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참 믿음

좁은길을 걸으며 2021. 1. 30. 13:28

참 믿음 đức tin thật

-로마서 1장 16,17절-

 

 

-들어가는 말-

 

"나는 믿습니다.Tôi tin."에서 "나는 믿습니다. Tôi tin."로 끝나는 유명한 고백이 있다. 바로 매주일 예배 시에 드리는 '사도신경使徒信經, 라틴어: Symbolum Apostolicum, 영어 : The Apostles' Creed, 베트남어 : Tín điều các Sứ đồ'이라는 신앙고백이다.

우리는 사도신경의 골격에 따라 우리의 신앙을 입증하고 있다. 이단들은 이 사도신경을 거부한다.

우리가 참된 신앙, 즉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것을 이로써 고백하고 입증하는 셈이다.

다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가 다같이 사도신경을 통해서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데 두 곳에 서로 상충되는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는,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내용이다. 이것을 거지고 '연옥설'의 근거로 삼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반대한다. 개신교회는 연옥이 없다는 것을 아주 명백히 하면서, 중간 상태(연옥과 유아 림보 등)는 참 신자들이 경험할 하늘 상태와 불신자들의 영혼이 미리 경험할 지옥 상태 이 두 상태뿐이라는 믿고 있다.

또 하나는, '거룩한 공화'라는 용어가 '가톨릭'이란 사용되고 있는 점이다. 그러나 '가톨릭'이란 말은  헬라어 두 단어인 kata와 holos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단어로 '보편적'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영어로 사용할 때는 대문자 'Catholic'이 아닌 소문자 'catholic'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개신교회가 말하는 신앙고백의 원리대로 믿는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 틀림없다.

성경의 바른 해석의 원리에 입각하여 믿는 신앙과 그 고백이 있는 곳에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굳게 믿고 살아가게 한다. 이런 면에서 칼빈Jean Calvin 선생은 사도신경의 원리를 따라 '기독교강요 基督敎綱要, 라틴어: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라는 위대한 책을 저술하여 우리에게 선물했다.

나는 이 책을 읽어보았다.

 

우리는 '참 믿음'에 대해서 평생 강조를 하며 살아야 한다. 그 이유가 있다. 

바른 기독교 신앙이 아닌 것을 마치 기독교 신앙인 것처럼 유사품이 많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포장지는 기독교 신앙인데 내용에 있어서는 이단과 사이비 원리를 가지고 있는 유사종교가 많다.

다음은 '이신 칭의 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를 강조하는 듯했다가 결국 '율법주의'로 전락되어 있는 자들이 많다.

그리고 사회가 혼란한 틈을 노리고 기성을 부리는 신비주의와 이상한 종말론을 가지고 혹세무민 하거나 세뇌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게 만드는 집단들이 성행한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다. 그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16절-

 

그런데 참 믿음이 아닌 것을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혼돈하는 일들이 세상에는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예수 처음 믿을 때의 신앙을 잘 붙고 가는 것이 참 믿음이며 온전한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복잡하지 않다. 단순하다.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밖에 없네."

이렇게 믿고 따르고 즐거워하는 신앙이 참 믿음이다.

 

 

 

1.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2. 참 믿음은 약속에서 비롯된다

3.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

 

 

1.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내 가 요즘 우리 학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다가  한 명 한 명 지명하여 "너, 진짜 예수를 믿니?"라고 물었다. "아니요. 아직요."라고 대답을 했다.

나는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그 순간 진리의 빛이 내 마음에 비치는 느낌을 받았다. "기다려라."

그렇다. 지금 그들이 "아니요." 했지만 '반신반의'하는 눈빛이 분명해 보였다. 

'반신반의'는 참 믿음이 아니다. 그러나 여지가 있다.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그들 심령 속에 임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 호소하는 마음으로 더 열렬하게 복음을 전했다. 이때 나는 예수님의 족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누구이며 또 오늘 우리는 누구인가? 아브라함 위로 위로 거슬러서 올라가며 누가 있는가?

아담이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계셨다.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 이야기하는 가정에서 그 하나님이 '인류를 향한 구원 계획'을 하셨다.

그 계획 속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오늘 아브라함처럼 '예수 믿는 나'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그 구원 계획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이 선물을 주시려고 지금 우리를 부르시고 이 복음, 즉 굿 뉴스를 듣게 하셨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갑자기 십자가 이야기 나왔을 때 전하는 내 가슴이 뭉클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모습을 본 학생들에 마음에 성령이 임하심을 느꼈다. 한 명 한 명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이제 진짜 믿습니다."

그들의 얼굴 빛이 달라졌다.

 

난 여기서 느꼈다. 하나님은 구원 주시고자 하는 자들을 부르신다. 나는 먼저 그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 속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을 초청했다.

다음에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했다. 분명히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들을 기회를 주신다.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5장 25절 - 이 말씀은 장례식에만 하는 말씀이 아니다. "듣는 자는 지금 살아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믿음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 선물이라." -에베소서 2장 8절-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선물을 주신다. 그 선물이 바로 나의 믿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이 먼저 '믿음'이라는 길을 열어주셨고 나에게 거기로 들어가게 하셨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들 역시도 골로새교회처럼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해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 3장 16절-

교호들이 십자가 복음에 충실할 때에 사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닌 세상 이야기를 갖다가 결합시키고 적당히 적당히 할 때에 마귀는 어느새 알고 교회들을 비웃는 것 아닐까!

