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성령을 따라 행하라

좁은길을 걸으며 2020. 7. 29. 11:45

성령을 따라 행하라

Hãy bước đi theo Thánh Linh

갈라디아서 5장16-26절

오늘 전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새생명입니다.

겉사람은 다 같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속사람에 있어서는 그 본질이 다릅니다.

우리는 늘 이 사실을 인식하며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늘 성령충만한 삶 가운데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순간에 다시 옛사람의 본색(기질과 속성)이 나와서 우리를 넘어뜨리고 형편없는 죄인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속성을 잘 알고 있는 바울 사도는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에베소서4장20절-

그리고 또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4:21,22절-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죄의 유혹, 즉 옛사람의 그 습관과 욕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형편없는 나', '한심한 나'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절로 탄식이 나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7장24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내 육신이 죄의 법, 즉 율법의 노예로 전락되어버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단비를 부어주소서!

그래서 우리는 내가 억지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보다는 항상 성령께 의지해서 사는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나의 노력으로 안 되던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을 체험하며 늘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느니라."-로마서 8장3절-

이 놀라운 사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천만다행입니다. 그리고 죄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죄에 매여 죽을 인생'이지만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심으로 우리는 날마다 승리를 경험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상 어느 종교로도, 어떤 율법주의로도 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가 믿는 복음주의 기독교는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진리가 바르게 선포되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1. 성령께 의지하라

 

예수를 믿으면 순간순간 하루하루 성령께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며 행복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교통', 즉 '성령님과의 속삭임'을 통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무랄 데 없는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과 멀어질 때에 우리 육신의 연약함을 틈타서 마귀는 옛날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옛 습관이 나오고, 육신의 정욕과 혈기가 나오고 세상의 화려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가치관이 흔들려 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적당히 적당히 살아버리게 됩니다.

이것을 잘 아는 마귀는 결국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시도 방관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낭독한 성경 본문을 보십시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5장16절-

분명히 성령을 따라가는 길이 있고 육체를 따라 가는 길이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가는 길에는 진리가 있고, 거룩함이 있고 그리고 아름다운 인격과 성품의 열매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결말은 아주 아름답고 행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육체를 따르는 길에는 더러운 욕심 속에서 사탄의 속임수와 추하고 더러운 일과 물상식과 비인격인인 일들로 인해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를 파탄나게 만들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늘 성령께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께 의지하는 삶이란 뭘까요?

그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나를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그분께 나를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나부터서도 이렇게 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마귀는 알고 '율법의 굴레'를 씌워 속박을 가해 옵니다.

"그 봐라.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하하" 하면서 비웃고 덤빕니다.

그럴 때 바보같이 계속 공격을 당하지 말고 예수의 이름을 의지해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까지 기도를 한다면 마귀 권세는 꼼짝을 못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다면 마귀는 우리를 결단코 정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령께 의지해서 기도할 때에 세상과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라"-에베소서6:18절-

성령으로 기도하다 보면 때로는 '성령의 탄식'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죄은 죄는 성령을 탄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탄식을 듣고 죄를 버릴 때에는 '성령의 기쁨'이 우리 마음에 가득하게 됩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성령께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또 생활 속에서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요한복음16장 8절-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의 꾸짖음' 또는 '매'를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꾸지람이나 매가 '하나님의 사랑의 회초리'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라."-히브리서10장6절-

만일 이런 것이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히브리서10장8절-

그러니까 성령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징계를 통해서라도 바른 길로 가도록 하시는 '의와 진리의 스승'이십니다.

 

2. 성령의 지배를 받으라

 

인간의 의지력으로만 사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결국 육신의 생각에 지배를 당하게 되어 '죄의 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죄의 종'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죄의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어가는 게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특히 '믿음의 법'을 무시하고 율법주의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더 강렬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삶 속에는 '헛된 속임수'만 있을 뿐 '진정한 구원'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진실하게 믿고 성령의 법에 따르는 자들에게 구원이 있고 행복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은 다른 말로 '성령충만'을 받는다는 말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을 때는 어느새 '육신의 생각'이 들어와서 '육체의 일', 즉 '죄악된 생활'에 빠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게 살면 '영적인 즐거움'은 사라지고 '세상적 쾌락'을 추구하는 곳으로 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비극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죄에게 지배'를 받는 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거기에 빠져서 '죄의 종노릇' 하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들은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서8장5,6절-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 충만한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새힘을 얻어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자는 늘 그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치닫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육체의 일에 빠진 자들은 '육신의 생각'에 몰두하며 죄의 쾌락을 좇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을 좋아하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면 늘 기쁨충만, 즉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가득하여서 거기서 만족하며 감사와 찬송이 넘쳐나는 생활로 이어지겠지만 그와 반대라면 마음이 기쁨은 사라지고 세상 유혹이 마음에 들어와 '육체의 일'을 도모하게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바로 그 짓을 마귀가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육체의 일이 무엇인지를 잘 열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산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짓거리)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성적 문란한 삶)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무분별한 삶)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외에도 죄악의 여러 가지 =도박, 마약, 흡연, 사기행각, 착취, 뇌물, 살인, 속임 수, 인간 학대, 혐의 씌움, 세상적 쾌락의 여러 가지)이라."-갈라디아서 5장18-21절-

