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성경을 알자 Hãy Biết Kinh Thánh

좁은길을 걸으며 2020. 10. 16. 13:35

성경을 알자 Hãy Biết Kinh Thánh

디모데후서 3장 13-17절

요한복음 5장 39절

 

 

들어가는 말

 

"아는 것이 힘이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의 베이컨의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는 것이 생명이다." 이 말이 어느 경우에나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두고 말할 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생명이다."라고 할 때 맞는 말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일찍이 "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4장 6절-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누구를 믿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디를 향하여 가야 하는 인생인가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는 책이다.

따라서 "성경은 나의 인생의 교과서이다. The Bible is the textbook of my life."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사무엘상 3장 10절-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분을 섬겨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생명이며 행복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범죄한 이후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멀어졌다. 무지한 인생들은 한없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갔고 죄와 우상숭배로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한 마디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했다.

스스로 구도求道의 길을 찾아 나선 인간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 인간은 깊은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금욕주의나 신비주의 그리고 종교다원주의는 혼란을 부추겼을 뿐 구도의 길에서 더욱 멀어져 갔다.

 

어쩌면 버려진 인간처럼 되고 말았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 2장 2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류를 완전히 버리시지 않았다. 오히려 은총의 해와 비를 주시며 그 사랑이 변함없음을 보여주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인류를 향한 사랑과 관심이 지대하시다.

다만 인간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죄와 저주 아래 갇혀버린 인간'이 되어 스스로 거기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도대체 희망이란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의 절망 속에서 인간들은 갠지스강 오염물 속에서 미역을 감고 있는 셈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이것은 한줄기 큰 빛이었다.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 -로마서 3장 21절-

'오! 찬란한 빛',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셨다. 예수가 직접 성육신 하시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다.

바로 이 때 죄와 어둠의 세력을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분이 오셔서 우리를 오염된 갠지스강에서 건져내셨다. 그리고 그분이 베푸신 세례로 깨끗하게 씻어주셨다.

곧 그분이 오셔서 인류를 위해서 지신 십자가와 그의 피는 이런 능력이 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디모데전서 1장 15절-

이것이 복음εὐαγγέλιον(유앙겔리온)이다. 복음을 히브리 말로는 בְּשׂוֹרָה(베소라), 아름다운 소식(beautiful news)을 뜻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식이 복음이다.

"누구든지 (이 아름다운 소식)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마가복음 16장 16절-

구원받은 자들로 인해 이 아름다운 소식이 온 세계에, 온 인류에게 전파되기를 원하셨다.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되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장 47,48절-

이러한 사실을 증거해 주는 책이 있다. 곧 성경聖經;כִּתבֵי הַקוֹדֶשׁ이다.

성경은 '거룩한 책 Holy Bible'이다. 사실Fact의 책이며 오류가 없다. 이 책을 인류에게 주셨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가야 인생 승리자가 될 수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나름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알기 위해 필요한 다음의 세 가지를 제시하려고 한다.

 

 

1. 광맥 鑛脈을 찾아가며 읽어라

2. 성경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라

3.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1. 광맥 鑛脈을 찾아가며 읽어라

 

성경은 66권이 하나로 묶어진 책이다. 비록 저자가 다르며 시대적 상황과 문학적 표현이 상이한 형태로 기록된 것 같지만 서로 보완관계에 있는 것은 물론 일목요연一目瞭然하며 일맥상통一脈相通 한다.

그래서 완전한 책Sách đã hoàn thành, 또는 완성된 책 The completed Book이라고 말한다.

이 성경은 옛날의 고전이라기보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을 펼 때마다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고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Lời của Đức Chúa Trời hằng sống; The Word of the living God'이다.

우리가 어떤 책을 독서하든지 알아내야 하는 것 하나가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저작자著作者가 누군가를 알아야 한다.

