그로고 보면 노아의 가족이 생각이 난다.

결론은 딱 하나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니까 하나님이 키워주셨다.

감리교 창시자라 불리는 존 웨슬리 John Wesley는 그 어머니 수산나 여사가 낳은 열아홉 명의 자녀 중 열다섯째로 태어났다.

수산나는 너무 가난해서 단 칸 방에 아이들을 다 재우고 본인은 발도 뻗지 못하고 잠을 잤다.

그렇지만 존 웨슬리는 옥스포드 대학을 나와 18세기의 가장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렵기로 말한다면 그 시대마다 다 어렵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리에 입각해서 그의 뜻을 따르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크 역사를 이루고 계신다.

고로 "모든 남녀여, 결혼하라!" 어떤 이유도 구실도 보태지 말고 결혼해야 한다.

선물을 받아라. 이런 자세로 말이다. "황송하고 감사합니다."

 

 

 

2. 순종하라

 

자녀 입장에서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당연한 것을 빌빌 꼬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진리에 입각해서 보면 매우 단순하다. 모든 법과 제도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만 행복하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평안하고 행복한지 모른다.

인간의 헛된 욕심은 어떤 구실과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그것을 핑계하게 만든다.

즉 마귀는 거기에 역사하고 있다. 그리고 완악하게 만든다.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다면 우리는 지난 날의 불효의 죄를 회개하고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성경 어디를 봐도 '조건부 순종'을 말씀하고 있지는 않다.

비록 부모가 낳아서 핏덩어리채 버렸을지라도 그가 내 부모라는 것을 알았다면 공경해야 한다.

"왜냐고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의 죄악은 그보다 더 끔찍하고 흉악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이해를 뛰어 넘어' 우리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데, 왜 부모를 원망하는가! 왜 부모를 멸시하는가!

이것이 큰 불효이다. 엄격히 말해서 "낳아주신 것만으로도 위대하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지금 그들분 때문에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지 않는가! 여기서 다른 얘기, 즉 부정적인 얘기를 추가하지 마라.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는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태복음 6장 12절-

그렇다. 이미 용서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지금 곧 용서하라!"

그런데 아직도 부모 자식 간에 원수처럼 되어 있는 자식이 많이 있다. 진짜 스스로 마귀에게 속으며 바보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의 최상의 도리는 "순종하라"에 있다.

인간의 죄는 이것을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런데 당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산다면 신속히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행복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잊어버리고 산다고요?" 웃기지 마라. 잊고 살 문제가 따로 있지 부모를 잊고 산다는 자체가 죄악이다.

우리는 예수 십자가를 통해서 '초월한 사랑', 즉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조건 없는 사람'을 배웠다. 이것이 아가페 Agape이다.

그렇다면 이 아가페 사랑을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하라. 옛날에 잘못한 것을 평생 우려먹고 살 것인가!

그렇게 살면 그만큼 자기 인생을 스스로 좀 먹히며 실패의 삶을 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옳은 것은 단순하다. 진리니까 말이다.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에베소서 6장 1절-

이 말씀은 이미 옛적에 모세를 통해서 주신 계명이며 복음을 믿고 사는 우리에게도 역시 유효하다.

성경은 부모 불경죄에 대해 아주 엄격한 말씀을 하고 있다.

"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출애굽기 21장 17절-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찌니라." -출애굽기 21장 15절-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 내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잠언 19장 26절-

이 외에도 많은 성경구절이 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부모를 원망하거나 탓해서는 안 된다.

오직 순종과 공경을 드리는 것만이 할 도리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생명이 길리라." -출애굽기 20장 12절-

예수처럼!

예수께서는 공생애 전 30년을 순종하셨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마태복음 13장 55절-  꼬마 목수에서 어른 목수가 될 때까지도 부모에게 순종과 공경을 다 하셨던 예수시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누가복음 2장 51절-

그는 인간 예수로써 효성을 다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을 드렸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 5장 8,9절-

예수님의 생애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 가운데서 '부모 공경. 하나님 공경'을 제대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따르는 자라면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의 구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3. 양육하라

 

부모는 왜 부모인가? 낳았으니까 부모라고 하겠지만 역시 인간은 책임적인 존재이다.

우리가 어디에 속했던지 간에 그 소속의 일원으로서 책임이 부여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모로서의 책임'을 말씀하신다.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하시기 위해 부성애와 모성애를 주셨다. 이것을 지성, 또는 지혜를 통해 잘 양육할 때에 하나님께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간혹 가다가 이런 부성애와 모성애를 외면하고 자녀를 학대하거나 심지어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온 사회는 경악을 하고 분노를 금치 못한다. 그런데 이것이 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와야 한다.

 

성경은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다만 일단 임신이 되면 그때부터는 인격을 가진 한 피조물로서의 고귀한 인간이다.

그런데 낳고 싶으면 낳고 말고 싶으면 만다는 인본주의적 사고가 더 큰 죄악을 몰고 왔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일단 임심이 되면 하나님께 감사부터 해야 할 인생이다. 오랫동안 임심을 못하며 설움을 겪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한나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사무엘상 1장 15절- 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선물로 주셨을 때는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사무엘상 2장 1절-

그렇다. 그녀는 하나님의 응답을 구원과 관련시켰다. 마찬가지로 귀하에게 주신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큰 일을 계획하고 계시는지를 아는가!

