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저들은 예수를 믿지 못할까?
Tại sao những người đó không thể tin vào Chúa Giê-xu?
고린도후서 4장 1-18절
- 들어가는 말 -
우리에게는 고민이 있다. 늘 안타까움을 가지고 전도傳道의 노력을 해 보지만 아직까지도 예수께로 돌아오지 않는 영혼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관심도 없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늘 고민거리가 있다면 믿지 아니한 영혼들이 주 예수 앞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고민거리라도 말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의 관심이자 곧 우리의 사명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디모데전서 2장 4절-
사실 영혼구원에 대하 관심이 없으면 고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고민이 있다.
"제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도 어려운데 무슨 전도입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남의 집 화재를 진압하려고 열심히 물을 퍼다 나르다 보면 내 집에 붙은 불은 저절로 지꺼져버린다."
하나님은 복음전도라는 수단을 통해서 믿지 안이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렇다면 전도자가 필요하다.
전도자는 즉 복음의 일꾼이다.
우리는 먼저 믿게 되었다. 먼저 복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믿은 우리들은 아직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향한 전도의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의 크리스천들이 매우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비치어지고 있어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사단은 바로 그것을 노리고 있다. "더 이기적이 되어라. 잘한다 잘해." 하며 말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신음에 빠졌는데 크리스천들이 오히려 확산을 부축이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이 그랬고 또 한국이 그랬다. 그 수효가 지극히 적은 수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같이 통시적으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시대에는 이런 행동들이 우리의 전도활동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냉정한 관찰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때로는 왜 저들이 믿지 아니하는가!
의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이유가 있다. 조금만 관심있게 관찰해 본다면 그 이유는 자명해질 것이다.
1. 전하는 자가 없어서이다
2. 악취 때문이다
3. 세상의 신이 연막을 쳤기 때문이다
1. 전하는 자가 없어서이다
과거에 그러했다. 대한민국에는 정말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렇다고 하나님을 원망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 살았기 때문이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에스겔 18장 4절-
이에 대해서는 다른 변명이 쓸 데가 없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났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33장 19절-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이 자비חֵסֵד(헤세드)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자비를 우리가 받았다. 이 자비가 구체적으로 '십자가의 사랑과 용서'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쁜 소식을 모르고 죄악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한 마디로 몰라서 못 믿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하나님의 책임인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바로 먼저 믿는 우리들이 이 소식을 알려야 함을 말씀하셨다.
"말로 악인에게 알려서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으리라." -에스겔 3장 18절-
전하지 않으면 저들은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저들은 그 죄의 값으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책임은 전도하는 것이다. 하여간 우리는 눈만 떠면 전도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가! 예수께서는 눈만 떠면 그렇게 하셨다.
새벽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예수께서는 기도가 끝나자마자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서 왔노라." -마가복음 1장 38절-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 16장 15절-
그러니까 마땅히 그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할 저들에게 먼저 믿는 우리들이 가서 전해야 한다.
바울 사도도 이런 노력을 밤낮으로 기울이며 일생을 살았다. 그는 이방인의 전도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늘 마음에 고민이 있었다. "이방인들은 이렇게 믿고 돌아오건만 왜 내 동족들은 받아들이지 않는가!"
바울은 자기 동족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좋다고 할 만큼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
"내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로마서 9장 3절-
그러니까 자기 민족이 아직도 율법주의에 빠져 있으면서 복음의 빛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매우 아프고 쓰렸던 것이다.
우리는 전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를 위해서, 또는 선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전파하는 이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로마서 10장 14절-
나는 이것을 알기에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너무나 게으르다. 정말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책망을 받을 것 같다.
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복음을 듣는 자는 그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있다.
과거에 이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몰라서 못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믿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즐거워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니까 전하는 이가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장 8절-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마태복음 9장 37, 38절-
그러므로 "우리는 가든지 보내든지" 이 사명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2. 악취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었다면 그 자체로 이미 '그리스도의 향기The fragrance of Christ'가 된 것이다.
"우리는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린도후서 2장 15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무화과 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 13절-
바로 우리는 향기를 토하는 백합화처럼, 포도나무처럼 '향기 인생'으로 부름을 받았다.