 

만일 우리가 이런 생활에 단 하나라도 계류되어 있다면 분명히 성령은 우리 속에서 탄식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활을 버리지 못한다면 마음의 평안, 즉 그리스도의 평안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에 언급된 행위, 또는 잘못된 사상에 빠져있다면 그 속에서 '성령의 충만'을 발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령과는 반대되는 행위를 놓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다시 성령충만 받기를 위해서 기도 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5장 18절-

세상의 것에 취하게 되면 따라오는 것들은 육체의 일들로 결말을 짓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생활이 활개 치는 곳에서 용기있게 벗어나려면 엎드려 '회개해야'하고 "주여, 나에게 성령충만을 허락해 주세요." 하며 부르짖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시면 능력있는 사람이 됩니다. 다니엘처럼, 에스겔처럼, 바울처럼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분명히 이렇게 교훈을 합니다.

"형제들아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8장12-14절-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육신에게 지지 맙시다. 육신을 이깁시다. 

그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 가능해집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을 때 비로소 '몸의 행실', '죄 된 생활'에서 완전히 떠날 수가 있습니다.

이게 진짜 가능하냐고요? 네. 가능합니다. 

진짜 성령충만을 받으면 '죄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죄가 미워지고 싫어집니다. 죄가 미워질 때, 즉 죄가 싫어질 때 그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영적인 기쁨을 맛보게 되면 바로 이런 생활로 나아갑니다. 왜냐고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왕자다!"

 

3. 성령의 열매가 맺어진다

 

예수 믿지 않는 자는 성령의 열매란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기 때문이며 성령과는 상관이 없는 생활에 빠져서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는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로 접붙임을 받아서 거기서 얻어지는 자양분을 먹고 꽃을 피우고 열매맺는 가지로 뻗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것을 기대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며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장 4,5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의 절대적인 관계에 있을 때에만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이 기대를 가지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불러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 주셨습니다.

열매 맺는 가지로 삼으시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핏값으로 산' 새 생명들로 삼으셨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한복음15장8절-

 

여기서 우리는 '전도의 열매'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랑의 열매'인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5장 9-15절까지 예수님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엮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성령의 열매'를 열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번 함께 읽어봅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거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장 22,23절-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 합당한 삶의 모습이며 나아가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렇게만 살아진다면 넉넉히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열매를 눈여겨 보면 우리가 예수 믿고 난 후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는 모습 속에서 나타나는 열매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해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모습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아름다운 열매'로 진정되는 것들이며,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성도의 성화된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충만하면 가장 크게 변하는 것은 '우리의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성품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봤을 때 이것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통해서, 즉 '성령을 따라' 살 때 가능한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옛사람과 그 혈기와 욕심'이 들어와서 이런 열매를 맺는 것을 방해해 버립니다.

 

사랑의 열매가 맺어지면 나머지 열매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일부러 하나하나를 세어가며 많은 얘기를 덧붙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 하나면 나머지 열매는 저절로 맺어집니다,

주님 앞에 설 때에 이런 열매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이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지나가야 합니다. 아니 지나가기보다는 늘 숙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5장 24절-

우리는 예수 믿고 성령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육체에 끌려다니지 맙시다.

방심하면 다시 종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늘 성령으로 살면 예수님을 닮지 말라고 해도 닮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라디아서5장 25절-

그렇습니다. 내가 나 되어 살지 맙시다. 오직 겸손하게 성령께 의지해서 살고 늘 성령께 지배받으며 삽시다.

이것이 성령으로 사는 길이며 또한 성령으로 행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며 영원한 하늘나라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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