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의 냄새가 향긋하게 풍기는듯 하네요 내가 낙안 민속 마을에 가서 찍은 거랍니다. 수선화가 주로 노랗게 피는데 이건 하얀색이네요 ㅎㅎㅎ
사랑과 감사의 열매로 2007/03/04/주일/
(골로새서3장12-17절) 전주서광교회 이송로목사
세상을 살다 보니 얻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는 감사를 낳고 불평은 더 없는 불평을 낳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두 가지 열매가 늘 풍성하게 맺혔으면 좋습니다.
하나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감사의 열매입니다.
이런 열매는 많이 맺을수록 좋습니다. 이런 열매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까지도 환한 미소를 머금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열매를 맺고 살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성품의 옷을 입으면 가능해집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이라고 말씀합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감사합니다.
➀여러분을 하나님이 택하셨다(Chosen of God)는 말입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더 큰 죄인이고 형편없는 인간인데 말입니다.
➁거기에다가 거룩함(Holy)을 입혀주셨습니다.
옛 켈트 족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 천사가 한 영혼을 인도하여 하늘나라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천사를 따라가면서 못내 걱정을 합니다. “이렇게 함께 가자고 하시니 따라가기는 합니다만 나같이 죄많은 영혼이 감히 그 거룩한 나라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 저는 워낙 더럽고 죄가 많은 놈입니다.” 그는 “죄가 많은데, 죄가 많은데...!” 하고 되뇌면서 어느덧 천국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십시오. 천국문으로 들어가기를 그토록 송구스러워하던 영혼이 자신을 보니 아주 깨끗해져 있는 것입니다. 아무 허물도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 영혼이 물었습니다. “내가 죄많은 사람인데 어이 이처럼 깨끗하게 되었지요 ?”
천사가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다 덮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죄가 가리워져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혼은 마침내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➂그리고 또 사랑을 받는 자(Beloved)가 되었습니다. 옆 사람에게 자랑해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삽니다.”
사실입니다.
부끄럽지만 자랑을 하겠습니다. 나는 우리 막내 딸 찬미를 사랑합니다. 지난주에 그 애가 작곡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서울로 보냈습니다. 보내기 전에 오랜만에 아버지와 딸 사이에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얘기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아니? 나는 네가 내 앞에 안 보일 때마다 얼마나 마음으로 울었는지 아니?”
그 애도 같이 울면서 내게로 다가와서 눈물을 닦아주면서 “아빠, 아빠가 눈물이 많으니까 이 딸도 아빠 닮아서 눈물이 많다니까!” 하고서 마음의 여유까지 보이면서 저를 달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딸에게 한동안 이런 오해를 받았습니다. “아빠가 나를 미워한다!”고 말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딸을 미워하고 살까요?
우리는 이제 우리의 입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삽니다.”
지난 날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우리의 더러운 욕심에 끌려 다니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과 나는 예수를 믿고 새사람을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까지도 변화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체질이 완전히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날의 우리의 체질은 죄악으로 물들어서 시기와 다툼, 원망과 불평, 음란과 호색, 조급한 마음, 술취함과 방탕, 분노, 복수심, 악의, 고집, 교만, 이기심과 더러운 욕심들로 꽉 차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항상 “바쁘다 바뻐!” 무엇에겐가 쫓겨 다니며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뭐에겐가 질질 끌려 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이가 먹고 몸과 맘이 병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분이 예수를 믿고 모든 것이 달라지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왜 내가 진작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고!”하며 후회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과 내가 입어야 할 새 옷이 있습니다.
그것은 “긍휼(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자비(너그러운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으로 옷 입으라”(12절)는 것입니다.
그 옷을 입고 어떻게 하라는 얘기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먼저는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을 잘 해야 합니다. (용서에 대한 예화).
적어도 우리 죄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어느 누구를 미워할 것도, 원수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끝까지 풀지 않고 미워하고 원수시하고 삽니다. ‘혐의’라는 말을 이번에 나온 개정판 성경에는 ‘불만’이라는 말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불만’을 품고 살면 압 됩니다. 그것을 그대로 놔 두면 ‘미움’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분노’로 나타납니다.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심판대 앞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기독교의 위대함과 우월함이 어디에 있는가를 가리켜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용서하라!”에 머물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따라서 합시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 하라!” 용서하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사랑을 얹혀놓으면 행복플러스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못합니다.
