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고요? điên à?
고린도후서 5장 11-21절
-들어가는 말-
연말인데 미친 얘기를 하니까 좀 우스울 수가 있을 것이다.
정신이 미친 사람이 있다. '미치다 insane'라는 말은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를 때 쓰는 말이다.
일반적 상식이나 도리를 크게 벗어난 경우에도 '미쳤다'라는 말을 흔히 쓰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심히 못마땅히 여길 때도 욕설로 사용한다.
어쩔 때 자신을 향해 한탄을 할 때도 '내가 미쳤지!'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이 온전하여도 어떤 대상에게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지다 Madly in love with라는 말을 할 때에도 흔히 쓰는 말이 되었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무엇에겐가 미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큰 일을 할 사람이다. 따라서 괜찮다.
나는 바로 이에 해당하는 말을 가지고 얘기를 엮어보고자 한다.
그러니까 미칠려면 바르게 미쳐야 하고 옳은 일에 미쳐야 한다. 이것은 오히려 행복이며 인생을 걸만한 아름다운 모험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치긴 미쳤는데 잘못 미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에게 안 미친다면 세상에 빠져서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 눈에는 다 멀쩡하게 보여도 '미쳐 돌아가는 세상 It is a world that goes crazy'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른다는 것에 오히려 문제가 있다.
왜? '영적 불감증'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미칠 정도롤 사랑하신다. 이 사실을 믿는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세아 11장 8절-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하려시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리 도망을 인생이 되었다.
우리는 예수께 미쳐야 하고 하나님께 미쳐야 할 이유가 있다. 세상에 미치면 소망이 없다.
"무릇 주를 멀리 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편 73편 27,28절-
1. 예수께 미쳐라
2. 하나님 사랑에 미쳐라
3. 영혼 구원에 미쳐라
1. 예수께 미쳐라
예수께 미쳐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아마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예수 믿고 처음 은혜받았을 때'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그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성경만 읽어도 눈물이 나고 기도만 해도 눈물이 나고 기뻤다.
"난 예수가 좋다오!" 이런 찬양을 몰랐어도 예수가 좋고 저절로 마음이 흥분이 되었다.
현살적으로 볼 때 날마다 교회당에 가서 기도하고 싶고 알람이 없어도 새벽에 벌떡 일어나지고 책가방도 성경책을 넣어가지고 다니며 성경을 읽고 모든 사람, 즉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보였다.
전도하고 싶어서 늘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해졌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지내놓고 보니까 예수께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바울 사도 그랬던 것이다. 아니 모든 예수의 사도들이 그랬다.
그들이 입만 열면 '예수',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사복음서 물론 사도행전, 바울서신 전체와 공동서신 그리고 요한 계시록까지 그 스토리는 '예수...'로 엮어져 있다.
어느 서신이든지 열어서 보라. '예수...'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
예수의 사랑 예수의 사랑 바닷물 출렁이듯이 그 가슴속에 사랑이 넘실댔던 것이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된 일이 결코 아니었다.
바울은 3차 선교여행을 마쳤을 때 예루살렘으로 가면 잡히게 될 것을 뻔히 알았지만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잡히게 되었다.
그는 로마 시민권자이기에 총독 베스도 앞에서 로마 황제에게로 보내주기를 자청했다. 이때 베스도는 바울이 얼마나 예수에게 미쳤는가를 확인하게 되었다.
""베스도가 크게 내리 내어 이르되 '바을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사도행전 26장 24절-
베스도가 보는 눈에는 "이 정도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나!"하며 안타까웠을 것이다.
바울은 예수께 미치고 복음 전도에 미쳐서 기어이 로마까지 갔다.
이런 사명자가 있었기에 세계선교의 기틀이 세워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분이 예수께만 미친다면 여러 분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옛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신은 예수에게 미쳐있느냐를 묻고 싶다.
심령이 무뎌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의 사랑에서 마음이 멀어지고 세상 것들이 더 좋아 보이게 되고 세상적 가치의 것들에게 눈과 마음이 가게 된다.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가! 만일 예수께 미쳐 살지 못하는 마음이라면 가슴을 쥐어짜며 회개해야 할 것이다.
신앙생활이란 옛향수에만 젖어서 "그때가 참 좋았어!"가 아니다. 그때는 그때로 족하다.
지금 예수의 손에 붙잡히고 또 예수께 더 가까이 가는 마음이 중요하다.
예수의 십자가 사랑에 붙들려 사는 신앙이라야 참 신앙이다.
그 사랑이 아니면 나는 살 수 없다고 확신하며 그 사랑에 매달려 사는 신앙일 때
이린 시절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역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그 사랑이 성경에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 내 가슴에 현현해 있느냐를 묻고 싶다.
우리는 예수께 미쳐야 한다. 진짜 미치게 되면 이렇게 된다.
"난 예수 없이는 정말 못 살아!"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분이 없이는 못 산다는 표현이 당연할 것이다.
예수께 미치면 인생의 큰 변화가 생기고 바로 거기서 인생의 새로운 목표가 보이고 더 밝은 삶의 자리로 나갈 뿐만 아니라 지혜있는 자의 삶을 살게 된다.
모험을 할만한 곳에 모험을 해야 하고 목숨을 걸고라도 따라가야 할 분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분이다.
