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과 휴머니즘HUMANISM(인본주의)
Tháp Ba-ên và Chủ nghĩa nhân văn
창세기 11장 1-9절
세상에는 많은 언어들이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의 언어가 있었습니다.
언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수화도 언어이고 암호도 언어이고 바디렝귀지도 언어이지만 입을 통해서 언어를 구사하라고 우리에게 혀를 주셨습니다.
우리 몸의 사지백체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중에서 혀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큰 문제입니다. 혀가 짧아서 말을 더듬기만 해도 그 아이를 낳은 부모는 큰 걱정이고 본인에게 있어서도 큰 고민거리입니다.
그런데 이 혀에 대한 감사를 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은 더 많이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혀의 길이가 적당해서 전 세계의 언어를 가장 잘 구사할 수 있는 혀의 구조랍니다.
그런데 혀를 잘못 놀려서 상대방에게 실망과 상처를 안겨주어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나아가서는 민족끼리 또는 동족끼리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냥 빚도 말 한디로 갚는다"는 말처럼 혀를 잘 구슬릴 줄 안다면 상대방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기도 하고 인류평화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혀는 '배를 움직이는 키'와도 같습니다.
이 자그만한 혀가 사람을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만 잘한다고 다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말에 대한 책임과 그에 따른 신뢰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에 더욱 발전된 관계를 이루어 가는 것은 물론 아름다운 결실을 가져오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야고보서3장3절-
이렇게 하나님은 혀를 통해서 바른말을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인간끼리 사랑의 말, 즉 용기를 주고 격려를 하고 화목을 도모하라고 주셨지만 인간들은 그렇게 살지 않고 늘 혀를 가지고 반목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사용하고 살아갑니다.
노아 홍수로 인해 세상을 심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생각과 그 계획은 여전히 악했습니다. -창세기8장21절-
홍수 이후로 인구가 점점 늘어나자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야 할 인간들이 다시 하나님을 멀리 하게 되고 인본주의로 살아가게 됩니다.
창세기 10장에 보면 홍수 이후로 다시 종족이 퍼지기 시작하는데 노아의 4대 손 '니므롯'창세기 10장 8절-이 등장합니다.
그가 용맹을 떨치는 장수가 되었는데 하나님을 대적해서 모사를 꾸몄습니다.
이 사람에 의해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여 시날 땅에 바벨탑을 쌓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렇게 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죄악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편14편1절-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대적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자기가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오늘 날에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은 종교, 경제, 과학, 국가 등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인간들의 결말이 무엇인가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창세기11장1절-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오늘날로 치자면 세계의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인해서 고생하는 것을 덜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언어가 하나라고 할 때에 단순히 말이 하나라는 뜻이 아니고 사람들의 문화와 사상까지도 매우 단순하였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언어를 숙지하고 배우는 데에 엄청난 시간을 소모하고 살아갑니다.
내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에 아직도 여러 분의 말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이게 무슨 말이지?"하며 당황해하고 의아해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고생을 더 하게 하셨을지라도 오늘날 이 언어를 통해서 다양한 인간 삶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언어를 갈라놓으셨을까?"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여 오늘 날 외국어 하나만 잘해도 인재人才라는 말을 듣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 바벨탑 사건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과정에서 왜 인간이 바벨을 쌓게 되었으며 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막으셨는가를 생각해 보자는 말입니다.
그냥 둬도 대기권에 진압하면 숨이 막히고 추워서 아무 것도 못할텐데 인간 스스로 바보짓을 시작한 것입니다.
복이 겨워서 그 복을 발로 차는 인간들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것은 오늘의 인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현대판 바벨을 쌓고 살아가면서 "돈이면 다 된다. 과학기술이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이냐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인구가 많아지면 자연적으로 산 따라 물 따라 이동하며 먹고살 길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도시문명이 발달하면서 큰 강을 낀 곳에 도시가 형성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왜 사람들이 하노이로 모여듭니까? 먹거리가 있고 더 풍요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짓는 농촌보다 돈만 있으면 농촌보다 더 다양한 먹거리로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쟁하면서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나설 수 있게 되고 농촌보다 10배 이상의 소득을 올리 수 있다는 낭만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게 만듭니다.
그들이 이동하는 중에 아주 살기 좋은 곳이라고 느껴지는 곳을 만나게 됩니다.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마나 거기 거류하며"-창세기11장2-
여기에 안주하고 안착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들은 여기에서 도시문화를 꽃피우고 싶어했습니다.
오늘날도 도시문화라는 것이 가져오는 폐헤가 얼마나 심한지를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나 자신부터가 거기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늘 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공업 상업 다지털 문화는 꿈도 못 꾸던 시절이기 때문에 농경과 목축문화 속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자리가 좋다고 느껴지는 곳에 정착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지혜와 지식은 대단했습니다. 벌써 건축술이 발전하여 벽돌을 구어 집을 짓고 또 물이 새거나 부식을 막기 위해서 '진흙 대신 역청'을 사용하여 높은 탑을 쌓는 기술까지 개발이 되었습니다.
