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3장 1-23절-
-들어가는 말-
우리는 성숙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낳고 자라는 과정에 성숙이란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풋과일로 떨어져버리거나 기형이 되거나 자라지 못한 상태로 머물기도 한다.
이유는, 모진 악 조건의 비바람에 시달렸거나 또 병충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관리하는 농부는 충실한 열매만을 기대한다.
어렸을 때 감나무가 많은 동네에서 자랐다. 어떤 감나무는 엄청난 감꽃이 핀다.
가난한 시절이라 놀이기구도 없던 때에 감꽃을 주어다가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니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열린 지 한 달도 안되어서 감들이 떨어지는 경우를 보았다.
어떤 감은 두 달이 지나서 여러 가지 자연현상 때문에 떨어지고 마는 경우를 보기도 했다.
아마 신앙생활에도 그런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드셨다.
그러니까 성숙이란 알고 보면 옥토에 떨어진 씨앗일 때만 가능하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마태복음 13장 23절-
바울 역시도 농사의 원리를 대입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진단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직접 복음의 씨앗을 뿌려 자라난 교회와 성도들 중에 분쟁이나 일으키고 또 아직도 세속화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15절-
교회 안에서 웬 분쟁이냐고요? 그런데 이것은 현실이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전서 3장 6,7절-
바울 사도는 그런 사람들이 섞여있을지라도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선한 충고를 하기 위해 고린 도전서를 써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나 자라지 못하고 땐 감 신앙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쉽게 유혹에 빠지고 쉽게 시험에 걸려 넘어지고 쉽게 낙심해 버리고 이런 말 저런 말에 의해 쉽게 흔들린다.
그러다가 하나님과 교회를 등지고 산다.
우리는 신령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령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방언 기도를 하고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말씀과 복음 진리의 신아에서 계속 자라 가며 진실한 성도들과 하나 되어 열매 맺는 신앙을 말한다.
우리가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 때만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장 8절-
우리는 땐감 신앙, 즉 베이비 신앙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다 성숙한 신앙, 익은 감, 즉 열매 맺는 신앙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서신서를 통해서 세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 얘기해 보고자 한다.
1. 육에 속한 사람
세상에서 우리도 한 때 이렇게 살아왔었다.
그냥 자연인처럼 먹고사는 것, 육적인 본능과 그 욕심을 따라 살았었던 시절이 있었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 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1,2절-
육에 속한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은 받지 아니하나니 오히려 그것들이 그게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 그들을 알 수도 없나니..." -고린도전서 2장 14절-
육에 속한 사람이란 뭘까?
자연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나뒹구는 해골처럼 버려진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볼 때는 자연인 중에 똑똑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세상적 경영에 뛰어난 사람도 많고, 징치적으로, 법적인 지식으로 빼어나다고 할 만큼 잘 나가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거나 복음을 모른다면 그들은 '육에 속한 사람'일 뿐이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예수)를 알지 못함이라." -요한일서3장1절-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곪고 터지고 허덕이며 어디론가 무거운 짐을 지고 기도 모른 채로 방황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들의 공력은 온전히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이고 끝내는 영원한 멸망의 유황불만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고린도후서 6장 17절-과 같은 말씀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들의 세속화된 삶에 함께 물들여져서 산다면 이것 또한 큰 병폐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씨'가 있고 저들 속에는 이것이 없다. 겉보기에는 우리랑 똑같이 보이지만 내면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이 세상이나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니..." -요한일서 2장 25-17절-라고 일러주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자신을 세속에 물들이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되,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이들을 깨우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예수의 복음을 들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세속에 물들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가 무작정 그들을 적대시하거나 경쟁의 대상처럼 여기면 안 된다. 오히려 예수 사랑을 가지고 가서 빛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려줘야 한다.
이들 속에는 이직 생명의 씨앗 자체가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씨를 뿌리는 일'이다.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마음이 옥토가 되어 진실한 신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비밀이며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는 육한 속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뿐이다.
2. 육신에 속한 사람
자, 오늘 바울 사도가 지적하고 나서는 것은 '육신에 속한 자'의 문제이다.
이들은 교회생활도 한다. 이미 성령을 체험하고 세례도 받았다.
그러나 행동을 보면 완전 '육에 속한 사람'과 거반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 살라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예수 믿기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바울은 자신이 낳은 자식처럼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에게 다시 일깨워 주기를 원했다.
