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합창

딸들의 합창 -넷-

좁은길을 걸으며 2019. 11. 24. 14:38

4. 딸 찐(Trinh)

어느 날 자취집에 방문했을 때 그녀는 집 앞에서 몇 가지 채소들을 벌여놓고 팔고 있었다.

조금도 어색한 느낌은 없었고 매우 소박하고 수수하게 느껴졌었다.

전문대학교를 다니며 이렇게 자취방 앞의 길에서 채소를 팔아 학비를 마련하였다. 식당이나 가게 같은 곳에 나가지 않고 이렇게 하기란 쉽지 않을텐데 말이다.

그녀는 다클락의 시골마을에서 왔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땐 시골 때가 그대로 묻어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내가 한국사람이라 좋은 모양이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자연스럽게 아빠라고 불렀다.

내가 처음부터 나는 크리스천이라고 얘기하자, 나를 따라서 믿고 싶다고 했다. 이런 경우도 그리 쉽지 않은데 말이다.

집 가까운 곳에 한국인의 교회가 있다고 했다.

거기를 몇 번 나가다더니 알아들을 수 없어서 지금은 베트남인 교회로 다니고 있다.



어느 날 내가 먼저 알았던 학생 응웬Nguyen이라는 학생을 소개해 주었다. 서로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였다.

서로 가깝게 지내다가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그 전에 내가 응웬에게 인문사호대학교를 졸업한 내 딸 뀐Quynh이라는 아가씨를 소개해 준 적이 있었다.

찐이 나에게 "아빠, 응웬이 뀐에게 돈을 꾸고 갚지 않고 있어요. 약속을 계속 안 지켜요"는 말을 해 주었다.

나는 응웬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자초지종을 캐어물었다.

그 일은 사실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은 남의 돈 꾸는 것, 특히 갚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응웬 못 만나게 했다. 응웬을 못 만나게 한 것은 그 전에도 응웬이 나를 속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딸 찐은 나를 잘 따랐다. 그리고 진심으로 신앙고백을 했다.

어느 날은 하노이에 오고싶다고 했다.

그래서 허락했다. 한 달 동안 있을 때 한국어도 배웠다. 영어도 배우고 싶어했다. 그런데 내 능력이 미치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녀는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호피민으로 내려갔다.

어느 날 그녀는 세례를 받았다. 멀리 출장을 갔다가 이 예식 때문에 돌아왔다. 너무나 기뻤다.



그녀는 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안정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했다.

어느 회사의 제품을 선전하러 다니기도 하고 또 옷가게도 했다.

작년 겨울에 내가 호치민에 갔는데 어머니가 오셨다고 뵈었으면 하고 연락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의 가족들에 대해서 궁금했는데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만나뵈었다.

마침 호치민의 꽃축제가 있어서 사진도 찍고 얘기도 나누면서 자녁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그녀는 종종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는다.

내가 늘 당부를 한다. "항상 예수님을 잘 믿고 기도하기를 쉬지 말라."

그럴 때마다 "예. 알았어요.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꼭 효녀의 마음을 내어 풍기는듯 곱게 대답하곤 했다.

사실 이렇게 변함이 없이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녀는 나를 든든한 아빠로 생각을 하니까 고마울 뿐이다.

가끔씩은 "아빠, 너무 보고싶어요. 언제 호치민에 오세요?"

정감이 있어서 하는 말이기에 나도 용기가 생긴다.



어디에서나 예수 안에 살면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만일 그녀가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세상에 흠뿍 빠져서 살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새사람이다.

이제 그녀는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성이 되었다. 나는 이것으로 만족한다.

내가 아빠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실상은 하늘 아버지가 더 좋고 위대하시다.

오늘도 연락을 주고받을 때 "아빠 제가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 돈 조금 모으면 꼭 빨리 하노이에 방문하겠습니다."

정말 고맙고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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