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버릴 것은 버리자 Vứt bỏ cái xấu

좁은길을 걸으며 2020. 12. 12. 12:25

버릴 것은 버리자 扔掉你扔掉的東西

Vứt bỏ cái xấu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

 

 

들어가는 말

 

 

하루하루 살면서 버려할 것은 쓰레기뿐만이 아니다. 우리 마음의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

음식 쓰레기를 안 버리고 며칠 동안 두면 벌레가 생기고 각종 병균의 서식처가 되듯이 우리의 마음도 그렇다.

"버릴 것은 버리라!"

오물이나 쓰레기는 빨리 버릴수록 좋다.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멋이다.

음식 쓰레기나 집안 쓰레기는 바라바로 갖다 버리면서도 마음의 쓰레기 쌓여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죄는 오물이다. 오물을 뒤집어 쓰고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오염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오염을 둘러쓰고 살다 보면 어느 날 무슨 병에 걸릴지 몰라서 걱정을 할 것이다. 

이곳도 신도시 건설 붐이 일어나서 매일 공사를 하고 있고 자동차와 오토바이 매연으로 인해 뿌옇게 안개 낀 날처럼 될 때가 많다. 눈에 안 보이지만 날마다 오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눈에 보지이지 않지만 날마다 얼마나 많은 죄의 먼지들을 둘러쓰고 사는지 모른다. 죄의 미세먼지는 우리의 뇌까지 파고드는 무서운 적이다.

이럴 때 우리는 그대로 있으면 안 된다. 건강한 영혼을 가지고 살려면 죄의 미세먼지까지도 다 털어버려야 한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죄와 싸워 이겨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의 첫 시조 아담을 넘어뜨렸던 죄는 아직도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다닌다. 죽는 날까지 그럴 것이다. 따라서 죄는 하나님과 원수이자 우리의 적이다.

 

집안을 청소하거나 모욕을 하거나 세탁을 해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듯이 우리의 영혼도 예수의 피에 적시고 깨끗함을 받아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

이미 우리는 이미 깨끗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해방하였음이라...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8장 1,2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이런 말씀만 들으면 큰 용기가 생긴다. '누구든지', '지금이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매일 새롭게' 살아갈 수가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Amaizing Grace라는 찬송을 백번이고 천 번이고 부르고 또 불러도 마음에 감격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다. "나는 그 은혜를 지금 누리고 살아가는가?"

한 때는 그렇게 살았을 때도 있었을 것이고 또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도 했다.

문제는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마음에 어떤 생각들로 차 있는가!

날마다 또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길을 가고 있는가!

'아멘.' 이면 정말 행복하고 일이겠지만 그와 반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멘이지만 천국이지만 아니라면 지옥과 같은 하루하루를 살 수도 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영원한 하늘나라에 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직도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이 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하루하루 이기며 살아가야 할 십자가의 용사들이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헤아리다'는 말은 희랍어 'λεγω'라는 말인데 '수집하다.', '열거하다', '재다', '세어보다'라는 뜻이 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일들을 만난다. 이럴 때 하나하나를 따져봐야 한다. 

왜? 그것은 세상에는 엄연히 선악이 존재하고 있고 거짓과 진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무분별한 삶의 자리에 빠져서 어리석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것(선, 진실=진리의 것)은 취하라'는 것이다. 반대로 '악(거짓, 불의=비진리)'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이다.

이것을 분별해 내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열심히 살아서 얼마나 이익을 남기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얼마나 정직하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사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이 우리의 몫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로마서 12장 2절-

바로 이것이 헤아려 아름다운 것을 취하며 사는 삶이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마태복음 13장 47,48절-

 

 

1. 악한 마음

2. 악한 습관

3. 나의 생각

 

 

1. 악한 마음

 

우리 마음에 악한 마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는 방어 진지를 잘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얻은 백성인 것은 명료한 사실이지만 죄의 본성이 다 제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성령 충만의 길에서 멀어지면 죄는 그 악한 본성을 자극한다.

구원을 받고 한 때 성령 충만 받은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울 자신도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장 25절-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잘 따르게 되고 성령이 충만하다면 늘 기쁨도 충복하게 될 것이며 행복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게 되겠지만, 반대로 죄의 법을 섬기게 된다면 얼마나 마음이 괴롭게 힘들겠는가!

악한 마음이 나의 육신을 괴롭게 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오호라, 나는 곤곤한 사람이로다!" 하는 영혼의 탄식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그야말로 '죄에 매여 죽을 인생'이 되고 만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 순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이며 성도이며 크리스천이다.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하고 하나님의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야 하고 우리의 사정을 아뢰야 한다.

