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두 권의 책

좁은길을 걸으며 2020. 9. 25. 19:20

두 권의 책 Hai Quyển Sách

시편 19편 1-14절

 

들어가는 말

 

세상에는 문자와 소리는 없으나 총천연색으로 된 책이 있으며 다음에는 문자화 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그 책(The Book), 즉 성경(The Bible)이 있다.

우리는 이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위대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지성은 고장이 났다. 마치 돌아가다가 멈춰선 기계와도 같이 말이다.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인생이 되었는가!

이 지성이 치유되지 않고서는 인간의 지성은 마비된 상태에서 숨만 쉬고 있는 생물과도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으로서는 별 도리가 없다. 이런 처지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은 계시의 빛을 비쳐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로 우리 인간에게 다가왔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이 아름다운 세계를 활보하고 살아가면서도 이것을 누가 만들었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것을 지으신 분을 찾고 부르며 고마움을 나타내기는커녕 욕심의 눈에 사로잡혀 볼 것을 보지 못하고 불만과 욕심에 사로잡혀 서로 으르렁거리며 마주 보고 있는 짐승들처럼 살아가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나아가서는 마치 피조물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하는 어리석은 일들까지 자행하게 되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답을 찾을 수가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답을 주셨다.

아무리 아름답고 값진 것을 봐도 그 가치를 모르면 헛된 것에 빠져서 눈이 감기고 귀가 가리어지게 된다.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그렇게 살았다.

 

 

1. 자연계시의 책

2. 특별계시의 책

 

 

1. 자연계시의 책

 

우리는 우주 안의 한 개체로 왔다가 가는 인생이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바 없었지만 이 광활한 우주 안에서 태어나서 이것들을 감상하고 이를 무대 삼아 생계를 잇고 살아가고 있다.

과연, 이것을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는 막연하게만 이 우주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우리 인간은 이 우주 창조를 직접 보거나 참여해서 공사를 한 적이 없다.

마치 아기가 태어날 때의 과정을 보거나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세상에 나온 후에서야 "아, 이분이 우리 엄마구나! 아, 이분이 내 아빠구나!"하고 깨달았을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묻고 계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있었느냐? 네가 깨달았거든 말할지니라." -욥기 38장 4절-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인간들에게 알려주는 책이 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다.

우리는 우주 창조에 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만 뜨면 하나님은 '자연계시' 또는 '창조 계시'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창조했노라!" 하시며 날마다 보여주고 계시지만 그것을 모르고 사는 인생이 되었다.

눈 뜨고 다니지만 소경이 따로 없다.

왜?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계시의 혜택을 받고 살아가면서도 그 만드신 분을 모르고 살아가다니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메시지가 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편 1절-

바로 이것이다. 우리 인간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소리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분의 손으로 창조하셨던 일을 밝히 보여주며 나타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히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인간들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분을 대적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적하는 행위가 무엇일까?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로마서 1장 22,23절-

성경은 이것을 가장 무서운 죄라고 명시하고 있다.

마귀는 인간을 속이며 계속해서 이같은 생활을 하도록 하여 지옥으로 끌고 간다.

이런 생활에 물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창조를 말해 줘도 그들은 그 생활에 깊이 물들여져 있어서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산다. 가짜 뉴스에 빠진 자들처럼...

시편 19편 2-6절을 읽어 보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 대자연이 비록 문자로 된 언어가 아닐지라도 문자로 쓴 문서보다도 더 힘 있게 하나님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표현하는 '자연', 또는 '천연'이 그냥 저절로 있는 것처럼 쓰는 낱말이 되어 있지만 엄격히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피조물'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보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보게 된다.

밤과 낮이 바뀌는 과정을 보라. 언어가 없어도 언어를 주고받는 것 이상으로 피조물끼리 임무교대를 하며 서로 소통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하모니를 이루며 움직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라는 큰 선물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만 없어도 사멸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가운데서 우주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이것 또한 하나님의 특별 은총의 혜택을 입은 사람이 아닐까!

"햇빛과 비를 주시니 추수할 곡식 많도다. 귀한 열매 주시는 이 주 예수." - 93장 -

그러나 우리는 알았다. 하나님을 안 후로는 우주를 바라보며 우리도 그 영광을 찬송으로 나타내며 사는 존재가 되었다.

이게 정상인 인간인 것이다.

정상인 인간으로 돌아와서 보니 영혼의 창이 열려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신묘막측함과 그 놀라우신 지혜와 자식, 그리고 그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이사야 40장 26절-

이런 놀라운 창조를 하나님이 하셨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하셨다.

우주의 안에 있는 질서와 조화 그리고 그 속에서의 다양한 생명체의 활동들, 그리고 때를 따라 일어나는 현상들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순응하며 그 영광을 선포하며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의 눈을 높이 들어 하늘(밤하늘)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주변의 산천)을 보라. 누가 이런 일을 하셨는가?

그래서는 나는 자연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하모니카를 꺼내어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 478장 -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그리고 나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와! 아름답다. 이것은 누가 만들었을까!"

"네. 하나님이요."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에 마음이 황홀해지곤 한다.

하나님을 찬송하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43장 21절-

따라서 우리는 사람만 보지 말자. 돈만 보지 말자. 나의 욕망만 채우려 하지 말자.

길을 걸을 때 땅만 보지 말자. 눈을 높이 들어 하늘을 보라. 그리고 또 하나님이 만드신 꽃과 나무를 보라.