우선 저자著者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 글을 썼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저작자를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저작자이시다. 비록 36인 이상의 손을 빌어서 기록하게 하셨지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순결하고 정직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 스스로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자증自證하고 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누가복음 24장 27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장 39절-

 

우리는 성경을 읽어 내려간다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점점 더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원어(히브리어, 그리스어)로 된 성경을 읽어야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원어로 읽을 수 있다면 더 좋을 수 있겠지만 번역된 우리말 성경 역시 중심 맥락을 아는 데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 혹, 혹자 중에 해석을 잘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말 자국어로 성경을 읽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어린 아이 때부터 교회에 나갔다. 매주일 예배드리며 설교를 들었다. 그 후에 공과공부를 했다.

그러나 성경을 잘 몰랐다. 어느 날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부터 성경이 쏙쏙 이해가 되고 꿀같이 맛있게 느껴졌다. 그때가 열일곱 살 때였다.

나는 날마다 성경에 빨간 줄을 그어가며 성경을 읽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때론 수업시간에도 성경을 읽었다.

군대에 가서는 길을 걸으며 성경을 읽고 또 휴식시간에 보초를 서는 시간에도 성경을 읽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어느 날 로마서를 읽다가 갑자기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서로 연결되며 하나로 일맥상통하게 연결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내 스스로가 놀라웠고 감격스러웠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성경이 어렵게만 생각되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으나 갑자기 길이 뻥 뚫리는 현상과 같은 것을 느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성경을 읽어가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세상(인류)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가 십자가에 희생이 되셨다는 사실 앞에 고개를 떨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림과 동시에 희열과 감격에 사로잡히게 되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성령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에게까지도 '성령의 조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성경전체가 한 구속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구약 39권이라는 산맥을 타고 넘어온 길이 이제는 마치 터널을 뚫고 도로를 놓아서 고속도로가 뚫린 기분이었다.

 

광맥이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와 그 구속 Jesus Christ and His Redemption'이다.

성경 안에 예언서들이 많아서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씀일까?"라는 의문을 갖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성경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그 예언 속에서 보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 계약 God's redemptive covenant'의 성취를 바라보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언서들의 예언 내용을 다 이해해야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도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그 예언의 말씀들이 어느 때 어느 시를 가리키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누구를, 어떠한 때를 지시하는지 상고하니라." -베드로전서 1장 11절-

 

하지만 성경의 예언들은 이미 이루어진 말씀도 있고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도 있다.

앞으로 이루어질 예언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억지로 꿰어 맞추려고 할 필요가 없다.

"먼저 알 것은 경(經)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 1장 20,21절-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이 예언의 책이기에 이해를 잘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칼빈선생같은 분도 이 책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나는 칼빈 주석을 다 읽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분이 왜 이 책을 주석하지 않았는지를 알 것 같다. 어려워서도 아니며 복잡해서도 아니다.

억지로 해석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한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 아무리 박해가 심하다 할지라도 예수를 배반하지 말고 견고하게 복음의 신앙을 붙들고 살아라."

이 부탁을 하려고 교회들에게 편지를 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 편지를 받았던 모든 교회들이 이 내용을 다 이해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만 큰 줄기, 즉 전체의 그림, 또는 그 맥락이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알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의 맥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이야기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것만 알면 절대로 어리석은 데로 전락되지 않는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성경도 필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직접 현현(나타나심)의 계시로 말씀하시다가 모세 때에 와서 양피지에, 그 후에는 파피루스에 기록하게 하셨다.

이것은 중국의 후한시대의 첫 종이 발명보다도 1천 년이나 앞선다.

고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한 이것을 증거하는 자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성경을 구속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무엇을 설교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신학교에서 배운 것도 많지만 그 이전에 직접 성경을 읽다가 뜨거워졌고, 성경을 읽다가 울기도 많이 했고 기뻐서 바보처럼 혼자 웃기도 많이 했다.

어느 날 한나절에 창세기 전체를 읽어 내려가다가 요셉이 자기를 인신매매했던 형님들과 상봉하는 장면에서 나도 따라서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외쳤다.

