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개척하라 Hãy tự mình đi tiên phong
여호수아 17장 14-18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휘가 있다. 그것은 '개척'이란 단어이다. 영어에서 '파이오니어 Pioneer' 또는 '프런티어 Frontier'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개척하다'라는 의미는 '산과 들 따위의 일구지 않은 땅을 일구어 논밭으로 만들다.' 또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맨 처음 시작하여 그 분야에 길을 닦는다'는 뜻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창조하다 בָּרָא(바라)'는 용어와 함께 쓰이고 있다. 역시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면서 우주의 개척자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한 인생으로 태어나서 개척정신을 가지고 인생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힘든 만큼 보람 또한 클 것이다.
나는 어렷을 때부터 모험을 좋아했다. 개척자의 정신이 나도 모르게 내 인생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 기질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다.
그래서 처음 가는 곳, 처음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것이 타고난 기질이라고 말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부터 무섭거나 두려움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수아 1장 4,5절-
오늘 성경에 나온 얘기는 우리 인생 삶에 있어서 큰 힘과 용기를 준다.
"스스로 개척하라."
나는 여러분이 젊기 때문에 이 성경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꼭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여호수아서에 있는 말씀을 보면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통해서 가나안 땅 정복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40년을 광야에서 시련과 고난을 통한 연단을 받으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신명기 8장 3절-. 이것을 배웠다.
40년이 다하자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를 지도자 따라서 요단을 건너게 되었다.
요르단강을 중심으로 해서 강 동쪽 땅과 강 서쪽 땅을 분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냥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몰아내라고 하신 가나안의 원 주민, 즉 일곱 족속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야곱이 낳은 열 두 아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해 가면서 땅 분배를 받게 된다.
그 중에서 레위지파는 '기업'을 따로 분배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기업이 되신다. 이들은 산업에 종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막의 일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요셉이 낳은 두 아들을 둘로 나누었다. 바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로 나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자손이 번성하여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이 두 지파는 나름대로 기대가 컸다. 왜내하면 이집트에서 공로가 큰 조상이 요셉이었기 때문이다.
자부심이 많았던 이들은 은근히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이들에게 가장 척박하고 점령하기 어려운 에브라임 산지를 주었다.
그러자, 당장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14절을 보라.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1. 불평하지 말고 생각을 바꿔라
2. 겁내지 말고 도전하라
3. 약속믿고 나아가라
1. 불평하지 말고 생각을 바꿔라
우리 각자는 태어난 날이 다르고 각자 부모의 지위와 조건이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내가 선택할 여지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다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받아들이며 '만족하고 감사'할 필요가 있다.
인생을 살면서 비극적인 하나 있다. 그것은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마다 태어날 때부터 신체적인 조건이 다르고 또 성격도 다르고 또 재능도, 아이큐도, 감성도 다르다.
그런데 "남의 빵이 크게 보인다."는 말처럼 남이 잘하는 것만 부러워하며 "나는 뭐야!"라는 식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것은 겸손과는 다르다.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자기인생을 비극으로 끌고 가는 일이며 자신은 물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일찌감치 그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각자는 하나님이 보실 때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편견을 갖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랑에 있어서도 공평하신다. 문제는 항상 우리 각자에게 있을 뿐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17절-
우리 각자는 나의 인생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나름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이 살아주지 않는 이상 "내가 내 운명의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
"내게 주신 것이 소중하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분깃, 즉 내 몫이 소중하다. 혹시 남보다 좀 불합리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태어났을지라도, 또는 다른 사람보다 낮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났을지라도 그것을 불평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지능과 재능을 잘 활용하여 얼마든지 아름답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어떠한 여건 속에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할지라도 거기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적응력도 허락하셨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감사'이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장 15절-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니이까?" -여호수아 17장 14절-
이렇게 불만을 표하고 나왔을 때 여호수아는 "아, 그러냐? 내가 미쳐 생각을 못 했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부족할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여호수아 17장 15절-
여호수아는 그들의 요구를 이렇게 일축했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받아드리고 감사한다면 오히려 거기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클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더 광활한 세계가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저 우거진 삼림의 땅을 개간할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 "삼림에 올라가 스스로 개척하라."
따라서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셨다. 우리는 이것을 '내게 주신 보화'로 여겨야 한다.
때로는 '나의 약한 것, 약점'도 보화가 된다.
외모가 훌출하고 잘 나고 똑똑한 것만이 훌륭한 것이 아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고린도후서 11장 30절-
주어진 여건에 감사하고 불평하지 말자. 하나님은 없는 것을 받으시지 않으신다. 있는 그대로 받으신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장6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약속하셨다. -빌립보서 4장 7절-
나의 상황이 열악하다 할지라도 나에게 주신 몫이 소중하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아직 개발하지 않은 묵은땅도 나를 위해 주셨다.
우리는 내 안에서 묵혀 둔 땅처럼 되어 있는 영역만 개발해도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우리 뇌 속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가느냐가 중요하다. 활용가치를 넓혀 계속 개로운 것을 발굴해 나가야 할 것이다.
2. 겁내지 말고 도전하라
여호수아의 조언에 저들은 부정적인 말을 꺼냈다. 그리고 '겁에 질린 표현'을 사용했다.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여호수아 17장 16절-
틀린 말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애당초 하나님께서는 '적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냥 주신 것일까!
옛말에 "공짜는 없다."고 했던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고난이 있고 고생이 따른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인생 보람이란 무엇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라. 그냥 평안하게 잘 먹고 즐기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고생이 되고 힘이 들더라도 가치 있는 것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싸우며 나아가는 삶에서 보람이 있는 아닌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는 자신들에게 준 땅이 '작다'는 것만 생각하고 불평했다.
