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성령에 매여 Được Đức Thánh Linh Ràng Buộc

좁은길을 걸으며 2021. 4. 24. 13:57

 

성령에 매여 Bound by the Holy Spirit

사도행전 20장 17-20절

 

 

- 들어가는 말 -

 

사도행전 Công vụ các sứ đồ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성령행전 Công vụ Đức Thánh Linh이라는 이름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사도행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전도활동 그 자체가 인간의 어떤 스케줄을 따랐다라기 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결과로써의 나타나진 사건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까 사도행전을 하나의 무대로 본다면 인물은 바뀌는데 그 중심의 주인공은 성령이신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이라고 했던 것은 성령께서 그때그때마다 사람, 즉 사도들이나 신실한 자들을 통해서 역사(The Work)를 진행하고 계신다는 점에서 사도행전이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는 그때 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성령강림 사건 이후로 모든 믿는 자들 속에 역사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때처럼 성령 충만하지 못할까 하고 고민할 때가 있다.

그러나 고민할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도 그때처럼 성령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께 매여 산다면 더 구체화되고 가시화된 역사를 경험할 것이다.

 

그냥 맹숭맹숭한 상태에서 입에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겪으로 살면 우리는 성령께 인도함을 받는 삶이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도 성령에 매여 살 수 있다. 바울 사도에게 함께 하신 동일한 성령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1. 성령께서는 지금도 역사하신다

2. 성령께 붙들려 살라

3. 성령께서는 당신을 사용하신다

 

 

1. 성령께서는 지금도 역사하신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15,16장에서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게 되면 보혜사, 즉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장 16, 17절-

 

1)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2) '진리의 영이라'

3)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렇다. 사도행전 2장에서 실제 성령께서는 '역사적 강림Πεντηκοστή; The descent of the Holy Spirit'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시고 또 성령 받은 사도들과 성도들을 통해 역사를 펼쳐나가기 시작하셨다.

그때 그들은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이상한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복음 전도의 효과'와 인류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창세기 11장 1절-

복음 전도를 통해서 '세계를 하나로!' 통일케 하실 하나님의 목적이 담겨있었다.

 

그들은 성령 충만과 더불어 능력을 받았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능력을 받고" -사도행전 1장 8절-

하나님의 역사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자들에게 의해서 진행된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모든 자들에게 이와같은 성령의 강한 능력이 임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사도행전 2장 4절-

바로 그 능력받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며 또한 복음전도의 역사, 즉 선교의 역사를 이루어가신다.

그런데 이런 일이 그냥 일어난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들은 예수의 말씀에 순종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의 세례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1장 4,5절-

그들은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며 전심으로 기도했다.

거기에는 사도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따르던 많은 여인들, 예수의 모친 마리아, 예수의 동생들이 있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1장 14절-

그러니까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야 할 것은 성령께서는 지금도 복음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임하시며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기도의 영'이시다.

지금 교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복음의 말씀의 결핍과 기도 부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지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처럼 날뛰는 사람들로 인해 교회는 물론 사회적인 파장까지 불러온 현 시국을 바르게 직시해야 한다.

그러니까  성령께서는 지금도 말씀과 기도 속에서 나타나시고 능력으로 함께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나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라, 여기에 순종한 초대교회는 얼마나 힘이 있었던가!

그야말로 하나님의 파워 그 자체였다. 베드로와 열한 사도가 일어나서 온전히 성령에 매여 설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베드로는 외쳤다.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사도행전 2장 14절-

그의 설교 제목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라는 제목이었다.

그는 이 사건을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거라고 말하면서 복음 설교로 이끌어갔다.

1)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

2) 십자가에못 박아 죽였다

3)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를 살리셨다

4)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다

이렇게 외쳤을 때 그들은 회개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사도행전 2장 37절-

그날 3천 명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다.

 

바로 이 성령께서는 지금 21세기에도 먼저 믿는 우리들에게 함께 하시며 역사를 이루어 나가기를 기뻐하신다.

 

 

 

2. 성령께 붙들려 살라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께 붙들려 산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 보라. 그때는 우리서 안에 왕 노릇 하는 이가 따로 있었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 2장 2절-

이런 비참한 생활에서 우리가 벗어났다.

 

우리가 성령께 붙들린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성령의 인도하신 바가 될 것이다.

바로 사도들과 초대교회 집사들이 그러했다.

초대교회의 일곱 잡사 중 하나인 스데반 집사를 보라.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도 능력과 표적이 나타났다. 이미 교회 안에서 박해가 일어났다. 즉 율법주의자들과의 정면충돌이었다.

그들은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하나님과 모세를 모독하는 자'라고 올가미를 씌워 스데반은 그들에게 잡혀가서 공회 앞에 세웠다.

대제사장이 물었다. "이게 사실이냐?" -사도행전 7장 1절-

스데반은 이 기회를 통해서 입을 열었다. 해박한 지식으로 아브라함 때부터 모세와 출애굽 얘기로, 여호수아를 거쳐 다윗 얘기를 이어가며 설교를 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였던 조상들의 행동을 너희도 똑 같이 했다.

