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의 합창

바람직한 교회상

좁은길을 걸으며 2010. 4. 11. 18:57

 

 

바람직한 교회상

성경/에베소서2장19-22절 2010년 4월 11일.                                                                    이송로목사

 

리는 지상 위에 교회가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우리 몸은 몸담을 가정이 있어야 행복하듯이 우리의 영혼은 교회가 있어야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한 교회에 소속이 되어 평생 신앙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개혁자 칼빈은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이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참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18세기의 유럽교회들은 작은 교회나 큰교회나 조금도 차별의식이 없었고 서로 작은교회를 담임하려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19세기를 거치면서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대형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이 추앙을 받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것은 교회가 물량주의로 갔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교회의 세속화를 부축이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지난번에도 주장한 바 있지만 작은 교회가 더 아름답다. 우리는 세상 풍조에 떠밀려 가는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그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

그런데 수많은 작은 교회들이 대형교회의 급물살에 떠밀려서 손 놓고 그 물살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하나도 위축될 것 없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나는 'butterfly effect(나비효과)'라는 말을 좋아한다. 작은교회의 날개짓이 세계교회에 태풍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간 바른 교회상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거기에 걸 맞는 교회를 지향해야 한다. 그래서 ‘바람직한 교회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1. 기본적인 인식/ 교회는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었다.

1:4을 보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5절), “그의...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11절).

우리 개인이나 교회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분의 “사랑 안에서”(1:4,15)된 것이다.

 

미신과 무속으로 찌들린 우리 지역에 교회가 들어왔다. 땡그렁 땡그렁.....

 

우리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방인으로 그리스도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을 주변에 예배당이 세워지고 종소리가 울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 그런데 알고보면 그 종소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예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지역에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오늘 날 나로 그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어 구원받게 하셨다.

이것이 나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고 알고보니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된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그 역사를 이루어 오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본인식이 없이 내가 교회를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나가기 싫으면 안 나가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진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2. 기본적인 인식/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다.

에베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란 말이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그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1:21)분이시다. 그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시다.

그분이 오늘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에 주의 교회는 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저 왕성하여져 갈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이”(엡5:23),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골1:18).

우리 교회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지체들, 곧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 지체들의 모임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 마디마디를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는 아름다운 것이다. 바로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히 그의 지체된 교회들이 빛과 소금의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솔직히 대형마트형교회가 한국교회를 대변하는 것 같이하면서 지금 한국교회는 ‘맛잃은 소금’처럼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교회 하나 더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서 고민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숫자 불리기 경쟁 속으로 빠져든 한국교회를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대형화로 가버린 교회를 나쁜교회라고 매도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교회라면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요,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이다. 다만 칭찬받는 교회와 책망받을 교회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조건 그리스도의 교회를 비난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연합하고 하나되기를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여주는 진리가 ‘화평’, ‘통일’,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에베소서에서 잘 얘기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평을 깨는 자가 되지 말고 어디서야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3. 기본적인 인식/ 신자들은 교회의 가족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속”(엡2:19)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권속’이라는 말은 ‘가족(household)’이란 뜻이다. 단순히 핵가족에서 시용하는 가족개념이 아닌, 집안 식솔을 뜻하는 ‘확대가정’, 또는 ‘다문화가정’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하자.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나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지금까지도 애를 써왔다. 그런데 수없이 물어보고 싶은 것은 “교회를 압니까?”라는 질문이다.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낯선사람)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우리는 교회 안에서 처음 나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방인 취급을 하면 안 된다. 따끈따끈하게 대하고 친 형제처럼, 친 자매처럼, 한 식구로 대해야 한다.

길가다가 만난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우리는 남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세례를 텅해서 성씨, 문화, 인종을 초월해서 우리는 한 형제자매일 뿐만 아니라, 한 가족이다.

 

4. 기본적인 인식/ 교회는 그리스도가 기초이시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라야 한다.

여기서 올바른 교회상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도는 신약성경의 가르침이며, 선지자는 구약성경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신구약에서 말하는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가르침(설교)이 있는 교회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이다. 이것은 백 번 천 번 이상을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날 수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지 않고 복음을 희석시키거나 왜곡시키는 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대형교회라고 복음진리를 바르게 전하는 것도 아니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목사라고 복음을 바르게 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바람직한 교회상을 꿈꾸며 나가야 한다. 그것은 교인 숫자와 무관이다. 이건 진심이다.

한국교회나 미국교회가 병든 첫 번째 이유는 교회가 세상 상업주의, 즉 교회 성장주의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리하게 이런 것들을 직시해야 한다.

 

그 다음에 또 한 가지는 아무렇게나 목사 안수를 주어 목회자를 남발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6개월 1년, 2년, 3년 신학공부 시켜서 목사 안수를 주는 집단들이 생겨났다. 이런 경우에 신학을 바르게 배우지 못한 결과로 복음을 왜곡시키고 신비주의와 기복주의 신앙을 양산하는 온상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는 사람이나 목사 안수를 주는 사람들은 한국교회의 위상과 스스로 목회자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자이다.

육신의 병도 치료하려면 7년 공부하고 인턴과정을 거치고 나면 거의 10년 이상 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혼을 고치는 목회자가 되려고 한다면 최소한 7년 이상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는 경우 그야말로 돌팔이가 되기 쉬운 게 아닌가?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를 하나의 건축물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교회를 세우려면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잘 알고 그분의 복음을 잘 알고 그분을 기초석으로 해서 교회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2:20).

‘모퉁잇돌’이란 말은 주춧돌이란 말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옛날 집을 짓는 양식에서 주춧돌은 기초석이다. 주춧돌이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서 집의 방향과 균형과 견고성이 좌우되는 것이다. 교회는 기초가 그리스도이어야 하며 그의 가르치신 복음이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지체된 교인들은 그분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그분의 계획에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신 교회상은 무엇일까?” 물어봐야 한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내리지 않고 교회를 세우려 한다면 결국 그 교회는 모레 위에 세운 집이 되고 말 것이다.

 

 

5. 기본적인 인식/교회는 건물이 아닌 삼위일체와의 유기체이다.

교회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바르게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다같이 21,22절을 읽어보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느니라”(엡2:21,22).

인본주의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교회들로 가고 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것은 큰 잘못이다. 너구나 건물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참고로 많은 교회들의 주보 첫 면을 보라. 그런데 현대인들은 복음의 내용과 그에 따른 삶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유기체보다는 단순히 예배당 건물과 교인 숫자, 그리고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목사를 따라가는 시대에

매부 좋고 누이 좋고 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나님 중심의 교회를 염원해야 한다. 바로 거기에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 우리는 서로 유기체가 되어야 한다. 목사중심의 교회도 아니다. 목사 역시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교회를 ‘성전’처럼 가꾸어야 한다. 건물이 아니라, 우리 서로를 그렇게 가꾸며 돌봐야 한다.

세상적인 인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유기적인 연합을 꿈꾸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우리 모두는 알게 모르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게 되어 있다. 바로 이것이 함께 지어져 가는 교회이다.

목사 혼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을 착실히 따르면서 유기적인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면서 나아갈 때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성전’ 안에 하나님이 거하셨던 것처럼 오늘날은 ‘우리 안에’, 즉 ‘교회 안에’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에 갈 때까지 미완성이다. “지어져 가는 교회”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목사가 머리가 아닌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섬기며 순종할 때 보다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건물이 없이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아름다운 성전을 이루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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