따라서 우리가 가는 곳에 예수 향기가 날려야 한다.
향기가 나면 어떻게 될까! 벌과 나비가 날아든다.
봄이 되었다. 꽃의 향기가 진할수록 벌은 2Km에서 4Km를 비행해서 꿀을 빨려고 날아든다.
이것은 자연현상이다. 우리의 전도도 이런 능력이 있다. 그런데 예수 향기는 어떻게 퍼지는 것일까?
바로 '내가 가는 곳'이다.
"우리는 구원을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니"
얼마나 아름다운 메시지인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향기나는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지 않는 자들도 우리를 알아본다.
"예수 믿는 사람이에요?"
그렇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 그리고 매너, 행동 하나하나에서 나타나지게 되어 있다.
만일 우리의 행실에서 이런 향기가 난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 마음에 "흠흠~~!! 와~~!! 어디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지!"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물론 그래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우리에게 '향기'라는 표현 대신 '소금과 빛'으로 표현재 주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3-16절-
그런데 오늘의 교회들이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는가!
특히 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직분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리고 내 스스로에게도 자책을 한다.
세상에는 악취가 난다. 정말이다.
그 악취가 모두 탐욕에서 비롯된다.
일부 교회라고만 생각하고 우리 교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거룩한 공회'를 믿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 교회가 세습을 했고, 투기를 했고, 또 불투명하게 재정을 운영했거나 엄청난 부동산을 사 들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세상의 눈에 전염병 방역에 앞장을 서지 않고 오히려 방해하는 모습으로 비치어졌다.
그리고 "터졌다 하면 교회 특히 목사, 교회 그리고.... 정말 징글징글하다."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젓는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정말 아이러니다.
교회의 이기주의, 특히 개교회주의가 낳은 병폐이다. 세상 기업 운영 방식과 뭐가 다른가!
이들의 특징을 보면 성경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가르치며 복음의 참된 맥을 따라 건전한 목회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나 구변이 좋던지 여기에 매료되어버리는 한국교인들이 많다.
그러고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세뇌시켜서 몰고 간다.
그런데 알아야 한다. "악취가 나는 곳에 날파리가 날아든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것을 비판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전도의 문을 닫게 만드는 일', 이것이 큰 문제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야 할 목사나 교인들이 그렇게 안 산 결과물이 고스란히 사회 속에 악취로 나타났다.
방사물 폐기물처럼 어디다가 버려야 할지도 모르는 형국이 되었다.
십자가 밑에 나가야 할 우리가 광화문 앞에 나간 사람들이나 동조하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면 한국 교회는 한참이나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 아닐까!
이 결과 안 믿는 사람들이 더 마음 문을 꼭꼭 닫아버렸다.
야곱의 딸 디나가 강간을 당했다. 이것이 때문에 큰 파문이 일어났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몰과 그 아들 세겜과 조건부 약조를 맺었다.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창세기 34장 15절-이라는 조건을 하몰이 수락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몰과 세겜의 자식들이 다 할례를 받았지만 오히려 야곱의 아들들은 그 틈을 타서 하몰과 세겜을 쳐 죽이고 다말을 집으로 데려왔다.
이 때문에 야곱은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면서 그 아들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창세기 34장 30절-
한바터면 이 일로 인해 큰 재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세상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애 할 족장의 가문이 다 무너질 뻔했다.
그러나 야곱은 그때 지체 없이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창세기 35장 3절-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섰다. 그들은 벧엘로 올라가서 진정한 희생 제사를 드렸다. 그 후로 그 가정이 회복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십자가 밑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 외에는 다른 비결이 없다.
교회가 다시 향기 나는 교회, 향기나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해야만 전도할 수 있다.
정말 향기가 나면 "누가 이를 감당하리요." -고린도후서 2장 16절-
가시밭에 백합화처럼 더더 향기는 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3. 세상의 신이 연막을 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신들이 많다. 그 신들은 모두 인간이 고안해서 만들어 낸 거짓된 신이다.
처음부터 거짓말했던 마귀의 소산물들이다.