"의인이 오시리라고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예수)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사도행전 7장 52절-

이 말을 듣고 저들의 마음이 크게 찔렸으나 오히려 완악하여져서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였다.

그러나 스데반은 오히려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 보좌 우편에 서신 예수를 보며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이 났다.

이런 악한 일에는 사울(장차 바울)도 가담이 되어 있었다.

 

사도행전은 성령에 매여 활동하는 사도들과 집사들의 얘기로 이어진다. 사도행전에 다 기록되지 못했던 다른 사도들과 성도들도 성령 충만함을 받아 이와 같은 대열에서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성령에 매이게 되면 그대로 앉아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스데반 집사 순교 후로 교회는 큰 박해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의 뜻은 예루살렘에 '저희(우리)끼리만' 예수 믿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는 것이었다.

'박해'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마태복음 5장 12절-라고 하셨다.

 

흩어질 수밖에 없는 것도 성령의 역시였다. 결과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사도행전 8장 3,4절-

그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항상 순조롭게만 성령의 인도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박해로, 때로는 질병으로, 때로는 사업 실패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로 인해서 오히려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흩어졌던 자들 중에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표적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다.

그런데 가장 기억에 선명한 것은 에디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갈 때 성령께서는 급히 빌립을 파견하여 만나게 하신 장면이다.

그때 수레를 타고 그 내시가 읽고 있었던 성경은 구약 이사야 53장이었다.

빌립이 그에게 물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그러자 "전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찌 깨들을 수 있느냐!" -사도행전 8장 30,31절-

이때 빌립은 성경을 풀어서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복음을 전해주고 스레를 멈추게 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바울이 한 때는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려고 다녔지만 그가 예수를 만나고 성령 충만을 받은 다음에는 온전히 성령께 붙들여 살았다.

사도행전 얘기의 중심에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오직 성령에 붙들렸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룰 수가 있었다.

사실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말지 못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2절-

그러니까 만일 바울이 성령께 순종하지 않았더라면 그기 꿈에서도 그리던 로마에게 가서 복음 전하려던 것은 무산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위협을 무릅쓰고 나아갔을 때 바울의 마음에 소원을 주신 성령께서는 그 일을 이루셨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에 매이지 않는다면 인간적으로 하다가 자기 욕심, 자기 배를 위해 살다가 죽고 말 것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읽고 묵상하면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를 따르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3. 성령께서는 당신을 사용하신다

 

그때 그 성령께서는 오늘도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보면서 한탄을 하거나 절망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세살일수록 우리가 할 일이 있음을 깨달아 할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 즉 성령에 매일 때에 우리가 할 일을 바르게 알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 우리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만나게 하실 것이다.

 

사실 영적으로 볼 때 많은 영혼들이 신음하며 구조를 요청하고 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이것을 봐야 한다. 영의 눈이 열리면 이것이 보인다.

이들의 영혼이 구조를 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은 영적으로 예민한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의 몫이야!" 

이사야를 보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장 8절-

바로 당신이다. 바로 나다.

나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다가 이것을 깨달았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할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마태복음 9장 37, 38절-

기도했더니 성령께서는 "네가 가라!" 이렇게 강령하게 역사하셨다.

그러니까 내 개인으로 봐도 '성령께 매여' 오늘날까지 복음을 전하러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내 인간적인 생각에 의해서 결정하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생각 또는 내 상식이나 정보만 가지고 무엇을 결정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하나님께 여쭤봐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지 못한 일을 계획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알고 보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고 더 정확하시다.

바울이 3차 선교여행 때 무시아라고 하는 곳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궁리를 많이 했다.

그런데 그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허락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이 답답했을 것이다.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을 때 밤에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 환상에서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청하기를,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장 9절-

그때서야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마게도냐 사역을 방향을 마게도냐로 틀게 되었다.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구체적으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말씀을 묵상하고 또한 기도해야 한다.

 

 

 

-나가는 말-

 

성령께서는 성령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셨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신다. 심지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가 하나님이시지만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시며 기도하셨다." -마태복음 4장 1,2절-

그래서 거뜬히 마귀의 유혹을 물리셨을 뿐만 아니라 후에는 십자가까지도 능히 감당하시고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셨다.

그분 예수께서 오늘날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 역시도 성령행전의 한 페이지를 쓰고 가야 할 존재로 부름을 받았다.

그냥 맹숭맹숭한 상태에서 전도가 이루어지는 않는다.

기도와 복음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한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에베소서 6장 17018절-

이렇게 될 때에 우리는 능히 마귀의 간계를 물리치며 담대히 예수의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다.

 

성령행전의 역사에 동참하라. 우리가 기도한다면 반드시 귀하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될 것이다.

성령행전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 중에 한 사람, 즉 내가 성령에 매여 산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만큼 크게 확장이 될 것이다.

 

www.youtube.com/watch?v=5cYa-zglFAk

바울의 4차 선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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