“그래, 미워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사랑하지는 않겠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공자 수준이 그것입니다. 여러분, 공자의 제자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습니까?
우리는 겨우 끼리끼리만 사랑하는 정도의 수준에 마무르면 안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용서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 속에 "그를 용서하라. 나는 그 사람까지도 구하기 위해 십자가를 졌노라"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나는 여러분이 일평생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14절). 이를테면 우리가 아무리 좋은 재능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였다 할지라도 사랑이 메마르면 그 모임은 깨어지고 만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현대인들은 감사가 메말랐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여유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겨우 교회 나왔다가 또 어디론가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바쁘게만 살아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은 주일이 아닙니까?
예배드리는 일에, 영혼들을 보살피는 일에, 그리고 새로운 영혼을 향해서 전도하는 일에, 또 성도들과 하면서 교제를 나누는 일에, 나아가서 성경을 보고 신앙서적을 일고 기도하는 일로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바쁩니까? 그렇게 살아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절).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주일까지도 세상 일에, 세상 쾌락을 도모하는 일에 바쁠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이고 구별된 백성이고 사랑받는 자식이니 만큼 그분께 ‘올인’하십시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주님께 올인하면 어느새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나오는 생각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감사’입니다. 어쩌면 감사는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마음’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에는 이런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사로잡으니까 입술에서 찬송과 감사가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15절).
바로 이런 모습이 예수 믿기 전과 예수 믿은 후의 달라진 모습입니다. 그리고 은혜가 메말랐을 때와 은혜가 충만할 때와의 차이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감사는 이런 데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평안도에 가서 선교하던 미국 선교사의 기록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어떤 시골에 갔더니 웬 사람이 밭을 가는데, 소 멍에를 아버지가 메고 앞에서 끌면 아들이 뒤에서 그것을 잡고 밭을 갑니다. 하도 이상해서 가까이 가 보니까 마침 아는 장로님입니다. “장로님, 어찌해서 이렇게 소가 메는 멍에를 메고 밭을 갑니까 ?” “예, 예배당 짓는데 소를 팔아 바쳤거든요. 그래서 소 대신 내가 밭을 갑니다.” 장로님의 그 얼굴빛은 여전히 밝고 감사와 찬송이 넘치더랍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것 같아도 그분만이 가지는 기쁨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는 감사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마음입니까? 그렇다면 ‘아멘’ 하십시오.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고도 감사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미국의 한 부흥사가 하루는 버스를 탔는데, 뚱뚱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개구장이 어린아이 다섯을 데리고 올라탔습니다.
억지를 부리는 놈, 떼를 쓰는 놈,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놈에다 버스 안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리법석을 피우는 놈 해서 버스 안이 이 어린아이들로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그 뚱뚱한 애 엄마는 이런 아이들을 때리고 욕하고 저주하고 팔짝팔짝 뜁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던 그 부흥사는 도무지 참아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금방이라도 뭐라고 해 주고 싶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득 마음속에 감동이 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선교사는 “그래, 감사해야지!” 했습니다. 그 다음 뭐라고 기도한 줄 아세요? “하나님이시여, 저 여자가 내 아내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여러분,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할 줄 아는 자기 나름의 비법을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똑 같은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자가 있고 불평을 늘어놓는 자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하겠습니까?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사랑과 감사의 열매가 맺혀지는 인생을 산다면 그분의 행복 플러스 인생입니다.
그렇게 살기를 하나님께서는 바라고 계십니다. 이 시각부터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원수맺고....살지 마십시오.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을 추가하십시오. “나에게는 원수가 없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그리고 언제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깃드는 삶을 사십시오. 쫓겨다니는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사명의식에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고 거기에 올인 하십시오.
무엇보다도 감사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생활로 나아가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에 더 감사할 제목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십시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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