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Chúa toàn năng ; Almighty God
-창세기 1장 1절-
- 들어가는 말 -
예수를 안 뒤로 눈만 뜨면 전능자의 솜씨가 놀랍기만 하고 새롭게만 느껴진다. 행복이 따로 없다.
그래서 늘 찬송한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찬송가 79장-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를 외면하며 헛된 일에 몰두하며 살까?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시편2편 1절-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거나 놓치고 산다. 그러니 만큼 그들의 인생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나도 예수를 몰랐더라면 그렇게 살다가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 뻔한다. 마땅히 알아야 할 분을 알고 섬겨야 할 분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거늘 어떻게 하다가 그분을 잃어버리고 허덕이며 집 떠난 탕자처럼 되었을까!
이러한 인간들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직접계시를 통해서 확실하게 보여주시고 알려주셨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다.
성경이 아니면 우리는 흑암 속에 허덕이다가 가야 하는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인생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 인생들의 눈을 뜨게 하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여기서부터 출발되는 것이 아름다운 기독교 신앙이다. 나는 바로 이 사실과 더불어 성경에 나타난 모든 진리를 어김없이 믿고 여과 없이 믿는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았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장 1절-
아브라함은 기꺼히 순종했다.
하나님은 그 후에 다시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폐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창세기 15장 1-4절-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세기 15장 6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 아내는 나이가 많은 탓에 자녀를 갖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에 빠져서 그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그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다.
그 후 13년 동안이나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아브라함은 매우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나타나셨다.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니라 - I am the Almighty God." -창세기 17장 1절-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저지른 큰 실수까지도 하나님의 약속을 뒤집지는 못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세기 17장 1절-
그러신 후에 비로소 그 약속을 또 다시 확인시켜 주셨다. 그래서 백 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다. 아브라함은 생리가 끝난 지 오래된 사라에게서 임신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경험했다.
자, 우리 말 '사도신경 The Apostles' Crees'에는 맨 먼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로 되어 있다.
만일 이 사실이 당신의 마음에 믿어진다면 하나님이 하신 일 모두를 믿을 것이며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적과 예언을 믿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을 받아들여 믿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전능Almighty이란 말은 '불가능이 없으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과연 그런 분이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인간은 아니다. 역사 속의 왕, 권력자, 큰 용사로 용맹을 떨쳤던 자들도 다 제한적이며 유한한 존재로 살다가 죽었다.
인간들이 숭배해 왔던 우상이나 귀신 또는 잡신들 역시 아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연약함을 노리고 늘 속임수를 쓰며 어리석은 자들 속에서 왕 노릇을 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온 우주에서 오직 한 분만이 전능한신 하나님 The Only Almighty God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상실한 이후로 이것을 망각해 버리고 그분을 멀리 떠나버린 인간들에게 하나님 스스로가 계시로 보여주셨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전능자가 누구신가를 깨닫고 그 눈으로 이 우주와 만물을 바라볼 때에 마음의 질서가 바르게 설 것이다.
1. 그분은 창조자이시다.
2. 그분은 우리 아버지이시다.
3.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1. 그분은 창조자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를 말하기 전에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그게 뭐냐고요?
그것은 다름이 아닌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구태여 창조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의심 없이 하나님의 창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심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가운데 낳아주신 부모를 향해 "이 분들이 내 부모 맞나?"하는 이가 없듯이 말이다.
그러나 인간 속에 들어 온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멀리하게 만들어버렸고 또한 오랜 역사 속에서 그분을 상실하게 만들어버렸다. 이것 또한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인간에 먼저 사랑으로 찾아오시며 손을 내미시는 분이 또한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 후에 모세를 통해서 특별 계시의 책을 쓰게 하셨다. 바로 이것이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다.
나는 성경을 믿는다. 성경이 있기 전에도 구약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우러러 보았다.
욥기 성경에도 창세기의 인물로 추정이 되는데 하나님을 31번이나 '전능자'라고 일컬었다.
그 전능자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창세기 1장 1절을 베토벤 교향곡 서막처럼 크게 울려주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전능자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인간만큼 밖에 못하다거나 비슷한 정도의 분이라면 우리가 그분을 믿고 따를 수 있는가!
그러나 그분은 인간의 상상을 훨씬 초월해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신 전능자이시다.
그분이 오늘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처녀의 몸에서 나게 하셨다.
유有에서 유有가 아니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역사상 남자 없이 임신을 가능케 하신 사건이 딱 한번 있다.
그것이 바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잉태된 얘기'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인간들은 제한된 범위에서 생각하고 활동하며 때로는 한없이 잘못된 이념에 사로잡혀서 오히려 바보짓을 하고 산다.