첫 번 범죄한 사람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던 얘기와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리라는 예언부터 시작해서 계속 희생 제사를 통해서 보여주는 바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9장 22절-라는 말씀대로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이야기이다.

성경 전체에서 이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성경을 읽었다면 그것은 성경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아담-셋-노아-셈-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지다가 열두 지파를 한 민족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유다-다윗-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이야기 가운데서 구속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첫 장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 복음 1장 1절-라고 하며 또 우주 창조만큼이나 크게 선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 승천하시며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다가 다시 오실 것(Second Coming)이라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장 31절-

따라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거룩한 행실과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성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베드로후서 3장 11,12절-

 

 

2. 성경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라

 

우리는 성경 전체를 한꺼번에 떠올릴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하루하루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른다.

그때마다 신통방통神通龐統하다는 누구엔가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볼 것인가?

그럴 필요가 없다. 성경 전체를 숙지하고 이해하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성령이 스승(보혜사)이 되셔서 우리에게 바른 상황을 판단하게 하실 것이며 의로운 길로 가게 하실 것이다. 

성령께서는 절대로 성경을 위반해서 우리에게 대답하신 적이 없으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편 105절-

그런데 성경에 무지하다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기다릴 것인가?

우리가 이런 것을 기대한다면 오히려 잘못된 신앙으로 변질되기 쉽다.

나는 성경에 무지한 자들 중에 신비주의로 치우친 자들에게 물어보고 답을 찾으려다가 잘못된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성경에 답이 있다.

그러나 당신이 진실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미 여러분의 마음의 '심비'에 언약의 두 돌판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직 살아 계신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돌판에 쓴 것이라." -고린도후서 3장 3절-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니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하나님의 뜻을 쉽게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우고 스스로 연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의 육의 돌판이 녹슬지 않고 더욱 새롭게 빛나는 심비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에게 항상 "하나님의 선하신 뜻,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려주는 주는 표준이다.

때로는 성경에 직접적인 해답이 나와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지만 직접적인 대답이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경의 맥락을 파악했다면 "무엇이 성경적인가?"라는 질문 속에서 얼마든지 성경적이며 복음적인 답을 찾을 수가 있다.

내가 본 성경은 이렇다.

 

1) 성경은 비윤리적인 것을 옳다고 한 경우가 없다.

2) 성경은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3) 성경은 비과학적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

4) 초자연적인 사건을 사건을 통해서 인류 역사에 개입하시는 경우가 있다.

5) 하나님은 상식의 하나님이시다.

6)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은 항상 성경에 일치한다.

7) 성경을 알면 문맹이 사라진다. 

이단들의 특징은 성경의 숲을 보지 못하고 어떤 특정한 부분을 왜곡시켜서 그것을 그들의 만들어놓은 각본의 틀 안에 짜 맞추기를 한다. 어떤 이단이든지 다 마찬가지였다. 성경의 진리를 교묘한 방법으로 왜곡시킬 때 거짓의 영인 마귀는 어리석은 자들을 유인해서 그들만의 집단을 이루게 하고 그들 집단 안으로 들어와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런 행위는 결국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적그리스도나 사이비 종교로 몰락되어 버린다.

초대교회 안에도 보면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요한계시록 2장 9절-

이런 거짓된 이단들이 살며시 파고들었다.

 

그러니까 성경 전체적인 맥락을 바르게 그리고 한눈에 파악할 줄 안다면 이단에 빠지거나 어떤 상황에서나 엉뚱한 방향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성경적인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고서 자기 욕심의 생각으로 일처리를 해놓고서 "이것이 하나님이 뜻 이이다."라고 합리화하는 경우라면 그것은 오히려 죄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로마서 8장 7절-

우리는 하루하루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믈 묵상해야 한다. 