그것을 미리 바라보는 부모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막연하게 '눈감 땡감'식의 교육을 시킨다. 남들 하는 것만 뒤쫓아가는 교육 바로 그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것을 가장 싫어한다.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그에게 맞는 재능을 주셨다. 이것이 곧 달란트이다. 영어로는 탤런트 Telent이지만 이 탤런트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자로 키워야 한다.

 

그런데 이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뭐냐고요?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장 4절- 꼭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내 욕심, 내 생각으로 키우는 것은 양육이 아니라 사육에 가까운 행위라고 말하고 싶다. 밥만 먹이고 하나님의 경외 없이 영재교육이니, 천재교육을 꿈꾸는 허왕된 욕심 말이다.

그게 아니다. 하나님 경외부터 가르쳐야 한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신명기 6장 7절-

왜냐고요? 모든 진리와 참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언 1장 7절-

이것이 자녀 교육의 출발점이자 마지막이다.

 

그러다 보면 그 인격이 예수를 닮게 되어 있다.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사람이 되지 않았는데 세상 지식과 기술만 잔뜩 배우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결과는 뻔하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성령께서 함께 하는 인생을 살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인격의 고귀함이 드러나지고 또한 미래 사회를 밝게 하는 아름다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는 매도 필요하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교육은 절대로 채벌 하지 말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 것인가!

성경은 채벌 하라고 말씀하는 곳이 많다.

부모는 자녀를 꾸짖고 때려서라도 자식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이런 발상은 어른이 되어서  잘못하면 감옥에 보내지 말라는 말과도 같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잠언 23장 13절-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따라" 교육을 시켜야 한다.

요즘 교육비가 문제가 되는 것은 '욕심 과열' 때문이다. "남의 자식이 하니까 우리 자식도 그것을 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살고 있는 베트남도 똑같다.

알고 보면 이것이 현명한 생각이라기보다는 무식한 발상에서 비롯한 욕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나대로야!"

지금 생각해 봐도 맞다.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난 행동이 아닌 이상 나는 나대로 가야 할 인생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데 왜 내가 남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내 정신이 아니라 남의 정신으로 살아가니까 오히려 채우지 못할 욕심을 향해서 끝없이 질주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차처럼 되고 만다.

그리고 책임교육이다. 인간은 자기가 말하고 행동한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부모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자식이 잘못해도 그냥 오냐 오냐만 하고 버려둔다면 책임감 없는 존재로 자라며 자녀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다가 인생 끝장을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게벳을 보라.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했다. 그래서 아들을 라일강에 띄워 보냈다.

그리고 왕의 아들처럼 양육하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보나 마나 그녀는 모세를 양육할 때 그 민족의 형편과 사정을 말하면서 "네가 할 일은 이것이다."는 것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바로 책임감이다. 그 책임감 때문에 성년이 된 모세는 자기 민족이 심하게 학대받는 것을 보며 분노했다.

책임감이 없었으면 분노할 것도 없다. 그러다가 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 후 40년이 지났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크게 들어 쓰셨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다. 그것은 그냥 이 땅에서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명령하신 지상명령에 따른 삶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던 예수께서는 "나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 16장 15절-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부름을 받은 이상 자녀들에게도 이 사명을 감당하는 자녀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의 삶'이 저부인 것처럼 살아간다. 그 육체의 삶이 정신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고상하고 예술적 가치로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면 그것은 '육체의 삶'에 한정되고 만다.

하나님은 그렇게 살라고 우리 인간을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이게 참된 인생의 의미이고 가치이다.

그러니 만큼 우리는 이 관계를 회복케 하는 것, 즉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한다.

 

 

 

- 나가는 말 -

 

우리는 부모 자식의 문제를 생각했다. 그런데 가정을 떠나서 온전한 가정은 없다. 이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주셨다.

교회를 통해서 가정은 더 온전케 된다.

이 말은 즉 복음을 통해서 아름답게 세워지는 가족관계이다.

사실 살다 보면 상처 없는 가정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그냥 그냥 시는 건 또 문제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인생의 모든 삶을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그분께 가까이 가야만 한다.

그래서 교회를 주셨다.

교회를 통해서 건전한 복음 진리를 배우며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지 못하고 바로 세워지는 가정도 없다. 하나님 없이는 사탄의 밥이 될 뿐이다.

 

밖에 나오면 다 멀쩡해 보여도 안으로 곪아 터진 가정들이 수두룩하다. 예수 앞에 나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부모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원망하고 살아서는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없다.

예수 십자가와 그 보혈의 능력을 믿는 자는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예수 앞에 나오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인생을 풀어가라.

인간의 욕심은 더 상막한 상황을 만들어 낼 뿐이다.

자녀를 욕심으로 양육하려 들지 말라. 뱁새가 황새 발을 좇아가는 격으로 살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따라 분수대로 살면 본인도 행복하고 건전한 사회가 된다.

세상 가치관은 항상 과열경쟁을 부축이고 또 경제를 앗아가고 더욱 찌든 삶을 연출하게 만들 뿐이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고 또한 그 인격이 먼저 예수를 닮도록 한다면 정말 가장 멋진 인생을 살게 되며 그런 자식은 효도를 하지 말라고 해도 효도다운 효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서 그 재능을 잘 키워서 살아가게 할 때에 행복한 인생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기 위해서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녀의 앞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동시에 예수의 지상명령을 위해서 살아갈 줄 아는 자녀로 키워야 한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본향 집 하늘 나라이다.

나는 오늘 어버이주일에 이런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다면 자녀의 노여움만 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좀 힘들게 살지라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히 따른다면 미래에 큰 영광을 맛보게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ldjkmtZJp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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