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좁은길을 걸으며 2021. 1. 10. 01:42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Hãy lắng nghe Chúa

열왕기상 19장 9절-18절

 

 

우리는 하루하루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인해 진짜 들어야 할 음성을 못 듣고 지나치고 있을 때가 많다.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관심의 대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다짐했었던 신자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되돌아보면 너무나 세상의 소리에 집착하며 거기에 목이 매어 허둥지둥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음이 강퍅해져서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에서 멀어지게 되어 어리석고 우둔한 삶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성령께서 그 마음에 탄식하시는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둔감해져 버린다.

 

우리 중 누구라도 하나님의 음성에 무관심한다면 세상의 소리, 즉 그 소음에 의해 '복음', 즉 '진리의 외침인 하나님의 소리'를 못 듣게 된다.

이단에 빠진 자들은 자기 내세운 몇 가지 가짜 원리에 목을 매게 만든다. 그렇게 쇠뇌가 되고 나면 오히려 정상인 사람들이 비정상으로 보인다. 말이니까 그렇지 이것처럼 무서운 사탄의 궤략은 없다.

그 영혼을 죽이는 결과로 치닫기 때문에 그렇다.

 

또 하나는 정치 이슈에 목을 매는 자들도 바로 이단들이 하는 짓이나 거반 다를 바 없는 논리를 내세워 거기에 목을 매도록 한다.예를 들어, 과거 5 공화국 때의 이데올르기가 지금 60, 70대들에게 아직도 그대로 먹혀들고 있다.

그래서 설교 강단에서 "공산화되면 우리는 다 죽는다. 그리고 기독교 자유도 다 빼앗기게 된다." 하면서 "우리가 막아야 한다. 순교를 각오하고 막아야 한다."

얼마나 창피하고 우스운 궤변인가! 그런데도 그것이 먹혀들어간다. 그러니까 일종의 이단에 빠진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진리에 바르게 서게 되고 그 말씀을 사랑한다 날마다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행복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라." -시편 95편 7절-

지금 우리는 마음을 돌이켜 얼른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그 음성을 듣기를 원해야 한다. 미루지 말자.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돌이키면 우리의 발걸음은 저절로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어 있다.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내가 매일 십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매 피로써 나를 정케 하소서!"

-찬송가 540장-

 

 

1. 우리는 마음을 정해야 한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마음을 정하고 살았다. 그런 결단이 있었기에 바알 선지자, 아세라 선지자  750 명과 싸워서 이겼다.

뿐만 아니라,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고 기도할 때에 3년 반 동안이나 가물었던 땅에 장대비가 쏟아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다니엘도 그랬다. 마음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거절했다. 에스더는 마음을 정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결심하고 왕 앞에 나갔다.

오늘 여러분은 무슨 결심으로 또 한 해를 시작했는가!

바라기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한다.

다윗은 억울한 일로 사울 왕에게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를 넘어뜨리려고 그물을 치고 웅덩이를 팠다.

이럴 때 오히려 찬송을 불렀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시편 57편 7절-

 

엘리야에게도  예상치 못햇던 위기가 찾아왔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엘이야의 목숨을 찾았다.

바알 우상을 끼고 살던 이 여자가 엘리야를 죽이려고 맹세까지 하며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해 왔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대담했던 엘리야는 갑자기 의기소침해지면서 로뎀 나무 아래서 실망에 잠겼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명명을 거두소서! -열왕기상 19장 4절-

 

나는 이런 장면을 볼 때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생각이 난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마가복음 14장 36절-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천사가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갖다 놓고서 "일어나서 먹으라."라고 했다.

엘리야는 이것을 먹고 기운 내 다시 일어나서 사십 주야를 가서 호렙산 기슭에 도착했다.

 

그가 굴에 들어가 운둔자처럼 거기서 머물었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엘리야야 어찌하여 네가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장 9절-

마음을 전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틀림없이 만나주시고 함께 해 주신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108편 1-2절-

우리가 마음을 정하고 주님을 따를 때에도 역시 찾아오는 시험과 고독과 위험이 따를 수 있다.

오늘은 우리가 호렙산으로 갈 필요가 없다. 그저 십자가 앞에 나아가 엎드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엘리야를 만나주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어루만져 주신다. 이런 위로가 또 하나의 큰 간증이고 되고 찬송이 될 것이다.

 

 

 

2. 갈급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엘리야는 정말 여호와를 갈망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믿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기를 원했다.

그냥 호렙산에 간 것이 아니다.

