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크리스마스 Giáng sinh

좁은길을 걸으며 2020. 12. 15. 12:56

크리스마스 Giáng Sinh ; Christ-Mas

누가복음 2장 1-20절

 

 

++ 구주가 나셨네 ++  -이송로-

 

예언자들의 외쳤었네

메시아, 그가 오시리라

이새의 줄기에서...

한 놀라운 징조가 나타나리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성령의 씨앗으로 말일세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마침내 그가 오셨네

구주 나셨도다 구주 나셨도다

 

이 땅 위에 그가 오셨다네

하나님이 우리랑 함께하시네

임마누엘 임마누엘

작은 고을 베들레헴아

이제 작지 아니리라

왕이 나신 곳, 역사 속에 빛나리라

태초부터 계신 이여

들은 바, 본 바, 만진 바 되셨네

그 이름 예수! 구원이시라네

 

양치던 목자들이 눈을 드니

그 광채에 더욱 놀랐었네

천사들이 곁에 서서 말했었네

무서워 말라 놀라지 말라

큰 기쁜 소식을 전하노라

옛 다윗의 고을에 구주가 나셨다

너희를 위하여 온 세상을 위하여

구유에 있는 아기 보리니

이것이 표적이 되리라

하늘선 하나님께 영광

그가 기뻐하신 사람들 중 평화 

 

베들레헴으로 빨리 가보세

어서 가서 보세 그 이뤄진 일을

첫 성탄에 아기를 본 목자들

아기께 경배했었네

오늘 우리도 경배하세

그 일을 기억하며 찬송을 부르세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서

주 찬송하세 주 찬송하세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천군 천사여, 노래하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

다 찬송하여라

 

그는 왕이시니

그를 맞이하세

영광 빛 둘려있는 그분을

그가 나에게 오셨네

나 위해 이 땅에 오셨다네

할렐루야 찬송하세

임마누엘이시여

그가 우리와 함께하시네

오늘 그가 나와 함께 하시네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 시는 이시여

그가 나를 구원하셨네

그가 찔림은 내 허물 땜이요

그가 상함은 내 죄 땜이라

십자가 영광의 십자가

그가 사셨다네

그는 다시 오신다네

마라나타!

12월 25일이 다가온다. 교회와 세계 만국은 이 날을 크리스마스Christmas로 정했다. 

크리스마스란 예수 탄생의 날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정확한 탄생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마리아와 요셉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성경은 침묵했다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만일 예수의 나신 날이 그렇게 소중하면 성경이 그 날짜를 알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예수는 나신 것이 분명하지만 '오신 것  To Come'이다.

사실은 그분은 '영존하신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생일이 있어도 그분은 생일이 없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나타나신 바 된이시니라." -요한일서 1장2절-

그런데 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릴까!

그리고 교회는 이것을 교회의 큰 명절로 여겨왔을까!

 크리스마스를 라틴어로 "그리스도"(Christus)와 "모임"(Massa)이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모임, 성탄절 예배'라는 된다.

정식으로 크리스마스를 지켜온 것은 로마 대주교 율리우스1세가 AD 350년 12월 25일로 공포할 때부터이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 2세기 때부터 '크리스마스' 날짜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사도시대와 속사도시대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를 지키며 기념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다.

생생한 예수의 증언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며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부시대가 되면서 인간들은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날을 추정하여 성탄절을 지키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교회의 역사 속에서 12월 25일인 이날을 성턴절로 제정하여 미풍으로 여기며 자연스럽게 지켜오게 되었다.

특히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책 4권 5장에서는 전통에 따르면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기를 잉태한 날이 3월 25일로 보며 예수께서는 12월 25일에 태어나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미 12월 25일이 전통 즉 초대교회에서부터 내려온 것이다 라고 기록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꼭 지켜야만 하는가? 안 지키면 죄인가?

그것과는 무관하다. 성탄절에 일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며 또 꼭 성탄절 예배를 드리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교회의 절기로 받아들여져 온 이상 우리 크리스천들은 모이면 예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한 날을 성탄절로 지정하여 기념하며 지키는 이상에는 성탄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하여 '예수의 오신 목적'을 되새겨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도 어렸을 때에는 크리스마스를 무척 기다려왔고 또 기뻐했다.

그리고 노래했다. "아빠 생일도 기쁘고 엄마 생일도 기쁘죠. 

"내 생일도 기쁘고 친구 생일도 기쁘죠. 그렇지만 예수님 생일은 더 기쁜 날예요."

아무것도 모른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지키며 오늘까지 성탄절을 기다리며 또 이에 따른 메시지를 전하며 살아왔다.

 

역사 속에서 이 날은 온 세상의 축제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고 또 불우이웃을 생각하는 크리스마스 실(우표 형태의 모자이크)을 샀다.

그리고 선물교환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한다.

그리고 매일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이브 행사를 위한 준비를 한다.

어쩌면 오늘날보다도 농촌마을과 도시에 어린이들이 바글바글 했을 때의 추억이 훨씬 더 아름다운 것으로 남아있다.