그 안에서 뛰어놓은 짐승과 날아다니는 새와 곤충들을 보라.

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가! 이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와 부사를 다 동원하여도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를 제대로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

이것들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을 거슬려 역주행하는 것들이 없다.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며 빛과 어두움의 조화 속에서 계절의 옷을 갈아입으며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하게도 인간들만이 더러운 욕심에 찌들어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면 산다. 그리하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우주만물 가운데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귀를 기울여 그 음성을 들어보라!

 

2. 특별 계시의 책

 

자,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게 된 자리에 떨어지고 말았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크게 갈라놓고 만 것이다. 큰 소리를 내어 부르짖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죽고 살기로 발버둥 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길을 찾아서 구도의 길을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단 하나,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필요할 뿐이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로마서 1장 19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로마서 1장 20절-

이렇게 하나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존재와 그 하신 일을 만물 가운데 확실하게 나타내셨다. 

옛 말에 "손에 쥐어줘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이렇게까지 날마다 보고 느끼며 누리고 살아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오! 정말 안타깝다.

그러니까 인간들은 죄가 눈을 가려서 '볼 것은 못 보고 못 볼 것은 보고 사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여기에 그치고 말았더라면 우리는 헛된 세상의 영화만 좇다가 멸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어두운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시편 19편 6,7절-

바로 '하나님의 특별 계시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이야말로 '완전하다 Perfect'하다는 것이다.

죄로 인해 구제 불가능한 인간을 구해내기까지 완전한 계시이다. 이것에 정말 놀라움이 있다.

이 계시가 바로 '영혼을 소성케 한다 Restoring the suol.'

창조주 하나님이 곧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이라는 책을 통해서 '특별 계시', 즉 '구속 계시'를 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특별 계시의 책'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고 구원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은 항상 함께 있는 것이다.

성경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크게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을 구원하시려 하신 구속 계획에 관해서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몰랐더라면 하나님의 창조도 하나님의 구원도 깨닫지 못하고 소멸될 무가치한 존재가 될 뻔했다.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신 하나님의 특별 계시에 대해 오늘 시편 19편 6-9절에서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여호와의 도' 그리고 '여호와의 도'라는 라는 말로 의미를 달리하며 구체적인 표현의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본다.

우리는 이 내용의 한 말씀 한 말씀을 깊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은 영혼을 치료하는 약이며,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만들어 주며, 정직하게 하여 마음이 즐거운 생활로 나아가게 하며, 순결한 마음을 품게하여 눈을 밝게 해 주며, 영원에까지 이르게 해 주며, 나아가서는 진실하고 의로운 인생을 살게 해 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며 그 가운데로 걸어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이 계시의 책의 가치는 이 세상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편 19편 10절-

과연 우리는 여기에 공감하며 또한 이렇게 사모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못했다면 우리는 그만큼 세상의 맛에 빠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매력에 파묻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크리스천일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고 God's warned'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알고 보면 성경에는 '수많은 경고의 말씀'들이 담겨 있다. 물론 이사야서, 에스겔서, 예레미야서 등 예언서에 많은 경고들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신약성경 역시도 우리에게 많은 경고들을 하고 있다.

'경고'에는 "주의하세요!"가 담겨있다. "그렇게 살면 안 돼!", 또는 "거기로 가면 안 돼!"라는 것이다.

경고를 받고도 끼욱끼욱 간다면 어리석은 자요, 바보이다.

"또 주의 종이 그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도다." -시편 19편 11절-

'지킴 Keeping'으러써 '큰 상 Great reward'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특별 계시의 책을 통해서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인간의 죄'의 문제이다. 그리고 '구속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길로 행할 때 '경고'를 하신다.

그러나 의의 길로 행하며 '칭찬과 상'을 베푸신다.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그 지침서를 부셨다는 것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편 19편 12절-

누구에게나 '숨은 허물 Errors and hidden faults'이 있다. '작은 실수와 결점'을 뜻한다.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작은 허물, 즉 작은 실수와 결점이 있다. 때로는 나 자신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것까지도 하나님 말씀의 빛으로 비춰서 깨끗한 삶으로 나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큰 죄가 있을 수 있다.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편 19편 13절-

고의로 죄를 짓는 자는 악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늘 계획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 말이다.

그런 죄가 '나를 주장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한 것은 '죄악의 노예'로 사는 것이 가장 두렵기 때문이다.

만일 정치가들이나 사법부 관계자들이 이런 죄에 빠진다면 무서운 죄악을 서슴없이 저지르게 될 것이다.

이런 자를 사악한 자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남을 억울하게 만들고 착취하거나 악한 죄를 꾸미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비난받을 것이 없는 정직한 자의 삶을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가는 말

 

그 말씀을 묵상하라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야 한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우리는 여러 가지 표현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어야 한다.

기도할 때도, 찬송할 때도, 일상에서도 그 이름을 불러야 한다.

왜? 그분은 어디로 가든지 나의 든든한 반석이시다. 우리 평생에 있어서 그분은 나의 구속자이시다.

얼마나 고마운가!!!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라.

묵상할 때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마음의 깊은 소원이 주께 열납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두 권의 책을 품고 사는 셈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라.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찬송하며 살자.

주 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을 생각하며 그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며 노래하자.

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우리의 본분이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숲속이나 험한 산 골짝에서...

주 하나님 독생자 아낌없이....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찬송가 40장-

하나님의 창조와 주 예수의 구속의 은혜를 날마다 되새기며 사는 크리스천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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