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합시다
고린도전서 1장 21-31절
전도가 뭘까요?
우리는 두 가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가서 예수를 소개하고 예수 앞으로 나오게 하는 활동입니다.
예수의 복음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또 교회 공동체 안으로 이끌어주는 활동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말할 때, 한자음의 '傳道Truyền đạo' 라는 말은 '길을 모르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전傳'이라는 말의 의미가 "인도하다. 이끌어주다. 전달하다"의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인류가 알아야만 하는 길입니다.
이 길, 즉 이 도를 알고 따르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앞에 나온 자들에게,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성경을 풀어서 가르치는 활동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설교說敎 또는 강론講論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예배를 통해서 전해지는 목사의 설교인데 이것 또한 맥락은 비슷합니다. 일정한 시간을 통해서 성경에 나타난 복음 진리를 가르쳐 구원의 확신은 물론 구원받은 신자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베트남어에서는 이를 Giảng đạo쟝다오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얘기한다는 의미로써 bài nói chuyện của Chúa라고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형태로이건 간에 이 두 요소가 잘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겸하여 활동하는 전도자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을 통해서 예수를 보여주는 것이 전도의 가장 중요한 매락입니다.
전도가 자연스럽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빛과 소금',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처럼 투명한 사회에서 먼저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지켜보며 신자들과 교회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서로 하나 되는 것, 교회, 즉 목사와 신자들이 세상을 대하여 상식적이며 보다 더 착한 사람들로 비치는 것 그리고 세상 사람들보다 모범적이며, 보다 더 희생적이며,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가를 지켜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1. 전도는 쉽다
그것은 '내가 믿는 예수를 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들의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예수 얘기를 꺼내면 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예수를 믿고 보니 너무나 좋고 행복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해도 됩니다.
없는 꾸며내는 것이 아니고 '보고 느끼고 확신한 바를 얘기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여기가 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저를 따라오면 정말 행복합니다.
내가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일부러 무슨 이벤트를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 모습 이대도를 보여주면서 '그들과 함께 되는 것' 이상 더 좋은 전도방법은 없습니다. "자, 내일은 주일이다. 나를 따라서 교회에 가자!" 쉽게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교회로 인도해 본 경험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전도란 무슨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합니다. 기도하고 나가서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필요한 것은 내 가슴에 '예수 사랑에 대한 열정, 영혼 사랑에 대한 열정'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줄 때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내가 믿는 예수'를 생생하게 얘기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예수를 몰랐을 때(과거)'와 '내가 예수를 만났을 때(지금)'를 나눠서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 딸 윤경이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윤경이는 과거 예수님을 몰랐을 때의 비극적인 삶을 얘기해 준 후에 예수님을 만난 후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면 많은 친구들과 학생들이 감동을 받고 울기도 하며 감동을 받고 그들도 예수를 믿겠다고 하며 예수께로 나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가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단순하면서도 매우 진지하게 성령께 의지해서 말하면 그 순간 성령께서 활동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울 자신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2. 전도의 목적은 영혼구원이다
전도는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천국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들은 지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그냥 방관하고 있을 것인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여보세요. 거기로 가면 안 돼요. 거기로 가면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이리 가야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외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거기로 가고 싶으면 가세요. 나는 이리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 영혼에 대한 유기일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보았고 관심을 갖지 않은 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아서 거기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을 멈춰 서게 해야 합니다.
"점간만요. 내 말 좀 들어보세요. 헛된 삶에만 집착하지 마시고 내 얘기 좀 들어보세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러면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때로는 낯선 사람들에게도.... 나는 이방 나라에 가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영혼구원!' 이것은 세상 어느 일보다도 값진 삶입니다.
내가 낳은 자녀라도 예수를 모른다면 그 영혼은 멸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던 사람이 나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를 알게 되었다면 그 영혼은 내가 낳은 자식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소중합니다.
바로 이것이 전도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매력 때문에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에게 이 전도에 관하여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얻은 영혼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 여기서 만족하지 말고 너희가 세상에서 어떤 직업, 어떤 사업을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영혼구원'과 관련해서 생각해야 한다."
지금 내가 전도했던 그들은 항상 이것을 마음에 두고 실천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돈 많이 벌고 또 호의호식하면서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게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높은 이상의 세계를 바라보며 이 땅에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타이틀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가장 큰 일은 '전도'입니다. 오늘 한 영혼이 주님 앞으로 나온다면 천국에서는 잔치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영광 영광 주께 돌리세 하늘 비파소리 울리네
파도소리 같은 찬양소리를 천지진동하게 부르세."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딴 데 관심을 갖고 살고 거기에 시간과 정력과 돈을 낭비하고 삽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관심의 방향을 '전도', 즉 '영혼구원'에 맞춰야 합니다.
