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옵소서!

천당과 지옥

좁은길을 걸으며 2020. 6. 20. 14:00

천당과 지옥은 실재하는가?

누가복음 16장17-31절, 요한계시록21장 8절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나님 나라, 하늘나라, 천국 또는 천당!', 너무나 많이 들어왔으면서도 때로는 오해하고 때로는 망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여기 사람들도 아주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천당(Thiên đường 티엔 드엉)'이란 말입니다.

어렸을 때 막연하게 듣고 느꼈던 것은 "죽으면 천당 간다. 안 그러면 지옥 간다."는 인식 속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주일학교 다닐 때, 어떤 교사가 가르치기를 "하늘나라에 가는 길에 사닥다리가 놓여있는데 한 주일 예배 빼먹으면 사닥다리 계단 한 개가 없어진다. 두 주일 세 주일 빼먹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 다음에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그 계단에 못 오르게 된다."

물론 이것은 교회 출석 잘 하라는 권유였겠지만 이런 식의 인식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천국길 하나는 지옥길

그리고 가장 많이 듣던 설교가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였다. 이 얘기를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들려 준 메시지 중 가운데 하나로써 사후세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천당과 지옥의 확실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보면, 부자가 누구인지는 실명이 거론되지 않았지만(왜일까? 창피주는 것이 싫어서일까요? 제 생각에는 생명책에서 빠져서서일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평생 '이름 값'도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나사로라는 이름은 실명으로 거론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 당당하게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돈, 명예, 권력을 가진 자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자기 사욕과 죄악에 사로잡혀서 살면 결국은 지옥불에 떨어져서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영생'이 아니라, '영멸과 영벌'에 해당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서로 오고 갈 수 없는 큰 구렁이 있다

그러나 돈, 명예, 권력과는 무관하게도 비록 거지로 살며 그 부잣집의 문전박대를 받으며 가장 천한 인간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끝까지 신실함을 버리지 않았던 나사로는 천당으로 갔습니다.

그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장소로 옮겨져서 살게 되는 '영생과 영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죽은 후에 뒤바꿔버린 삶

그러니까 금생과 내생은 완전히 대조적일 수 있는 상황임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이것은 꾸며놓은 우화가 아니라, 정말 실화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런 시절 우리는 이 얘기를 실화로 알고 실감 나게 받아들이며 꼭 천당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종말을 향한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1.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습니다.

 

우리는 천당이 있고 지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잘못된 종교학자나 불신자들 중에는 "이 땅에서 착하게 살라고 천당과 지옥의 이야기를 만들어놓았다. 겁주기 위해서 만든 얘기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죽어봤냐? 천당과 지옥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매우 정직한 것 같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천당과 지옥을 그림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천당과 지옥은 확실히 존재한다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이 천당과 지옥의 실재를 말씀하셨습니다. 상식으로 생각하더라도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을 위해서라도 천당과 지옥의 존재는 필연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법망을 슬슬 피해가면서 산 법꾸라지들이 피할 수 없는 장소가 바로 그곳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다음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삶이 펼쳐지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실감나게 말씀하신 부분이 바로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외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둘 중의 하나를 간다

오늘 이 얘기를 듣고도 천당과 지옥의 실재를 못 믿는다면 하늘에 있는 나사로가 여기에 와서 우리에게 그 얘기를 재현한다고 해도 안 믿을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구약성경을 두고 하는 말씀; 이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기록되지 아니함)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31절-

진실하게 예수 믿는 자는 심판을 면한다

어떤 이는 "천당에 가려고 예수를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또 어떤 이는 "지옥에 안 가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 맞습니다. 둘 다 맞는 얘기입니다.

만일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임종을 맞이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뭐라고 말씀하겠습니까?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러면 천당으로 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당신의 손을 잡아주실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예수님만 믿으세요."