이런 인간이 감히 자기 자신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죄로 인해 어두워진 인간의 이성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 계시가 필요하다.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 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의 창조는 저절로 믿어진다. 이것이 또한 신비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게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라."-스바냐 3장 16,17절-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에 비해 벌레만도 못하다. 아니 티끌만도 못하다. 오늘날로 치자면 바이러스만도 못하다.
그런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아니 심지어 자기 하나님이라고 하는 어리석기 짝 없는 자도 있고, 또한 자기가 예수라고 말하는 사악한 양심을 가지고 마귀 짓을 하는 자도 있다.
자, 보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 도께서는 이런 인간들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는 심지어 벌레 취급을 받으셨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시편 22편 6절-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찬송가 143장 1절-
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장 2절-
우리는 늘 궁금하게 생각했다. "이 어마어마하고 아름답고 질서 있는 우주를 누가 만들었을까!"
그런데 성경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이것은 하나님의 선포이자, 엄청난 이 세상 모든 신화들과 거짓된 창조 얘기들의 입을 봉해버리는 유일한 말씀이다.
이 계시를 믿고 보니 이것이 진리였고 또 우리 마음의 암흑이 사라지면서 밝은 빛이 들어와 마음의 질서를 재편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이며 그분이 창조자가 맞는구나!" 하고 저절로 박수가 나온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 40장 26절-
2. 그분이 우리 아버지이시다
낳아준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모든 만물이 처음 있게 하신 창조자가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가 없었을 때 그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계셨다. 그분은 그 능력으로 우주와 만물을 지으셨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이사야 63절 16절-
맞다. 그러면 우리는 '아멘!'이라고 해야 한다.
이때의 아멘 Amen이란 '내가 그렇게 믿습니다.'가 된다.
우리는 그분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예수님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태복음 6장 9절-라고 부르며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가 죽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나의 아버지', 또는 ;우리 아버지여!' 하면 될 것을... 그렇게도 입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신기할 뿐이다.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바보가 세상에는 많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히려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우상에게 복을 빌거나 죽은 조상이 복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인간의 무지는 한없이 무서운 죄악의 자리에까지 떨어지게 만들어버렸다.
제 정신이 아니면서 제 정신인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영의 눈을 떠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이것을 깨우쳐 준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이런 아름다운 교회의 전통으로 이어 내려오며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폐지시킨 교회와 교단이 있다.
또한 사도신경에서 '본디오 빌라도'라는 말은 빼자는 주의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도신경은 100% 성경에 있는 내용 그대로를 끌어다가 '우리가 꼭 믿어야 할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이 고백이 있어야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라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사도신경 서두에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데서부터 우리의 신앙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얘기'는 비단 어떤 개인에게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도 아니다.
이것은 전 인류를 두고 하는 얘기라고 보면 된다.
아버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둘째가 말했다.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누가복음 15장 12절-
그 아들은 아버지를 멀리 떠나서 허랑방탕하여 모든 가진 것을 탕진해버리고 말았다.
그는 굶어 죽기가 싫어서 돼지 치는 곳에 가서 종일 일을 했다. 처량한 신세가 한탄해야 했다.
'쥐엄 열매'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이 아들은 저절로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 때는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된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누가복음 15장 17절-
아버지께 가서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가서 "품꾼의 하나로 써 주세요."라고 말하리라 결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야 할 인생이다. 다름 아닌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인생이다.
다른 길이 없다. 계속 주엄열매만 실컷 주워 먹다가 거기서 실족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생각을 바꿀 것인가!
지금 지구촌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집 나간 탕자'로 살아가고 있다.
지은 죄가 많은 인간들이라고 할지라도 '아버지 집으로!', '아버지 집으로!'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면 살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둘째에게 그 아버지 "이런 못된 놈, 들어오지 말고 나가!"하고 다시 쫓아냈던가!
아니다. 둘째가 집을 나간 날부터 시작해서 돌아오는 날까지 대문 밖에서 서서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하면서 기다리셨다. 그러다가 아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시고 달려가서 얼싸안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왕자처럼 대우를 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이렇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리라." -누가복음 15장 10절-
하나님은 매정한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아버지시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멀리 떠났을지라도 독생자의 사랑을 보여주시며 도로 찾으셨다.
이 시대에 우리는 이런 고마우신 아버지를 알게 된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행복인지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 육신으로 눈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분을 본 것처럼 알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더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하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장 18절-
예수님은 이런 말씀으로 그 제자 빌립을 책망하셨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장 9절-
우리는 예수를 믿은 후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다. 이것은 큰 영광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자들을 행해 관심을 가지고 가야 한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 목자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가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전해줘야 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장 12절-
3. 그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만이 전능하신 분이시며 모든 만물의 아버지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분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가 둘, 셋 이상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낳아 준 아버지가 한 명이듯이 만물을 만드신 아버지는 오직 한 분이시다.