보통 성탄 한 달 전부터 선생님들이 각 분야별로 나누어 성탄절 준비를 했었다.

아마 한국사회 역시 여기서부터 나온 문화예술이 우리 사회 전반에 대단한 영향력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다.

나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위해 산에 올라가서 노간주나무를 베어 오기도 했다.

베트남에서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가정에 하기 위해 우리 돈 5백만원 정도 되는 소나무를 사들여서 장식을 하는 가정들이 생겨났다. 이유는 소나무 향이 좋아서란다.

예수님이 오신 의미와는 무관하게 그냥 남들이 하면 의례히 하는 행사처럼 따라서 하는 풍토 속에서 그런 데에 의미를 둔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예배당 천장에 세계 만국기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온 세상 만백성의 구주가 나셨다는 의미로 그런 것 같다.

성탄절 준비를 열심히 한 만큼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도 크게 부풀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미신자들까지 초청해서 이 날에 준비했던 성극이나 찬양, 율동을 보여주며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전했다.

또 어린이들에게는 과자 한 봉지씩을 나누어 주었다.

이 날을 전도의 좋은 기회로 삼았다.

이를 통해서 실제로 전혀 교회에 대해서 몰랐던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해서 몰랐던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에 대한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삼았다.

 

세월이 지난 후에 생각해 봐도 이것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과장 한 봉지가 큰 선물로 느껴졌다.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면서 전도의 효과를 높이고자 했다.

내가 있는 미션 현장에도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통해서 가장 결신을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아주 아름다운 것이며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의 크리스마스는 어떤가!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퇴색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주인공 없는 크리스마스로 변질되어 크리스마스 카드에도 이상한 그림들이 주를 이루었고 다음 세 가지가 주인공의 자리를 메워버렸다.

1. 소나무와 눈 꽃 장식(흰 솜, 은금종이, 은종,전등 불)

2. 선물과 카드

3. 산타클로스

그리고 인사를 한다. 맹목적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남들이 하니까 그냥 따라서 그렇게 한다.

마귀의 전략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한다. 어떻게든지 크리스마스를 방해하려고 한다.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듯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을 흐리려고 온갖 방해를 다 할은 분명하다.

변질된 크리스마스가 되고 말았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관심 없다. 서양에서는 '가족을 만나는 날', 동양에서는 '친구들과 데이트하는 날' 정도로 여긴다.

백화점이나 가게 앞에도 경쟁하듯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장삿속'으로 그렇게 한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학교에도, 직장에도, 범신론주의자들도 이렇게 따라서 한다. 예수를 그냥 부처 같은 성인의 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집집마다 그렇게 한다.

이번에 나는 집에다 성탄절 장식을 안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딸 주경이가 벽에 장식을 하겠다고 재료를 사 왔다.

그래서 그냥 "고맙다!"라고만 했다,

 

어떤 목사나 신학자들 중에는 크리스마스 날을 안 지켰으면 좋겠다는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의 생각 속에는 크리스마스를 지킴으로써 부정적인 측면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회는 예수의 생일이니까 '성탄 감사헌금'을 하게 한다. 이것이 전통이 되었다.

무슨 명분으로 이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교회의 전통이 되다 보니 교회의 재정을 충당하는 수단이 되었다.

사실 깊은 사려 없이 헌금을 하게 하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그러니까 헌금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헌금을 하게 하였을 때는 그 수납 된 헌금을 어떻게 하는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집행과정이 더 중요하다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생각이 있는 어떤 교회나 단체에서는 '불우이웃 돕기'를 고안하여 이것을 실천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는 '구제나 자선'을 위한 크리스마스는 아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예수'에서 찾아야 한다. 즉, "왜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오셔야 했는가?"이다.

우리는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마스의 본질은 구제나 자선, 친교가 아니라 '구주 예수를 바르게 믿고 따라는 신앙'에서 찾아야 한다.

낭만을 좋아하는 이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기다린다.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에 얼마나 추우셨을까!"

우리는 동정심을 유발하게 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카네이션 Incarnation'이 갖는 의미를 잘 부여해야 한다.

"왜 사람이 되셔야 했는가?"

"그런데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셔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나 자칫하면 태어나실 곳이 없어서 추운 밤에 마구간에서 나셨는데 정말 불쌍한 아기 예수라는 생각이 들게만 만들고 끝난다.

예를 들어, 화이트 크리스마스이어야 성탄절의 의미가 더 진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이건 크리스마스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프리카에도 눈이 내리게 해 주세요!" 이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있는 나라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  국가 휴일이 아니라서 크리스마스에도 아랑 곳 없이 노동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성탄절 장식을 한다.

이렇게 된 것이 프랑스 지배 93년이 가져다준 천주교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요즘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 가면 계속 성탄절 음악이 흘러나온다. 오늘도 마트에 가서 이 노래를 들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노래라면 '징글벨'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들어보라. '예수'라는 이름이 없다. 그냥 쓸매를 타고 재밌게 노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눈도 오지도 눈이 오지 않는 나라라서 더더욱 눈이 그립고 환상 속에서 눈을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그리고 "예수를 전하자!"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는 구월이나 시월부터 크리스마스 기분을 들게 한다.