예수 십자가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다

나는 목회하면서 그런 경험이 종종 있었습니다. 안모모 씨의 임종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항공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암에 걸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습니다.

부인과 네 명의 자녀들은 예수를 믿었지만 본인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권했지만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더 이상 생명을 지탱하지 못하는 상태에 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분에게 천당과 지옥 얘기를 들려주면서 믿어라고 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세례를 받겠느냐?"고 했더니 "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는 중에 임종했습니다.

나는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붙들라

죽음이 없는 곳

기쁨만 있는 곳

나 가고 싶어라

빛과 사랑이 가득한 그곳

예수께서 계신 그 나라에 나도 가리라

 

 

2.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를 알면 모든 것이 변한다

우리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하는 방향도 달라야 합니다.

이것이 가치관과 세계관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늘 되새겨봐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말씀이기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일서2장15-17절-

첫째, 내가 당신을 안 이후로

세상적인 욕망, 즉 더러운 욕심에서 나는 생활에 젖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치만을 추구하는 자들의 삶이란 이렇습니다.

그들에게는 내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맘껏 즐기고 먹고 누리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늙어서 자기 몸 하나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마음이 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갑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 즐기며 자랑거리로 삼고 살다가 막상 죽음이 닥쳐오면 "나는 어디로 갈까!

귀신이 나를 잡아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입니다.

말씀에 길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사는 자"는 문제가 없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우리 눈에 거지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을 산 하나의 본보기였습니다.

남들 쌀밥  먹을 때 보리밥이나 고구마를 먹었고, 남들 인류 패션을 입고 뽐낼 때 헌 옷가지 기증받아서 입었고, 남들 고급 자가용 타고 다닐 때 버스표 사서 기다리며 타고 다녔고, 남들 스테이크 잘라먹을 때 라면과 김치로 먹었을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했다면 그 생활이 천국이며 하나님의 뜻을 향하는 삶입니다.

불편하게 살았고 거지같이 살았고 병들고 고생했어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천당입니다.

말씀의 가치기준을 따라 살라

현대인들의 삶 속에는 내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잘 먹고 잘 입고 잘 누리고 살고 하는 가운데 있지만 그래도 "아, 죽겠다. 정말 너무나 힘들다. 짜증난다. ..시팔시팔..."을 입에 달고 사는 삽니다.

다 왕이요. 다 부자요. 다 사장님입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다 곪았고 상처투성이입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만으로 가득합니다.

나는 묻고 싶습니다. 왜 삶의 가치를 그런 곳에 둡니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는 이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화목케 된 우리는 그에 걸맞은 양식이 뒤따라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영혼을 구할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까!

어떻게 하면 나를 더 희생하며 봉사하며 살까!"

한 영혼, 한 생명의 소중함이 여기서도 느껴져야

그런데 오늘날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자들을 보면, 심지어 기독교 목사들을 보면 이와 같은 삶의 가치관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곳에 관심과 애정이 많습니다.

구속의 은혜는 망각해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지닌 양식에 도취되어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자식들 더 출세시켜려 하고 더 좋은 차 타고 더 좋은 것을 누리려고 하고 또 그것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까지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불행하다고 느껴지고 만족과 감사와 찬송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의 가치기준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하늘에 소망을 쌓아둔 그대들이여, 우리는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불이익을 당하고 애매한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일수록 하늘나라의 보상이 더 필요하며 악한 자들의 심판과 형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분노하고 세상 것 다 취하고 누리며 살고 싶어한다면 하늘나라를 기다릴 명분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오히려 저들이 세상에서 잘못된 가치를 좇아서 살며 우리를 비우숭을지라도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사랑으로 다가가서 용기있게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복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인의 고난처럼 고난을 받는다면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게 될 것이고 우리의 이런 모습 속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도전을 받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3. 멀티 크리스천이 되라.