만일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가지 않고 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여기서 악한 마음이란 예수님의 말씀에서 잘 나타난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가복음 7장 19-22절-

이런 것들을 가지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오늘 당장이라도 버려야만 하는 냄새나는 오물들이며 병균과도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힘으로 싸우려고 하면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다.

'우리 죄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길 수가 있다.

바울은 고백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장 31절-

십자가 앞에 내 자신을 날마다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나의 마음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는 순간 악한 마음도 버릴 수 있게 된다.

그때 비로소 마음의 기쁨과 안식과 평안을 얻게 된다.

 

악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예수를 팔아먹는 일도 한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한복음 13장 2절-

요한복음 13장을 끝까지 읽다 보면 결국 가룟 유다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예수께서... 한 조각을 찍어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요한복음 13장 26,27절-

 

그는 예수의 제자로서 예수를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돈을 만지는 재미를 봤다.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한복음 12장 6절-

예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 아니 앞으로 어떤 일을 저지를 자인지를 알고 계셨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롯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요한복음 6장 71,72절-

그는 '돈 때문에' 예수를 판 것이다. 웃을지 모르지만 '노예 한 사람' 값에 스승을 팔아넘겼다. 이런 경우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면하지 못했다.

마귀는 당당히 그를 이용해 먹었다.

사실 이렇게 악에 사로잡히면 손을 떼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육신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영으로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장 13절-

우리 앞에는 살 길이 열려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악한 생각이 자신을 사로잡기 전에 마귀로 틈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Do not give the Devil a chance." -에베소서 4장 27절-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밑에 나가서 내 마음의 죄악 된 것들을 쏟아버려야만 한다.

 

 

 

2. 악한 습관

 

습관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이 있다. 세상은 아직도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만큼 습관성 죄악을 찌들어 있다. 우상숭배가 그런 것이다. 세시풍습이란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계속 대물림 해 왔다.

그것뿐만은 아니다.

음주로 인한 병폐나 도박, 흡연, 마약 그리고 습관성 도둑질이나 뇌물, 폭력과 거짓말 등이 그렇다.

그리스도가 없는 세계 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합법화되어 있는 것들도 많다.

인간들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부분별 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몰랐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할 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까 이렇게 행복한 인생인 것을....!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마음의 미련이다. 이것이 평생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은 자신의 인생에 해가 될 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미련을 갖고 사는가! 그것은 마음속에 있는 악의 뿌리가 아직도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걸 것이 이것을 내 마음의 결심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결코 내 결심대로 안 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그러니까 "에잇 모르겠다. 그냥 되는 대로 살자!"하고 자포자기하고 살 것인가!

그건 아니다.

1. 애통하며 회개해야 한다

2. 성령의 다스림을 받자

3.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어야 한다

 

그 후에도 미련은 다시 자신을 괴롭힐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최대의 무기는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며 물리쳐야 한다. 그리고 다시 성령 충만한 삶이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성령이 나를 지배해 주실 때만이 우리는 거룩한 삶의 자리로 나아갈 수가 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 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로마서 6장 16-18절-

사실 이미 우리는 '의에게 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에게 종 된 삶으로 전락'될 때가 있다. 얼마나 바보짓이면 창피할 노릇인가!

'의에게 종 된 삶'의 자리에 항상 머물러야 한다.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을까! 그러면서도 옛 본성과 그 습관에서 못 벗어난 모습으로 추락이 되어 있다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이럴 때 우리는 더 철저하게 하나님께 헌신과 순종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마귀에게 찬스를 주지 말아야 한다.

다윗이 아무리 전승을 하고 백성들의 환호를 받았어도 그가 한가롭게 옥상에 올라갔을 때 눈에 들어온 알몸의 여성에게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궁궐로 들어오게 하여 취하고 말았다.

그는 그이 충신 우리야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서 그것을 무마하려는 공작에 실패하자 결국 우리야를 최전선에 보내어 전사하게 만들었다.

이 일로 다윗 철저히 화개 하게 되었지만 철저한 인생의 패배감도 맛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아주 버리시지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의 징계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에게 때로는 매섭게 징계하신다.

그러나 그 징계로 인해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며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신다.

 

 

 

3. 나의 생각

 

우리는 때로 이것이 나의 욕심의 생각인지,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간하지 못할 때가 있다.

태만이 문제다.