영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이며 성경의 진리와 부합된 생각이다. 거기서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ㅇ이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은 자기 욕심에 끌려 이미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단의 덫에 걸린 셈이다.

ㄸ라서 이렇게 된 경우에 이미 마음이 사울처럼 되어 자기 욕심을 이룰 뿐이다.

사사시대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다 자기 소견대로 행하다가 늘 죄에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하여야 한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은 곧 성경 복음 진리에 입각하여 바른 순종에 이르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성령을 좇아서 사는 삶이란 패어Fair하고 깔끔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성경 정신에 빗나가 있으면서 예수의 이름을 팔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목회자라고 해서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을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읽기는 했으나 바르게 연구하지 않았거나 잘못 배웠다면 얼마든지 그릇된 해석으로 인한 오류를 범할 수가 있다.

심지어 사기꾼 목사들이 있다.

우리가 이런 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신자 각자가 성경을 바르게 아는 곳으로 가야 한다. 

한 마디로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성경 전체의 큰 숲을 보면 시기꾼에게 당할 수도 있고 이단자들의 유혹에 걸릴 수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알려고 해야 한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할 줄 안다면 건강한 신자가 될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한국에서 20년 목회한 경험을 통해 이것 하나가 보람으로 남았다.

새벽마다 창세기 1장에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 22장 끝날 때까지 반복했다. 5번 이상을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성경 전체를 5번 이상 설교한 셈이다.

아마 이렇게 해 본 경험을 가진 목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성경 전체의 맥락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게 되었다.

따라서 나에게서 배운 자들은 지금까지 이단의 미혹에 걸려든 자들이 하나도 없다.

 

 

3.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지금 성경을 펴고 읽는 순간, 또는 성경을 듣는 순간 하나님은 '지금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God speaking to me now'으로 다가오신다.

그런 까닭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Living Bible of GOD'이다.

그러니까 옛적에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살펴보시며 우리가 성경을 열 때에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장 12,13절-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 전체의 맥락을 바르게 파악할 뿐만 아니라 어느 말씀을 펴서 읽든지 간에 오늘의 삶의 현장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시편 95편 7절-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읽은 말씀만 가지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성경 전반을 이해하고 어느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를 숙지하고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하루하루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때마다 그 현실과 상황에 맞게 '생각나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오늘 읽은 말씀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 전체의 맥락에서 오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신앙상담을 할 때에도 역시 내담자에게 적절하게 제시할 성경구절이 떠올라야 한다.

이 시대를 보면서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면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말씀들이 생각나야 하고 또다시 묵상하며 영적무장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구원에 이르는 지식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 삶 전반, 즉 개인의 생활에서부터 가족, 교회, 사회 그리고 경제, 사물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해 가야 하며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 말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곧 그것이 하나님 중심이며 예수 중심의 삶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루하루의 영혼의 양식이자 우리 인생 전반의 교과서(The text book)이다.

우리는 성경을 내 양심을 비추는 거울로 삼고 항상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쉬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2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난 일을 했을 때는 신속히 회개하고 다시 말씀의 한가운데로 돌아서야 한다. 이것이 지혜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지름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곱게 익은 딸기보다 더 향이 좋고 소화기능이 뛰어나서 먹어도 먹어도 싫증 나지 않으면 소화가 잘 된다.

나는 누구에겐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평신도가 성경을 너무 잘 알면 안 돼!"

어디에서 나온 발상일까! 아주 잘못된 말이다. 혹시 성경을 잘못 알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한 말이라면 모르지만 성경은 알면 알수록 더 아름다운 순종에 이르게 되며 교회 안에서 덕을 세우며 더 화평하며 겸손해지는 것이다.

나아가서 사회적으로도 정직하고 덕망있는 사람으로 잔잔한 영향력을 끼친다.

그런 까닭에 목사는 물론 평신도가 성경을 잘 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인격화되지 못할 때는 또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그것을 교묘하게 악용하며 사는 자들이 종종 있다.

