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합창

딸들의 합창-다섯-

좁은길을 걸으며 2019. 11. 30. 00:17



5. 딸 한(Hanh)

아담하고 귀엽게 생긴 소년같은 아가씨를 알게 되었다. 이름이 한Hanh이다. 하노이에서는 하잉이라고 발음한다.
사실은 2013년 교회에서 만났다. 매주일 몇 명의 학생들과 함께 꼬박꼬박 출석을 했다.
사연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남중부의 산간 지알라이에서 온 소수민족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노이까지 와서 전문대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다정하게 나가왔다.
알고보니 그 부친이 전도사이고 호치민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집이 무척 가난했다.
나는 아직까지 그 부모를 뵌 적이 없다.



내 딸 응엣과 친해지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라고 불렀다.
내가 동방대학교에 있을 때에 한글을 배우겠다고 해서 그냥 배워라고 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어도 한글을 쓰고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비가 많이 오던 날 내가 쌀을 사 가지고 갔는데 그게 퍽 고맙게 느껴졌나 보다.
내가 새로운 학생들을 데리고 갈 때마다 점심을 사 먹였는데 그때마다 그녀를 챙겼다.



아나 정들자 이별이었다.
졸업할 당시에 교향엘 내려가더니 결혼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후에 유치원에서 일을 하거나 유치원을 운영할 꿈을 가진 줄 알고 그렇게 기대를 걸었다.
그런데 왠 결혼이라니!
"너의 남편 될 사람이 어떤 남자야?" 하고 물었더니, "신학을 공부하는 전도사예요."라고 했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저희 아버지께서 소개했어요."라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흔히 있는 일다.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잘 됐다야. 하여간 축하한다."



내가 제일 걸리는 건 결혼할 때 못 갔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하고 지낸다. 내가 메시지를 한번 보낼 때 그녀는 다섯번 이상을 보낸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 저희 부부가 캄보디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로 했어요."라고 했다.
"와! 대단하다야. 나의 기쁨이고 나의 자랑이다!"라며 칭찬해 주었다.
나는 한번 간다간다 하면서도 아직까지 선교현장에 가보지를 못했다.
나는 꼭 조만간에 가서 그 사역현장을 보고 느끼며 위로와 격려를 하고 돌아올 계획이다.



그녀의 성격으로 봐서는 내가 찾아가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하고 감사할 착한 여성이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이민주라고 지어주었다.
내 딸이니까 성이 '이'이다. 주님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주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르다. 그녀는 지알라이의 산을 넘어서 저 멀리 캄보디아로 갔다.
그녀와 그 남편을 통해서 캄보디아의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을 것을 생각해 보라!



그녀는 거기서 아기를 낳았다. 이제 벌써 제법 컸다. 딸이 귀엽고 예쁘다.
많은 어린아이들을 모아놓고 교회를 운영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다.
하나님은 그 부부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다. 내가 무엇이관대 하나님은 이런 딸을 주셨을까!
나는 이 딸을 생각하면 늘 행복한 마음이 생긴다.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라, 주님이 함께 하신다!"


먼 훗날 그녀가 더 아름답게 쓰임받기를 기대한다.
이틀 전에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고향에 왔단다. 그런데 너무 먼 시골길이라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지알라이는 개신교의 성지라고 할 만큼 베트남의 기독교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과거 공산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교회들이 철거를 당했고 이 이후 베트남의 주 종족인 비엣족들에 의해 살고 있는 산간지대를 빼앗기다시피 했기 때문에 많은 시위가 일어났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거기의 교회들은 부흥을 해 왔고 지금도 가장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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