그는 모세를 생각했을 것이 틀림이 없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러 갔다.

그는 친구를 만나려고 친구를 찾지 않았다.

누구 친한 사람을 데리고 위안을 삼고자 하지도 않았다.

정말 고독하지만 하나님을 갈망했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더라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크리스천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모여서 잡담이나 하고 그저 세상 소리만 내면서 그저 말, 말, 말... 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갈망하며 온전한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날 고라를 비롯한 250명이 당을 짓고 모세를 죽일 듯이 덤볐다.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모세는 말 많고 완악한 백성들 앞에서 엎드려 기도했다.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 -민수기 16장 4절-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정한 모세에게 강한 권위를 부여하셨다.

모세는 일어나서 노한 얼굴을 하며 강한 어조로 그들을 가까이 나오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권위를 짓밟으려 했던 고라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땅에 입을 벌리게 하여 삼켜버리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마음을 정한 자들에게 이렇게 역사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똑바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만을 위하여 살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그러면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진리 편에 서 있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 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편 5절-

 

특별히 나만 홀로라고 생각하지 말자. 아직도 우리나라에, 그리고 세계 도처에 바알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자가 수없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엘리야에게 깨우쳐 주심과 동시에 새로운 힘을 공급해 주셨다.

엘리야는 말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새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열왕기상 19장 14절-

이렇게 말할 때에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열왕기상 19장 18절-

"왜 나만 이냐?"라고 하지 말자. 세상에게 나보다 더 고통받는 자도 있고 또한 나보다 신실한 자들도 많다.

어쩌면 내 개인 각자는 크리스천이다. " 이미 그리스도만을 따르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다.

따라서 이제는 예수만 바라보고, 십자가만 보라보고, 주의 진리만을 위하여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어야 한다.

 

 

3. 기도해야 한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이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역사를 이루신다.

정상적인 기독교 신자라면 하루하루 기도 없이 사는 것이 정말 이상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성령께서는 기도의 영이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에베소서 6:18-

여러분은 날마다 기도하는가?

예수님은 기도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셨다.  예수님의 생애 자체가 기도의 생애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중대한 일이 있을 때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 가람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시기도 하셨다.

십자가 위에서도 기도로 생애를 마감하셨다.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범을 따라서 기도해야 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는 기도할 때에 성령아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는 마귀를 이기는 기도였다.

우리는 기도 없이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없다.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자들 속에서 일하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넉넉히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의 염원'이었던 인류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다.

오늘의 우리의 관심은 무엇인가! 

세상의 어떤 이슈들이 아니다. 세상은 날마다 우리에게 유혹의 미끼를 던진다.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

세상에서는 날마다 바람, 바람, 바람의 물결이 화제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으신다.

또한 여기서도 저기서도 뻥, 뻥, 뻥 사건사고의 소식들로 지면을 메우고 또 화젯거리를 삼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으신다.

나아가서 여기 저기서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의 소식들로 화제가 된다. 겨울철과 봄의 산불이 아닌 곧 큰 일 날 것 같은 소식들로 화제를 모은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도 계시지 않는다.

그러면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다는 말인가!

대답은 하나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하나님을 찾는 자 중에 계신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사무엘 상 3장 19절-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야 역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불 후에 세미한 음성이 있는지라." -열왕기상 19장 12절-

그렇다. 진실한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은 성경을 봐도 그 진리를 바르게 깨닫게 되어 있다.

욕심의 눈이나 죄를 가진 눈으로는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를 못 한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회개하는 심령을 가져야 한다.

시편을 보면 시편이 시의 구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기도 시로 구성이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편 48편 14절-

그런데도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살다 보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되어 살아간다.

기도하다 보면 시편을 쓴 다윗이나 고라 자손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 있다.

 

 

-맺는말-

 

우리는 날마다 주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처럼 행복한 것이 없다.

주의 음성을 딴 데서 듣는다고 생각하지 말라. 오늘 이 시대에는 얼마든지 성경을 열어볼 수 있는 말씀의 풍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기도하다 보면,  성경을 읽다 보면 '오늘 내게 주시는 음성'이 분명히 있다. 아니 성령을 사모하다 보면 길을 걸어가다가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어 있다.

물론 교회에게 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가 성경 해석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목사에게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는 중요하다.

"3:14,15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디모데후서 3장 14절-

 

그렇지만 늘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심정으로, 또한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믿음이 잘 자라서 더욱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게 되며 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신앙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말씀 붙잡고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하자. 그리고 주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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