믿음이 잘못되어 있으면서도 잘 믿는 척하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가 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야고보서 2장 19절-

이렇게 된 자들이 교회와 사회 안에서 혼란과 파장을 야기시켜 하나님의 이름과 교회를 욕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인격화된 신앙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성경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한다면 우리의 사고思考나 말과 행동, 인격이 예수를 닮게 되어있다.

성령의 열매란 무엇인가? 그 역시 예수의 인격에서 나온 삶의 열매이다.

성경을 읽는 이유, 특히 잠언서를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험악한 세상에서 지혜롭게 처신하며 사는 비결이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잠언 4장 7절-

사회적으로 어느 계층에 속해 있든지 성경을 읽고 바르게 적용할 줄 아는 자는 지혜롭게 살 수 있다.

따라서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된다.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인정받는 신자가 되어야 한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고린도후서 10장 18절-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경을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춰서 그때그때 잘 적용해야 한다.

또한 예수는 열두 살 때에 율법사들을 능가할 만큼 성경에 해박하셨다. 그러니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해석하는 하시는 것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적용하셨다. 

40일 금식기도하시고 마귀가 시험해 왔을 때 적절한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것이라." 신명기 8장 3절; 마태복음 4장 4절-

또한 성경을 이루시려고 시간표를 맞추셨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요한복음 19장 28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 1절-

이렇게 예수님 자신도 그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절하게 활용하시면서 승리의 삶을 사셨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시편 119편 147,148절-

우리가 말씀 앞에 설 때에 때로는 회개가 나오며 때로는 감사와 찬송이 나온다. 

"찬송하겠네. 찬송하겠네. 생명을 주시는 구주로다."

나아가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가 떠오르게 될 것이다. 바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면 죄악의 길로 치우치지 않는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편 19절-

 

 

 

나가는 말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항상 밝은 빛을 우리 앞에 비춰주시는 분이시다. 그 빛은 항상 그리스도 예수를 중심으로 해서 비춰주시는 참 빛이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 -골로새서 2장 3절-라고 선언한다.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도 광맥을 찾아 나서서 발굴작업을 하는 광부처럼 조심스럽게 성경을 탐구하면서 그 보화를 캐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각자가 가장 지혜로운 삶, 가장 빛나는 인생을 연출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우리는 성경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이유는 이것이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에베소서 6장 11절-

그 전신갑주란 무엇일까? 그것은 에베소서 6장 14-17절에서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적인 마귀 권세를 잘 방어하기 위해 머리끝부터 발까지 잘 무장을 했을지라도 공격무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좌우에 날 선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의 칼을 들고 무찔러야만 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 "성경에 일렀으되, ", "모세와 선지자의 글에", "모세의 글에"... 성경을 인용하는 것을 통해 마귀를 꼼짝 못 하게 제압해야 한다.

예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을 때에 세 번의 시험을 모두 "기록되었으되, ", "또 기록되었으되,", "기록되었으되, "로 물리치셨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경우가 있다. 마귀도, 이단도 모두 성경을 인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편의대로' 인용하여 사건을 호도하거나 왜곡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마귀도 '고도한 궤략'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시험할 때 마귀가 시편 91편 11,12절을 인용하여 오히려 예수를 넘어뜨리려는 꼼수를 썼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또 기록되었으되(신명기 6장 16절 인용),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장 7절-

대부분의 이단들은 성경의 바른 지식에 무지한 자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이 만든 왜곡된 교리의 덫에 걸려들게 하려고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감촉같이 속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산다.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신앙에서 멀어졌을 때 이단들이 판을 깐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적용하는 목사들과 성도들이 많아진다면 한국교회는 그 자체로써 큰 힘과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의 신앙에서 멀어진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고 있는 형국에 이르렀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복음에 합당한 신앙의 삶으로 나아가게 된 성도들이 많다면 절대로 한국교회가 이렇게 되진 않는다.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울어야 할 때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예레미야 5장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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