그들은 예수 믿는다고 교회 생활을 하나 세상적인 일에, 세상적인 학식에만 눈이 밝았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하면 이상하리 만큼 알아듣지를 못하고 엉뚱한 일을 저질렀다.
그것이 '시기와 분쟁'으로 나타났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전서 3장 3절-
그들은 교회 안에서, 즉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다.
만약에 여러분 중에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육신에 속한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고 신자가 아니란 뜻이 아니다.
그 다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리요." -고린도전서 3장 4절-
육신에 곡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알지 못하고 정욕에 치우쳐 있어서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일을 행하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런 자들은 스스로 잘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영적인 베이비'이다. 어린애들은 조금도 힘들면 찡찡대고 자기 요구만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물론 목사들 중에도 '육신에 속한 목사'가 있을 수 있다.
이럴 때엔 신실하게 목사를 따르던 성도들은 또 깊은 탄식과 신음에 바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지도 모르고 맹신하는 경우, 그것 또한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키며 그 목사를 더 잘못되게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오늘의 일부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린이들을 대함 같이 하노라." -고린도전서 3장 1절-
예수 믿은 지 3년 이상 되었는데도 아직도 쭈쭈병(젖병)이나 입에 물려주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육신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 확연하게 드러나진다.
사실상 성숙한 신앙은 '시험'에 넘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린아이 신앙을 가진 자들은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또 쉽게 교만해지고 세상적인 일에 관심이 쏠리고 만다.
이런 자들로 인해 교회는 분열의 위기로 치닫게 된다.
갈라치기 하는 일에 앞장서면 어리석은 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잠언 18장 1절-
성숙한 신앙을 가진 자들은 교회 안에서 항상 '평화를 만드는 자', 곧 '화목케 하는 자'로서 활동한다.
3. 영에 속한 사람
사실 바른 신앙으로 잘 자라려면 기초가 중요하다. 이 기초가 바로 된 사람은 견고하다.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알지도 못 하면서 아는 척'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 가기 위해 늘 확인해야 할 것은 '복음의 신앙의 터' 위에 견고히 서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이것은 처음 믿을 때나 지금이나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영에 속한 사람의 특징이 있다.
그 기초를 반석 위에 두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의 터 위에 선 신앙인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반석 위에 세운 신앙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는가를 얘기해 주셨다.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장 28절-
바로 그 기초는 다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린도전서 11절-
이 내용을 막연하게 생각지 말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잘 들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일 때 '신령한 사람'인 것이다.
바로 그들 안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능력을 나타내신다.
그렇지 않고 다른 데서 신앙생활의 본질을 찾으려고 한다면 모두 가짜이거나 육신에 속한 자로서 '신령한 일을 깨닫지 못하고 순전히 인간적으로 판단'하고 좋으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신앙으로 간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우리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한다.
"혹시 나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신자가 아닌지!"
영에 속한 자라면 이미 젖병을 던져버리고 단단한 음식을 먹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알고 바른 복음은 전하는 자들을 존중하며 잘 따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그 신앙은 금같이 변질되지 않을 것이며 성숙하게 되어 열매를 맺는 신앙으로 나타나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살다가 하늘나라에 간다면 의의 면류관을 받아쓰게 될 것이다.
-나가는 말-
우리는 이미 성령으로 거듭난 새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믿고 '신령한 자(영에 속한 사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지 않고 딴 데 관심이 커지면 어느 순간 인간적인 욕심과 유혹이 들어옴과 동시에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어 살게 된다.
이런 생활이 오래 가면 한없이 바보짓을 하게 된다. 그 속에서 탄식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둔감하게 되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
그러다가 혼자만 동떨어진 짓을 하게 된다.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방황하며 외똘이 같은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어리석은 마음을 품게 만든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미 교회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한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서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전서 1장 10절-
우리가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마지막 기도를 하실 때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오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1절-
우리가 정말 영에 속한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성취케 되기를 힘쓰게 될 것이다.
'말씀하옵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 믿음 (0) | 2021.01.30 |
---|---|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0) | 2021.01.22 |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0) | 2021.01.10 |
소원이 뭐예요? (0) | 2021.01.02 |
미쳤다고요? (0) | 2020.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