깨어있지 못할 때 우리의 생각 속에 마귀는 '자기 합리화'를 하도록 하며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것마냥 속이고 든다.

그러니 만큼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사야 55장 8,9절-

우리가 태만할 때 마음이 둔해지기가 쉽다.

어제는 성령 충만했다가도 오늘 넘어지기 쉬운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의 제자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았을 때는 예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믿음으로 충만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는 상황이 급전도 되었다. 바람이 거슬리자 노를 저어도 배가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척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셨다.

제자들은 "유령이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예수께서 "내니 두려워 말라." 하셨다. 그리고 배에 오르시자 바다가 잔잔해졌다.

"와, 정말 대단하시다!"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가는 이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더라." -마가복음 6장 52절-

어제는 어제이다. 오늘은 오늘이다. 오늘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오늘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금방이라도 육신의 생각으로 치달을 수 있으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생각으로 치닫다가 죄에 걸려 넘어지기 쉽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로마서 8장 6,7절-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겉으로는 거룩한 척할지 모르지만 그 내면을 보면 곪아 터져 가고 있다.

왜인가?

영적 태만과 그 둔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서 나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 즉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살아가야 한다.

거짓을 정당화시키거나 반 윤리적인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며 죄악일 뿐이다.

마귀는 이런 형태 속에 살아가는 사람을 먹잇감으로 삼고 늘 장난을 하고 있다.

'그럴싸한 거짓말'로 항상 속인다.

거짓된 사상, 즉 잘못된 가치관이나 철학, 이념 등도 버려야 한다. 이런 것들이 마음의 생각에 굳어버리면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요즘 같이 세상이 시끄러울 때 잘못된 정치논리에 빠져서도 안 되며, 거짓된 정보의 낭설에 휘말려서도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항상 정도를 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께서는 둔한 마음을 일깨워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마귀의 장난에 속으며 산다.

베드로의 경우를 보라. 

방금 전에 예수를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그가 예수께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다." -마가복음 8장 31절-

이렇게 말씀하시자 노골적으로 항변을 했다.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태복음 16장 22절-

이때 예수께서는 아주 냉정하게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도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태복음 16장 23절-

지극히 동정적이거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는 발언이나 행동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경우가 허다히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나의 생각이 육신 안에서 죄의 생각이나 사탄이 주는 생각에서 못 벗어나는 경우에 죄의 종이 되며 죄악에 넘어져 낭패를 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어야 하며 내 속에 생각나는 그 생각이 다 옳은 것처럼 주장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진리의 잣대를 통해서 나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알고 보면 하나님의 생각과 그 뜻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마음의 욕심' 때문이거나 '무지'로 인한 '무분별' 때문이다.

그러면 '무지'는 정당한 것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호세아 4장 6,7절-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지식을 취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말씀이 임하는 순간 어둠의 세력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

악은 항상 무지한 자들 속에서 둥지를 틀고 앉아있다.

"악인은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장 7절-

 

 

나가는 말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거룩이다.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되다ἅγιος; set apart 또는 sanctify'에서 나온 말이다.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삶으로 나오는 것이 거룩이다.

그렇게 하려면 신구약 성경의 전체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한다면 '악을 취하며 악과 더불어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위기 19장 2절-

베드로 사도 역시도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전서 1장 15절-

현재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죄악 된 마음이나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한 발짝도 거룩한 삶의 자리로 나갈 수가 없다.

"범사에 헤아려 무릇 좋은 것은 취하고 악한 것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

영적 분별력이 있으면 잘 헤아릴 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면 잘 헤아릴 수가 있다.

성령 충만하면 잘 헤아릴 수가 있다.

좋은 것, 즉 거룩하고 선한 것은 마음의 그릇에 담고 악한 것은 그 그림자라도, 먼지라도 다 제거해 버리자.

죄와 거룩은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다.

따라서 늘 예수의 보혈의 피에 온몸을 적시며 살자.

그러면 날마다 이기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시라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면 죄의 생각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

"나는 안 그렇습니다."라고 장담하지 말라. 그것은 교만이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강하다. 예수 밖에서는 여지없이 마귀의 표적이 된다. 그리므로 늘 예수 안에서 살아가야 하고 예수의 손을 꼭 붙잡고 살아야 한다.

'대충', '어림잡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경 진리의 말씀에 입각해서 생각할 줄 아는 사고력 길러가야 한다.

'내 생각'이 얼마든지 '내 욕심'일 수 있고 또한 '거짓된 관념'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해서 자라가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베드로후서 3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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