 

 

2. 참 믿음은 약속에서 비롯된다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는 일에 있어서도 신실하시다.

우리의 믿음을 강조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먼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대단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다. 대단하다. 그러나 그가 대단해지게 된 것을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믿음이 중요하지만 약속보다 앞서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굳게 서야 한다.

여기 애들은 내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이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한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만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다면 내가 여기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낯선 곳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이 나를 담대하게 만들었다.

내가 먹고 살 것 준비해 가지고 온 것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약속은 있었다.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도 있었다.

 

오늘 날도 하나님은 야속 가운데서 일하신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 켜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라디아서 3장 16절-

하나님은 그 약속 가운데 오늘날 '나의 구원'까지 성취하셨다.

예수는 그 약속을 따라오셨다. 인류는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때가 차매" 그가 오셨다.

그러니까 성경은 약속의 책이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것도 약속이다. 우리는 그 약속이 이뤄질 것을 믿는다.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사도신경-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에게 오늘날 그 약속이 이루어졌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신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야 한다. 가끔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로마서 4장 19-22절-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하신 주 나의 구주!"

 

이제 우리는 약속을 믿고 굳게 서야 한다. 한 때는 낙심하고 절망하였을지라도 이제 다시 약속을 믿고 기도하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시는 여호와시다. 우리는 그분께 기도해야 한다. 그 기도는 괜히 한 기도가 아닐 것이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아 33장 2-3절-

 

 

3.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

 

참 믿음이란 '바라보는 것', 즉 '주목'하면 되는 일이다. "바라보는 자마다 살리라." -민수기 21장 8- 했으면 바라보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떤 이들은 바라보지 않았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다 불뱀에 물려서 죽었다.

그러나 "바라보는 자는 다 살더라." -민수기 21장 9절-

복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있다. 문제는 쳐다보면 목이 부러질까 봐 미리 걱정하는 사람처럼 '목이 곧은' 데에 있다.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신명기 9장 13절-

 

예수 믿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못 믿는다. 시험 볼 때 어려운 문제는 맞추고 너무 쉬운 문제는 틀렸다?

그것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나중에 가서 예수 안 믿는 것에 대해 별이별 핑계가 다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 때문에....", "그때는 너무 바빠서...", "전해 준 사람이 없어서...." 등

 

요한복음은 그 핵심이 '영생'을 말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하는 책이기도 하다.

요한이 바로 민수기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믿음'에 대입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예수 믿는 것은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를 바라보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4,15절-

아무튼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를 바라보기만 산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편 123편 2절-

 

바디매오는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예수를 향해 외쳤다.

예수의 제자들은 "여보게, 조용히 하게! 선생님이 지나가신다네."

그러나 그 큰 소리로 예수를 불렀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 마가복음 10장 48절 -

그가 예수를 바라봤을 때 그 자리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우리는 날마다 참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예수만 바라보야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1장 2절-

www.youtube.com/watch?v=mhLOWUz1oOI

 

 

 

- 나가는 말-

 

나는 알았다. 우리 시대에 예수를 눈으로 보고 믿는 사람은 없다. 눈으로 보고 믿는다 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예수를 인간적으로, 또는 육신으로 알아서는 안 된다. 복음을 통해서 그때 오셨던 '십자가의 예수'를 눈으로 본 것 이상으로 믿는다. '복음 진리의 깨달음'이 없이 지금 예수님이 나타난다 해도 그 사람은 예수를 믿을 수 없다.

예수가 세상에 계실 때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예수를 대적하며 비난했는지를 기억해 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장 29절-

 

나는 확실히 믿는다. 나는 예수를 직접 만나지 않았다. 그날이 오면 직접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고 들은 것 이상으로 믿고 확신에 거하며 살고 있다. 예수께서 승천 이후에 믿는 모든 크리스천들은 모두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장 8,9절-

내 가슴에는 예수를 늘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또 주 예수를 기뻐하며 만족한다. 거짓된 믿음에는 이런 것이 없다.

 

내 가슴에는 참 믿음이 있는가!

당신이 진심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크리스천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자격이 있으며 또한 '의인'이 된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로마서 1장 17절-

내가 의롭게 살아서가 아니라, 의롭다고 여겨주셨기 때문에 의인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날 넘은 사람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항상 예수께 감사하고 예수를 닮아가고 자라 가는 신자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

바울은 이미 의인이 되었다. 그는 겸손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 1장 15절-

그리스도께서 입혀주신 의의 옷이 아니었더면 우리는 꼼짝없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허덕이다가 지옥의 멸망에 처했을 우리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실 참 믿음은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한다. 왜냐하면 참 믿음은 겸손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더욱 율법을 더 잘 지키게 만들어주고 아름다운 행실로 세상의 빛이 되게 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은 여전히 우리는 좁은 길을 걸아가는 사람들이다.

예수만 바라보지 않으면 헛발 딛기 쉬운 우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만 바라보고 걸어간다면 넘어질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대충대충 사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로마서 12장 11절-

 

마지막으로 참 믿음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믿음의 길에는 불시험과 고난이 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1장 7절-

"그러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가복음 13장 13절-

 

지금은 예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능력을 행하신다. 그리고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까워졌다.

지금 세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참 믿음'을 가진 자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

겠느냐?" -누가복음 18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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