여호수아가 "삼림을 일구라"고 하자, 오히려 "어휴, 거기 골짜기 마을들에는 철병거를 가진 원주민들이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들컥 겁먹은 소리만 하고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불평이 나오게 되고 또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생각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똑같은 상황이지만 예수 믿은 후로는 모든 현실에 감사하게 되고 또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생각부터가 새롭게 되었다.
여호수아는 요셉의 자손들,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에게 다시 언급했다.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리라." -여호수아 17장 17절-
여호수아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입은 장군이자 큰 지도자이다. 그러니까 사려 깊은 생각과 눈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인간이 제비 뽑아 나눠갖는 것 같지만 거기에 이미 하나님이 개입하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정확하시고 공평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물러서지 않고 그들에게 충고를 했다.
여호수아의 지적은 정확했다.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다."
요셉의 자손들은 수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지혜가 있고 용감했다. 얼마든지 싸워서 이길만한 전술에 뛰어난 지파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쉽게 얻을 수 있는 땅만을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도전하는 자에게 지혜도, 전략도, 더 큰 능력도 함께 주신다.
우리는 인생 모험을 통해서 이것을 발견해야 한다. 이렇게 되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좁은 것이다. 생각이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지경'을 넓히기 위해 도전한다.
그냥 주어진 것만 가지고 만족하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안일하게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생이다.
늘 새롭게 도전해야 한다.
요셉의 자손들이 생각만 바꾼다면 그들이 차지할 땅은 결코 작은 땅이 아니었다.
골짜기의 원수들을 몰아내고 산림을 개발한다면 얼마든지 옥토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될 수 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다.
나는 나름대로 도전정신으로 살아왔다. 앞으로 내 인생을 안일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다.
주 예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살다가 죽으면 그것이 가장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 속에서 살고 있다.
무슨 일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라면 미리 겁먹을 필요가 없다. 왜?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편 23편 4절-
지금까지 우리 인생 앞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시도해 보지도 않고 겁부터 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자. 여러분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 33절-
세상을 이기신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이김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그분만 믿고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도전하라"
3. 약속 믿고 나아가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여호수아 17장 18절-
하나님께서 이미 모세의 입을 통해서 연속해서 "그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라고 약속하셨다.
그들은 이미 여리고가 무너지는 것을 체험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쓸 데 없는 모험을 시키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모한 일을 시키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당신의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그리고 가장 적당한 시간에 '역사적 예수'를 보내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그 약속을 완전하게 성취하셨다.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면 적은 땅이 아니다. 개간만 한다면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옥토이고 엄청난 자원이 된다.
여러분 안에 숨겨진 보화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위대한 음악가도 될 수 있고, 화가도, 과학자도, 엔지니어도, 문학가도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찾아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부터 '내 안에 감춰놓은 보물'을 찾아라.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 말라. 우리 각자에게는 개성이 있다. 그 개성을 잘 개발하면 엄청난 부자도 될 수 있고 또 학자도 될 수가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프런티어 정신'이다. 세상은 만만치가 않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 두려워 떨며 가만히 서 있을 것인가?
아니다. "비록 삼림이라도 개척하라."
이것은 명령이다. 남들이 다 해 놓은 것만 찾아다니지 말라.
한국교회의 폐단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다른 개척교회 목사들이 전도한 영혼들을 대형교회가 다 낚아가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이게 성경에서 나온 정신일까!
나는 백번을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니야!"라고 외칠 것이다.
"바록 삼림이라도 개척하라."
우리는 개척자의 정신을 가지고 남이 안 가는 곳에 가서 모험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이 안 해 본 일을 예수의 이름으로 시도할 수 있는 기질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개척자로, 선구자로 오셨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이사야 9장 2절-
그는 친히 십자가 위에서 그의 사명을 다 완수하셨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 30절-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약속을 주셨다.
우리 앞에는 항상 그 약속이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위대하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날마다 묵상하고 산다면 반드시 그 약속을 유업으로 받을 때가 온다.
"보배롭게 큰 약속을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후서 1장 4절-
우리 믿음의 선배들 모두가 약속을 믿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약속을 믿고 나갔던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브리서 11장 17절-
우리 역시 약속을 믿고 나가야 한다.
우리가 무슨 배짱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하여 나에게 맡겨주진 몫을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바로 그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나님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지는 않으신다. 할 수 있으니까 하라고 것이다.
우리 생각만 앞세우다 보면 '믿음 없는 소리'만 나올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견고하게 약속을 붙드는 자는 계속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며 그 꿈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나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가 있다. 그것을 발견한 후에는 그것이 '나의 몫'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고 나니 할 일이 많아졌다.
"하나님, 이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 내가 무슨 일을 할까요?"
"하나님, 내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런 질문들을 끝없이 해 가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내 욕심을 이루기 위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 전에 나를 인도하신 주 장래에도 내 앞에 험산 준령 당할 때 도우소서
밤 지나고 저 밝은 아침에 기쁨으로 내 주를 만나리. 아멘." -찬송가 379장 3절-
그렇다. 우리 인생의 가는 길에 쉬운 일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는 곳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원수들이 대적해 온다. 그리고 죄의 유혹이 있고 때로는 질병의 위험도 있고 애매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잘 싸워 이겨낼 수 있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살아왔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각자의 몫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열심히 도전한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힘차게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도전해야 한다.
개척정신을 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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