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Tôi là ai?
욥기 40장 1-9절, 시편 8편 1-9절-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나라는 존재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막연하게 살아가는 인생이 아닐까?
그런데 막상 이런 질문을 해본다 해도 그 답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자는 드물다.
왜?
나를 잃어버린 인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안 간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나' 또는 '자아'를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인간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비극은 자기 정체성 self-identity을 모르고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노력해서 박사도 될 수 있고 과학자도 될 수 있고 사회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종교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많은 공적을 쌓고 한 때 명성을 날렸다 하더라도 '나'를 모른다면 '허망한 인생'으로 끝이 나고 말 것이다.
그동안 인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고민했다. 즉, '자아 발견'과 '자기 성찰'에 대하여 말이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깊은 사색, 또는 명상에 젖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나름대로 찾았다고 하는 말도 알고 보면 그럴싸한 유사품에 불과하다. 그 유사품을 가지고 진짜라고 속일 뿐이다.
세상은 그래왔다. 앞으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아니 나는 찾았다.
그 해답이 성경聖經에 있다. 성경이 진리인 이유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알려주는 '경經의 말씀'이다.
성경은 가고오는 모든 인류에게 첩경Canon捷徑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성경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과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큰 은총이 아닐 수 없다.
희랍어에서는 '나'를 '에고ἐγώ'라고 한다. 고집에 센 사람, 또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을 ' 에고이스트 egoist외고집, 이기주의자'이란 말도 여기서 나왔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의 '에고ἐγώ'는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께 물었다. 내가 바로왕 앞에 가서 "여호와가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내가 뭐라고 대답할까요?
이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야훼יהוה', 즉 히브리어로는 '예흐예 아셰르 예흐예(אֶהְיֶה אֲשֶׁר אֶהְיֶה)', 희랍어로는 에고 에이미 ἐγώ εἰμι; 나는 나다. I am that I am"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야훼이다." -출애굽기 3장 14절-
그러니까 성경을 통해서만이 '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첩경Canon이 된다.
만일 눈이 가리어져 있다면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만큼 우리는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인생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시편 119편 18절-
그분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의 눈, 즉 영의 눈을 뜨게 해 주실 때에 우리는 바르게 '나'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바르게 '자아 성찰'을 하게 될 수 있다.
오늘 여러분과 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며 완전한 해답을 찾고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1. 나는 미천한 존재이다
2. 나는 존귀한 존재이다
3. 나는 존재는 영원하다
1. 나는 미천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아름답게 지으셨다. 그리고 정직하게 지으셨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으로 지으셨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 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7절-
아담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해서 모든 인류를 이렇게 지으셨다.
그러니까 얼마나 멋지신 하나님인가!
게다가 이 모든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에게 통치하고 경영하라고 주셨다.
에덴동산에서 남녀가 결혼을 하여 많은 자손을 낳고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해 주셨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인간은 스스로 어리석은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귀의 유혹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것은 순전히 인간의 책임이었다.
하나님의 룰 Rule을 어긴 것이다. 그때만 해도 룰은 단 하나였다.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하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피조된 인간의 위치'를 지켜야 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꾀를 냈다. 마귀에게 핑계를 댄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전도사 7장 29절-
죄에 빠진 인간의 상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미천한 존재 A lowly existence'가 되고 말았다. 즉, 쓸모없는 무익한 인간 A insignificant human; A useless human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죄는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삶이란 무익하며 죄악의 노예로 살아가는 비참한 존재일 뿐이다.
욥은 자신 가장 큰 시험과 고통의 자리에 떨어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대면하게 되었다.
"트집 잡는 자가 전능 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하지니라." -욥기 40장 2절-
욥은 자기의 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서 찾아온 친구들 앞에서 많은 변론을 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서게 되자 그만 벙어리처럼 되고 말았다.
"보소서!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리울 뿐이로소이다." -욥기 40장 3절-
바로 그것이다.
"나는 미천합니다."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왔다.
'나'라는 존재가 '외고집'이 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말 많고 탈 많은 존재'로 바뀌어버린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야 한다. 그리고 그분을 바라봐야 한다.
그분을 만나고 그분을 알게 되면 '나', 곧 '자아'를 바르게 알게 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면 모세도 젊었을 때의 모습과는 달리 미디안 광야에서 단련된 다음에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꿇었다.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출애굽기 3장 6절-
우리는 미천한 존재라는 것을 늘 인식해야 한다.
죄에 빠진 인간은 아무 쓸모가 없는 미천한 존재처럼 되고 말았다.
세상을 호령하던 징기스칸도 1227년 달리던 말에서 떨어져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 병들어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인간은 미천하다.
전세계가 과학기술로 번영을 누리고 비행기가 씽씽 날아다니고 인터넷망으로 세상을 한눈에 보고 살게 되고 지상낙원을 건설할 것처럼 덤벼들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전염병 앞에서 벌벌 떠는 인간임을 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미천함을 진정해야 한다. 그리고 남을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으냐 하오니 내 눈물이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편 42편 3절-
인생의 미천함을 모르고 덤벼드는 인간처럼 '막무간 인생'이란 없다.
나를 발견하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회개할 때 더 이상 미천한 인생으로 두지 않으신다.
2. 나는 존귀한 존재이다
사람들은 자꾸만 '나의 비극'을 다른 데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사람을 원망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한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해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라.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게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편 4절-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원래 하나님은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지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인 나'이다.