기도하지 않으면 미혹을 이길 수 없다

사실 성경은 소경된 인간의 눈을 뜨게 해 주는 특효의 안약입니다. 근시안적인 인간을 원시안적인 삶의 자리로 옮겨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며 예수님이 그런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지금은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려고 직접 활동하시는 분이십니다.

크리스천은 말씀과 기도가 생활화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 즉 새로운 존재(New Being)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늘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도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다가 점심을 베트남 딸들하고 먹게 되었는데 딸 중에 하나가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아빠, 내가 일어나면 예수님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요. 딸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러고 나서 공부를 하면 공부가 쏙쏙 머리에 들어와요. 정말 대박이예요. 아빠 말씀이 맞아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었을 거예요. 너무나 괴로운 일이 많아서 저는 정말 죽어버렸을 거예요. 진짜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알았으니까 저는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정말 행복해요."

예수사랑을 께닫는 순간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순간 세상만사를 제대로 보기 시작하고 또 새로운 가치관이 마음에 싹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이 되는 거죠. 절대 옛날처럼 막연하게 살진 않아요.

눈을 떴으니까 모든 것이 새롭게 보여야 정상인 겁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열심을 내야 할 이유가 있고, 절제해야 할 이유가 있고, 또 죄악을 멀리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거죠.

멀티 크리스천으로 바뀌게 된다

우리는 이제 10년 후를 보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 대계를 보는 것이며 영원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는 기껏 보는 눈이 '갈릴리와 그 호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하셨을 때 용기를 내어 따랐을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하루에 5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설교자 되었고 또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에 빛나는 사도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무하라."-베드로후서3장 11,12절-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심을 바라봐야 한다

그이 가치관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다리는 신앙으로까지 격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멀티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사모함이 없이 이 세상의 것에 한눈팔고 살다가 허송세월 하면 훗날에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망했네!"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멀티 크리스천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

양다리 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옥은 안 가야 하겠고 이 세상의 것이 욕심이 나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복음의 신앙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얘기가 아니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야고보서5장1-3절-

사실상 양다리란 그냥 세속에 물들여진 양심일 뿐입니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항상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요구할 뿐입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우리가 멀리 보는 눈을 가졌다면 항상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설 날을 기억하며 오늘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해서 살아야 합니다. 나눠주고 선교하고 힘없고 약한 과부나 고아를 돌아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누릴 것 다르고 가질 것 다 차지하고 맛볼 것 다 맛보고 살 수 없습니다.

구별된 삶을 살면서 예수의 참된 진리의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자만이 갈 수 있는 천당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의 광경은 얼마나 멋질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렇게 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다니엘도, 바울도... 등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고 천당을 목격하며 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높이 계신 주님을 바라보자

우리 앞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는 날이 심판의 날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이 최종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이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오히려 기다려야 할 만큼 기대가 큰 날입니다.

그 날에 '의의 심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알곡이냐, 쭉정이냐?"가 확실하게 전자개표 속도보다 빠르게 구분하실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거짓 없는 믿음의 사람들은 분명히 알곡으로써 천국 곡간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서 천국 시민권을 하늘에 두었다면 우리에겐 분명히 이 날이야말로 크고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하는 게 당연한 태도입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 가장 아름다웠다

그러나 불신앙 안에 갇혀서 사는 사람들은 이 날이 크고 두려운 날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들의 영혼은 마귀들과 함께 처하게 될 지옥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고 있습니다. 그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진지하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전도!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영혼을 구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정말 천당과 지옥을 믿는다면 전도하지 않고는 또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일생에서 남는게 뭘까! 예수 사랑을 가지고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구령열정이 아닐까!

