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합창

딸들이 합창-여덟-

좁은길을 걸으며 2019. 12. 3. 01:36

8. 딸 Giang 지앙

하노이에 와서 약 1년 반 지났을 때이다. 한 여학생이 한국 유학을 가겠다고 등록했다. 벌써 6년 전의 이야기이다.

이름이 지앙이다. 응예안Nghe An에서 왔다. 내가 신나게 살라고 '이신난'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고향에 한번 가려면 7시간 가량 버스를 타야 하니까 주말이 되어도 쉽게 고향 돌아갔다가 올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일이면 나와 함께 교회에 가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호안끼엠호수에 가서 얘기하고 사진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거의 1년 동안 같이 생활을 했었다.



신난이는 성격이 매우 원만하고 포용심이 많은 여학생이다. 내가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러니 죽이 잘 맞는다.

그녀는 하노이에 오기 전부터 한국어 기초를 조금 알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학생들이 거의 없을 때이다.

알고 보니 두 오빠가 한국에서 근로자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등록하고 나서 보통 6개월이면 한국에 갈 수 있지만 신난이는 비자를 늦게 받게 되었다.

"선생님, 저 비자 못 받으면 어떻게 해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안심을 시켰다. "걱정마라. 조금 늦을 뿐 틀림없이 비자 받게 될거야!"



어느 날 비자를 받게 되었다. 광주에 있는 조선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우선 1년 정도는 한국어능력 토픽3급 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어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나는 그녀가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내가 일이 있어서 먼저 귀국을 했었다. 신난이를 맞으러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가서 직접 픽업을 해서 먼저 군산에 들려 둘째 오빠를 만나게 한 후 조선대학교까지 안내를 해 주었다.

아마 매우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신난이는 광주에서 공부하며 혼자서 교회를 다녔다. 그리고 날마다 기도하며 유학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창원에 있는 창신대학교로 전학을 해버렸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왜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어?"

"죄송해요. 여기에 큰 오빠도 있고 잘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게 했어요."

나는 그녀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서 용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후로 신난이가 내게 말을 했다. "선생님, 창신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가르치는 것이 너무 엉터리예요."

"그렇구나! 내가 다른 학교 찾아볼테니까 기다려 봐."

나는 거기서 가장 가까운 창원대학교 국제교류원으로 연락을 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이 있었기에 얘기를 했더니 그 선생님이 의심치 않고 학생이 직접 서류를 가지고 방문하게 해 달라고 했다. 

신난이가 창원대학교로 옮겨서는 매우 안정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부친께서 연세가 지긋해서 병세가 위중했을 때 내가 귀국해 있을 때이다. 신난이를 비롯해서 유학 온 세 학생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시켰다.

내 고향 시골교회 목사님께 부탁을 했더니 쾌히 승락해 했다.

그래서 전라남도 장성의 자그마한 농촌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얼마나 뜻 깊고 감격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얼마 후 신난이에게 "너는 이제부터 아빠라고 부르면 어떻겠니?"라고 했더니, 기다렸다는듯이 "네, 좋아요. 우리 아빠!"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하며 종종 연락을 주고 받고 살고 있디.



지금 그녀는 창원대학교에서 국제무역학과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오빠들이 다 베트남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혼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조달해 하니까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아빠, 제가 이 학교 베트남학생 대표로 뽑혔어요." "추카 추카...!!"

그리고 국제교류센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을 했다. 그 대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 된 것에 대해서 무척 기뻤다. 먼 훗날 다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 우리 신난이가 제일 잘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요즘 베트남에 최고 인기 스포츠로 부상한 축구이다.

신난이가 여자축구 선수이다. 학교에서 축구하면 슛을 잘 날리는 멋진 공격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작년 충남대학교에서 외국인유학생축구대회에서 여성팀에서 창원대학교가 2등을 했단다.

"역시 우리 딸 신난이 최고!!!" 하면서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럴 때면 "나는 우리 아빠가 최고예요!"라고 대답을 한다.

이런 재주도 있으니까 어디가나 인기을 얻을만 하다.



요즘 신난이에게 물어봤다. "신난아, 너 졸업하면 어떻게 할래?"

"베트남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그런데 졸업 후에 한국에서 일 할 곳이 있으면 그렇게도 하고 싶어요."

그녀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베트남식으로 하면 좀 늦었다.

그러나 신난이는 결혼에 관심이 별로 없다는듯이 얘기를 한다.

"예수 잘 믿고 나랑 가까운 곳에서 살자!" 신난이는 대답한다. "그렇게 하면 좋지요. 그때가 너무 좋았어요!"

그녀는 전도하면서 나랑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세월 속에서 성숙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맘이 즐겁고 행복하다.

신난이가 예수님을 알았기에 항상 안정되고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며 그 자체가 행복이며 천국을 누리는 기쁨이다.

우리 신난이가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베트남과 한국을 위해서 귀하게 사용되어지는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








'딸들의 합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들의 합창-열-후인Huyen-  (0) 2019.12.07
딸들의 합창 -아홉-  (0) 2019.12.05
딸들의 합창-일곱-  (0) 2019.12.02
딸들의 합창-여섯-  (0) 2019.11.30
딸들의 합창-다섯-  (0) 2019.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