애당초 하나님은 나라는 존재를 고귀한 인생으로 지으셨다.
그러나 죄로 인해 큰 비극을 초래했다. 그러니까 죄는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우리는 사서 고생을 한 셈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존귀하다. 그 이유가 뭘까?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지 않았다."
이게 감사하다. 이 사실이 소중하다. 죄에 팔려서 죄아래 있는 인간에게 하나님께서는 손을 내미셨다.
어떻게?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속죄양으로 내어주심으로써 "그의 피로써" -로마서 3장 25절- 우리를 구속救贖;Redemption하셨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전에 지은 죄를 간과 Passes over the sins previously" -로마서 3장 25절- 하신다.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이사야 41장 14절-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의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속자救贖者;Redeemer이시다. 예수 역시 우리의 구속자이시다.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우리는 속죄함을 받고서 이제 '존귀한 나 Precious self'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의 피로 인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았다.
곧 죄에서 자유를 얻은 것이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에베소서 2장 13,14절-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다시 '회복된 인간(나)'이 되었다. 즉, '미천한 존재'인 나에서 '존귀한 나'가 된 것이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습니까?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자. "당신은 아주 존귀한 분입니다."
그렇다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존귀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그들 역시 존귀하다.
왜?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며, 언제 예수 믿고 돌아올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고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예레미야애가 3장 23절-
우리는 이제 나뿐만 아니라 우리 서로가 얼마나 존귀한 인생인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전의 삶을 그대로 유지해서는 안 된다.
'거지에서 왕자로' 바뀐 셈이다. 그렇다면 거지 같은 삶이 아니라, 왕자로서의 삶과 인격을 지녀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24절-
왕자의 옷을 입으라. 나와 당신은 존귀한 존재이다.
다만 우리가 아직도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나의 존재성'을 망각하는 사는 것에 문제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가운데서 께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신분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한시라도 하나님을 멀리 하면 우리는 유혹을 받는다.
그리고 헛되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 예수 늘 꼭 붙어다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늘 에베소서 6장 10-18절의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렇게 살 때에 우리(나)의 신분은 더욱 빛이 나게 될 것이며 세상이 우리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3. 나의 존재는 영원하다
우리에게는 이 멋이 있다.
비록 현실이 힘들고 고달파도 우리에겐 '영원'이 있다. 이 영원이란 '영원한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또한 애당초 '나'를 영원히 살 '영생불멸永生不滅할 나'로 지으셨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편 8편 5절-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날에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영광이 주어졌다.
지난날 '버려진 자' 같이 된 '나'를 예수께서 친히 부르셨다. 이 부름을 듣고 예수께 나아온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어주실 뿐만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장 9절-
이 얼마나 격상된 존재인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기뻐 뛰면서 주님께 감사하며 찬송할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신 덕을 선전'하며 살아야 한다.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조용히 살 자들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았다. 우리는 그분을 만났고 눈으로 본 것 이상으로 '구속의 진리'를 깨달았다.
이것을 선전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 -고린도후서 2장 15절-
그런데 이렇게 살고 있는가!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악취'를 풍기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가 향기를 풍긴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쳐서 결국은 '전도의 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영원한 나'이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장 24절-
현재 영원한 삶을 얻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일서 5장 12절-
여러분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는 순간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꿈과 이상, 또는 비전도 이 땅의 것에 두어서는 안 된다.
"위의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장 1절-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로새서 3장 2절-
이제 우리가 예수 믿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만큼 우리의 가치관도 변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무엇이 소중한가? 존재의 가치에 따라 보는 눈도 달라져야 하고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위의 것'이란 '영원한 가치의 것 something of eternal worth'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평생의 수고가 땅만 쳐다보고 산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그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바로 영원한 천국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편 17편 15절-
이것을 믿는다면 나의 꿈과 비전 역시 영원한 것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잡으려고 매일 좇아가야 한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장 14절-
물론 이 땅에서 완성이란 없다. 하지만 죽는 순간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실 것이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요한계시록 22장 5절-
여기서 '새새토록'이란 말은 '영원무궁forever and ever'이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그날이 약속되어 있다. 우리는 그 날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한다.
좀 힘들어도, 좀 괴로워도, 좀 고달파도, 좀 상처가 있어도, 좀 불치병이 있어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
왜?
'영원한 그날'이 있기 때문이다.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리리."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확실한 대답을 찾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계시의 책인 성경에서 확실한 답을 주고 있다.
'나'라는 한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래서 가치가 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한 인간'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살거나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길 잃은 양'이 되어 방황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알았다. 확실히 알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따라서 나와 여러분은 더 이상 미천한 자가 아니다.
우리의 신분은 이미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약하여 죄에 걸려 넘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바보같이 계속 당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로마서 8장 3절-
날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로마서 8장 26절-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당당히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똑바로 걸어가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는 과거의 죄, 현재의 죄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 속죄의 효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왕의 아들 딸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한다. 다만 긴장의 끈을 풀지 말고 살자.
"이제는 너희 자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로마서 6장 19절-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나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니라." -로마서 6장 22절-
우리는 예수 닮기 원하며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장 22-24절-
이것이 영원한 존재, 즉 영생을 얻은 존재에게 걸맞은 가치 있는 삶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울지어다." -고린도전서 15장 27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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