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소원이 뭐예요?

좁은길을 걸으며 2021. 1. 2. 12:00

소원이 뭐예요? Mong ước của bạn là gì?

시편 107편 23-32절

 

새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해에는 새 소망 가득한 마음으로 새해 인사를 하며 덕담을 즐긴다.

이 나라는 한국보다 더 많은 덕담을 즐긴다. 참 보기가 좋다.

 

그런데 그 덕담 속에는 많은 소원이 담겨있다.

여기서는 "Chúc mừng năm mới 쭙멍남머이;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면서 "금년에는 더 건강하시고 평안하시며 행복하세요." 등 많은 덕담을 즐긴다.

우리 가 사람들은 다 소원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바란다.", "나는 원한다.", "나는 기원한다.", "나는 소망한다." 그리고 "나는 소원한다."는 말들을 하고 산다.

이런 말 속에는 '희망과 꿈'이 담겨있다. 그리고 자기의 '취향이나 소원'이 담겨있다.

 

그렇다. 예수께서도 우리 각자의 소원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에 맹인이자 거지인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아서 소리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 큰 소리로 예수께 간구했다.

예수께서 걸음을 머추시고 서서 "그를 부르라." 하셨다. 그는 정신없이 예수께 달려왔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마가복음 10장 46-52절-

그는 즉시로 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때로는 불가항력적인 문제를 만난다. 그때에 바디매오의 심정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사실은 우리 인생 우리 맘대로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이런 말이 필요하다.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 금방 일 수 있다.

지난 한해는 느닷없이 코로나가 지구촌을 휩쓴 바람에 답답한 마음으로 감옥에 닫힌 기분으로 산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연초에는 큰 꿈을 가지고 시작했겠지만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면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해야 하며 또 더 주님께로 가까이 가야 할 인생이다.

"주의 뜻대로 되어지이다."가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따라서 우리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여기에서 지나치면 그것은 우리의 욕심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밖에서 꿈꾸는 것들은 얼마나 '허망한 꿈'인가를 알아야 한다.

 

베트남의 학생에게 물었다. "소원이 뭐예요?"

"빨리 한국어를 잘 해서 직장에 다니는 것이 소원이예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예수님 잘 믿고 사는 것이 소원이야 해."라고 응수했다.

그랬더니 "네."라고 대답한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 -시편 84편 11절-

 

 

 

1. 주의 뜻이 나의 소원이 되어야 한다

"나의 품은 뜻 주의 뜻 같이 되게 하여 주소서!"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느 금새 내 욕망과 내 뜻을 좇아서 살기 쉬운 존재이다.

 

심지어 예수님마저도 유혹을 받으셨다.

그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순식간에 밀려오는 정신적 고통의 파도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가 죽게 되었다."라고 하셨다.

예수는 우리에게 중요한 모범을 보여주셨다.

육체를 가지신 예수님의 욕망은 십자가의 형벌의 그 끔찍함을 면하고 싶었다.

"만일 아버지의 듯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렇지만 그것마저도 굴복시키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기도 가운데서 승리를 쟁취하셨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정말 하늘의 천사도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도 기도가 없으면, 또 말씀이 없이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우리의 결심만으로는 안 된다.

"원함은 있으되..." 베드로처럼 굴복하고 만다.

그러나 성령께 이끌리는 기도를 드릴 줄 안다면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욕심을 이길 수 있다.

또 어떤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도 이길 수 있다.

 

 

2. 예수 닮아가는 것이 내 소원이 되어야 한다

 

말이 쉽지 예수를 닮는 것이 어디 쉬운가!

그러나 우리는 예수 닮기를 소원해야 한다.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런데 우리는 이 새상을 너무 많이 닮았다. 그래서 기고만장하게 날뛰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 믿는 목사, 장로, 집사들이 그렇다.

그러면서도 무엇에겐가 속고 산다. 정말 예수 닮은 구석이 없는 데도 심지어는 사기치기 위해서 "반갑습니다. 나도 기독교인입니다." 그래가며 거짓말 하고 상대방에게 혐의를 덮혀씌우고 덤탱이를 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런 것이 현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이며 현주소이다.

 

우리는 예수를 닮아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를 닮는 것인가!

더러운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형제 간의 재산 문제로 찾아온 사람에게 야단하셨다.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재산 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 -누가복음 12장 14절-

그 후에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라고 하셨다.

세상은 아주 무섭다. 남의 재산을 탈취하는 짓을 일삼으면서 버젓이 교회 장로, 권사, 집사라는 자들이 있다.

심지어는 한국의 굵직한 총회가 목회자 연금을 가지고 이상한데 투자하고 탈취하는 자들이 있어서 문제가 크게 벌어졌던 경우도 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생애를 보라.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는 식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 믿으면 고난이 따른다. 그러나 면류관이 있다."고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에서 묻어나는 향기를 늘 느끼며 그 향기에 심취되어 예수를 따라야 한다.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아가 2장 1절-

바울은 "우리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린도후서 2장 15절-

이렇게 살 때에 행복이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전도할 수가 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예수 닮은 구석이 안 보이고 오히려 사회적 걱정거리로까지 추락이 되어 무슨 사건만 터졌다 하면 "또 교회....또 교회가...."라는 말을 되었으니 말이다.

 

2021년 새해에는 예수 닮은 삶이 되기를 소원한다.

 

 

3.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이 소원이 되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 보자.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무엇을 사모하며 살아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열처녀 비유 이야기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런데 어떻게 살아가는 가는 것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삶일까?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 도취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상실된다면 '미련한 다덧 처녀' 신세가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거리에 재미붙여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는 자라면 우리의 궁극적인 소원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베드로후서 3장 12절-

 

우리는 자칫하면 영적인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있다.

세상의 더러운 욕망에 치우치다 보면 어느 새 그렇게 될 것이다.

이주 나쁜 말이 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말인데 나는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쓰는 것을 보며 모란 적이 있다.

"개똥 에 딩굴어도 저승보단 현세상이 더 즐겁다."

정말 천당이 있음을 믿는다면 이런 말이 얼머나 부끄러운 말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로마서 13장 11절-

 

우리의 소원은 주님이 재림이 되어야 한다.

아니 당장 주님이 오시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주님 앞에 가는 더 유익하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고린도후서 5장 8절-

 

결과적으로,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이 소원이 되어야 한다.

 

 

-맺는 말-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살 때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즐거움이 소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

 

영원한 가치의 것을 좇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잠시 고생되는 일,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원망하거나 불편하지 말고 주님 앞에 서는 날을 대망하면서 오히려 찬송하자.

욥이 그러했다.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장 21절-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고 의지하고 살면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듯이 오늘날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종착역인 천국문, 즉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도록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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