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선한 일에 부지런 하라 Hãy chăm chỉ làm việc thiện

좁은길을 걸으며 2020. 8. 26. 17:15

부지런하라 Hãy làm nhiều việc thiện nhé

잠언 6장 6-19절

부산 떤다고 부지런한 것은 아니다. 머리가 핑핑 돈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확실히 아는 사실은 예수 잘 믿으면 부지런해진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것을 보며 자랐다.

내 아버지는 참 부지런한 분이셨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토요일까지 모든 것을 끝내셨다.

아버지는 정말 부지런하게 사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예수님을 만나고서 정말 부지런해졌다.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주일(일요일)에는 공부를 안 했다. 그래서 토요일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월요일에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어도 일요일에는 공부를 안 했다. 대신 월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날 때도 있었다.

새벽이라서 쏙쏙 암기가 되었다.

하여간 예수 믿으면 부지런해진다. 내가 내 몸으로 실제로 터득했다.

 

그러나 내 청년 때까지만 해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일요일까지 일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더 살았는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기억된다. 하나님은 지혜의 하나님이시다.

안식일 또는 주일명령을 하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그 명령에 준행할 때 더 여유 있고 더 행복하게 살며 더 건강해진다.

우리는 어떤 미련도 두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이것이 지혜 있는 삶의 첫 비결이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주일에 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더 놀란 것은 대학생들 중 상당 수가 주일에 학교를 가야 한다고 했다. "뭐 이런 학교들이 있어!"

혼잣말로 그랬었다. 그런데 요즘도 그 풍토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즘은 이 나라도 주일이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쉬는 날로 바뀌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그냥 '노는 날'이 아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라!"

이 날은 '육체와 영혼의 재충전의 날'로 주신 것이다. 방안에서 딩굴딩굴거리거나 놀러 다니는 것에 부산을 떨면 그것은 부지런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수 믿으면 부지런해야 한다. 아니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여러분과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

내가 서울에 살 때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예수님은 게으른 사람을 제자로 삼지 않으셨다."

그 순간 내 입에서 "네, 맞습니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베드로,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들, 세리 마태, 나다나엘... 등 가룟 유다도 나름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바울 역시도 매우 부지런한 사람이었고 부지런한 삶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 열정을 쏟으라

2. 허송세월하지 마라

3. 주의 일에 힘쓰라

 

 

1. 열정을 쏟으라

 

우리는 예수를 믿고 인생의 목표가 새로워진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과 비전을 주셨다. 그 꿈은 매우 값진 것이기에 우리의 인생 전체를 걸고 모험해도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열정을 품어야 한다. '열정'이란 말은 영어에서는 'Passion 패션'이란 말로 되어 있는데 '견디다'라는 단어와 '고통을 받다'이란 단어가 결합된 용어이기도 하다.

멜 깁슨 (Mel Gibson)이 만든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 예수님의 수난』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세상은 충격을 휩싸였다.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Passion 패션이란 말은 희랍어에서 'ἀποδοκιμάζω 아포도키마조라는 말인데, '누군가 개입된 시험', '누군가 지켜보는 수난'이란 의미가 있다.

그러나 'Passion 패션이란 이 단어가 10세기경에 와서는 라틴어의 '예수님의 큰 수난'을 의미하는 용어로 흔히 쓰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열정을 품는다'는 말을 사용할 때, 그냥 이루고자 하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 힘과 노력을 다하겠다는 결심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의 본래의 의미는 '십자가의 고통'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해 어떤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끝까지 견뎌내겠다."는 결심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장 4절-

베트남에서 가장 빨리 익숙해진 단어가 하나 있는데, 'chăm chỉ 참찌;열심히 해라'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냥 너무 쉽게 사용하는 인사말이 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cố gắng 꼬강;화이팅!'이라는 말이다. 참 듣기가 좋다.

그러나 이 말을 깊이 생각해 보면 단순히 "힘내세요!" 정도가 아니라,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이겨내세요!"가 맞는 말일 것이다.

고난을 거부하는 열정은 열정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 욕심일 뿐이다.

바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 즉 우리의 꿈과 비전을 이루는 일에는 Passion 패션이 따라오지만 그 속에도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함께 하시며 마침내 부활의 승리로 이끄시며 "다 해냈다!" 하며 크게 외치며 노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옳은 일에 열정을 다 쏟아부을 수 있는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야 한다.

 

 

2. 세월을 아끼라

 

우리가 시계를 멈출 수 없다. 오늘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딱 한 번이다. 

그래서 "시간은 금이다 Time is gold."가 아니라, "시간은 황금보다 소중하다. Time is more precious than gold"이다.

오늘 우리는 시간 속에서 이 시간에 만났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모두에게 공동적으로 주신 것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간이다. 둘째는, 재능이다. 셋째는, 경제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을 사용해서 열심히 살라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러석은 인간들은 시간의 소중함과 재능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돈의 가치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한다.