2.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라
어느 날 나를 돌아보니 내가 하나님의 사랑에 미쳐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았을 때 가능한 얘기다. 그렇지 않고 맹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내가 그분의 사랑에 빠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열렬히 우리를 사랑하셨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한일서 3장 1절-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장 8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확증하신 그 사랑이 우리의 심금을 울렸고 우리로 하나님의 사랑에 미치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었더라면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
그 많고 많은 죄를 십자가의 피로써 도말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그 열정을 보게 된다.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십자가 위에서 신음하며 부르짖는 아들의 절규 소리를 외면하고 계셨을까!
지금도 그 절규 소리가 골고다 언덕을 메아리치며 울려퍼지는듯 하다.
"엘리 엘리 나마사박다니!" -마태복음 27장 46절-
다윗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았다. '속죄함'을 통해서였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열정에 붙들려 있엇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과를 도말하시고, 자신의 죄악을 철저히 씻으시며, 자신을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고, 우슬초로 자신의 죄를 정결케 하시기를 구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해 주셨다.
그것을 단적을 보여주는 것이 시편이다. 그 긴 시편의 내용을 어떻게 기록했을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장 1절-
"주의 전을 위한 열성이 나를 삼켰으며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떨어졌나이다." -시편 69편 9절-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음으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시 119장 139절-
그가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 시편을 가히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와 사랑이 항상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단들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른 진리의 지식에서 벗어났다면 그건 진짜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이단들을 보면서 그것을 느꼈다. 그들의 뚜껑을 열어보면 하늘의 아버지가 안상홍이다. 그리고 어머니까지 만들어 놓았다. 아버지가 있으면 그의 신부인 어머니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짜맞춘다.
그들은 율법에 있는 대로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며 복음의 본질을 훼손해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기에 빠진 사람들은 강길자를 엄마 어머니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열정적이다.
이렇게 거짓에 속아서 마귀에게 정을 줘도 기성 교회의 성령 받은 사람들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유사품에 속아서 진짜라고 믿고 따라가며 이렇게까지 망가져버리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
우리는 항상 '진리와 사랑'이 함께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마귀에게 속아서 사이비 교주나 마귀에게 정을 주고 통곡하게 되는 것이다.
이단의 침투를 경계하라고 가르친 요한 사도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께 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요한이서 1장 3절-
우리는 솔직히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바른 지성을 앞세워 신앙생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은혜, 긍휼, 평강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 거짓에 불과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북음 진리에 사로잡히고 성령에 사로잡힌다면 우링의 열정을 식지 않을 것이다.
부흥집회에 참석해야 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넓이와 갚이를 깊이 이해할수록 더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려게 되고 열심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3장 19절-
이럴 때 세상은 우리를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요, 더 지성있게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자가 될 것이다.
이렇게만 미치면 역시 세상에서도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며 세계 어느 민족 속에 가더라도 바른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3. 영혼 구원에 미쳐라
사실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이 강권할 때에 그 파워에 의해서 내가 움직일 때에 전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피워를 성령께서 주신다.
예수께서도 금식하시고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 충만하시어 파워 있게 전도하시는 장면을 보게 된다.
역시 베드로도 그러했고 스데반 집사도 그러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은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으셨다. 그러고 담대하게 예수의 증인이 되도록 하셨다.
사람들이 다 놀랬다. "보라, 이 말 하는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사도행전 2장 7절-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사도행전 4장 13절-
미쳐야 전도가 된다.
나는 지금도 이것을 경험하고 있다. 빵 나눠주며 교회에 오게 하는 방식이 아닌 정말 예수 사랑에 나의 심령이 사로잡힐 때 전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더 깊이 발견한 것 한 가지가 있다.
내가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말뿐만 아니라 예수의 사랑을 친히 보여줬을 때 진짜로 믿고 회개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단순히 전도에 미친 것이 아니라, 예수의 마음이 내 안에 있으면서 미쳐야 한다.
바울은 그 전도의 여정에서 항상 예수께 미쳐 있었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 이었다.
나는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 단순히 열정만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께서 나를 몰아세워 주시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나이와도 상관이 없으면 세상적인 재물이나 학문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더 더구나 유창한 웅변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20절-
그 능력은 복음의 능력이다. 이 능력이 전도 대상의 심령에 파고들 때에 비로소 예수께 돌아온다.
바울은 말했다. "내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라." -고린도후서 5장 13절-
이것을 깨달은 그는 누가 뭐라고 하든지 간에 전도의 열정 그 하나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 -고린도전서 9장 16절-
나도 이런 정신으로 살고 싶어서 여기에 와 있다.
한 명의 영혼을 전도하기가 쉽지 않은 나라에서 열심을 품고 살아가는 이 마음이 예수께 붙들리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일임을 늘 깨닫는다.
-나가는 말-
나는 정말 온전히 미쳤는가? 나는 미쳤다. 아니 예수께 미쳐야 한다. 바르게만 미치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를 이루신다.
엘리야가 그랬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열왕기상 19장 10절-
하나님께서는 그 열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맛보도록 하셨다.
사실은 우리가 맹숭맹숭한 상태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우리는 늘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하며 살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일서 4장 16절-
그분이 그 사랑 때문에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또한 우리를 열렬히 사랑하고 계신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반했고 미치셨고 또 우리로 그분의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셨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게 하심이라." -에베소서 2장 11-18절-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 나아서 열심을 품게 되었고 그 사랑에 미치게 되었다.
그러니 만큼 이제 우리의 할 일들이 더 잘 보이지 않는가! 곧 포스트 코로나가 시작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께 미치고 하나님의 사랑에 미친다면 더 귀하게 더 강하게 쓰임받는 전도자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멋지게 사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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