요새로 치자면 최첨단 과학기술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의 꼭대기를 하늘을 닿게 하자!"-창세기11:4-
바로 이런 생각이 휴머니즘 Humanism, 즉 인본주의의 시초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무슨 하나님이 필요하냐?" 이런 식의 모습이 현대에도 여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현대의 인간들과 도시문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오늘날 역시 인간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교만'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놓이려고 할 때에 인간들은 가장 어리석은 일을 자행하는 곳으로 갑니다.
바벨탑을 쌓았던 자들의 생각은 아담이 범죄할 때의 생각, 즉 사단이 찾아와서 속였던 말, 즉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세기 3장 5절-
이런 유사한 속삭임이 이들에게도 있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라는 말의 고대에 있어서 '하나님'이란 말을 대신했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상세계'를 실현하자." 여기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오직 인간의 지혜와 자식 그리고 기술만 있으면 됩니다. 이런 위험한 생각이 현대인들의 머릿속에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들입니까?
오늘의 도시문명 그리고 과학기술 혁신이 몰고 오는 것들이 인간의 살기에 어마나 편리해지고 있는지, 그리고 지능적으로 인간 대신 인공지능 기계나 로버트, 드론 등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해 주어서 살기 좋은 시대가 왔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이제는 건강 체크를 휴대폰이 해 주는 시대가 오고 금융거래가 전자결제로 또는 가상화폐로 이뤄지고 나아가서는 인체의 부식된 부분을 교체해 주는 시스템이 나와서 150년 이상도 살게 해 주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너무나 편리해 지고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학만능, 경제만능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인간이 행복할까요?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까요?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시면 비웃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난해 말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 버러 졌습니다.
중국 우한 지역에서 시작된 Covid 19가 인간의 무력함을 증명해 준 것입니다.
현미경으로 봐도 잘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보다는 훨씬 작은 바이러스가 인간의 호흡기를 통과하면 여지없이 쓰러지거나 죽게 만드는 일이 현대 과학문명시대 속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 이것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력함 그리고 나약함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도 교만에 빠진 아메리카, 유럽 등지의 사람들은 마스크도 안 쓰고 비웃고 있다가 나라 전체를 생지옥으로 만들곤 했습니다.
이런 일이 그냥 일어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알고 겸손해져야 할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지 않는 인간들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위에서 다 인간들의 모습을 다 보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창세기11장5절-
꼼짝없이 하나님께 딱 걸린 겁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이 몰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그리고 마음에 품은 생각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실 때는 이렇게 직접 인간 개인과 인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간섭합니다.
하나님은 그때 생각하셨습니다.
우리가 컴퓨터나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다 알 수 있는 일이지만 핀 하나 또는 칩 하나만 건드려버리면 전체가 다 망가집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능 중에 '언어 기능' 하나를 딱 건드려버리셨습니다.
사실 대단한 것 같아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의사소통'이 안 되도록 하신 사건입니다. "어휴, 말이 안 통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말이 안 통하는 사람끼리 산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어떤 살인자는 말하기를, "말이 안 통하니까 죽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말이 안 통하게 하셔서 모든 일을 무력화시켜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다 흩어져 살게 만드셨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납니다. 인본주의 결과가 이것입니다.
그 이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간들은 서로 불신하고 반복과 갈등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 속에서 더욱더 죄악의 늪 속으로 점점 더 빠져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현재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르는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이 없으므로 완전히 인본주의로 성공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우상숭배와 여러 가지 죄악을 몰고 왔습니다. 그리고 '영혼에 대한 갈망'도 없이 '육체의 만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커녕 점점 더 심판을 재촉하는 일들만 일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하나 되게 하는 꿈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기만 하면 세상 어느 누구라도 '한 가족'이 되게 하는 '참 생명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원입니다.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면 '영생'을 얻는 '새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증명했습니다. 성령강림절 때 하나님께서 120명의 입을 통해서 방언을 하게 만드셨습니다.
16개 국에 흩어져서 살던 사람들이 오순절을 지키려고 모였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 말함을 듣는도다"-사도행전2장 11절-
바로 '난 곳 방언으로' 드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임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 회복'의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말로 된 성경이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도 세계 여러 부족들 속에는 자기 언어로 성경이 번역되지 않아서 성경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순절 성령강림절 이후로 '우리말 성경'을 가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언어를 가진 셈입니다. 우리는 모두 감사합시다.
이제는 복음을 알았으니 만큼 인본주의로 살지 말고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아갑시다.
이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계 속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언어의 장벽을 뚫고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나도 그렇게 한 경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휴머니즘에 휘말려서 살다보면 우리의 가치관이 세속적인 가치관에 물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망각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날마다 주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사는 자는 견고하게 되어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청청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구축해 놓은 인간적인 탑은 무너지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공든 탑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수고 암만 하여도 헛된 것 뿐일세"라는 찬송을 기억하십시오.
땅만 쳐다보며 경제만 노래하다가 죽는 인생이 아니라 하늘을 보며 위엣 것을 찾는 인생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며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그 형상 닮기 위해서 사는 삶이라야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인본주의(Human-Centered)로 살 것인가? 신본주의(God-Centered)로 살 것인가? 이것은 극과 극의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신본주의로 살았을 때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될 것이며 그 가치 또한 영원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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