서너 달을 성탄절 기분으로 보내는 재밌는 나라이다.

이것 역시 스페인 식민지배가 가져다준 선물이다. 그들이 천주교를 믿는다지만 완전 우상과 미신에 찌들어 있다.

그러면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택시를 타고 내릴 때면 거스름 돈을 안 돌려주며 하는 말이 '크리스마스 기프트!'라고 한다.

아이들 역시 집집마다 돌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돈을 달라고 한다. 돈을 주면 "땡큐 땡큐 암바바요 닌요 땡큐 땡큐!" 하고 돌아가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가서 "정 집에 가면 돈을 준다!"하고 알린다. 그러면 또 애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이게 크리스마스인가!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의 수금하는 날도 아니며 청년들의 데이트하는 날도 아니다.

예수님의 오심의 의미를 통해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구주가 오셨다!!!"하고 외치는 날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눈에 띄는 것 하나는 그 꼭대기에 별을 다느냐, 십자가를 다느냐이다. 무심코 지나가기도 하겠지만 미국 어느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십자가를 달았다가 철거를 당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있을까!

그렇다면 별을 다는 것은 옳은 것이고 십자가를 달면 틀린 것인가!

이것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이상한 일일 수 있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크리스마스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예수'를 말해야 한다.

예수님의 오셨다는 소식을 별을 통해서 안내하신 것 또한 신기한 일이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예수님'이시다.

그 분이 오신 목적을 관련하여 상징을 나타낸 것이 '십자가'이다.

어쩌면 성탄절에도 수난의 찬송가를 부를지라도 아무런 이상할 것이 없다.

크리스마스는 세시풍속의 전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미신적인 요소까지 동원하여 버젓이 예배와 미사를 진행하고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붐비는 거리로 나와 맹목적으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나름대로 축제를 즐긴다.

맹목적으로 덜 떠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라면 차라리 크리스마스 절기를 안 지키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꼭 크리스마스 절기를 지킴으로써 유익되는 것이 많다면 구태어 반대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왕이면 '복음 전도의 기회'로 삼자는 것이며, 설령 이날에 행사를 안 하거나 예배를 안 드렸다고 해서 거리낄 것이 없다는 말이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

우리가 강조해야 날은 '주일'이다. 주일은 '매 주 첫날'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날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것은 십계명의 제 4계명의 연장선에 지켜야 할 의미이자 동시에 영원히 기념해야 할 '구속 기념일'로서의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위에서 그 구원을 이루시고 부활하신 그 날, 그리고 성령을 부어주시며, 다시 오실 예수님의 환상을 보던 밧모섬의 환상이 '큰 날'임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주일을 '주님의 날Lord's Day'로 삼고 어떠한 형태로든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며 지내야 한다.

우리가 주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크리스마스의 날짜 문제도 아니며 또한 교회가 지켜온 전통적인 절기도 아니며 휴일이냐 아니냐도 아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지금 '임마누엘'로 계신다. 성령을 통해서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계신다.

무론 그분은 지금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항상 영으로 우리오 함께 하시며 날마다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까 항상 나와 함께 계시는 예수라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장 20절-

 

그분은 다시 오실 것이다. 어쩌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한다.

 마라나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Yes, I am coming quikly."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Amen. Come, Lerd Jesus!" -요한계시록 22장 20절-

부록/ 가끔 베드레헴에도 눈이 내렸을 것이다.

 

최근에도 에루살렘에 눈이 온 적이 있었다.

2013년 12월 14일 갑자기 눈이 많이 내렸다.

"예루살렘에 내린 눈은 45~60cm에 달한다"며 "최근 70년 동안 이처럼 눈이 많이 온 적은 없었다"

그런데 2천 년 전, 혹은 3천년 전에 눈이 더 자주 왔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물론 2814M의 헤르몬 산이 있어서 그 영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헬몬산에는 매년 눈이 많이 내리고 있고 또 이것으로 인해 강수량이 많이진다.

 

구약 성경에도 '눈Snow'에 대한 용어가 나타난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여질 것이요." -이사야 1장 8절-

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눈에 대해 잘 알고 경험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먼 나라 얘기로만 듣고 알았을 리가 희박하다. 그들은 직접 종종 눈이 오는 것을 목격하고 살았을 것이다.

 

하나 더 나아가서 역대상에서 보면 다윗에게 뽑힌 용사들 얘기 중에서 잘 나타난다.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냐는 용감한 사람이라.

그가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이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죽였으며," -역사상 11장 22절-

어쩌다 한번 내린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가끔 씩 눈이 오는 것을 얘기한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지구는 조금씩 온난화 되면서 현제와 같은 날씨를 보여지만 옛적에는 중동지역에서 종종 우박도 내렸고 이것 때문에 농작물과 가축에세도 피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만큼 예수께서 나셨을 때가 겨울이었다면 굉장히 추울 때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