기회는 '이 세상 사는 동안'입니다. 사는 동안 하나님은 수없이 많은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죄악의 노예로 산다면 아무것도 핑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불신자, 우상숭배자와 미혹의 영, 즉 사단에게 굴복하며 살아가는 이단들, 사이비종교, 음란을 일삼거나 동성연애하는 자들 그리고 거짓말 하는 자들, 부정판결한 자들, 부정축재한 자들, 사악한 독재자들, 놀음과 도박에 빠진 자들, 술중독과 마약에 빠진 자들, 살인이나 자살 자 등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회개란 죄를 인지하고 고백하고 끊는 것입니다

이런 죄에 계류된 자는 속히 그 죄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첫걸음입니다.

하나님께 엎드려서 십자가를 붙잡고 모든 죄를 낱낱이 고백하고 예수의 피에 온 몸과 맘을 적셔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심과 충만함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죄는 용서가 되고 오늘 죽어도 천당에 갑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32편1,2절-

 

천당은 회개한 자들의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529장 찬송을 부르는 것으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특별히 3절을 적어보겠습니다.

주 오실 날 아무도 아무도 모르나 걱정없다

주님이 부르는 음성 널 받아주시나니 회개한 네게 임하시어 끝까지 널 도우시리

피하지 말라 피하지 말라

우리가 곁길로 피해도 맘 속에 오시리

심판 날 당할 때 주님을 너 맞을 준비 해 맘 곳에 주님을 영접하라 주 영접하라.

나팔 소리에 잠자던 영혼이 다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지상의 성도들이 주님을 맞이할 것이다.

신판이 나에겐 없네

주의 피 내 죄 가리네

예수님 날 위해 돌아가셨으니

심판이 나에겐 없네

복음 우산을 쓰게 되면 유황불이 떨어져도 다 막을 수 있다

 

 # 부록.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살자

 

크리스천인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나의 추정입니다만 부자와 거지 나사로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부자는 이 땅에서도 지옥을 살았다.

부자는 남들 보기에는 화려한 옷, 화려한 지위와 권력을 누리고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은 이미 지옥을 살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는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갈망해 왔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그것을 다 누렸으니까 행복했을까요!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 부자는 인생의 목표가 잘못된 삶을 살았습니다.

잘 먹고 잘 입고 높은 지위와 권력을 미끼로 큰소리치고... 그야말로 말 한 마디면 천하를 움직일 것처럼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 인생의 결과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자들을 외면했습니다.

겉으로는 의로운 척했을지 모르지만 교만하고 불의를 일삼은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무슨 천당이 있고 지옥이 있냐?" 이런 식이었습니다.

이단을 좇아 다니고 클럽에 다니면서 춤추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면서 주엄열매로 허기를 채우려는 인생들 또한 소망이 없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허전하고 그래서 취하고도 또 마시며 뒤범벅이 되어 살아가는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강남 부자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높은 지위에 올랐거나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들 속에 그리스도 없다면, 그들의 영혼에 천국이 없다면 나사로보다 훨씬 낫습니다.

촘촘히 들어찬 알곡신자가 되기를 바란다

보세요. 거지 나사로는 '거지 딱지'를 붙이고 다녔지만 삶의 진정성과 의미가 세상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그의 삶 중심에는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산 것입니다.

"나 오늘 죽어도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서리라!"

"주 나의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리고 그에게는 내세관이 뚜렷했습니다.

거지로 살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거나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거지로 산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일부러 거지로 살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밖에 나가서 노동을 할만한 어떤 재산이나 건강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충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굳이 신분이라면 '거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고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고통이라면 그것이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버림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하늘나라가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밀어먹었을 망정 그의 마음은 항상 천국이었습니다.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지만 처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주 오심을 기다리며. . . 마라나타!!

제기 거의 40년 전에 서울에서 살 때 개봉동 어느 골목에서 리어카 과일장사를 보았습니다.

"사과 사세요!" 하더니 노래를 합니다.

"의지하세 의지하세 주 의지하세! 구하시네 구하시네 곧 구하시네!"

그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알곡이나 쭉정이냐를 분간할 자가 곧 오리라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죽어서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나사로처럼!!!

당신은 지금 죽는다 해도 천당에 갈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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