그러니 만큼 이것들은 끊임없이 불신자들 속에서 괴롭히며 군림을 해 왔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이 악의 세력들이 발악을 하기도 하고 온갖 장애물과 연막을 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알고 보면 망하기로 작정된 자들에게는 이것들이 왕 노릇을 하며 영혼을 사로잡고 있다.
우리는 영의 눈을 떠서 이런 것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났다고 하는 사람도 역시 여기에 매여서 평생 헛된 인생을 살다가 가는 사람도 많다.
바로 이 어둠의 세력인 세상의 신들은 권력과 재물을 쥐고 광명의 천사인 것처럼 가장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까지 파고들어 기독교 신자인 거처럼 행세하며 많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고 괴롭히기도 하며 권력과 세력을 떨치기도 한다.
이런 자들에게는 복음이 기리어져 있다. 목사가 설교를 해도 윤리적으로, 도덕적인 잣대로 평가를 할 뿐 복음이 마음에 들어갈 자리가 없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고린도후서 4장 3절-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기성교회 신자라고 하고 심지어 장로, 권사, 집사 등 직분을 받았을지라도 참된 복음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가짜, 즉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목사, 거짓 선생들에게는 얼른 마음을 준다.
'망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진리로 들리고 마음에 감정을 크게 자극하여 눈물 콧물까지 쏟으면서 거기에 마음을 다 내어주고 나중에는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재산까지 갖다 바친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린도후서 11장 4절-
이렇게 이 세상 신이 하나의 '마귀의 속임수'로 나타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목사의 참된 가르침은 귀에 안 들어오다가도 그런 사기꾼들의 말에는 귀가 솔깃해서 마음을 열어서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이단과 사이비 종교로 인한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예수의 복음을 못 믿게 하려고 학교에서는 진화론이 진리나 되는 것처럼 가르친다.
그리고 우상숭배를 자연스럽게 대물림 한다. 어렸을 때부터 돈으로 치장해서 지식교육 위주로 가르치면 '지식 만능, 과학 만능'인 줄로 착각하며 자란다.
그래서 어떤 것이 되었든지 간에 더러운 욕심이 눈을 가리게 되면 복음의 빛을 외면해 버리고 '혼미한 상태'에서 일생을 헛되게 보내고 만다.
"그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의 광체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고린도후서 4장 4절-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 교육, 즉 성경 진리의 참된 가르침'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을 가정에서 부모가 해야 할 아주 중요한 몫이다.
주일학교 교육이 중요하지만 복음의 광채가 가정에서부터 들어오도록 한다면 이 보다도 더 아름다운 인생은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 바른 복음의 신앙의 교육을 받아야 거짓된 진화론이나, 무신론적 사고에 빠지지 않는다.
다 이유가 있어서 못 믿겠지만 이 세상의 신은 불신자들 가운에서 왕 노릇 하다가 주님이 재림할 때에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무저갱에 던져지게 되고 지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써...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 요한계시록 20장 2,3절-
- 나가는 말 -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기에 오늘 복음의 빛을 받아서 행복한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살아간다.
우리 주변을 외면하고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구원받아야 할 인생들이 많은데 그들이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 죽어 가는 자 구원해 내야 우리의 본분을 다 하리니" -찬송가 498장 3절-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 하기 전에는 우리가 안심할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내 걱정'만 하고 살지 말자.
예수님의 관심이 내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이 예수님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장 10절-
이렇게만 산다면 우리의 인생은 후회가 없을 것이다.
구원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믿더라." -사도행전 13장 48절-
우리가 할 일은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는 일이다.
구원과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확실성이다.
이 일에 쓰임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생명을 구원하는 곳으로 가자!
우리가 전한다 할지라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듣는 자는 자는 살아나리라. Those who believe will live." -요한복음 5장 24절-
살리는 것은 영이다. 우리가 어떻게 다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복음을 듣게 될 기회를 얻을 것이며 또한 성령께서 마음이 열게 하실 것이며 그래서 복음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며 확신에 거하게 될 것이다.
고로 우리는 나는 낙심하지 않는다. 저들이 믿고 안 믿고는 나의 몫이 아니다. 나의 몫은 열심을 품고 사랑으로 다가가서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다.
그리고 나 자신부터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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