오늘 당신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귀는 모든 것을 다 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만은 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는 자들은 '마귀의 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오늘날까지도 그들을 사냥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지어 우리 기독교인들마저도 낚아채려고 넘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악한 마귀는 우리의 전도를 기를 쓰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교회 문제, 목사들의 문제, 기독교 단체의 문제 등이 모두 사회적인 이슈와 맞물려 들어가면서 궁극적으로는 '전도의 문'을 닫게 만드는 현상으로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기본적인 매너와 상식적인 말과 행동에서 빗나갈 때 세상은 교회를 조롱하고 덤벼듭니다.
결국 영혼 구원하는 일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영혼구원과 관련시켜서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의인으로 살 때만 세상은 우리를 향해 핍박은 할지언정 조롱하거나 비웃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영혼의 가치를 두고 하신 말씀 중에 생각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3. 전도는 하나님의 지혜의 방법이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귀찮게 그럽니까?"
요즘 같이 악한 시대에서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거절당하기 쉽상입니다. 이단이 많고 사이비종교도 많고 그래서일까요? 그것도 이유가 되겠지요.
그러나 그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매스컴을 통한 사회적인 불신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인간들이 완악할 데로 악해져서 "노아 때와 같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적중되는 시대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1) 교회와 크리스천에 대한 악소문이 전도를 막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알겠지만 나쁜 일, 부정적인 일이 터졌다 하면 마귀는 "기회는 이 때다"하고 떠들어 댑니다. 이런 부정적인 영향의 책임은 우리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2) 인간성의 완악함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데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없습니다. 돈과 허영심이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 오래입니다.
천사를 보내준다 해도 인간들이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때를 맞이했습니다.
3) 그리스천들의 나태입니다.
같이 휩쓸려가는 시대 속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자부심과 긍지가 극도로 약화된 세상에서 "예수 믿으세요."라고 자신 있게 입을 열어 전도를 할 용기를 못 냅니다.
그렇다고 전도를 포기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한 수단으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럴 떼일수록 더 힘써야 할 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전도에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옛날이 좋았어!"라고 합니다.
분명히 옛날이 좋았습니다. 그때는 길거리에서 율동만 해도 따라오는 아이들도 많았고요. 또한 가가호호를 누벼도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들어가서 전도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분명히 그때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 시대에 맞는 전도전략이 무엇일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 기도하고 더 지혜로워 합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세상은 악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전하라"-마태복음 10장 16절-
우리는 '지혜'와 '순전' 이 둘을 다 사용해야 합니다. 전략이 아무리 사프하다고 해도 순수성이 없으면 마귀는 교묘하게 알고 우리의 전도의 문을 막아버립니다.
지금은 다 똑똑합니다. 그러나 '순수성', 또는 '순전함'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열정만 가지도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욥처럼 '순전함'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교회의 세속화'가 큰 문제입니다.
교회가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누가 교회에 가려고 하겠습니까? 정말 답답합니다.
정부를 힘으로 몰아붙여서라도 교회가 지닐 수 있는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세상은 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교회, 특히 교회의 목사들이 더 숭고하고 이상이 높은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세상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면 누가 그들을 따르겠습니까?
전도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 시대마다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나타나심'에 기대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 여기서 얻은 내 딸 하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저는 전도를 잘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물었습니다.
"제가 전도하는 애들을 붙잡고 기도하면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또 눈물을 흘리기도 해요."
바로 이런 겁니다. 전도를 어렵게만 생각하지 맙시다.
지금도 성령은 일하십니다. '순수한 열정' 속에서 일하십니다.
전도는 학문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것도 압니다. 재산이 많거나 인기전술을 쓰거나 체면을 거는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해야 합니다. 순간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실 때 바로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나서야 후회합니다.
내가 10대 때와 20대 때에 전도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에 신학적 지식이 들어가고 나서 오히려 전도의 열정이 후퇴되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신학적 지식, 성경의 지식이 풍부하면 유창한 설교는 하겠지요. 그러나 전도를 잘하는 것과는 별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순수한 열정'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뜨겁게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기대하며 삶의 현장으로 뛰어든다면 지금도 역사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전도합시다. 전도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전도의 문이 더 열리기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선교지에서는 이 기도가 중요합니다.
나의 기도 속에서는 "1)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2) 전도의 문이 열리게 하소서! 3)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소서!
4) 보혈의 피가 흐르게 하소서! 5)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라고 10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도구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지금도 한 명씩 한 명씩 주께로 돌아오는 영혼을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들 하나하나가 파워플 크리스천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열정을 품은 제자 12명 주신다면 세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 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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