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너는 행복자로다."
맞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어느 날부터 혈육의 딸만이 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옳은 판단이었다고 확신한다.
이들은 육신으로 직접 낳은 딸 못지않게 나를 친아빠로 생각하고 따르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아빠를 만나서 내 인생이 바뀌었어요!" 이 한 마디가 왜 내가 있어야 하는지를 대변해 준다.
딸부자
세상에는 부자도 많다. 나는 돈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딸들이 있다.
눈만 뜨면 딸들이 생각 난다.
내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부자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
내가 이렇게 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 둘씩 딸이 생기다 보니 지금은 딸부자가 되었다.
일부러 나를 아빠라고 불러라 안 했어도 이들이 좋아서 아빠라고 부른다.
세상에는 내 맘대로 되는 일도 흔하지 않다.
욕심으로 하면 실패한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통해서 얻어지는 선물이라는 생각 밖에는 안 든다.
그러나 "해산의 고통없이 얻어지는 자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통을 통해서 얻어진 자녀이기에 더욱 귀하게 느끼고 더 애정이 간다.
이래서 나는 바로 그분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
지금 내 주변에 딸들이 많이 있다. 그냥 있는 딸들이 아니다.
씨를 뿌렸다. 그 후 물주고 거름주고 가꾸었다. 나아가서 그분의 손길이 함께하시며 구체적으로 케어하셨다.
이들이 우러러 봐야 할 분은 아빠가 아니라 그분이다.
나는 영원히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분은 내 딸과 영원히 함께 계신다.
멀리서 가까이서 딸들의 합창소리가 들려온다.
이들을 다 모을 수는 없지만 모이는 대로 합창단을 만들고 싶다.
지금은 성탄절이 돌아오니 캐럴송을 연습하고 있다.
아마 이렇게 합창을 한다는 것만으로 헹복하다.
내가 <딸들의 합창>이란 책을 쓰는 이유는 한 하나다.
딸이 많으니 시간이 가면 멀어질 수도 있고 소홀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잊지 않고 이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싶어서이다.
딸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으로 행복해 하고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아빠로서의 책임과 의무, 이것이 필요하다.
이들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들을 돌볼 의무가 있다.
그것은 이들을 생각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다.
기도 가운데서 단 하루도 안 빼고 만나고 싶다.
결혼을 해서 낳은 자녀가 셋이 있다.
이들은 이들 대로 열심히 살고 나에게 효도하는 모습에 고맙고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얻은 자식 역시도 천하보다 귀한 자식이다.
나는 이들 하나하나를 언급하고 싶다.
그리고 미래에 길이 남을 역사로, 영원한 그 나라에서도 만나고 싶은 보배들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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