그래서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 출애굽기 20장 3절-
굉장히 엄격한 명령이다. 그리고 십계명의 첫 계명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것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한다.
반대로 이것에 성공하면 모든 것에 성공한다.
당신은 이 계명을 믿고 순종하는가! 만일 '아멘!'하고 대답한다면 당신의 인생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나아가서 당신의 후손들까지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유일신 신앙을 가진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다.
이슬람교는 일신주의 신앙이다. 그들은 알라를 단일신으로 섬긴다. 그러면서도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 유일신 신앙과 다를 바 없다는 듯이 자기들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이 만든 코란에서 창조 얘기와 아브라함 얘기 등이 나오지만 일부 성경을 짜깁기 해서 자신들이 경전을 만들었음이 충분히 엿보일 뿐이다.
유대교도 마찬가지다. 유일신 신앙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삼위일체 신앙으로 접근해 가지 못하고 오직 구약의 하나님만 찾고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알고 보면 이들도 오히려 단일신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참된 신앙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신앙으로 오직 한 분이시되 그 안에 삼위로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
이 삼위께서는 서로 동하시며 하나를 이루신다. 이 삼위 하나님을 인간의 유한한 이성으로 다 이해하려고 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믿고 보면 진리인 것을 알게 된다.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되지 않지만 삼위로 계신 하나님이심을 다양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 신비를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성경은 이것을 보여주며 그분께서 하신 일들이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꾸 인간 이성 안으로 끌어들여서 이해하려고 하면 더 우습게 되고 만다.
성경을 늘 읽으며 그분이 누구신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하나님 스스로가 하나님의 존재를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를 '우리가'라는 표현을 쓰시며 처름부터 삼위로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첼렘,image)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데무트, 닮음)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세기 1장 26절-
그분의 이름은 때로는 복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엘로힘; אלהים'이라는 이름인데 복수로 쓰인다.
성경 전체에 이 이름이 2500회 이상이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유일하신 한 분이시다. 그래서 '유일신; 唯一神'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도 한 분뿐이시니 그분이 바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현대인의 성경)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디모데전서 1장 17절-
그렇다. 유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삼위로 계시며 영원한 왕이시며 또한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또한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는 늘 그분께 경배하며 찬양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 아름을 모르고 헛된 지만 하다가 죽으면 얼마나 불쌍한 인간인가!
우리는 그분을 알 뿐만 아니라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편 91편 14절-
우리는 다니엘처럼 그분께 기도하며 살고 그분을 100% 의지하며 신뢰해야 한다.
우리는 늘 그 하나님 아버지를 믿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경배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 시편 100편 3,4절-
이것이 우리의 삶의 본분이며 우리의 행복임을 알고 살아야 한다.
다른 길에서 삶의 본질을 찾으려 하고 또 행복을 찾으려 한다며 끝내는 바보짓만 하다가 영원한 멸망의 늪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신다. 천지를 지으신 그분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통해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고 또한 다시 오실 재림 주가 되실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우리에게 약속의 성령을 보내주셔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며 그의 역사를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고마우신 하나님을 행하여 '할렐루야!'로 화답하며 살아가야 한다."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
- 나가는 말 -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으며 또한 아버지로 믿고 유일하신 분으로 받고 믿고 따른다.
이런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엄청난 구속의 역사를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셨다.
벌레나 티끌 또는 바이러스만도 못한 존재일 수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또 가장 존귀하게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주 안에 있는 주인공처럼 활보하게 하시며 눈동자같이 아끼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에 오히려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니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장 4,5절-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늘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며 또한 그분의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 늘 노래하며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아가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의 은총을 입혀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그분을 위해 이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며 살아가야 한다.
억지가 아니라 너무 기쁘고 좋아서 드리는 헌신으로써 말이다.
전능하신 성부, 성자, 성령을 왕으로 모시고 살자. 그러면 우리 인생은 성공이다.
오늘의 어떤 문제가 당신을 괴롭게 만들고 있는가!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분은 전능자이시다. 당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친히 아버지가 되신다. 그러기에 그분께 아뢰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아뢰면 다 해결해 주신다.
걱정하지 말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시편 68편 19절-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유이하신 하나님으로, 아버지로 믿고 산다. 또한 아들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분만 생각하고 그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지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주님의 얼굴을 뵈올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망하며 살아가자.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온 세상에 알리기를 위해서 힘써서 전도하자.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ㅁ빛나는 새벽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 되시며 나 외로을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찬송가 88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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