바로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세월은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장 16절-

'세월'로 번역된 헬라어는 '카이로스 Καιρός'다. 곧 질적인 시간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이다. 그러니까 세월을 아낀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아끼다'로 번역된 헬라어 '엑스아고라조 ἐξαγοράζω'는 '기회를 포착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속량하다' '구속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팔린 것을 도로 사 온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 전체를 마귀에게 팔려버렸다. 그래서 헛된 시간으로 일생을 보내게 되었다.

나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이 카이로스라는 시간을 정확하게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때'에 인간의 구속을 이루셨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는 '카이로스'를 빼앗아가지 못한다. 예수께서 십자가로 구속하시고, 속량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회를 번번이 놓치는 원인도 사탄의 적극적인 방해 공작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시간까지도 하나님의 주신 기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살 동안 햇빛 되게 하소서!"

또 하나의 의미로 사용되는 시간이란 말이 있는데, '크르노스 χρόνος'가 있다.

곧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악하다'는 것은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악의 본질은 사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가 악하다'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가 온통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 아직도 예수밖에 사는 인간들은 '크르노스'라는 시간 속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마귀는 자기가 왕인 것마냥 날뛰며 세상 사람들을 더러운 탐욕의 정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서 주름 잡고 있다.

"무식하면서 부지런 하면 마귀의 종노릇하게 된다. 가룟 유다처럼"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바르게 믿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3. 주의 일에 힘쓰라

 

우리가 세상에 와서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과연 그런가! 아마 그렇게 느끼게 할 뿐이지 알고 보면 우리가 모든 일을 다 알 수 없고 다 할 수도 없다.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 보니 "바쁘다 바빠!" 하면서 쫓겨다니며 살아갈 뿐이다. 무엇이 그렇게 바빠야 하는가?

그렇게 바쁘게 살아서 얻는 것이 뭘까!

 

나는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베트남 사람들을 보면 한국 사람들보다 훨씬 바쁘게 사는 모습이다."

그러나 "돈도 안 되는 일에 바쁘다." 이렇게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가 아침부터 늦은 밤 시간까지 무엇을 위해 힘을 쏟고 사는가를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모르면 '크로노스 시간'에 다 허비하다가 결국 멸망의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포크스를 두고 살면 안 된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는 크리스천들이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정확히 얘기해 주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1,2절-

 

우리가 과거에는 '나' 중심으로 살았다.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의 영역으로 바꾸어졌다. 따라서 우리는 옛날처럼 살 수 없다는 얘기다. 이 세대의 악한 풍조를 좇아가며 살지 말라고 당부한다.

예수님을 모를 때는 무분별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먹을수록 더 죄속에 더 깊이 빠져들어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새사람이 되었다.

즉, 예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부터가 이미 새롭게 된 영역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된 삶의 영역에 있지 않고 세속에 물들어서 산다면 얼마나 마귀가 좋아하겠는가!

 

우리는 세상적인 욕심의 영역에서 신속히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장 8절-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주를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우리에게 바울은 당부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로마서 12장 11절- 

이제 우리는 알았다. 무엇이 게으름인가를 알았다. 여러분이 아무리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산을 떤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서 허둥거린다면 그것은 전혀 유익이 되지 못한다.

일 안 하고 반둥거리는 것도 게으름이다.

그러나 열정을 쏟을 데에 쏟지 않고 세속적인 죄악의 욕심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면 헛된 일에 열심을 다한들 그것은 다 허사를 경영하는 꼴이 된다.

한국에 '허경영'란 사람이 있는데 교묘한 데에 머리를 쓴다. 아주 부지런하다. 그런데 코미디언처럼 인생을 살면서 역시 결론을 보면 '허경영'이다.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 주일을 지키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에 우리의 자신을 드릴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모이기를 힘쓰자." "기도에 힘쓰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쓰자." "착한 이웃이 되기를 힘쓰자."

"많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자."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에베소서 4장 28절-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키자."

분열주의자가 되면 안 된다. 항상 예수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 크리스천이 가는 곳에 화평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 잠언서에서는 게으른 자에 대한 책망의 교훈을 많이 하고 있다.

"게르은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언 6장 6절-

게으름이란 모든 사람의 적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꼭 필요한 일에 열심을 내자는 말이다.

세상 욕심에 끌려서 사는 사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자.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을 다 한 후에 후회하는 인간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열심, 그 열정이 인류를 구원하셨다. 하나님의 오늘 우리에게 열렬히 박수를 보내시고 계신다.

시간을, 재능을 그리고 돈을 어떤 곳에 사용하며 살 것인가?

분명히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정확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 땅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야곱처럼 훨씬 아름다운 본향 집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부활의 소망을 품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목표를 바라보는 자들은 이렇게 살 것이다.

결과는 하늘의 상이다.

"나 받은 달란트 얼마런가 나 힘써 그것을 남기어서 갑절로 주님께 바치 오면 충성된 종이라 상주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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